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세뇌
고대하는 침묵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보, 어서 말씀해 보세요.”
소진씨가 팔꿈치로 고대하를 쿡쿡 찌르자, 고대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우리에겐 돈이 없소. 당신도 알잖소. 백부님이 공부하는 데에 얼마나 큰돈이 들었는지. 예전에는 집안 형편이 좋아서 고기나 생선을 적잖이 먹던 날도 있었지. 그런데 백부님 공부 뒷바라지를 하느라 땅을 팔았소.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만이 쌓인 탓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분가를 한 거요. 하물며 또 집안 자금으로 우리 아들 공부 뒷바라지를 해달라고 하면, 부모님이 노여워하실까 봐 두렵소. 그리고 내 동생도 반기를 들지도 모르오.”
고대하는 고청운의 왜소한 몸을 바라보았다. 고청운은 허연 얼굴에 살짝 홍조를 띤 채 작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들숨날숨에 맞춰 가슴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것을 보아하니, 달게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고청운은 평소에 언행이 남달라서, 꾀죄죄한 원숭이 같은 마을 아이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러니 고대하도 고청운이 공부하길 바랐다. 자신의 아들이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논밭을 일궈야 하는 농부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 고청운은 수를 잘 세니, 과거 시험을 치를 수는 없어도 진에서 장방(*账房: 옛날의 회계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고대하는 진에서 날품을 팔 때 장방을 본 적이 있었다. 몸을 쓰지 않아도 됐고, 뜨거운 차와 간식을 대접받았다.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물은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는 일과는 차원이 다르게 편해보였다.
“여보, 다시 물어볼게요. 아들이라곤 전자 하나뿐인데, 나중에 당신이 나이가 들어서 조정에서 부역을 징발하면 우리 아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소진씨는 고대하가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서둘러 말을 이었다.
“시동생이 아들을 낳아도, 우리의 친자식은 아니잖아요.”
고대하는 멍해졌다.
그렇다. 새로운 황조의 조세는 이전보다 훨씬 적어져서 복잡한 명목의 세금을 낼 필요는 없었지만, 농사짓는 사람은 묘(亩)수에 따라 3할의 농업세를 내야 했다.
그리고 머릿수대로 내야 하는 세금은 여전히 존재했다. 3세 이상이면 남녀를 막론하고 매년 100문(*文: 옛날 동전 화폐 단위)의 세금을 내야 해서, 현재 고씨 집안은 도합 900문을 내고 있었다. 내년부터는 동생의 딸 삼아(三丫)가 만 세 살이 되기 때문에, 은자 한 냥을 내야했다.
이는 고정적으로 내야 하는 세금이었고, 식구 수가 늘수록 더 많은 돈을 내야했다.
현재 집안의 한 해 소득은 대략 서너 냥 정도였다.
이 밖에도 집안에서 장정(*壯丁:나이가 젊은 남자) 하나가 조정에서 지정하는 지역에 가서 매년 부역을 해야 했다. 20일 동안 부역하는데, 이는 모두 무상일 뿐만 아니라 힘들기도 해서 건장한 사람이 아니면 돌아와서 크게 앓곤 했다.
왜소한 몸을 가진 고청운은 견뎌내기 힘들 것이었다.
“내 아들이 수재에 합격하게 되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고, 부역도 할 필요가 없어요. 또 30묘 땅의 세금을 면제 받을 수 있어요. 전자는 영리하니까 분명 합격할 거예요.”
소진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고대하는 평소 아들의 행동을 생각해 보고는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청운이 수재에 합격하는 것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흥분으로 벅차올랐다!
“시동생의 의견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건 아버지, 어머니의 의견이니까 두 분이 동의하시면 문제될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소진씨가 냉정한 말투로 덧붙였다.
“저는 어머니가 평소에 백부님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알아요. 혹여나 가세를 기울게 할까봐 자식들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안 좋아하시죠. 그래도 저는 어머니의 생각을 바꿀 좋은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어머니께서 알아서 해주실 거예요.”
소진씨는 고대하에게 귓속말을 했다.
잠자는 척을 하던 고청운은 남몰래 귀를 쫑긋 세웠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평소에 어머니에게 한 암시가 헛된 노력이 아니었으니까.
* * *
고청운은 1년 전에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지 궁리할 기력이 생겼다. 가족들이 힘들게 밭일을 하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에 힘든 농사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고청운은 전생에서도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농사일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전생에는 잡교수도(*杂交水稻: 인공 교배한 잡종의 첫 번째 쌀)가 있고 비료도 생겨서, 1묘의 논에서 상황에 따라 수천 근의 벼를 수확할 수 있었다. 그랬는데도 마을에서 농사일로 부자가 된 이는 없었다.
고씨 집안은 1년에 이모작하는 밭과 그 밭에서 늦벼를 수확하고 나서 심는 감자, 그리고 여덟 묘의 한지(*旱地: 물을 대지 않고 농사를 짓는 땅)에 심는 옥수수와 고구마로 최대 35냥을 벌었다. 하지만 이 돈에서 세금을 빼면, 매년 총수입은 약 28냥 은자였다.
고청운은 전생에서 중국 청나라 때의 장편 통속 소설인 홍루몽을 읽은 적이 있었다. 홍루몽의 저자는 작은 집안은 24냥 은자로 일 년을 살 수 있다고 썼다. 하지만 임계촌에서는 매년 한 사람에게 최소 은자 2냥이 들었다. 그러므로 매년 남는 은자는 8냥뿐이었다.
하물며 고청운은 아직 종자의 원가를 계산하지 않았다. 인구세와 종자 비용을 제하면, 많아 봤자 5, 6냥 정도의 수입만 남았다.
이것은 그나마 이상적인 상황일 때를 계산한 결과였다. 바람과 비가 순조롭지 못하여 일부 농사를 망친다거나 의외의 일이라도 생기면 수입이 감소했다.
고청운은 집안의 수입을 계산한 후, 농사를 짓는 일로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평생 농사를 지어도 부자가 될 수 없었다. 당장 감자, 고구마, 옥수수가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전생에는 비료가 넉넉해서, 농사를 지으면 생산량이 많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사람과 돼지에게 나온 비료에만 의존해서, 땅을 비옥하게 만들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비료를 사면, 그것은 별도의 지출에 속했다.
게다가 이 작물들의 종자는 모두 개량을 거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생산량을 높일 수가 없었다.
농사는 생산량이 600근 이상일 시 풍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정도가 되려면 땅을 정성들여 갈고 모종을 조심스럽게 심어야 해서 인력이 많이 소모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약간의 산나물과 직접 심은 채소를 섞어 먹는 것으로 입에 풀칠을 했다.
고대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 계급이 분명했지만, 잘살기만 하면 장사를 해도 무시당하지 않았다. 좌우지간 돈이 있다는 거니까.
그렇지만 고청운은 생각했다. 매 시대마다 돈이 있는 상인은 모두 도살을 기다리는 살찐 돼지 같았다. 사람들에 의해 점점 발 디딜 틈도 없어져 그 형세가 불안정했고, 지위 또한 너무 낮았다.
가문이란 것은 언제든지 몰락할 수 있으니 반드시 비빌 언덕을 마련해야했다.
하지만 고청운은, 아무리 머리를쥐어짜보아도 장사를 해서 돈을 벌 방법을 도저히 생각해내지 못했다.
이제 감자, 옥수수, 고구마는 농사를 지어서 자주 먹을 수 있지만, 돼지 내장은 사기 힘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돼지 내장을 즐겨 먹는 터라, 조금이라도 시장에 늦게 가면 살 수가 없었다. 대신 강과 도랑에는 미꾸라지, 드렁허리와 같은 물고기가 있었다. 다만 물고기도 고기인지라, 요리를 하려면 기름이 많이 들고 비린내가 나는데도 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아 먹었다.
기근으로 삶의 터전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가던 시기에 사람들은 관음토(*观音土: 옛날 기근이 들었을 때 굶주림을 이겨 내기 위해 먹던 백토)를 먹고 나무뿌리도 갉아 먹었다. 하물며 강에서 나는 물고기인데 비린내가 나는 것이 대수겠는가. 어린아이들도 매일 얕은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고청운이 장사로 돈을 버는 방법을 짧은 시간 내에 생각해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고청운의 할아버지는 목수였다. 하지만 시골 마을에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목공일을 조금씩은 할 수 있다. 등자(*凳子: 등받이가 없는 의자) 같은 것엔 돈을 쓰지 않고 직접 만들었다. 조금 더 신경을 쓰는 이들만 전문 목수를 청하여 만들고는 했다.
고청운이 수예(*手艺: 수공 기술)를 배운다? ‘도제에게 모든 것을 다 가르쳐주면, 사부가 굶어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도제에게 쉬이 수예를 가르쳐주는 사부는 없다. 도제로 인정받으려면, 오랜 기간 머슴으로 들어가 사부의 온갖 잡일을 대신 해야 했다. 사부들은 비결을 꽁꽁 싸매고 자기만 알고 있으려고 했다. 그래서 도제가 되어도 결국에는 얻은 것 없이 빈손인 경우가 많았다.
이렇듯 수예를 배우는 것은 틀림없이 무척 힘든 일이었다. 고청운은 아마 그런 고생을 견뎌낼 수 없을 테니, 이쪽 일도 적합하지 않았다.
고청운이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은 공부였다. 전생에서 십수 년 동안 공부를 했으니, 아무래도 깨달은 바가 있었다. 지금 사용하는 게 정체자(*正體字: 전통 한자)이기는 하지만, 고청운은 다른 토착민보다 자신이 낫다고 생각했다.
또한 고대에서 지식인의 지위는 매우 높았다. 운 좋게도 수재에 합격한다면, ‘사(士)’ 계층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소리(*小吏: 하급 관리 벼슬)와 지역 불량배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것이었다.
고청운은 자신의 신체적 상황을 고려해서, 세 살이 되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공부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가족을 설득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세 살이 되어서도 가족을 설득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공부에 대한 관심을 유도할 수는 있을 것이었다. 장기적으로 유도하면 공부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지도 몰랐다.
이곳으로 왔을 때, 고청운은 고씨 집안이 꽤 많은 돈을 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에 논밭은 심히 척박해서, 벌이가 지금보다 낫지 않았다. 게다가 사촌동생 이왜자가 병에 걸려 적지 않은 돈을 쓴데다가, 고청운의 약한 몸을 위해서 쓴 돈도 많았다. 하물며 작년에는 지붕을 기와로 덮었다. 이렇듯 목돈을 지출했으니, 집안에 남은 돈이 얼마 없을 것이 빤했다.
이러한 연유로 고청운은 평소에 소진씨를 세뇌하기 위한 말을 했다. 자신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제 곧 효과가 나타날 것이었다.
고청운은 소진씨가 영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계획만 잘 세우면 성공할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