10화. 간작과 닭
저녁을 먹은 고청운은 뜰을 걸으며 소화를 시켰다. 씻기 전에는 팔 굽혀 펴기를 하다가, 피곤하다고 느끼고서야 그만두었다.
씻은 후에는 바로 잠자리에 들지 않고 책을 외웠다. 오늘 배운 지식을 복습하고,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책을 찾아봤다. 그리고 <삼자경>부터 오늘 배운 내용까지 외워보았다.
그러고 나서 고청운은 기름등을 밝힌 후 책을 봤다.
공부를 마친 후엔 불을 끄고 머리를 빗었다. 머리에는 수많은 혈관이 있어서 빗질을 하면 신진대사가 촉진되어 피로를 풀 수 있었다.
빗질을 마치면, 침상에 누워서 또 잊은 부분을 암기했다.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일어나지는 않고, 내일 아침을 기약했다.
이런 방법은 기억력이 좋은 사람에게는 바보 같은 짓일 수 있었다. 하지만 고청운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기억력을 향상하기 위해서 고생하는 것이므로 당연하게 여겼다.
고청운은 건강을 도모하기 위해서 화를 내지 않았다. 고청운이 자주 웃으니, 인간관계가 좋았고 갈등은 적었다.
고청운은 멀리 내다봐야 한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화를 내는 건 신장과 심장에 좋지 않았다. 전생에서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과 맞닥뜨리더라도 냉정을 유지하고 현지의 풍습에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고청운은 건강을 위해서 얼굴을 자주 만졌다. 기회가 생기는 대로 손으로 얼굴을 만져 마찰을 일으켰다. 이렇게 하면 얼굴에 활기가 돌면서 홍조를 띠었다.
고씨 집안은 부자는 아니었지만 배불리 먹을 형편은 되었다. 매일 달걀을 먹었고, 고기와 생선은 종종 먹었다. 생선은 개울가에서 잡았고, 새우도 잡히곤 해서 비린내 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고대하와 고이하는 산에 함정을 파놓곤 했는데 여기에 운이 나쁜 야생동물이 빠지면, 그 덕택에 저렴한 갈비탕과 돼지 내장을 먹을 수 있었다.
지난 육 년간 부족함 없이 영양 섭취를 한 고청운은 머리카락이 새까맣고 볼에는 홍조를 띠는, 행동거지가 바른 소년으로 자랐다. 그리하여 고청운은 마을에서 꽤 인기가 있고, 집안에서도 제법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고청운이 네 살에서 열 살이 되기까지, 이 육 년이라는 세월 동안 고씨 집안에는 여러 변화가 일어났다. 고청운의 공부에는 매해 은자가 최소 3~4냥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단순히 공부에만 들어가는 비용일 뿐, 생활비와 의식주 비용은 일체 포함되지 않은 것이었다.
특히 고청운이 여섯 살에 접어들어 글자를 제대로 쓰기 시작했는데, 종이가 워낙 비싸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먹물이 아닌, 맹물로 연습을 했고, 숙련되었다고 생각이 들 때만 종이에 글씨를 썼다. 이렇게 절약을 하더라도 돈은 지출되기 마련이었다. 고백산도 고청명과 고청량을 가르쳐야 했기에 고청운의 종이 비용을 댈 수 없었다.
가족이 늘어나자, 징수해 가는 세금과 소비도 늘었다.
지출이 있으면 수입도 있는 법이라, 고씨 집안의 은전은 나날이 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뚜렷한 변화가 없었는데, 고청운이 여덟 살이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고청운은 여덟 살이 되었으므로 자신도 이제 설득력을 갖췄다는 생각에, 고대하를 따라 현의 책방에 가서 무료로 책을 보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농사와 관련한 책을 읽은 것처럼 이야기를 꾸며냈다. 고청운이 농업과 관련한 지식을 말한다고 해서, 집안 어른들이 그대로 시행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고청운은 일단 집안 어른들에게 맡겨둘 뿐, 농사법에 대해서 강요하지 않았다.
고청운이 말한 농사법은 간작(套种)이었다. 간작은 한 농경지에서 두 가지 이상의 작물을 재배하는 농사법을 일컫는다. 이를테면 옥수수 밭에 대두, 호박, 오이, 완두콩을 함께 심고, 마늘은 대두, 유채와 함께 심는 것이다. 이렇듯 간작을 하면 생산량이 상승함은 물론, 토양을 개선할 수 있다. 이러한 농사법을 고청운이 아는 이유는 전생 덕택이었다. 전생에서 귀동냥으로 습득한 지식을 은근슬쩍 흘린 것이다.
고청운에게 간작에 대한 정보를 전해들은 고계산은 시큰둥했다. 그럴 만도 한 게, 간작이라는 농사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었다. 두 가지 작물을 심으면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건 금시초문인 데다가, 서적에서 읽었다는 걸 곧이곧대로 믿기엔 고청운이 너무 어렸다. 하지만 고청운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것이라고 여러 번 종알거리는 걸 듣고서, 고계산은 간작을 한번 시도해 봤다.
고계산은 고청운의 노력이 가상하여 간작을 한 것이었다. 만약 벼와 관련한 농사법이었다면 함부로 간작을 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벼농사는 몹시 중요했지만, 옥수수와 대두 농사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해의 옥수수와 대두 농사는 대풍년이었다. 옥수수는 전년보다 10근에서 20근이 늘었고, 대두를 심은 여덟 묘의 밭에서는 200여 근을 추가 수확했다.
만약 그대로 팔았다면 330문에서 360문의 수입이 늘었을 것이다. 이 정도 추가 수입이면 농가에서는 고기를 한 달에 두 번 더 먹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고씨 집안은 고청운을 공부시킨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확신했다!
고계산은 너무 기쁜 나머지, 고백산을 찾아가 상황을 이야기했다. 왜 이런 방법을 진즉 알려주지 않았냐고 원망하기도 했다.
고백산은 답답했다. 밭일을 하지 않는 고청운이 어찌 농사와 관련한 서적을 봤단 말인가?
화가 난 고백산은 다음 날 고청운을 데리고 현으로 갔다. 그리고 어떤 책을 본 것인지 물었다.
고청운은 서가로 가서 <범성지서(泛胜之书)>, <제민요술(齐民要术)>, <진부농서(陈敷农书)>, <왕정농서(王祯农书)> 네 권을 찾아서 보여줬다.
서적을 받아 든 고백산은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포기했다. 고백산이 고개를 저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 할아비는 이런 서책은 정말 읽히지 않는단다.”
고청운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 책은 이전 조대에 나온 거예요. 웬만한 내용은 다 들어 있고, 제가 말한 내용도 여기에 쓰여 있어요.”
고백산은 책을 살펴봤다. 두께가 세 마디 정도 되는 이 책은 무게가 상당했다. 가격은 음, 안 보느니만 못했다.
고백산과 고청운은 결국 책을 사지 않았다. 이 책이 농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알지만 가격이 비쌌다. 고백산은 고청운에게 종이를 1도(*刀: 100장) 사주고, 자신이 쓸 종이도 샀다.
닭을 키우고 달걀을 판매하여 벌어들이는 수익도 쏠쏠했다. 고청운은 공부만 하고 다른 일을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청운은 매일 시간을 내어 닭장을 깨끗이 청소하고, 모이를 찾았으며 닭과 관련한 공부도 지속했다. 닭과 관련한 일을 고청운이 전부 하자, 가족들은 서서히 닭은 고청운이 관리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처음에는 고계산과 노진씨가 글공부에 매진하라며 고청운을 만류했다. 하지만 고청운은 닭 또한 농사와 다름없이 공부가 필요하다며 그들을 설득했고, 이러한 노력이 결국 통했다. 이렇게 되니 고이하와 이 씨도 이견을 내지 않았다.
고청운은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이므로 가족의 단결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열 묘의 논과 여덟 묘의 밭을 농사지으려면, 평소에 장정 세 명의 노동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평소라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으나, 농번기에는 일손이 부족했다. 그래서 분가하지 않고 모두 힘을 모았고, 여자들도 농사에 동참했다.
고청운은 닭에게 모이를 처음 줬던 네 살 무렵부터 줄곧 닭을 사육하는 경험을 축적했다. 그때, 고씨 집안에는 닭이 암컷 일곱 마리, 수컷 두 마리뿐이었다. 암컷은 서서히 알을 품으려고 했고, 그럴 때면 고청운은 내버려뒀다.
그러자 언젠가부터 집안의 닭이 점점 늘어났다. 고청운은 고대하와 함께 별도의 닭장을 만들었다. 딱히 좋은 재료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비바람을 피할 정도는 되었다.
고청운은 책을 내려놓고, 망사를 뜨고 있는 대아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곧바로 후원에 있는 닭장으로 갔다. 닭장은 후원의 죽림(*竹林: 대나무로 이루어진 숲) 근처에 있었다. 닭이 움직일 수 있되, 도망가지는 않도록 적당한 공간을 만들고 경계를 치는 울타리를 만들어 뒀다. 닭들은 대나무, 구기자, 금은화수 아래에서 먹을 걸 찾아 돌아다녔다.
다만 겨울에는 닭의 모이가 적었다.
그래서 고청운은 지렁이를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잘 키우지 못했지만, 서서히 경험이 쌓여서 반년 후에는 지렁이 키우기에 성공했다.
지렁이를 키우니, 닭모이가 더는 부족하지 않았다. 그들이 사는 곳은 남쪽이었는데, 겨울에는 매우 습하고 추우며 눈이 얕게 쌓였다. 하지만 산은 푸릇했고, 수확해서 보관해두었던 고구마 말랭이로 모이를 하면 그럭저럭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고청운이 닭장으로 가니, 이아가 닭똥을 쓸고 있었다. 이아는 올해 열두 살로, 한창 성장 중이었는데 몸매가 매우 가냘프게 자랐다. 햇볕에 탄 얼굴은 검고 동글동글했으며, 눈은 크고 맑았다.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깊고 조용한 느낌이었다.
“둘째 누이, 나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면 안 돼? 혼자 하면 오래 걸리잖아.”
고청운이 급히 말했다. 그렇다고 걸음도 급한 것은 아니었고, 느긋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고백산의 가르침으로써, 고청운이 유지해야 하는 일상의 태도였다. 서생은 급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서는 안 됐다. 고청운이 전생에서 본 드라마에서는 기품을 지닌 서생이 길거리에서 부채를 흔들며 크게 ‘흠, 이리 오너라!’라고 외치거나, 규수의 손을 잡고 미친 듯이 흔들곤 했다. 하지만 여기에선 절대 그래서는 안 됐다.
이 시대에 그랬다가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라면 고청운도 무지했다. 그래서 고백산의 가르침대로 따랐다.
“괜찮아, 마침 밥한 후에 여유가 났어.”
이아가 땀을 닦고 활짝 웃었다.
“넌 힘들게 공부하잖아. 난 집에 있으니 시간이 많아서 일을 더 해도 돼.”
많은 닭이 있는 닭장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세 번씩 닭똥을 치워야 했다.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직 안 오셨어?”
고청운은 화제를 바꿨다. 무리하지 말라고 해도, 근면 성실한 이아는 바뀌지 않을 것이었다.
“아직 밭에 계셔. 오늘 햇빛이 강하지 않아서 일을 더 하실 모양인가 봐. 곧 모내기할 준비를 하실 것 같아. 숙부는 오늘 숙모랑 친정집에 가셔서, 집에 일손이 부족해.”
이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숙모 이 씨의 네 번째 오빠 아들이 태어난 지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고이하의 일가족은 오늘 친정에 갔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저녁에 이 씨가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원래는 노진씨도 고이하의 가족과 함께 가야 했지만, 한창 밭일을 하는 시기이니 노진씨는 가지 않는 것이 어떠냐고 이 씨가 제안했었다.
“이제 봄인데, 닭들은 어때? 전염병 같은 건 없고?”
고청운이 물으며 이아와 함께 힘을 합쳐 닭똥을 변소에 털어 넣었다. 마개를 덮고 나서야 고청운은 숨을 쉴 엄두가 났다.
이 냄새를 계속 맡으면 기절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없어. 자세히 살펴봤는데, 닭들은 모두 건강해.”
닭을 기를 때 가장 무서운 건 전염병이었다. 전염병의 위험이 없었다면, 마을에 닭을 키우지 않는 집이 없었을 것이고, 너도나도 내다팔았을 것이다.
고청운은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오래도록 공을 들이다가, 전생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시골에 갔을 때 닭을 전문적으로 사육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본 것 중에서 몇 가지를 정리하여 하나하나 실행해 봤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역이었으므로, 고청운은 소독과 위생을 중시했다. 소독을 하려면 식초가 필요했는데 가격이 비쌌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