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9/10)

나는 결국 유리코 님이 되었다.

후보자 중 세 명이 죽고, 쓰쓰미는 양쪽 다리에 복합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었다. 쓰쓰미는 생명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회복에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리고 회복 후에는 전학을 간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결국 학교에 유리코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은 나 혼자가 되었고, 정식으로 나는 유리코 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마음은 개운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그 범인인 유리도 검찰에 구속되었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은 무엇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불행한 일을 겪었으니 유리코 님이 되었다고 한들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3일 동안 임시 휴교를 한 후 다시 수업이 시작되었다. 교장 선생님이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며 심리 상담사를 늘리는 한편, 학생들은 축제 날 있었던 일의 영향으로 유리코 님에 대한 신봉이 깊어졌다. 유리코 님은 절대적이라는 분위기가 부풀어 올랐다. 축제에서 유리코 님 전설의 와해를 노린 미즈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반면 나는 유리코 님이 되어 전교 학생들로부터 존경과 두려움의 눈길을 받게 되었다. 괴롭힘은 사라졌지만 반대로 미즈키 외에는 가까이 다가오는 학생도 없었다. 있다고 해도 유리코 님의 권위에서 뭔가를 얻으려는 학생회 정도였다. 나는 쓸쓸했다.

“하아, 어쩐지 허무해.”

점심시간, 나는 정원에서 양팔을 쭉 뻗으며 중얼거렸다. 옆에 앉은 미즈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리코, 왜 그래? 요즘 기운이 없어 보여.”

미즈키의 다정한 말에 마음이 놓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어쩐지 유리코 님이 되지 않는 편이 좋았지 않았을까 싶어. 미즈키 말고는 아무도 나를 있는 그대로 대해주지 않아.”

한숨을 쉬자 미즈키가 가볍게 내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누가 뭐래도 나는 유리코 편이니까.”

든든한 위로였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조금 어긋나 있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이제 완전히 끝날 거야.” 미즈키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라고? 이미 다 마무리된 것 아니었나?

“진짜 유리코 님과 끝을 내러 가자.”

미즈키는 힘 있는 말투로 말했지만 나는 그 의도를 전혀 읽어낼 수 없었다.

“다만 그전에 가야 할 곳이 있어.”

미즈키는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내고는 앞서 걸어갔다. 나는 당황하면서 미즈키를 따라갔다. 미즈키를 따라가서 잘못된 적은 없었다.

미즈키가 찾아간 곳은 우리 반 교실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많은 시선이 내게로 쏟아졌다. 미즈키를 앞에 두고 부끄러운 기분도 들었지만 나는 유리코 님으로서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미즈키는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나를 무서워하며 교실 구석으로 이동한 여학생 무리 가운데 들어가 그중 한 명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미쓰노야?”

미즈키가 말을 건 사람은 미쓰노였다. 여학생 그룹의 리더이고 내 자전거에 못된 짓을 한 후 자신의 자전거에도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다쳤던 바로 그 친구였다.

“시마쿠라? 무슨 일이야?”

완전히 나은 미쓰노는 강한 척 힘껏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미즈키는 그 태도는 전혀 개의치 않고 질문을 던졌다.

“유리코의 자전거에 손댄 사람이 바로 너지?”

미쓰노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조금 당혹스러워했다. 유리코 님인 나의 힘이 확고해진 이상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했다. 미쓰노는 변명도 유리코 님에 대한 반역에 해당된다고 생각했는지 솔직히 대답했다.

“아, 응, 그래. 그때 충동적으로 브레이크 와이어를 잘랐어. 정말로 우발적으로 저지른 행동이었어. 특별히 다치게 한다거나 위협할 의도는 없었는데.”

변명하듯 말했지만 미즈키는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면 그때 사용했던 공구는 어디서 난 거야?”

공구의 출처. 미즈키가 묘한 걸 물었다. 그리고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자전거 주차장에 떨어져 있었어.”

예상치 않게도 수상한 대답이 돌아왔다. 공구가 학교 자전거 주차장에 떨어져 있다니 이상하다.

“정말이야. 내 자전거 옆에 펜치가 떨어져 있었어, 끝이 가늘게 생긴. 그걸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야사카의 자전거에 장난을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역시, 그랬던 거였군.”

미즈키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크게 뜬 눈에 새까만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펜치 혹시 지저분하거나 부서져 있지 않았어?”

“응, 피가 묻어 있고 날 끝부분의 이가 나가 있었는데.”

더욱 수상한 증언이 나왔다. 펜치에 피가 묻어 있고 날의 이가 나가 있었다고? 그렇다면 누군가가 미쓰노보다 먼저 펜치를 사용해서 상처를 입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그때 펜치는 어떻게 했어?”

생각에 잠긴 내 옆에서 미즈키는 목소리에 힘을 담아 물었다. 미쓰노는 압도당한 듯이 뒷걸음질 치면서 우물우물 대답했다.

“소각로에 버렸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특별동 뒤편에 있는 소각로. 누가 발견하면 귀찮아질 것 같아서, 그렇다고 학교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도 무섭고.”

미즈키는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미쓰노, 잘했어.”

그 말만 하고는 미즈키는 발을 돌려 뛰어나갔다. 나는 멍해진 미쓰노와 마주 보는 상태가 되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미즈키를 쫓아갔다. 미즈키가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나도 마지막까지 지켜봐야만 했다.

소각로 앞에 가자 미즈키는 옆에 있던 집게를 들고 소각로 안을 휘젓고 있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소각로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정체 모를 그을음이 피어올라 나도 모르게 기침이 났다. 이렇게까지 해서 미즈키는 무엇을 하려는 걸까?

“찾았다.”

갑자기 미즈키가 외쳤다. 집게를 천천히 꺼내자 그 끝에 펜치가 따라 나왔다. 미쓰노가 말한 대로 끝이 가는 롱노즈 플라이어였다.

“날이 나갔지? 피도 묻어 있어.”

집게를 내려두고 미즈키는 손수건으로 펜치를 감쌌다. 정말로 날이 나가고 검붉은 혈흔이 묻어 있었다.

미쓰노의 증언과 일치했다. 하지만 이런 게 무슨 도움이 되는 걸까?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펜치의 손잡이를 보고 문득 기억이 떠올랐다. 거기에는 매직으로 커다랗게 글씨가 적혀 있었다.

……화학 준비실.

어째서 이런 곳에? 나는 깜짝 놀라 움직이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만나자는 약속은 이미 해뒀어.”

다음 날 방과 후 미즈키는 나를 데리고 특별동 4층으로 향했다. 이쪽이라면 목적지는 그 장소일 거라 상상하는 사이 예상대로 미즈키는 화학 준비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미즈키가 문을 밀자 문은 저항 없이 스르륵 열렸다. 잠겨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창가에 서서 등을 굽히고 초대 유리코 님의 일기를 열중해서 읽고 있었다. 미즈키는 스틸 선반 앞으로 이동하더니 몸을 기댔다.

“당신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었죠? 세 건의 살인 사건은 전부 유리 선배가 저지른 일이에요. 하지만 유리코 님 전설 자체는 전부 당신이 만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일기에서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봤다. 무표정에 얼어붙은 듯한 눈이 우리를 노려봤다.

“생각해보면 이번에도 유리 선배가 한 일이 아닌 ‘불행’이 몇 가지 있었어요. 3학년 아사카 주리의 자살 미수 사건, 미쓰노의 자전거 브레이크 와이어 절단 사건, 쓰쓰미 유리코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 몇 번의 ‘불행’ 사건. 언뜻 보면 유리코 님의 저주처럼 보이겠죠. 하지만 정말로 그런 초자연적인 힘이 존재할까요?” 미즈키는 날카롭게 그 사람을 노려보며 강한 말투로 설명을 이었다. “아사카 주리는 입시 스트레스였어요.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죠. ‘선생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바에는 지금 죽는 편이 낫다.’ 이 글은 선생님에게 받는 기대가 지나치게 크다는 걸 보여주고 있어요. 다른 의미로 생각해본다면 지나친 기대로 학생에게 부담을 준 선생님이 자살 미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요? 아마도 담임 선생님일 거예요. 아사카 주리는 3학년 5반이니까 3학년 5반 담임 선생님을 찾으면 되는 거죠.”

여기서 미즈키는 일부러 잠깐 시간을 두고 그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카미자와 선생님, 선생님은 분명히 3학년 5반 담임입니다.”

미즈키가 가리킨 사람…… 흰 백합 모임의 고문, 다카미자와 유리오는 우리를 향해 냉철한 눈빛을 보냈다.

“선생님이라면 가능한 일이었어요. 학생에게 일부러 과한 부담을 주는 것도, 마음이 불안정한 입시생을 자살로 몰아넣는 것도. 그런 위험하고 대담한 방법을 쓸 수 있었을 거예요.”

다카미자와가 아사카 주리를 자살하도록 유도했다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무엇보다 대체 왜 내가 그런 짓을 하지?”

다카미자와는 표정을 풀면서 웃었지만 미즈키는 매서운 표정 그대로 몰아붙였다.

“물론 유리코 님 전설을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서예요. 아사카 주리가 쓰쓰미 유리코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니까 그런 아사카에게 불행을 내려서 유리코 님의 힘은 실존한다고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겠죠. 브레이크 와이어를 자른 건 유리코가 머리를 양 갈래로 땋고 붉은 셔츠를 입기 시작했으니까 그 효과를 보여주기 위해서 유리코를 괴롭히는 학생에게 위해를 가한 거죠. 등 뒤에서 도로로 밀어내는 등 쓰쓰미 선배에게 여러 번 덮친 불행도 전부 선생님이 한 일일 거예요.”

다카미자와는 잠깐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금세 이상하다는 듯 웃었다.

“내가 그런 짓을 할 이유가 뭐지? 유리코 님 전설을 확고하게 한다고? 나는 그렇게까지 유리코 님을 신봉하지 않아.”

그랬다. 다카미자와가 그렇게까지 유리코 님을 숭배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미즈키를 바라보자 미즈키는 스틸 선반에 기대어 여유롭게 자신 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럴까요? 저는 선생님이야말로 최대의 유리코 님 신봉자라고 생각해요.”

어째서? 하지만 미즈키는 바로 그 놀라운 답을 이야기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바로 초대 유리코 님이니까요.”

뭐라고?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미즈키가 지금 뭐라고 했지?

“그것 말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20년 전에 괴롭힘을 당하고 실연에 괴로워하다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린 여자의 마음을 가진 남학생은 바로 다카미자와 선생님이었어요.”

할 말을 잃고 멍해졌다. 지금 눈앞에 있는 선생님이 초대 유리코 님이라고?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어째서 미즈키는 ‘20년 전’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걸까? 초대 유리코 님 사건의 시기를 그렇게까지 확실하게는 몰랐을 텐데.

“일기에서 유리코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도 자신의 유리오라는 이름에서 살짝 바꾼 것이겠죠. 여자가 되고 싶다고 간절히 원하던 당신은 그 이름에 자신의 소망을 담은 거예요.”

“초대 유리코 님은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었을 텐데?”

다카미자와가 중요한 부분을 지적했지만 미즈키는 준비실 한가운데에 있는 책상으로 가 걸터앉은 후 되받아쳤다.

“죽지 않았어요. 다치긴 했지만 목숨은 건졌죠. 옥상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반드시 죽는 건 아니니까요.”

모두 초대 유리코 님은 죽었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건 잘못된 선입견이었다.

“유리가하라 고등학교는 20년 전에 남녀 공학이 되었으니까 유리코 님 전설은 틀림없이 그 이후에 생긴 거예요. 유리코 님의 불행에 관련된 자료는 20년 전부터 남아 있어요. 그렇다면 유리코 님이 옥상에서 뛰어내려 전설이 생긴 것은 딱 20년 전이에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저는 20년 전 지방 신문을 하나하나 조사했어요. 그리고 유리가하라 고등학교 옥상에서 학생이 추락했다는 기사를 찾았어요. 하지만 그 추락한 학생은 남학생으로 중상이라는 기사는 있었지만 사망했다는 내용은 없었어요. 그 후 몇 개월의 기사를 다 살펴보아도 마찬가지였어요. 추락한 남학생은 죽지 않았던 거예요.”

그랬다, 살아 있었던 것이다. 여자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여학생 교복을 입고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린 다카미자와 유리오는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죽음을 맞이하지 못했다.

설마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 드는 반면 어쩐지 이해가 되었다. 일기가 작성된 때는 20년 전. 그렇다면 당시 다카미자와는 고등학생 정도 됐을 것이다.

“일기의 연대로 설정된 1970년이라는 거짓 연도와 실제로 일기를 쓴 20년 전인 1998년은 요일이 완전히 일치해요. 물론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요일이 같은 연도를 찾아서 설정한 거죠. 누가 보더라도 날짜와 요일로 거짓이 들통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연도 설정에 그런 연유가 있는 줄은 몰랐다. 나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초대 유리코 님이면서 유리코 님의 신봉자. 그런 당신은 유리코 님이 일으키는 불행을 연출했어요. 유리코 님인 여학생을 거스르는 자를 감시하여 직접 손을 쓰고, 때로는 유리코 님 후보 학생을 자연히 떨어져나가게 배제하여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유리코 님의 힘을 학생들에게 각인시켰어요.”

다카미자와는 음침한 얼굴에 웃음을 띠고는 “그렇구나, 그렇구나”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 나쁠 정도로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었다.

“유리코 님의 불행에 관한 자료가 20년 전부터 18년 전, 13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는 것밖에 없다는 것도 당신이 그 시기에만 불행을 연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기간은 당신이 이 학교에 있으면서 불행을 연출할 수 있었던 기간입니다. 20년 전,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당신은 옥상에서 떨어져 전설을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3년 동안 학생으로, 13년 전부터 현재까지는 이 학교의 선생님으로 당신은 유리코 님을 거스르는 자들과 유리코 님 후보자에게 불행을 내렸습니다. 중간에 비어 있는 17년 전부터 14년 전까지는 당신이 이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던 무렵이죠.”

“그렇군. 앞뒤를 잘 맞춘 이야기군.”

미즈키가 장황하게 추론을 말하는 동안 다카미자와는 여유작작한 태도로 조금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이걸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번 연쇄 살인도 당신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었습니다. 유리 선배가 범행을 저지르도록 다양한 술책을 부린 거죠.”

살인도 다카미자와가 유도한 것이라고? 놀라운 발언이 날아왔다.

“당신은 분명 최근 유리코 님을 믿는 풍조가 조금씩 무너지는 걸 매우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을 겁니다. 유리코가 붉은 셔츠를 입은 걸 옹호해준 것도 그 때문이죠. 모두에게 유리코 님에 대해 강한 믿음을 심어주고 싶다, 그 생각 하나로 살인이라는 과격한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전교생에게 다시 유리코 님의 위대함을 각인시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직접 살인을 저지르기에는 위험이 너무나 컸어요. 그래서 누군가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그 방법에 사용할 꼭두각시로 고른 사람이 유리 선배였습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마음이 여성인 유리 선배는 조종하기 쉬워서 꼭두각시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겠죠.”

미즈키는 노려보는 눈빛으로 설명을 이었다.

“당신은 유리 선배의 성정체성을 눈치챈 후 스리슬쩍 일기에 숨겨진 힌트를 주었습니다. 애초에 그 일기는 자신과 같은 입장의 사람을 꼬드기려는 의도를 담은 표현을 골라 쓴 것이라서 힌트만 던져주면 나머지 일은 쉽게 흘러가겠죠. 쓴 사람이 여자의 마음을 가진 남자라는 사실을 알아채도록 교묘하게 유도하여 유리 선배가 유리코 님에 대한 친근감과 후보자들에 대한 살의를 품도록 했습니다. 그 후에는 아사카 주리를 자살 미수로 몰아넣어 유리 선배의 어두운 부분을 폭발시켜 범행을 저지르도록 한 것입니다.”

유리는 늘어뜨린 실에 조종당한 가여운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것이다. 진짜 범인은 다카미자와 유리오였다.

“쓰쓰미 선배에게 여러 가지 불행을 내린 것도 당신의 계획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압박을 주면 그 불행이 유리코 님 후보 중 누군가의 범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가령 유리 선배가 잡히더라도 쓰쓰미 선배의 손으로 후보자를 죽여 살인이 이어지도록 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계산된 일이었다. 두려울 정도로 잔혹하여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렇구나. 너는 그렇게 생각했구나.”

미즈키가 일단 이야기를 멈췄을 때 다카미자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나 온화한 말투였다.

“내가 초대 유리코 님이고 지금까지 유리코 님의 불행을 전부 연출해왔다, 재미있는 생각이군. 하지만 내가 유리코 님의 불행을 연출한 이유가 유리코 님을 신봉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근거는 조금 약하지 않나? 아무리 신봉한다고 해도 그 이유만으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할까? 게다가 내가 유리코 님이라면 자신을 신봉한다는 건 너무 자기애가 강한 것 같은데.”

“그 점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어요.” 미즈키는 자신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카미자와 선생님, 당신이 유리코 님의 불행을 연출한 건 스스로가 만들어내고 사랑받아야만 하는 유리코 님 전설의 존재를 인상에 남기기 위해서일 테지만, 그것만이 아니었어요. 당신이 정말로 노렸던 일은 유리코 님의 존재를 각인시켜 학교에 여성 우위의 풍조를 남기기 위해서예요.”

다카미자와의 얼굴에 희미한 동요가 비쳤다. 미즈키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 깊은 부분까지 들어간 모양이었다.

“여성 우위 풍조를 남긴다? 무슨 말이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다카미자와가 물어보자 미즈키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유리코 님 전설이 있는 한 우리 학교에는 여학교 시절 때부터 이어진 여성 우위 풍조가 지속될 겁니다. 당신은 그 분위기를 남기고 싶어서 수많은 불행을 연출해온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어째서 내가 그런 짓을 하지?”

“선생님이 여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잠깐의 틈도 두지 않고 돌아오는 말에 다카미자와는 기가 죽었다. 입술을 깨물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선생님은 사실 남자들보다 여자들 사이에 있고 싶었을 거예요. 여자가 많은 곳에 들어가 자신도 그들과 같다는 안심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중학생 시절의 당신은 여학교에서 남녀 공학으로 막 바뀐 유리가하라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남자라도 입학할 수 있으면서 상급생은 여학생만 있어 여성 우위의 풍조가 남아 있는 이 학교에.”

다카미자와는 입을 다물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미즈키는 한숨 돌린 후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는 일기에 나온 것 같은 괴롭힘과 자살 미수도 있었지만, 선생님은 계속해서 여성 우위의 풍조를 칭송해왔습니다. 선생님이 뒤에서 유리코 님의 불행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유리코 님 자리에 앉은 여학생을 학교 내 최고의 힘을 가진 자로 만들어 여학교 시절부터 이어오는 여성 우위의 풍조를 지켰습니다. 선생님은 졸업 후 대학에 진학했지만 유리가하라 고등학교의 분위기를 잊을 수 없었겠죠. 유리코 님이 있는 여인 천하로 돌아가기 위해 교원 자격증을 따고 교사로서 유리가하라 고등학교에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은 거기서 다시 유리코 님의 불행을 만들어 선생님이 없는 사이에 조금씩 무너져가던 여성 우위의 풍조를 재건축한 것입니다.”

모든 것은 여성 우위라는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위해 다카미자와는 여러 사람을 다치게 했다.

“선생님의 고통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신체의 성별과 마음의 성별이 다른 건 분명 괴로운 일이겠죠. 안타깝게도 그런 개인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사회에는 적지 않습니다.”

미즈키는 위로하는 말투로 말하고는 다시 태도를 바꿔 엄하게 타일렀다.

“하지만 선생님이 한 일은 선을 지나치게 넘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 자신의 마음을 지키려는 일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입니다. 선생님이 해온 일은 그저 범죄일 뿐이에요.”

다카미자와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음침한 표정 속에 감추기 어려운 분노가 떠올랐다.

“그렇구나, 그래. 그것이 사실이라면 분명 나는 회개해야만 하겠군.”

다카미자와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인정한 건가? 하지만 바로 반격이 날아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증거가 없어. 지금 한 이야기는 전부 네 공상에 불과해.”

냉정한 반박이었다. 확실히 증거는 없었다. 20년이나 지난 옛날 일에 증거가 남아 있을 리 없다.

“증거가 없는 한 나는 인정하지 못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야 소용없어.”

다카미자와는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는 꿋꿋한 자세였다.

“증거 말인가요. 그러면 이건 어떤가요? 유리코에게 듣기로는 분명…….”

미즈키는 책상에서 일어난 후 창가 책장으로 다가가 거기에서 유리코 님의 자료를 하나 꺼내들었다.

“있네요. 이거예요. 유리코 님이 일으킨 불행을 하나하나 기록한 이 노트에서 2008년 페이지를 봐주세요.”

미즈키가 내민 노트를 나와 다카미자와가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2008년

4월 7일 입학식. 올해 신입생 중 이름이 유리코인 학생은 3명. 현재 유리코 님인 유리코 A와 자리 쟁탈전을 하게 될 것이다.

4월 8일 유리코 A, 양 갈래로 땋은 머리와 붉은 셔츠 차림으로 등교.

5월 7일 유리코 A를 험담한 여학생, 동아리 활동 중에 다리를 접질리다.

5월 10일 유리코 A가 싫어하던 교사, 식중독으로 결근.

5월 16일 유리코 A를 험담한 남학생, 넘어져 다리 골절.

5월 23일 유리코 A에게 끈질기게 말을 걸어오던 사무 직원, 복통으로 보건실행.

5월 30일 1학년 사이에 유리코 님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

보기에 단순한 유리코 님이 일으킨 불행의 나열이었다.

“주목할 부분은 5월 10일과 5월 23일입니다. 여기에는 유리코 A에게 해를 가하려던 교사와 사무 직원이 배탈이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

다카미자와가 조롱하는 말투로 이야기했지만 미즈키는 흔들리지 않고 설명했다.

“이 기록은 교사가 범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보통 복통은 식사나 음료에 뭔가 좋지 않은 것이 들어갔을 때 생기죠. 하지만 학생이라면 교사는 물론 사무 직원이 먹는 음식이나 음료에 그렇게 간단히 다가갈 수는 없습니다. 범행을 실행하기 쉬운 사람은 분명히 교사일 것입니다.”

다카미자와는 조금 당황했는지, 서두르는 듯한 빠른 말투로 반론했다.

“아니, 사무 직원이 범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사무 직원이라면 교사와 사무 직원에게 간단히 접근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니요, 범인은 교사입니다.”

그래도 미즈키는 단호한 자세로 되받아쳤다. 근거가 있는 모양이었다.

“다시 한 번 기록을 봐주세요. 교사, 사무 직원 외에도 학생 두 명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즉, 범인은 학생에게도 의심받지 않고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무 직원과 교사, 의심받지 않고 학생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쪽일까요? 누가 봐도 교사입니다.”

다카미자와가 하얗게 질렸다. 그 말대로였다. 사무 직원은 평소에 학생을 대면하지 않기 때문에 복도나 운동장을 걷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눈에 띈다.

“하지만 교사라고 해도 수없이 많아. 그 사람이 나라고 한정할 수는 없어.”

“아니요, 당신입니다. 최근 일어난 유리코 님에 의한 불행, 예를 들어 도로로 떠밀린 쓰쓰미 선배의 불행을 경찰이 검증해보면 당신의 범행이라는 것은 쉽게 판명되겠죠. 경찰은 무능하지 않아요. 선생님이 관여했다는 것이 드러나면 철저하게 증거를 찾아 수사를 하겠죠.”

다카미자와는 얼굴이 창백해지고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다행히도 흰 백합 모임은 유리코 님이 일으킨 불행에 대해 하나하나 기록해왔습니다. 그걸 세세하게 검증해가면 증거는 반드시 나올 겁니다.”

미즈키는 명탐정처럼 준비실을 한 바퀴 빙글 돌아 다카미자와를 추궁하듯이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어떻습니까, 선생님. 이래도 끝까지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실 건가요?”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다카미자와는 압도된 모습이었지만 기력을 쥐어짜내듯이 말을 꺼냈다.

“유리코 님이 일으킨 불행은 사소한 일뿐이야. 경찰이 증거품을 관리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큰 물증은 남아 있지 않아. 내가 범인이라고 입증하는 건 불가능해.”

“아니요, 물증이라면 있습니다.” 미즈키는 당당하게 주장했다.

다카미자와는 살짝 낭패감을 드러냈다. “말도 안 돼. 증거 같은 게 남아 있을 리 없어. 나는, 나는…….”

“완벽하게 했다, 고 생각하세요? 안타깝게도 선생님은 실수를 저질렀어요.”

미즈키가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며 다카미자와를 노려보았다.

“자전거 브레이크 와이어 절단 사건, 알고 계시죠? 유리코의 반 친구가 다친 사건입니다. 그 사건에 대해 마음에 걸리는 증언이 있었어요. 피해자인 미쓰노는 자신이 다치기 전에 유리코의 자전거에 손을 댔는데, 그때 사용한 펜치가 자전거 주차장에 떨어져 있던 거라고 했습니다.”

미즈키는 냉정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목소리에는 막힘이 없어 다카미자와를 압도했다.

“자전거 주차장에 왜, 펜치가 떨어져 있었을까? 그 이유는 미쓰노보다 먼저 누군가가 똑같이 브레이크 와이어를 절단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카미자와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뺨에서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물론 브레이크 와이어가 절단된 자전거는 미쓰노의 자전거입니다. 그날 유리코의 자전거 외에 브레이크 와이어가 잘린 자전거는 미쓰노 것밖에 없었으니까요. 미쓰노는 자신의 자전거를 조작한 증거인 줄도 모르고 그걸 사용해 다른 사람의 자전거 브레이크 와이어를 잘랐어요.”

다카미자와의 얼굴이 더욱 하얘졌다. 엄청난 땀이 흘러 내려 얼굴은 땀투성이가 되었다.

“그렇군. 재미있는 추리야. 하지만 가령 그렇다고 해도 내가 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어.”

다카미자와도 그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의혹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전거 브레이크 와이어를 자른 사람은 분명 다카미자와 선생님입니다.”

미즈키는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다카미자와의 반론을 하나씩 부정했다.

“떨어져 있던 펜치에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파손되고 피가 묻어 있었어요. 브레이크 와이어의 절단과 파손, 그리고 피. 전용 공구가 아닌 일반 펜치로 브레이크 와이어를 절단하기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 사실에서 한 가지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즉 범인은 미쓰노의 자전거 브레이크 와이어를 절단하던 도중 실수로 펜치가 부서졌고 떨어져나간 파편에 상처를 입은 겁니다.”

절단할 때 사고가 일어났다. 범인은 스스로의 행위에 벌을 받는 것처럼 상처를 입었다.

“처음에는 미쓰노가 상처를 입은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리코의 자전거 와이어를 자른 후 미쓰노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미쓰노가 말하길 그 피는 처음부터 펜치에 묻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인즉 상처를 입은 사람은 미쓰노가 아니라 그전에 절단을 한 인물이라는 말입니다.”

나도 처음에 미쓰노가 다친 거라고 의심했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달랐다. 그 피는 범인의 피였던 것이다.

“그러면 그 인물은 누구인가. 그 답은 논리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우선 중요한 건 사용된 펜치가 있던 장소입니다. 유리코가 말하길 브레이크 와이어의 사고 직후 화학 준비실에서 실제로 펜치가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유리 선배가 스틸 선반을 고정한 철사를 자르기 위해 찾고 있었다고요. 그러면 펜치를 훔칠 수 있었던 인물은 한정됩니다. 어차피 화학 준비실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열쇠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유리 선배, 유리코 선배, 다카미자와 선생님, 그리고 입실을 허가받은 유리코 정도뿐이니까요.”

화학 준비실에 드나들 수 있었던 인물이 문제가 된다. 여기서 다시 흰 백합 모임이 얽혀 있는 것에 깜짝 놀랐다.

“당연히 미쓰노의 브레이크 와이어를 펜치로 절단한 사람은 그 네 명 중 하나입니다. 문제가 되는 점은 브레이크 와이어를 절단한 범인은 파손된 펜치의 파편에 다쳤다는 겁니다. 펜치에 피가 묻을 정도였으니 상처를 입은 부분은 살이 드러난 부분이겠죠. 그렇게 생각해보면 한 명 있었죠. 미쓰노의 사고와 같은 날에 다친 인물이.”

그 말을 듣고 기억이 떠올랐다. 눈앞에 있는 다카미자와, 그의 손에는…….

“그러고 보니 다카미자와 선생님도 다치셨죠. 브레이크 와이어 절단 사건이 있었던 날에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었죠.”

다카미자와의 손에는 흰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 흰 붕대는 감추기 힘든 애처로움을 동반하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은 말하자면 위장 공작입니다. 눈에 띄는 상처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자동차에 가볍게 접촉하여 전신 부상을 입은 것입니다. 나무는 숲 속에 숨긴다는 발상과 같군요. 상처가 눈에 띈다면 다른 상처를 더하면 된다는 생각이었겠죠.”

그렇다면 나를 옹호해서 다카미자와가 유리코 님의 불행을 만났다는 건 착각이었단 말인가. 아무도 없는데 등을 떠밀렸다는 선생님의 증언도 거짓, 책략에 보기 좋게 걸려든 기분이었다.

“아마도 롱노즈 플라이어의 가는 끝부분으로 브레이크 와이어를 절단하려고 힘을 주었을 때 끝이 부러져버렸겠죠. 그 파편이 튀어 손을 다쳤을 겁니다.”

“그렇군. 앞뒤가 맞는 추리야. 하지만…… 내가 실제로 사고를 당했다는 걸 부정할 수 있는 추리는 아니야. 그리고 펜치도 화학 준비실에 있던 게 아니라 다른 걸 사용했을지도 모르잖아. 변함없이 공상에 불과하고 물증은 하나도 없어.”

“결정적인 물증이 있다고 하면요?”

강인하게 밀어붙이는 미즈키의 모습에 다카미자와의 표정이 기묘하게 떨렸다.

“말도 안 돼. 물증 같은 게 있을 리 없어.”

“아니요, 그 물증이 있습니다. 어제 교내에 경찰 감식반이 왔던 일은 알고 계신가요?”

“아, 뒤뜰 쪽을 조사하는 것 같던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

다카미자와는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라고 말하듯 미즈키는 결정적인 말을 꽂았다.

“소각로에서 손잡이에 ‘화학 준비실’이라고 매직으로 크게 적힌 펜치를 발견했습니다. 당신의 피가 분명하게 묻어 있는 것이 말이죠. 미쓰노가 사용한 펜치를 뒤뜰의 사용하지 않는 소각로에 버렸다고 하더군요.”

다카미자와는 눈을 크게 떴다. 그 눈 안에서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선생님은 당황하셨을 거예요. 브레이크 와이어를 절단할 때 다친 데다 그대로 있다가는 범행이 들킬 거란 생각에 일단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런데 그사이에 펜치가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사용 후에는 바로 돌려놓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잠깐 없어도 티가 나지 않는 ‘화학 준비실’의 펜치를 사용했지만 그것이 범인을 특정하는 근거가 되어버렸습니다. 게다가 피가 묻어 있는 것도 결정적인 물증이 됩니다. 선생님은 계속 그걸 두려워하고 있었겠죠. 그래서 교통사고를 가장했습니다. 하지만 입원 중에도 펜치는 발견되지 않았으니 이제 괜찮을 거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찾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이 파멸을 가지고 왔네요.”

다카미자와는 무릎이 꺾이며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펜치는 제가 경찰에 전달했습니다. 선생님의 피, 지문, 미쓰노의 자전거 브레이크 와이어의 성분, 선생님의 상처와 합치하는 파손 부분…… 등등 많은 증거가 나오겠죠. 이것으로 선생님의 범행은 입증되었습니다.”

그럴 수가, 다카미자와의 목구멍에서 소리가 새어나왔다. 양손을 바닥에 붙이고 있는 그의 어깨가 떨렸다.

“선생님은 아시겠지만 지금 입증된 건 선생님이 지금까지 일으킨 수많은 ‘불행’ 중 극히 일부예요. 하지만 학생을 의도적으로 다치게 한 교사에 대해 사회도 학교도 관대한 태도를 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마도 해고되고 어쩌면 상해죄 등으로 구속되겠죠.”

다카미자와는 고개를 들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간절히 애원하는 태도로 말했다.

“부탁해. 이 학교에 있는 것만이 내가 살아 있는 의미야. 해고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제발 이번 건은 비밀로 해주면 안 될까.”

비참한 모습이었다. 울먹이는 그 목소리는 애처롭기까지 했다.

“모든 불행을 내가 연출한 건 아니야.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종종 불행이 일어났어. 역시 특별한 힘을 가진 유리코 님은 실존해.”

유리코 님이 실존한다고? 초대 유리코 님은 다카미자와 자신이니까 망령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와는 관계없는 곳에서 어떤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존재인 ‘유리코 님’이 탄생한 것일까?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하지만 그런 다카미자와를 내려다보면서 미즈키가 조용히 말했다.

“특별한 힘을 가진 유리코 님이 실존하는지 여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제 선생님은 지금까지 해온 일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선생님 때문에 괴로워했던 학생들만큼 선생님도 괴로워하세요.”

다카미자와는 순간 동작을 멈췄다가 큰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화학 준비실을 지나 학교 전체에 울려 퍼질 것 같았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급히 출동한 나다 경찰서 소속 한도와 사토나카에게 다카미자와를 인도하자 두 형사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인사했다. 미즈키가 밝혀낸 진상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경찰에게도 한 모양이었다. 경찰 내부에서도 미즈키에 대한 소문이 퍼졌는지 천재 소녀가 나타났다며 유명해졌다고 했다. 다만 정작 당사자인 미즈키는 언론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거나 필요 이상으로 소란이 일지 않도록 해달라고 못을 박으며 대단히 소극적인 것 같았지만.

“다카미자와 선생님이 유리가하라 고등학교에 입학한 건 모친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래.”

오렌지 빛 아름다운 석양이 비치는 귀갓길. 미즈키와 함께 자전거를 밀면서 나는 학교 안에 퍼진 소문을 이야기했다.

“다카미자와 선생님의 어머니는 오래전에 유리가하라 고등학교를 다녔다나 봐. 학교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다카미자와 선생님은 언제부터인가 유리가하라 고등학교를 동경하며 입학하고 싶다고 생각했대. 그런데 우연히도 남녀 공학이 되는 타이밍에 입학할 수 있었으니 마치 누군가가 입학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것 같다고 느꼈겠지.”

그야말로 특별한 힘을 가진 유리코 님과 같은 존재에게 이끌린 것처럼…….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미즈키는 분명히 바보 같은 이야기라며 웃어넘길 테니까.

“하지만 결국 특별한 힘을 지닌 유리코 님이 정말로 있었던 걸까?”

그래도 나는 미즈키에게 물어봤다. 어쩐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모호한 결론을 남긴 채 끝날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답답한 기분이 남아 있었다.

“특별한 힘을 지닌 유리코 님? 그런 게 있을 리 없어. 유리코 님은 미신이라고 처음부터 이야기했잖아.”

미즈키는 일관된 주장을 했지만…… 나는 여전히 석연치 않았다.

“하지만 불행을 연출한 다카미자와 선생님이 자신이 하지 않은 불행이 마음대로 일어났다고 말했어. 역시 특별한 힘을 지닌 유리코 님은 존재하는 것 아닐까…….”

“누군가가 했을 거야. 유리코 님을 믿는 누군가가.”

미즈키는 유리코 님을 인정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인간이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다카미자와 선생님이 말하는 자신과 상관없이 일어났던 불행이라는 건 유리코 님의 힘을 방패삼아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해치고 싶었던 제삼자가 한 일이야. 유리코 님을 핑계로 마침 잘됐다고 생각하며 짓궂은 일을 한 거지. 그렇지 않았으면 다카미자와 선생님 혼자서는 유리코 님 전설은 유지되지 않았을 거야.”

누군가의 악의가 유리코 님 전설을 열심히 지탱해온 것이다. 무수한 악의가 학교 안에서 꿈틀거리며 유리코 님이라는 실체가 없는 존재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니 오싹했다.

“말하자면 유리코 님은 이 학교 전체의 악의라고 할 수 있겠지. 눈에 보이지 않는 악의가 모여 유리코 님이라는 허상을 만들어낸 거야.”

이 학교 전체 여론이 유리코 님을 탄생시키고 지금까지 키워왔다는 말이었다.

“어쩐지 무서워.”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리코 님은 무수한 악의를 등에 업고 학교의 암묵적인 일인자가 되어야 했다. 악의를 상징하는 존재여야만 했다.

“유리코, 괜찮아.”

어깨에 살짝 손이 닿았다. 미즈키의 다정한 손이다.

“내가 지켜줄게.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줄 거야. 유리코는 나의 소중한 친구니까.”

든든한 말이었다. 미즈키가 함께 있어준다면…… 나는 안심했다.

다시 자전거를 밀며 걷기 시작했다. 저물어가는 새빨간 석양이 우리를 비췄다. 마치 축복이라도 내리는 듯이.

나는 유리코 님이 되어 학교에서 외톨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미즈키만은 곁에 있어주니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미즈키만 있으면 된다. 미즈키를 믿고 앞으로도 학교생활을 잘 보내야지. 그렇게 결심하고 나는 나란히 자전거를 밀고 있는 미즈키의 옆모습을 살짝 곁눈질했다.

내 시선을 느끼고 미즈키는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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