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6/10)

기시 유리코는 구급차로 호송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비보가 도착한 건 점심 이후 수업이 중지되어 교실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였다.

“기시 유리코의 일은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함께 명복을 빌어줍시다.” 교단에 선 히가시다는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학생이 두 명이나 죽었으니 선생님들도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이제 남은 유리코 님 후보는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이 되었다. 분명 이전까지는 유리코 님의 저주로 사람이 죽는 일은 없었는데 사망 사건이 벌써 두 건이나 일어났다. 초대 유리코 님의 망령은 지금까지 넘지 않았던 선을 넘어 살인에까지 손을 뻗은 것일까.

“오늘 수업은 더 이상 없습니다. 동아리 활동도 중지하니까 바로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세요.”

히가시다는 그 말만 남기고 빠르게 교실에서 나갔다. 질문을 하려던 학생들은 아무것도 물을 수 없게 되자 “뭐야”라며 툴툴 불만을 털어놓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방을 들고 책상 사이를 걸어가는데, 그때 이상한 시선을 느꼈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괴롭히기 위한 시선이 아니었다. 호기심이 담긴 시선도 아니었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경원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내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무수한 벌레가 기어가듯 등줄기가 섬뜩했다. 반 친구들은 나 때문에 기시 유리코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내 차림새가, 유리코 님의 힘이, 사람을 죽게 했다.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모두의 눈빛을 보고 그것이 진짜일지 모른다고 느껴졌다. 나는 살인자인 걸까.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교실을 뛰쳐나왔다. 어디라도 상관없었다. 지금은 빨리 이 시선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야사카.”

하지만 갑자기 누군가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르며 뒤돌아보자 히가시다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무슨 일 있으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히가시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 응접실로 가보렴.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

손님? 짐작 가는 것은 없었지만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고 무언으로 재촉했다. 교실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시선에 민감해진 나는 재빨리 눈을 피하며 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에 조심스럽게 들어가자 얼굴을 본 적 있는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상이 험한 두 사람, 한도 형사와 사토나카 형사였다. 그렇구나, 형사에게 불려간 것이 반 친구들 사이에 소문나면 안 되니까 히가시다는 일부러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말한 것이다.

“또 보는군, 야사카 유리코 학생. 몇 번이나 찾아와서 미안하네.” 한도가 난폭한 말투로 말했다.

말과는 달리 미안하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경찰의 견해를 말해주지. 우리는 기시 유리코의 죽음을 살인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계단에서 누군가가 밀어 떨어뜨렸다고 말이지.”

만나자마자 경찰의 의견을 밝히다니 뜻밖이었다. 물론 사건이 두 건이나 이어졌으니 경찰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쪽이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안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야사카 학생이 사건 현장을 목격했다면서? 이야기 좀 해주겠나?”

“네. 교실동에 있을 때 특별동 쪽에서 비명이 들려와 뛰어가보니 기시 유리코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어요.”

두 번째였기 때문에 지난번만큼 동요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피해자인 기시 유리코 학생을 발견했을 때 아직 의식이 있었다고? 뭔가 범인에 대해서 들은 말은 없었나.”

나는 이 질문을 듣고 조금 당황했다. 기시 유리코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입 밖으로 내기에 망설여지는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세요? 뭔가 신경 쓰이는 것이 있으세요?”

30대로 보이는 사토나카가 끼어들었다. 변함없이 부드럽고 정중한 말투다. 그 정중함 덕분에 이야기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게…… 기시는 이렇게 말했어요. ‘유리코 님에게 당했어’라고.”

한도와 사토나카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 표정은 명확히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유리코 님이라는 것은 전에 말했던 그 학교의 괴담 같은 건가?” 한도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바보 취급당한 것 같아 분했다.

“역시 사건과는 관계없어 보이는군.”

한도는 그렇게 결론지었지만 관계없지 않았다. 유리코 님의 존재가 분명히 사건의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그런데 좀 전부터 신경이 쓰였는데, 야사카 학생은 붉은 셔츠를 입고 있군.”

갑자기 한도가 화제를 바꿨다. 생각도 못 한 부분을 지적받아 당혹스러웠다.

“언제부터 양 갈래로 머리를 땋고 붉은 셔츠를 입었나?”

“어제부터요. 오늘도 이렇게 차려입고 왔어요.”

두 형사는 또 얼굴을 마주 보고는 흐음, 하고 뭔가 생각하는 듯했다. 뭐지. 이 차림새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사실은 목격 증언이 있었어.”

한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격 증언,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는 어쩐지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말했다.

“한 학생의 증언인데 말이야, 그 학생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특별동 3층에 있었다고 해. 비명을 듣고 계단 쪽으로 가려고 했을 때 계단을 뛰어 올라 4층으로 향하는 범인의 뒷모습을 목격했다는군.”

범인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면 빨리 체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기대하는 내 마음과 달리 그 후 한도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목격자가 수상하게 생각해서 뒤를 쫓아갔지만 모습을 감췄다고 해. 그런데 복장은 기억하고 있더군. 양 갈래로 땋은 머리에 붉은 셔츠를 입고 교복 블라우스에 스커트 차림의 인물이었다고.”

비명이 나올 뻔했다. 그건 내 모습이잖아, 라는 말도 나오려고 했지만 허둥지둥 억눌렀다. 그렇다면 그 범인이 나였다고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보니 야사카 학생의 차림새와 일치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한도가 떠보듯 물었다.

나는 동요하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평정을 가장한 채 말했다.

“비슷하네요. 하지만 3학년 쓰쓰미 유리코 선배도 같은 차림을 하고 있어요.”

쓰쓰미라면 분명 오늘도 그 차림을 하고 있으리라. 그런데 사토나카가 예상하지 못한 말을 했다.

“쓰쓰미 유리코 학생 말이죠. 네, 벌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쓰쓰미 학생은 범인이 아니에요.”

나는 몹시 당황했다.

“어째서죠?”

“쓰쓰미 학생은 사건 발생 당시에 교실동에 있는 것을 다수의 학생이 목격했어요. 묘하게 목격 증언이 지나치게 많은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쓰쓰미 학생은 인기가 많은 학생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유리코 님 후보의 필두에 있는 쓰쓰미는 학교 내에 있을 때는 항상 눈에 띈다. 목격 증언이 모이는 것도 당연했다.

“반면 사건 발생 당시 야사카 학생을 목격한 사람은 없군요. 사건이 있기 직전에 시마쿠라 미즈키 학생을 교실에서 불러내는 모습은 목격되었지만 그 후에 어디에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큰일이다. 그때는 미즈키와 둘이서만 이야기를 하려고 복도 끝에 숨어 있었다. 목격한 사람이 없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으로는 양 갈래로 머리를 땋고 붉은 셔츠 차림을 한 사람으로 사건 발생 시각에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은 야사카 학생뿐이야. 어떤가? 학생은 사건과 관련이 있나?”

한도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나는 궁지에 몰린 느낌을 받고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머리를 땋고 붉은 셔츠를 입는 건 시간이 조금만 있으면 준비할 수 있어요. 저나 쓰쓰미 선배 이외에도 그런 차림을 한 사람이 있었을지 몰라요.”

“하지만 현시점에서는 그 복장을 한 다른 인물을 찾지 못했어. 그렇다면 그 차림을 하고 있었다고 알려진 사람을 의심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이제는 의심을 감추지도 않았다. 한도도 사토나카도 의혹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에요. 저는 아니에요.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친구 미즈키와 함께 있었어요.”

“친한 친구의 증언 말이지. 친하지 않은 사람의 증언도 있으면 좋겠는데.”

한도의 목소리는 야유하는 듯한 어조였다. 마치 내가 발뺌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처럼 들렸다.

“어떻습니까? 야사카 유리코 학생.”

한도와 사토나카가 노려봤다. 만족스러운 반론을 하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었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듯한 긴박한 침묵이 이어지고 나는 눈물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잠깐만요, 유리코는 결백해요.”

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갑자기 응접실 문이 열리며 미즈키가 뛰어 들어온 것이다.

“미즈키!”

내가 놀라서 소리치자 미즈키는 평소와 다르게 윙크를 하고는 형사들에게 다가갔다.

“학생, 뭡니까?”

한도가 미간을 찌푸렸지만 미즈키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좀 전부터 전부 들었어요. 이곳 응접실은 벽이 얇아서 옆방에서 다 들리거든요. 형사님, 유리코는 범인이 아니에요. 유리코가 지금도 그 차림새를 하고 있는 게 그 증거예요.”

형사들만이 아니라 나도 어리둥절했다. 이 차림을 하고 있는 게 결백한 증거라는 건 대체 무슨 말일까?

“무슨 말입니까?”

당혹스러운 듯 사토나카가 말하자 미즈키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사건이 일어나고 기시 유리코가 발견된 조금 후에 특별동 뒤편 풀숲에서 긴팔의 교복 블라우스와 스커트, 붉은 셔츠가 불에 타고 있었어요. 이전에 마쓰자와 유리코가 추락했을 때와 똑같이 말이에요.”

뭘까? 그 사실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

“그리고 블라우스 소매에는 피가 묻어 있었어요. 분명 피해자가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다가갔을 때 묻었을 거예요. 아직 숨이 남아 있던 피해자가 끌어당기는 바람에 피가 묻었을지도 몰라요.”

한도와 사토나카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나는 가만히 미즈키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다시 말해 범인은 범행 당시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태운 거죠. 블라우스와 스커트와 붉은 셔츠. 그런데 유리코는 여전히 그 차림을 하고 있어요. 범인이 그 옷 세 벌을 불태웠다는 것과 모순되지 않나요?”

그렇구나. 옷을 태워버렸다면 입을 옷이 없어진다. 그런데 내가 그 옷을 입고 있다는 건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도와 사토나카도 지금 그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한도는 분한 듯이 반문했다. “그런 것쯤은 여벌을 준비해두면 되잖아. 가방에 넣어두면 언제라도 갈아입을 수 있겠지.”

한도의 말에 미즈키는 고개를 저었다.

“왜 여벌을 준비하나요? 교복에 피가 묻은 건 어디까지나 우연이에요.”

“살인을 저지르려는 사람이야. 피가 묻을지도 모른다는 것쯤은 틀림없이 미리 생각했을 거야.”

“그렇다면 범행을 저지를 때는 더러워져도 상관없을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편이 좋을 거예요. 일부러 교복 차림을 하는 의미를 모르겠어요. 교복이 더러워지면 이후에 입을 옷이 없어지니까요.”

한도는 으음, 하고 신음을 했다. 설득당한 것이다. 분명 더러워질 걸 예상했다면 굳이 구하기 쉽지 않은 학교 지정 교복 차림으로 범행할 의미가 분명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입고 있던 옷을 태운 범인은 지금 무엇을 입고 있는 걸까? 범행 직후에는 교사와 직원을 포함한 교내의 모든 사람이 교실과 교무실, 사무실에 모여 있었어. 그사이에 벌거벗고 있었던 인물은 없었어.”

한도가 더 추궁했지만 미즈키는 흔들리지 않았다.

“당연히 의심받지 않을 만한 복장으로 갈아입었겠죠. 예를 들면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체육복이라든가.”

한도와 사토나카는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 모두 곤란해진 듯 머리를 긁고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얼굴 가득 드러냈다. 그때 갑자기 한도가 중얼거렸다.

“……뭐, 오늘은 이쯤 해두지.”

내가 “네?”라고 목소리를 내자 그는 부끄러운 듯이 손을 휙휙 흔들며 나를 쫓아내는 몸짓을 보였다.

“다시 물어보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도 잘 부탁한다.”

아무래도 해방된 모양이다. 나는 털썩 주저앉을 것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유리코, 가자.”

미즈키에게 이끌려 떨리는 다리로 일어섰다. 미즈키는 당당하게 앞을 주시하며 나를 끌고 복도로 나왔다.

“유리코, 괜찮아?”

문이 닫히고 나서 들린 미즈키의 다정한 목소리에 긴장이 풀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샘이 터져 미즈키의 품에 안겼다.

“미즈키, 고마워.”

흐느껴 우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미즈키는 “괜찮아”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쩐지 마음이 놓여 하염없이 미즈키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본 미즈키의 얼굴은 덤덤했다. 별로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왜 그래?”

내가 묻자 미즈키는 곤란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좀 전의 추리에 허점이 있는 것 같아서.”

완벽한 추리라고 생각했는데 허점이 있단 말인가. 믿어지지 않았다.

“옷을 태운 범인은 의심받지 않을 만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고 말했잖아.”

“응. 체육복 같은 걸로 갈아입었을 거라고. 그게 뭐?”

“그 부분이 이상해. 생각해봐. 아무리 체육복을 들고 다니는 게 이상하지 않다고 해도 체육 수업도 없을 때 교실에서 체육복을 입고 있는 학생이 있어?”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보통은 교복 차림이다. 체육복을 입고 있으면 질문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렇다면 범인은 교복 블라우스와 스커트 여벌을 준비해뒀다는 것이 되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건 이상하지? 아까도 말했지만, 학교 교복은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없어. 굳이 교복을 두 세트 준비할 정도라면 다른 옷을 입고 범행 후에 교복으로 갈아입으면 될 테니까.”

분명 이상했다. 뭔가 근본적인 부분이 어긋나 있는 것 같았다.

“어딘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 거야. 그게 뭔지 알면…….”

미즈키의 미간 주름이 더 깊어졌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안 되겠어. 모르겠어. 아직 추리를 할 만한 자료가 너무 부족해.”

미즈키는 결국 깊은숨을 내뱉으며 포기했다. 안타까웠다.

“지금 상황에선 유리코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겠어. 들어줄래?”

미즈키가 갑자기 간청했다. 미즈키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줘야지.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흰 백합 모임에 가서 그 일기를 보고 와줘.”

초대 유리코 님이 썼다는 그 일기 말인가. 어쩐지 불온하고 무서워서 전에 읽었던 날 이후로 멀리하고 있었다.

“부탁이야. 분명 중요한 증거일 거야. 끝까지 읽어보면 뭔가 알 수 있을 거야.”

미즈키가 간절히 부탁했다. 나는 차마 거절하지도 못하고 두려운 마음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째서 그 일기야? 마쓰자와와 기시의 사건을 조사하는 편이 더 의미 있지 않아?”

“그게 꼭 그렇지도 않아. 다시 한 번 기억을 떠올려봐. 그 일기 속 유리코를 괴롭히던 두 여학생에게 찾아왔던 ‘불행’의 내용을.”

유리코 님이 내린 불행.

두 여학생에게 덮친 그 불행은…….

“아마도 옥상에서 떨어진 것과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것이었는데…… 앗.”

내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자 미즈키는 고개를 크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이번에 일어난 두 사망 사건과 똑같은 방법으로 사고를 당했어. 이거 우연일까?”

우연, 그렇게 생각하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나도 딱 들어맞았다. 뭔가 의도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자전거 브레이크 와이어가 끊어진 미쓰노의 사고는? 그건 일기에 없었어. 게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다카미자와 선생님의 일은 또 어떻게 되는 거야?”

나는 문득 생각난 부분을 지적했다. 하지만 미즈키는 고개를 저었다.

“그 두 건은 사망 사건이 아니니까 예외로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걸까? 뭐, 미즈키가 하는 말이니 틀리진 않겠지만.

“범인은 일기 내용을 흉내 내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그렇다면 일기에 뭔가 범인과 이어지는 정보가 들어 있을지도 몰라. 그걸 찾아내면 범인의 정체에 가까워질 거야.”

미즈키의 설명을 듣는 사이 나는 서서히 그럴 마음이 생겼다. 미즈키가 말하는 대로 일기에는 중대한 뭔가가 적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흰 백합 모임에 들어갈 수 있는 내가 그 중대한 뭔가를 발견해야만 한다.

“알았어. 흰 백합 모임에 가볼게.”

“정말? 유리코, 고마워.”

내가 마음을 정하자 미즈키는 손을 잡고 기뻐했다. 매끄러운 손의 감촉에 덜컥 심장 고동이 크게 울렸다.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설마 오늘은 아무도 없겠지 생각하며 화학 준비실을 들여다보니 예상과는 달리 사람이 있었다. 좁은 방 안에 흰 백합 모임의 유리코와 유리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앗, 후보자님. 때마침 잘 오셨어요.”

유리가 나를 발견하고 맞아주었다. 여드름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는 서서히 다가왔다.

“유리코 님 후보가 두 사람이나 죽다니. 이 학교가 개교한 이후 최대의 사건이에요.”

유리는 긴박하면서도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유리코 님 신봉자라서 지금 상황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걸까?

“이번 사건으로 유리코 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학생은 없어졌을 거예요. 올바른 인식이 퍼져서 기쁠 따름입니다. 이제부터는 교직원, 보호자, 지역 주민들도 믿을 수 있도록 흰 백합 모임의 일원으로 한층 더 홍보 활동을 진행해나가기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유리코 님에게 심취해 있기도 웬만해선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아, 참 그렇지. 다카미자와 선생님은 괜찮으신가요?”

자동차에 치였다는 다카미자와. 생명에 지장이 있는 정도는 아니고 부상이 있다고 듣긴 했지만 선생님의 안부가 걱정되었다.

“괜찮다고 해요. 입원은 했지만 며칠 지나면 학교에 다시 나오실 수 있다나 봐요.”

유리의 목소리 톤이 뚝 떨어지더니 귀찮은 듯한 말투로 변했다. 다카미자와의 상황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유리코 님은 정말 위대하네요. 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니 다시 한 번 존경의 마음이 북받쳐 올라옵니다.”

유리의 말투가 황홀하게 완전히 바뀌었다. 유리코 님에 대한 것이라면 태도가 변하는 사람이다. 그건 그렇고 유리와 유리코, 이 두 사람이 유리코 님에 심취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저기, 두 분은 어떻게 유리코 님에 대한 믿음이 이렇게 깊어졌나요?”

그러자 유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침을 튀기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1학년 때부터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괴롭히는 아이들 중에서 가장 질이 나빴던 녀석이 유리코 님에게도 반항했는데 그분의 힘으로 다치고 말았어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차에 부딪힌 거죠. 그 이후 그 아이는 도를 넘는 행동도, 저를 괴롭히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유리코 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리고 그 힘이 진짜라는 확신이 생겼고 지금까지도 믿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에 유리코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는 우연도 믿음을 더해주었죠.”

유리코 님에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믿게 되었다는 말이구나.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다.

“유리코 선배는요?”

“저도 비슷해요. 무척 거슬리는 동급생이 있었는데 유리코 님의 힘으로 내리막길에서 넘어져서 크게 다쳤어요. 천벌을 내려주신 데 감사해서 그 이후 유리코 님을 믿게 되었죠.”

비슷한 이야기였다. 유리코 님의 힘은 다양한 곳에서 신봉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유리가 덧붙여 설명했다. “다카미자와 선생님도 유리코 님이 있길 바라기 때문에 고문을 맡았다고 말씀하셨어요. 믿는지, 믿지 않는지 물어본다면 반반이라고 하셨지만요.”

붉은 셔츠로 주의를 받은 걸 감싸주셨을 때 그 이야기는 직접 들었다. 재미있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했었다.

“두 분 모두 유리코 님에게 도움을 받았네요. 당시 유리코 님은 쓰쓰미 선배였나요?”

이번에는 유리가 기쁜 듯이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쓰쓰미 유리코 선배였어요.”

쓰쓰미는 두 사람에게 의미 있는 존재란 말인가. 이해는 되었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쓰쓰미 선배의 경쟁 상대인 저를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건가요? 선배에게 감사한다면 저는 방해되는 존재잖아요.”

의문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자 유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간단해요. 우리가 감사하는 존재는 유리코 님이지 쓰쓰미 선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지하는 분은 쓰쓰미 선배도 후보자님도 아니에요. 유리코 님 그 자체입니다.”

알 것 같으면서 모르겠는 논리였다.

“하지만 쓰쓰미 유리코 님은 이제 안 될지도 모르겠네요.” 유리코가 묘한 말을 꺼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선배가 설명을 덧붙였다.

“쓰쓰미 유리코 님은 두 사망 사건을 두려워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유리코 님 후보가 둘이나 잇따라 죽자 다음은 또 다른 유리코 님 후보인 자신이 타깃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알고는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새삼스럽게 그런 말을 들으니 위기감이 솟았다. 그래, 죽은 사람은 둘 다 이름이 유리코인 여학생이다. 그렇다면 다음에 타깃이 되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유리코라는 이름인 나, 혹은 쓰쓰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유리코 님이 되고 싶다면 언제나 당당하게 있어야만 해요. 공포로 위축된 쓰쓰미 유리코 님은 이제 그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죠.”

아무리 유리코 님이 특별한 존재라고는 해도 후보자 역시 인간이다. 죽음이 다가올지도 모르는데 당당하게 있어야 한다니 지나치게 가혹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게 강경한 쓰쓰미가 두려워하고 있다니. 슬슬 유리코라는 이름을 가진 후보자들을 노리는 사건이라는 인상이 강해져서 나는 목이 바짝 말랐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유리가 내게 질문하며 화제를 바꿨다. 두려웠지만 나는 용기를 짜내기로 했다.

“초대 유리코 님의 일기를 보러 왔어요.”

미즈키에게 부탁받았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유리코 님 후보자들이 죽어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십니까. 여기 있습니다. 읽어보세요.” 유리는 정중하게 일기를 건네주었다.

낡은 노트를 건네받으면서도 내 마음은 공포에 지배받고 있었다. 이러는 사이에도 나는 죽을지 모르는 것이다.

“왜 그러십니까? 읽지 않으실 건가요?”

하지만 유리의 말에 정신이 돌아왔다. 이걸 읽지 않으면 미즈키는 이번 사망 사건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과거의 일을 알지 못해 추리를 할 수 없게 된다.

모르는 상태로 있다가는 정말로 무서운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나는 단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일기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6월 23일 화

두 번째 사건이 발생하자 모두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나와 얽히면 다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덕분에 나를 향한 괴롭힘은 거의 사라졌다. 그저 기쁠 따름이다.

6월 24일 수

그런데도 괴롭히는 아이가 있다. 두 번의 사건이 내 탓이라고 여긴 여자애가 친구의 원수를 갚겠다며 나를 괴롭힌다. 들으라는 듯이 욕을 하거나 물건을 숨긴다. 내게 평온한 날은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다.

6월 25일 목

나를 괴롭히는 그 여자애의 행동은 멈추지 않는다. 오늘은 발밑에 물을 뒤집어쓰는 바람에 교복이 흠뻑 젖어서 고생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내가 그렇게 미운 걸까?

6월 26일 금

『빨강머리 앤』의 페이지 일부가 찢어졌다. 증거는 없지만 분명히 나를 계속 괴롭히는 그 여자애가 한 짓이다. 살의와 비슷한 분노가 서서히 끓어올랐다.

6월 27일 토

나를 괴롭히는 여자애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말다툼을 했지만 서로 이해하게 된 것 같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 기대된다.

6월 28일 일

오늘은 하루 종일 『빨강머리 앤』을 읽으며 휴일을 보냈다. 찢어진 페이지는 열심히 보수해서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을 만큼 되었다. 노력하면 어떻게든 되는 법이다.

6월 29일 월

나를 괴롭히던 여자애가 다쳤다. 집 근처 빌딩 앞을 지날 때 위에서 화분이 머리로 떨어졌다고 한다. 현재 입원 중인 모양이다. 또 이전과 마찬가지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도망치는 것이 목격되었다.

6월 30일 화

드디어 나를 향한 괴롭힘이 사라졌다. 모두 내게 손을 대면 불행이 찾아온다고 깨달은 것이다. 이젠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지만 뭐, 상관없다. 이로써 나는 내 세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7월 1일 수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다. 복도를 지나갈 때 모두가 몸을 피한다. 점점 외로워진다.

7월 2일 목

급기야 나를 상대해주는 사람은 담임인 와타베 선생님만 남았다. 다른 선생님과는 달리 다정하게 대해주신다. 어두운 인상에 마른 체격으로 남자답지 않은 탓에 학생들에게 인기는 없지만 나는 싫지 않다.

7월 3일 금

오늘도 와타베 선생님과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고립된 나를 배려해주는 것 같다. 정말로 감사하다.

7월 4일 토

와타베 선생님이 나를 편애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모양이다. 슬픈 일이다. 그중에 세 건의 사건은 나를 동정한 선생님이 벌인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현장에서 도망친 사람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라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소문에 너무 화가 났다.

7월 5일 일

오늘은 계속 와타베 선생님을 생각했다. 점점 선생님의 존재가 마음을 차지하는 공간이 커지고 있다.

7월 6일 월

와타베 선생님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더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다. 지금은 학교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선생님 한 사람뿐이니까.

7월 7일 화

와타베 선생님이 나를 유혹의 눈빛으로 본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여학생들은 징그럽다고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나와 선생님을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래도 나는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7월 8일 수

선생님과 이야기할 때 손이 스쳤다. 재빨리 피했지만 얼굴이 붉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올려다본 선생님의 얼굴도 붉어져 있었다. 어쩌면 선생님도…… 기대하게 된다. 주위 사람들은 기분 나쁘다고 말하겠지만 점점 끌리는 마음을 멈출 수가 없다.

7월 9일 목

부끄러워서 선생님과 얼굴을 마주할 수 없어졌다. 이야기를 하는 것도 피하게 된다. 사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이것이 사랑, 일까? 괴롭다.

7월 10일 금

와타베 선생님이 내일 저녁에 둘이서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어쩐지 선생님도 나를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망설이다가 대답하지 못했지만 만날 장소는 정해져 있다. 이제 내가 갈 것인지 가지 않을 것인지 결심만 남았다.

7월 11일 토

행복하다. 이런 일이 생겨도 괜찮은 걸까? 와타베 선생님께 고백받았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그 자리에서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았다. 기분 나쁘게 느껴지냐고 선생님이 물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나도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전하자 바로 안아주셨다. 선생님의 마른 몸. 하지만 따뜻했다.

학교에는 비밀로 하고 사귀기로 했다. 들키면 난리가 날 테니까. 감추는 건 속상했지만 선생님이 바란다면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선생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니까.

7월 12일 일

바로 선생님과 데이트했다. 학교 주변에서 만나면 들킬 우려가 있어서 선생님 차로 멀리 나갔다.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행복한 하루였다.

7월 13일 월

학교에서 선생님과 마주치면 묘하게 의식을 하게 된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갈 때는 어색하다. 그래도 틈을 봐서 몰래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행복하다.

7월 14일 화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학교 건물 뒤에서 선생님과 몰래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나쁜 짓을 하는 느낌이 들어 어쩐지 두근거렸다. 선생님도 나도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기는 하지만 그래서 묘한 흥분이 생긴다. 금단의 사랑에 빠진 걸 실감하고 몸이 떨렸다.

7월 15일 수

학교 건물 뒤에서 선생님이 안아준 후 키스했다. 입술이 가볍게 스친 정도였지만 아주 짧은 그 순간은 귀중한 시간이었다. 나 같은 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감동했다. 분명 나는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7월 16일 목

오늘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선생님과 키스했다. 사람들에게 들키면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지만 나는 잘못된 일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윤리나 도덕에 얽매여 자신이 생각하는 걸 못하는 것이 훨씬 더 좋지 않으니까.

7월 17일 금

위험하게도 키스하는 장면을 반 친구에게 들킬 뻔했다. 서둘러 몸을 떨어뜨렸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아무리 스스로 옳다고 생각해도 세간에서 보면 잘못된 일이다. 다른 사람의 눈은 조심해야겠다.

7월 18일 토

큰일이다. 어제 키스 장면을 역시나 들킨 모양이다. 모두 겉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소문이 퍼진 분위기가 느껴졌다. 선생님 귀에 들어가는 것도 시간문제일까. 불안하다.

7월 19일 일

모두에게 들켰는지 어떤지 신경 쓰여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딱히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고민해야만 하는 걸까. 우리는 그저 사랑에 빠진 것뿐인데.

7월 20일 월

오늘은 휴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는다. 선생님과 만나지 못하는 만큼 감정이 깊어진다. 하지만 내일 학교에 갔을 때 모든 것이 들통 나 있으면 어떻게 하지. 선생님은 해고, 나는 퇴학당하는 걸까?

7월 21일 화

두려워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다른 선생님께 불려가 와타베 선생님과의 관계에 대해 질문받았다. 순간적으로 시치미를 뗐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와타베 선생님도 교장 선생님께 추궁당한 듯하다. 불안감이 심해진다.

7월 22일 수

모두가 나를 피한다. 와타베 선생님과의 일이 들통난 것이다. 징그럽다는 둥 모두가 수군거린다. 이제 와서 모두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나를 피하는 건 마음이 아프다. 애초에 잘못은 하지도 않았는데.

7월 23일 목

키스를 목격한 여학생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내 노트에 더러운 말로 낙서를 해놓았다. 역시 그 애가 소문을 퍼뜨린 걸까. 혐오감이 들었다.

7월 24일 금

많은 학생들이 나를 괴롭혔다. 뒤에서 험담을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괴롭힌다. 한동안 괜찮았는데 다시 시작이다. 나와 선생님이 그렇게 불쾌하게 보였을까. 그저 너무 슬프다.

7월 25일 토

목격한 여학생과 얘기를 나눴지만 평행선이다. 의견이 잘 맞지 않았다. 슬픈 기분이 점점 격해지고 있을 때 선생님한테서 같은 재단의 멀리 떨어진 학교로 전근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 측이 그냥 선생님을 놔두지 않는 모양이다. 게다가 나는 당연히 선생님이 나를 어디든 데려가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의 태도는 미적지근했다. 나는 버림받는 걸까.

7월 26일 일

선생님과 더 이상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슬프다. 절망감이 커진다.

7월 27일 월

충격이다.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의 주선으로 선을 본다고 한다. 선생님도 거절할 수 없는 듯했다. 이제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걸까. 우리를 목격한 여학생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다쳤다는 것 같지만 솔직히 어찌되든 상관없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는 정보도 내 알 바 아니다. 선생님의 전근과 맞선만이 마음에 걸린다.

7월 28일 화

이제 곧 여름방학이다. 방학이 시작되면 더더욱 선생님과 만나기 힘들어진다. 그전에 이야기를 나눠서 확실히 해둬야 하는데. 하지만 선생님은 요즘 나를 피하신다. 쑥스러워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피한다. 이건 중대한 사태다.

7월 29일 수

큰마음 먹고 선생님께 물어보니 헤어지잔다. 자신은 전근을 가고 맞선을 봐서 평범한 인생을 걷고 싶다나. 나와는 함께할 수 없는 모양이다. 어째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7월 30일 목

선생님은 나의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선생님이 없는 인생은 그냥 끝내는 편이 낫다. 괴롭힘도 끝이 없고, 살아 있는 의미를 모르겠다.

7월 31일 금

나는 오늘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릴 것이다. 아직 망설임은 남아 있지만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일기는 거기에서 끝났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일기 주인인 초대 유리코 님은 자살한 것이다.

괴롭힘에 실연. 이전에 들은 이야기 그대로였다. 다만 교사와 금단의 사랑을 하다 결국 실연당했다는 사실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심각한 고민을 두 가지나 안고 있었다니 상당히 괴로웠을 것이다. 초대 유리코 님은 그 고뇌를 견뎌내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어떤가요? 참고가 되었나요?”

유리가 빤히 바라봤다. 나는 정신이 돌아와 일기를 그에게 건넸다.

“48년 전, 초대 유리코 님은 이렇게 자살했어요. 그리고 유리코 님 전설이 탄생했습니다.”

초대 유리코 님이 죽은 후 이름이 유리코인 학생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은 불행을 맞이하게 되었다. 미련을 남기고 죽은 초대 유리코 님의 상념이 그런 사태를 만들어내고 있단 말인가.

다만 그렇다고 해도 이 일기 속에 나온 ‘불행’의 정체가 뭔지는 미심쩍었다. 인간을 뛰어넘는 힘에 의한 것인지, 인위적인 것인지.

내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한층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늘 열려 있는 창문으로 불어 들어오는 것이다. 머리카락이 솟구치는 바람에 무심코 손으로 매만졌다.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왜 창문을 계속 열어두나요?”

바람이 멈추고 머리카락을 정돈한 다음 이렇게 물어보자 유리코가 대답해주었다.

“아아, 여기가 화학 준비실이잖아요. 이전에 약품 냄새가 가득 차서 여기에 있던 학생이 쓰러진 일이 있어요. 그래서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계속 열어두고 환기를 하고 있어요. 학교 관리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라 흰 백합 모임의 저와 유리, 그리고 다카미자와 선생님만 알고 있는 비밀이지만요.”

특별한 신앙의 이유가 아니었다. 예측은 빗나갔지만 나는 계속 질문했다.

“그렇구나. 항상 열어둬요?”

“네. 항상. 준비실 문을 잠가놓을 때도 창문은 항상 열어둬요.”

원래라면 환기 장치가 필요하겠지만 설치하지 않은 모양이다. 설비상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단순히 돈이 들기 때문에 설치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창문을 하루 종일 계속 열어둔다니 조심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아무리 4층이라고는 하지만.

“또 궁금한 건 없으세요? 뭐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유리가 작은 몸집을 앞으로 내밀며 물었지만 알고 싶었던 정보는 대부분 얻었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이제 괜찮다고 대답했다.

“또 뭔가 있으면 찾아올게요.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라고 유리와 유리코가 답했다.

“아참 그렇지, 후보자님.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방을 나가려고 할 때 유리가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시선을 돌리자 유리는 서랍장을 하나 열면서 말했다.

“여기에 들어 있던 롱노즈 플라이어 혹시 보셨어요? 매직으로 ‘화학 준비실’이라고 크게 써뒀는데. 어제까지는 있었는데 어디로 갔는지 안 보여서요.”

롱노즈 플라이어? 끝이 가늘고 길게 생긴 펜치를 말하는 건가. 그런 게 여기에 있었다는 것조차 몰랐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시군요. 사실은 그쪽에 있는 스틸 선반의 다리가 흔들거려서 철사로 고정했는데 그 철사가 길게 나와서요. 자르고 싶었는데 없으면 어쩔 수 없네요.”

유리가 가리키는 입구 옆 스틸 선반을 보니 정말로 다리가 철사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철사는 길게 나와 있었다.

“여기 화학 준비실을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어서 혹시나 해서 물어봤습니다만 모르셨군요.”

유리는 미안하다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펜치. 어쩐지 뭔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나는 준비실을 빠져나왔다.

“그렇구나. 일기에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단 말이지.”

미즈키와 둘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설명을 듣고 미즈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대 유리코 님이 내렸다는 온 불행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힘인 걸까? 아니면 인위적인 걸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네. 다만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를 범인이라고 본다면 성별로 볼 때 유리코 님 본인도 아니고 연령으로 볼 때 선생님도 아니겠지. 그 범인이 일기에 등장하지 않는 이상 답을 내기는 어려울지도 몰라.”

분명 그랬다. 일기에 나오지 않는다면 가령 범인이 있다고 해도 그 정체는 단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일기,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져.” 미즈키가 묘한 말을 했다.

나는 위화감 같은 건 딱히 느끼지 못했는데, 미즈키와는 감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조금 쓸쓸했다.

“대체 어떤 부분에 위화감의 정체가 있는 걸까?”

미즈키는 먼 곳으로 시선을 던지고는 생각에 잠겼다. 이야기가 끊겨서 쓸쓸해진 나는 미즈키를 내 곁에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으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마쓰자와가 죽었을 때 옥상이 밀실이었던 문제는 어떻게 됐어? 미스터리가 풀렸어?”

히가시다가 문을 잠가버린 탓에 탈출 불가능한 밀실이 된 옥상, 범인이 있다면 그 인물은 옥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밀실과 관련해서는 아직 모르겠어. 옥상 구조를 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옥상은 경찰과 선생님들이 엄중히 관리하고 있어서 현재로선 조사할 방법이 없어.”

미즈키도 모르는 것이 있다니 낙담했지만 함께 이야기할 화제로 바뀐 것은 잘된 일이었다.

“그러면 이런 건 어때? 범인이 옥상 문을 한 번 피킹으로 열었잖아. 히가시다 선생님이 문을 잠근 후에도 범인은 또 피킹으로 옥상 밖에서 문을 열지 않았을까?”

앞뒤가 맞는 추론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 어때?’라고 생각하며 미즈키를 봤지만 미즈키의 표정은 어두웠다.

“언뜻 보기에 그럴듯한 의견이지만 틀렸어.”

뭐어? 불만의 목소리를 내자 미즈키는 웃으면서 내 의견을 부정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마쓰자와의 추락 사건이 발생한 후 히가시다 선생님은 옥상으로 돌아가 문을 열쇠로 열고 옥상으로 나갔어. 그 말은 즉 추락 사건 후 옥상 문은 잠겨 있었다는 말이지.”

“그게 어떻다는 거야?”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미즈키는 “들어봐”라고 운을 떼고는 설명했다.

“범인이 다시 피킹으로 잠긴 문을 열고 탈출했다면 문은 잠기지 않은 상태였을 거야. 한시라도 빨리 도망치고 싶은 범인이 힘들게 열었던 문을 다시 잠그지는 않을 테니까. 분명히 범인은 바로 도망쳤을 테니까 문이 잠겨 있었다는 건 이상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맞는 말이었다. 누가 오면 범행이 발각될 가능성이 높다. 굳이 시간을 들여 다시 피킹으로 문을 잠글 시간이 있다면 누구라도 우선 도망칠 것이다.

“그렇다면 범인은 문으로 도망치지 않았다고 추리할 수 있겠지. 하지만 옥상의 탈출구는 문 밖에 없어. 펜스가 부서진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건 가능하지만 지상 4층이 넘는 높이니까. 살아서 도망치는 건 인간이라면 불가능해.”

인간이라면 불가능. 그렇다면…….

“역시 유리코 님의 망령이 한 일?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힘으로 마쓰자와를 떨어지게 만들었어?”

“현시점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성급한 판단이야. 뭔가 다른 수단이 있었을지도 몰라.”

수단이라고 해도 내 머리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기껏 떠오른 걸 말해봐야 앞뒤가 맞지 않은 허술한 추리뿐이었다.

“역시 범인은 옥상에서 뛰어내려서 탈출했을까? 마쓰자와가 떨어진 특별동 옥상에서 뒤편으로 뛰어내리면 거기는 딱 교복과 붉은 셔츠가 탔던 부근이잖아. 뛰어내리는 도중에 범인의 몸에 불이 붙어서 그대로 타버렸다던가.”

말하던 도중에 바보같이 느껴져서 그만두었다. 미즈키도 쓴웃음을 지었다.

“적어도 목격자, 아니, 범행 당시의 소리를 들은 사람이 있다면 좋을 텐데. 흰 백합 모임 장소인 화학 준비실은 옥상에 가까우면서 창문도 항상 열려 있었으니까 누군가 있었다면 귀중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푸념처럼 중얼거린 말이었다. 그런데 미즈키의 검은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화학 준비실의 창문이 열려 있었어? 왜?”

갑자기 잡아먹을 기세로 물어보는 미즈키에게 압도되어 설명해주었다.

“약품 냄새가 방 안에 차면 안 돼서 항상 열어둔다나 봐.”

“그런 상황이라면 앞뒤가 맞아 떨어질지도 모르겠어.” 중얼중얼 말하면서 미즈키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유리코, 화학 준비실에 뭔가 떨어져 있는 것 없었어?”

그런 것은 특별히, 라고 대답하려다가 퍼뜩 떠올랐다. 완전히 잊고 있었지만 분명히 떨어진 뭔가가 있었다.

“떨어진 게 있었어. 이 단추가 창가에 걸려 있었거든.”

주머니를 뒤져서 그것을 꺼냈다. 언젠가 화학 준비실 문이 잠겨 있지 않아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들어갔을 때 발견한 유리가하라 고등학교 교복의 단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실 끝이 조금 그을려 있는 단추.

“역시 그랬구나.”

미즈키는 그 단추를 받아 들고 꼼꼼하게 살폈다. 단서라도 찾아낸 걸까? 그나저나 어째서 미즈키는 뭔가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유리코, 네 공이 커.”

하지만 미즈키는 근거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단추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밀실을 깰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의문이 남아 있는 나를 앞에 두고 미즈키는 확고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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