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화 (4/504)

4화. 이아(二丫)

“그럽시다. 당신 말대로 하지. 참, 우리 집에 돈이 얼마나 남아 있소?” 

고대하는 소진씨가 하는 말을 듣고 나니 믿음직스러워져서 물었다.

“저랑 대아가 몰래 망사 주머니를 떠서 번 돈이 있어요. 거기에 당신이 날품을 판 걸 보태면, 한 냥 정도는 될 거예요.”

소진씨는 득의양양했다. 코앞에 시어머니를 두고 1년 동안 이렇게 많은 돈을 모은 것은 스스로 긍지를 느낄 만한 일이었다. 

“그 돈이면 충분할 듯하오.”

고대하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침상 쪽으로 걸어가며 이어서 말했다.

“때가 되면 절대로 흔적을 남기면 안 되오. 오늘도 고생했으니 우리도 이제 누웁시다. 내일 오전엔 산에 가서 나무를 해야 하니.”

“네, 저도 마을 묘대랑(苗大朗) 집안에서 삼실을 사와서 베를 좀 짜야겠어요. 집에 있는 삼실을 다 썼거든요.”

소진씨는 하품을 하고 다리를 두드린 후 자리에 누웠다. 

지금 베를 짜려면 모시풀을 심어야 했다. 하지만 고씨 집안에서는 모시풀을 심지 않아서, 마을 사람에게 사는 수밖에 없었다. 모시풀로 베를 짜서 팔면 부수입이 생겼지만, 이윤은 높지 않았다. 그래도 가족의 옷을 만들 천을 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체가 남는 장사였다. 

고대하와 소진씨가 눕고 나서야 고청운은 안심하고 잠에 들었다. 

* * *

잠을 푹 자고 일어나니 집안이 조용했다. 그러다가 탁, 탁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는 아마도 소진씨가 베를 짜는 소리일 것이었다. 

고청운은 주방으로 들어가 조롱박으로 물독에서 물을 길어냈다. 그리고 자신이 사용하는 대나무로 만든 잔에 물을 가득 담아 양칫물로 사용했다. 입술을 물로 충분히 적신 후에는 냄비에 담겨 있는 뜨거운 물을 마셨다. 고청운은 절대로 찬 물을 마시지 않았다. 날이 아무리 더워도 꼭 끓인 물을 마셨다.

고청운은 집의 좌상방(左厢房) 근처까지 걸어갔다. 문 근처에 있는 작은 방이 바로 베틀을 놓은 곳이었다. 그 방에서 소진씨가 베틀 앞에 앉은 채 손과 발을 바삐 움직이며 능숙하게 삼베를 짜고 있었다.

소진씨의 동작은 민첩하고 리듬감이 있어서, 보고 있으면 어쩐지 즐거워졌다.

소진씨의 옆에서 큰누이 대아가 구경을 하고 있었다. 소진씨는 가끔 멈춰서 대아에게 삼베 짜는 원리를 설명했다. 

둘째 누이 이아는 등자에서 망사 주머니 뜨는 걸 배우고 있었다. 이아는 여섯 살밖에 안 되었지만, 여느 여자아이들이 하는 일을 배우는 중이었다.

아홉 살인 대아는 이미 반은 어른인 것처럼 일했다. 망사 주머니를 뜨고, 밥을 짓고, 음식, 설거지, 빨래 등 모든 일을 했다. 

소진씨는 짬이 나면 주로 삼베를 짰고, 숙모 이 씨도 회임 전에는 삼베를 짰다. 어머니와 둘이서 번갈아 가며 삼베를 짰기 때문에, 베틀이 멈춰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삼실은 마을 사람에게 사온 것을 사용했다. 삼실로 베를 짜고 나면 10문에서 15문 정도의 이윤이 남았다. 한 사람이 매일 짜는 양은 한 필 정도인데, 이는 숙련된 사람이나 가능한 양이었다. 중간에 잘못 짜서도 안 되었다. 잘못 짜면 그 부분을 다시 짜야 했는데, 그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작업이었다.

베를 짜는 일은 부녀들의 중요한 특기였다. 베틀 다루기는 단순한 체력 노동이 아닌 기술적 노동이었다. 눈이 빨라야 하고, 동시에 베틀이 움직일 때마다 손을 민첩하게 반응하여 움직여야 했다. 또한 완성품에 대한 요구치가 매우 높기 때문에, 아무나 기술을 익혀 베를 짜지는 않았다.

고청운은 문가에 기대어 소진씨가 베를 짜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소진씨는 베를 짜던 손을 잠시 멈추고 물을 마시다가, 문가의 고청운을 발견하고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청운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우리 전자 일어났니? 잘 잤어?”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안으로 들어와 두 누이와 인사를 한 후, 소진씨의 곁으로 갔다. 소진씨가 고청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아가 고청운의 짧은 머리를 보면서 웃었다. 

“어머니, 할머니 방법이 효과가 있나 봐요. 전자의 머리숱이 전보다 훨씬 많아졌어요.”

고청운은 줄곧 몸이 좋지 않아서, 두피가 푸석푸석하고 머리숱이 적었다.

전생에 여자였던 고청운은 볼품없는 두상을 견딜 수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머리를 제대로 못 묶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공부를 한다고 해서 인맥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정말 벼슬길에 오른다면, 외양은 몹시 중요했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벼슬에 오를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망상마저 들었다.

그래서 고청운은 세 살 무렵부터 자신의 머리를 만지면서 어머니처럼 머리숱이 많고 검었으면 좋겠다고 칭얼댔다.

소진씨는 전자를 매우 사랑했기에 노진씨에게 그 말을 전했다. 소진씨와 노진씨는 전자의 머리카락을 새로 자라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청운의 머리를 몇 번 밀었고, 머리를 감을 때는 수시로 생강을 발랐으며, 깨를 심어서 그에게 먹였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자 머리숱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머리숱이 많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노진씨가 고청운의 머리를 처음 밀었을 때, 고청운은 매우 놀랐다. 옛날에는 함부로 머리를 깎으면 안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이 시대에는 열두 살이 지난 후부터 머리를 깎지 않았고 어렸을 때는 머리카락을 자를 수는 있다는 건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만약 평생 단 한 번도 이발을 할 수 없다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단지 머리를 빡빡 미는 경우가 드문 것뿐이었다. 

사실 말은 밀어버린다고 했지만, 도구의 한계 때문에 매우 짧게 자르는 것에 불과하긴 하였다.

효경에서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효지시야(身体发肤受之父母,不敢毁伤孝之始也)’를 배울 때, 스승님의 강해(*講解: 문장이나 학설 따위를 강의하듯이 논하는 풀이)를 듣고서야 제대로 이해했다. 이 말은 자신의 신체를 아끼고 보호하는 일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의 시작이라는 뜻이지,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란 뜻이 아니었다. 전생에서 알던 지식은 와전이었다.

전생에서 고청운은 대학을 졸업 후 일하던 중, 유행을 따라 고대 타임 슬립 장르 소설을 접한 적이 있었다. 그 소설 속 남녀 주인공은 모두 빠른 시일 내에 고대 생활에 적응했다. 그들은 부자가 됐고 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를 재빨리 잡았다. 그런데 고청운 자신은? 아직도 조심스럽게 이 낯선 세계를 탐색하고 있었다. 

관념이 다르면 큰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고청운은 우선 이곳의 풍습을 제대로 파악하고서, 천천히 행동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응, 그러게. 전자가 많이 건강해졌다는 뜻이지.”

소진씨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어머니, 왜 진에서 염료를 사다가 천을 염색하지 않는 거예요? 얼마 전에 할머니께서 붉은 천을 비싼 값에 사 오신 걸 봤어요.”

고청운은 소진씨에게 몸을 기댄 채로 물었다. 

소진씨가 짜는 삼베는 본연의 색이었기 때문에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없었다. 만약 염료로 염색을 한다면 가격이 곱절은 될 것이었다. 

“우리가 생각 안 해 본 줄 아니? 그저 집에 염색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천을 염색하는 일에도 기술이 필요하단다. 시간과 농도, 혹은 균형 같은 걸 잘못 맞추면 염색한 천 곳곳에 얼룩이 지거든. 그래서 염색집에서는 전문가인 대가를 모시고 그 일을 하는데, 그것 역시 돈을 주고 청해야 한단다.”

소진씨는 고청운이 어렸을 때부터 질문하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처음에는 소진씨도 말이 많은 고청운을 짜증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아픈 고청운이 외출하지 못하고 방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안타까워 이야기라도 듬뿍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고청운이 질문한 것은 늘 자세히 설명해 주곤 했다. 그 덕택에 고청운이 빨리 철드는 것 같기도 해서 귀찮지 않았다. 고청운은 한 번 질문한 문제에 대해서는 두 번 묻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소진씨는 자세히 설명했다. 

소진씨의 설명을 들은 고청운은 크게 깨달았다. 고청운이 생각한 것은, 소진씨와 고대하도 이미 생각한 것이었다. 그들은 어른이므로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이아야, 동생 좀 데리고 나가서 놀아라.”

소진씨가 고청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둘째 누이랑 나가서 놀렴. 어미는 이제 베를 짜야 한단다.”

“네.” 

고청운은 내키지 않았지만, 소진씨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줄곧 망사를 뜨고 있던 이아는 나가서 놀 수 있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밝게 웃으며 등자에서 내려와, 고청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 * *

고청운과 이아가 마을을 돌아다니자, 강아지 소흑이 뒤따랐다. 소흑은 흥분한 채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쫄랑쫄랑 따라다녔다. 

임계촌은 규모가 크진 않지만, 그렇다고 집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진 않았다. 집집마다 널리 흩어져 살고 있었고, 각자 살고 있는 집의 정원이 컸다. 대부분의 집에서는 강아지를 기르고 있었기 때문에, 근처를 지날 때면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따뜻한 바람이 불면 울타리 사이로 삐져나온 복숭아꽃에서 좋은 향이 널리 퍼졌다.

걷는 동안, 이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아는 내향적인 어린 여자아이였다. 

고청운은 귓가에 들려오는 고요함과 온갖 잡음을 들으며 걸음을 옮기면서, 농촌의 일상적인 풍경에 감탄했다.

전생의 생활은 마치 꿈처럼 여겨졌다.

작은 개울가에 옹기종기 모인 어린아이들이 웃는 소리가 들려오자, 고청운은 급히 말했다. 

“누이, 가서 그물이랑 통 좀 가져와. 내가 개울가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럼 혼자 물에 들어가면 안 돼.” 

이아도 그물과 통을 가지고 개울가에 들어가서 놀고 싶었다. 이아 역시 어린아이였기 때문이었다.

기쁘게 뛰어가는 이아의 뒷모습을 보니, 고청운은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고청운은 집안의 유일한 남자아이로서, 손자 중 가장 높은 대우를 받았다. 고이하와 이 씨의 딸인 삼아는 지금 두 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삼아에 대해서는 딱히 말할 게 없었다.

하지만 고청운의 누이 둘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대아는 고청운을 몹시 아껴서, 맛있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고청운에게 남겨주었다. 

그렇다면 이아는? 이전에 고청운의 열이 심하게 났던 것은 이아 때문이었다. 

고청운이 태어나자, 그에게 부모의 모든 관심이 쏠렸다. 고청운이 태어나기 전에는 이아가 가장 어려서, 한동안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후에 대왜자가 태어났고, 이아는 대왜자와 어울리면서 제법 정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고청운의 몸이 아팠던 날, 고청운은 온몸에 힘이 없어서 눈도 못 뜨는 지경이었다. 울고 싶어도 힘이 없어서 울지 못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더니 차가워졌다. 귓가에는 앳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 너 때문이야. 아버지, 어머니는 날 원치 않으시고 대왜자도 필요 없대. 네가 아니면 대왜자도 죽지 않았을 거야.”

대왜자는 요절한 형의 아명(兒名)이었다. 

그날은 매우 추운 그믐 섣달이었다. 고청운은 너무 추워서, 고대하와 소진씨가 왜 곁에 없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온몸의 힘을 쥐어짜내서 겨우 새끼고양이 같은 울음소리를 냈다. 

훗날 고청운은, 자신이 고이하의 아들과 동시에 병들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아버지 고대하는 고청운을 위해 의원을 찾으러 나갔다. 어머니 소진씨는 주방에서 약을 달였고, 큰누이 대아는 변소에 갔다. 그래서 작은누이 이아가 자신을 돌본 것이었다.

당시에 고청운은 우느라고 온몸의 기력을 잃었다. 결국 목소리에 힘이 없어져서, 멀리 있는 누군가가 듣기에는 턱없이 흐릿한 음성으로 울었다.

그렇게 흐느끼고 있는데, 다행히 소진씨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고청운은 몸에 무거운 것이 얹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조금 따뜻해졌다. 소진씨가 이불을 덮어준 것이었다.

“어머니, 동생은 왜 자꾸 울어요?”

이아가 물었다. 이아의 목소리를 들은 고청운은 온몸이 오싹해졌다.

그때 이아는 네 살이었다. 그렇게 어린아이가 이렇듯 섬뜩한 일을 하다니. 고청운은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았다. 

‘이 시대의 아이들은 참 무섭구나! 무슨 대저택 집안도 아닌데 집에서 이런 암투가 벌어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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