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4/10)

다음 날 학교는 긴급 임시 휴교에 들어갔다. 학생들에게는 자택에서 대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지만 지금 나는 그런 지시를 정직하게 지킬 심리 상태가 아니었다. 오전 중에 집에서 나와 자전거를 타고 미즈키네 집으로 향했다.

“어머, 유리코. 오랜만에 왔네.”

현관에서 미즈키의 어머니가 맞이해주었다. 미즈키의 어머니는 열여덟 살에 미즈키를 낳았다고 들었는데, 젊기도 했지만 외모도 아름다웠다. 내가 동경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유리코도 유리가하라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다행이야. 거기 정말로 좋은 학교지. 미즈키도 그 학교에 꼭 보내고 싶어서 가족 모두가 함께 입시를 보냈어. 떨어지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지만 합격해서 정말 다행이야.”

미즈키의 어머니는 항상 유리가하라 고등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어 하셨다. 이야기 상대가 되어드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나는 가볍게 인사만 하고 미즈키와 함께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미즈키답게 심플하게 꾸며진 방에 들어가 안쪽에서 문을 잠갔다. 이제야 겨우 살 것 같았다.

“옥상에서 떨어진 애, 죽었다나 봐.”

내가 뉴스에서 본 정보를 말하자 미즈키는 “그런 모양이더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애는 1학년 3반 마쓰자와 유리코였대.”

이것도 뉴스에서 들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이름이 ‘유리코’이기 때문이었다.

“유리코 님 후보가 한 명 죽었어.”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미즈키는 걱정되는 듯 내게 말을 걸었다.

“유리코, 혹시 이번 추락사가 유리코 님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해?”

불안하게 떨리는 미즈키의 아름다운 눈동자.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투명한 눈동자를 보자 화가 났다.

“당연히 그렇지. 유리코 님의 힘이 아니면, 어떤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거야!”

미즈키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유리코, 진정해. 아직 사실이 확인된 건 아니야.”

“그렇지 않아. 과거에도 유리코 님 후보자에게는 몇 번이고 불행이 찾아왔다고 하잖아. 게다가 유리코 님의 힘이 아니라면 어째서 해 질 녘에 옥상 같은 곳에 가서 떨어지겠어? 게다가, 게다가.” 그 이상 말하기 무서웠지만 충동이 먼저 앞질러갔다. “그 애가 유리코 님에게 당했다고 직접 말했잖아!”

나는 요란하게 떠들어댔다. 공포로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초대 유리코 님에게 저주받은 거야. 유리코 님 자리에 앉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되니까 벌을 내린 거라고.”

눈가가 뜨거워져서 정신을 차려보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흐르더니 결국 오열이 터졌다.

“나, 나도 같은 상황에 처할 거야. 자살한 유리코 님의 망령이 저주를 내려 죽게 될 거라고.”

큰 소리를 내며 미즈키에게 안겼다. 춥지 않은데도 몸이 덜덜 떨렸다.

“괜찮아. 마음을 가라앉혀봐.” 미즈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는 내 등 뒤로 팔을 감아 꼭 안아주었다. “이번 사건은 유리코 님의 힘과 관계없어. 그러니까 안심해.”

따뜻한 미즈키의 체온. 아주 조금 마음이 진정되어 눈물이 멎었다.

“유리코 님의 망령은 그 정도의 힘은 없어. 유리코는 조금 지나치게 겁먹은 것뿐이야.”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즈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런 때에도 아주 조금 믿음이 갔다.

“유리코 님의 저주가 아니야?”

“그래, 아니야. 내가 증명해 보일게.”

미즈키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줬다. 미즈키의 다정한 손. 조금씩 안심이 되었다.

“유리코 님은 사람에게 불행을 내리는 존재일지는 몰라. 하지만 지금까지 사람을 죽게 만든 일이 있었어?”

미즈키의 말에 정신이 들었다. 10년 전의 기록에도 사람이 죽었다는 내용은 없었다.

“유리코 님의 힘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람을 죽일 정도로 강하지는 않아. 그러니까 네가 유리코 님의 망령에 죽는 일은 없을 거야. 알았지, 유리코.”

“그런, 거야?”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팔이 스르륵 아래로 떨어졌다. 안고 있던 미즈키의 몸이 떨어졌다.

이번 사건에 유리코 님은 관계없구나. 조금씩 안심이 되었지만 금세 그 말이 다시 떠올라 생각이 바뀌었다.

“하지만 마쓰자와는 분명 ‘유리코 님에게 당했어’라고 말했다고.”

“그런 건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어. 정말로 유리코라는 이름의 학생에게 당했을지도 모르고, 유리코 님을 맹신하는 학생에게 당했다는 의미일지도 몰라.”

유리코 님의 망령에게 당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인가. 나는 다시 조금 마음이 놓였다. 다만 한 가지 생각에 닿아 깜짝 놀랐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학생에게 당했을지도 모른다니 미즈키는 이 일이 누군가가 저지른 살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망연자실해져서 물어보자 미즈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쓰자와 유리코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깜짝 놀랄 말이었다. 나는 충격을 받아 할 말을 잃었다.

“살해당했다니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의 의미야. 마쓰자와는 옥상에서 누군가에게 밀려 떨어졌을 거야.”

명확한 살의를 가진 살인. 그런 엄청난 일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다니 믿을 수 없었다.

“자살 가능성을 제외하고 생각해보면 그런 결론이 나와. 자살이 아니라면 살인이거나 사고인데, 그렇다면 고등학생이나 된 여자애가 자살할 생각이 없는데도 해 질 녘에 혼자 옥상에 올라가서 펜스가 부서져 사고가 날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에 갔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살인밖에 없어.”

유리코 님에게 당했다, 라는 말을 했으니 자살은 분명 있을 수 없었다. 그 생각을 전제로 한 추리였다. 일단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하지만 역시 자살이라는 가능성도 있지 않아? 유리코 님에게 당했다는 건 의식이 몽롱해진 가운데 내뱉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고.”

“그럴지도 모르겠네. 게다가 유리코 님 자리 경쟁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 거라면 그것은 유리코 님에게 이끌려간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그렇다면 자살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미즈키는 바로 강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역시 자살 가능성은 옅어. 애초에 보도에 따르면 유서도 없었고, 자살이라고 하기에는 떨어질 때 비명 소리가 크지 않았어? 각오를 한 자살이라면 그렇게 큰 비명을 지르지 않을 거야. 실제로 아사카 선배 때는 비명이 들리지 않았잖아.”

분명 그랬다. 마쓰자와가 떨어질 때 내지른 비명 소리를 듣고 차오르는 공포를 억누를 수 없었다.

“물론 유서를 쓰지 않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떨어질 때 비명을 지르며 자살하는 사람도 있겠지. 100퍼센트 자살이 아니라고는 단정할 수 없지만 확률로 본다면 여전히 살인 쪽이 높지 않을까?”

이해되었다. 자살과 사고보다 살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만 살인이라고 해서 유리코 님 후보자가 어쩌다가 우연히 살해당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유리코 님이라는 존재가 특별한 이상 마쓰자와는 유리코 님 후보자였기 때문에 살해당했다고 보는 게 맞을 거야. 하지만 유리코 님의 망령이 살인을 한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의 손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의미야.”

오싹함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렇다면 나를 포함한 유리코 님 후보는 모두 살해당하는 걸까. 내가 여전히 떨고 있자 미즈키가 가만히 손을 잡았다.

“괜찮아. 어떤 일이 있어도 유리코는 내가 지켜줄게.”

고마운 말이었다.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겠지만 그 한마디로 내 불안은 줄어들었다.

“그럼 이제 진정하고 들어줄래? 내가 하는 말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정이니까.” 미즈키는 내 손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 사건이 살인이라고 치고, 유리코 님 후보자를 죽이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몇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들어볼게.”

미즈키는 손가락을 하나 세우더니 그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첫 번째, 가장 유력한 건 유리코 님 후보자의 수를 줄여 자신이 유리코 님이 되기 쉽게 하기 위한 케이스야. 이 경우 범인은 유리코 님 후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어. 라이벌을 강제로 떨어뜨려 자신의 승리를 확실하게 노린 거지.”

무서운 계획이었다. 그런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싶었다.

“두 번째는 유리코 님이라는 존재에 원한을 품고 있어서 후보자를 모두 죽이려는 케이스야. 이 경우, 범인은 유리코 님 후보가 아닌 제삼자가 되겠지. 과거에 유리코 님 때문에 비참해졌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친한 사람이 유리코 님의 저주에 피해를 입었다고 착각하는 사람을 의심해볼 수 있어.”

복수라는 건가. 이 또한 등줄기가 얼어붙을 것 같은 이야기였다.

“세 번째는 유리코 님 후보를 전부 없애버리고 자신이 학교 내의 일인자가 되어 힘을 과시하고 싶은 케이스.”

잠시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이지?

“이건 조금 특이한 예인데, 이 경우 범인은 학교 내에서 일인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야. 그 인물은 학교에서 일인자 역할을 하고 있는 유리코 님이라는 존재가 거슬렸어. 왜냐하면 유리코 님이 있는 한 암묵적인 일인자는 그녀가 될 테고. 그 인물은 아무리 애를 써도 일인자가 될 수 없으니까.”

“그렇구나. 그래서 유리코 님 후보를 전부 제거한다는 말이지.”

“응. 유리코 님 후보를 모두 죽이고 비어버린 일인자 자리를 그 사람이 차지하려는 거야.”

겨우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 또한 무서운 생각이었다.

“나는 이렇게 세 가지 생각을 떠올려봤는데, 유리코는 어떻게 생각해?”

미즈키가 갑자기 내 의견을 물어왔지만 질문이 갑작스러워 답을 하지 못했다.

“그렇지. 어렵지. 전부 있을 법하기도 하지만 반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니까.”

미즈키는 나의 침묵을 곱씹듯이 몇 번이고 끄덕였다.

“첫 번째 동기는 문제가 있어. 유리코 님이 되고 싶다, 그것만을 위해서 다른 후보자들을 모두 죽일 생각을 할까? 살인은 큰 범죄야.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해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첫 번째 동기에 대한 부정이다. 확실히 다치게 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있을 텐데 굳이 살인을 저지르는 건 리스크가 지나치게 크다.

“두 번째, 유리코 님이라는 존재에 원한이 있어서 모두 죽인다는 것도 이상하지? 원한이 있다면 당시의 유리코 님을 죽이면 되지, 현재 후보까지 죽이는 건 지나친 행동이야. 게다가 지금까지 유리코 님이 사람을 죽게 하지 않은 이상 살인이라는 수단도 지나쳐.”

맞는 말이었다. 유리코 님이 내린 불행은 기껏해야 부상을 입히는 정도였다.

“그리고 세 번째, 유리코 님을 제거하고 일인자가 되고 싶은 케이스도 의문이 있어. 아무리 후보 모두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 인물이 일인자가 된다는 보장은 없어.”

세 번째 동기도 사라졌다.

“이렇게 되면 모든 케이스가 틀렸다는 이야기가 돼. 그러면 범인에게는 네 번째 동기가 있다는 뜻이 되겠지.”

“네 번째 동기? 넌 그 네 번째 동기를 안다는 거야?”

기대를 하고 물어봤지만 미즈키는 아쉬운 듯이 고개를 저었다.

“현시점에서는 아직 모르겠어. 생각한 것보다 범인의 심리는 복잡한 것 같아.”

어깨가 축 처졌다. 똑똑한 미즈키도 아직 진상을 알아내지는 못한 모양이다.

“정보가 너무 부족해. 좀 더 이야기를 들으러 다니며 다양한 정보를 모아야겠어.”

미즈키는 이 사건을 풀고자 하는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 눈동자가 검게 빛났다.

“유리코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사건을 해결해 보일 생각이야.”

그 한마디는 세상 어떤 말보다도 든든했다.

다음 날. 임시 휴교가 풀려서 평소처럼 수업이 재개되었지만 평화로운 일상은 돌아오지 않았다.

우선 등굣길에 동네 주민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았다. 교복을 보고 유리가하라 고등학생이라고 알아볼 수 있다 보니 스쳐 지나갈 때마다 흘끔흘끔 쳐다보고 몇 사람은 말을 걸어왔다. 사건은 어떻게 되었어? 피해자는 아는 학생이야? 학교 관리 책임은 어떻게 되는 거야? 등등. 교문 가까이 오는 데까지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로해졌다.

그리고 교문 앞에 오자 이번에는 기자들의 취재가 쏟아졌다. 학교 근처에서 거미줄 같은 진을 치고 인터뷰하려는 사람들이 차례차례 질문을 해왔다. 그중에는 끈질기게 들러붙기도 하고 갈 길을 막아서는 기자도 있어 난감했다.

그 사이를 겨우 통과하여 교문 안으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학교 내의 차갑게 식은 공기가 맞이했다. 학생 한 명이 죽은 일로 모두 기분이 어둡게 가라앉아 평소처럼 떠들썩하게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 거기에 더해서 선생님들이 엄격하게 감시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어 더욱 자유롭게 이야기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마치 감옥 안에 있는 것 같아 어디에 가도 숨이 막혀왔다.

수업이 시작되어도 그 가시 돋친 분위기는 여전했다. 시종 팽팽하게 긴장된 분위기에 뭔가 계기가 있으면 폭발해버릴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3교시에는 여학생 한 명이 울음을 터뜨리며 과호흡을 일으키는 바람에 보건실에 실려갔다. 4교시에는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여학생들 사이에 작은 말다툼이 서로 치고받는 싸움으로 커졌다.

모두들 불안한 것이다. 교내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대한 이상한 분위기와 유리코 님의 힘이 만들어내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다.

“야사카, 잠깐 괜찮겠니?”

점심시간에 담임인 히가시다가 불렀다. 무슨 일일까 생각하는 사이에 그는 나를 응접실로 데리고 갔다. 가죽 소파에 앉아 긴장한 상태로 기다리고 있자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 두 명이 함께 들어왔다.

“효고 현경 나다 경찰서 소속 한도입니다.”

“같은 곳 소속 사토나카입니다.”

경찰 배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은 형사였다.

“야사카 유리코 학생, 잠깐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검게 그을린 얼굴의 한도가 소파에 앉으면서 말을 꺼냈다. 어쩐지 난폭한 말투였다.

“응급 처치를 한 선생님에게 듣기로는 마쓰자와 유리코가 떨어지던 현장에 있었다고 하던데.”

“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온몸이 경직되었다. 이것은 사정 청취인 걸까? 내가 의심을 받는 걸까? 당황해하는 사이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토나카가 말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학생을 범인으로 지목한 게 아니에요. 사건 발생 당시의 상황을 듣고 싶을 뿐이에요.”

정중한 말투에 마음이 놓였다. 형사 같지 않은 사토나카의 나긋한 태도는 사람을 안심시켰다.

“추락 직후 현장 모습은 어떤 상황이었지?”

다시 한도가 질문했다. 이번에는 침착하게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마쓰자와가 추락하는 순간에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뒤쪽에 있다가 현장으로 달려갔는데, 그때에는 이미 많은 학생과 선생님이 모여 있었어요.”

“그때 마쓰자와 유리코의 상태는?”

“머리를 부딪혀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의식은 거의 없는 것 같았어요. 다만 도중에 의식이 돌아와서 말을 조금 했어요.”

“호오, 어떤 말이었지?”

그것은…… 말을 하려다 머뭇거렸다. 그 말을 외부 사람에게 전해도 괜찮은 걸까?

“괜찮아요. 어떤 증언도 저희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사토나카가 정중하게 설득해왔다. 이 사람이라면 이해해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입을 열었다.

“그게…… 마쓰자와는 ‘유리코 님에게 당했어’라고 말했어요.”

“유리코 님?”

한도가 갑자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괜히 말했나 싶어 후회했다.

“유리코 님이라니 무슨 말이죠?” 사토나카가 어딘가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분명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미 말을 꺼내버렸기 때문에 도중에 멈출 수는 없었다.

“유리코 님이라는 건 이 학교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같은 거예요. 매년 유리코라는 이름의 여학생이 학교 내에 딱 한 명 있는데, 그녀를 따르지 않으면 불행이 찾아와요.”

한도와 사토나카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봤다. 분명히 당황한 모습이었다.

“음, 그러니까, 마쓰자와 유리코는 그 유리코 님에게 살해당했다는 말인가요?”

“아, 네, 아마도…… 그럴 거예요. 아니, 아니려나.”

“마쓰자와 유리코 학생도 이름이 유리코잖아요. 그녀가 그 유리코 님 아닌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현재 이 학교에는 유리코라는 학생이 몇 명 있는데, 마쓰자와는 그중 한 명이에요.”

“응? 유리코는 학교에 한 명뿐인 거 아니었어요?”

“그게…… 매년 유리코 님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실제로 싸우는 건 아니고요. 아무 짓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한 명만 남게 되는 거죠.”

한도와 사토나카의 시선이 차갑게 식었다. 당연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도 믿어주는 사람은 형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뭐, 알겠습니다. 유리코 님에 대한 건은 저희 쪽에서 조사해보겠습니다.”

분명히 김빠진 대답이었다. 진심으로 조사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유리코 님의 존재야말로 이 사건의 열쇠가 될 텐데. 믿어주지 않는 두 형사가 원망스러웠다.

형사의 청취에서 해방된 후 5~6교시를 듣고 나자 수업이 끝났다. 평소보다 조용한 복도를 걸어갈 때 앞에서 미즈키가 다가왔다.

“유리코, 가자.”

미즈키가 갑자기 팔을 잡아끌었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연결 복도를 건너 계단을 올라 특별동 4층까지 와 있었다.

“사건을 밝히려면 여기에 올 수밖에 없어.”

미즈키가 시선을 향한 곳은 화학 준비실 문 앞이었다. 흰 백합 모임의 동아리실이다.

“내가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이름에 유리코라는 글자가 없기 때문에 나는 자격이 없어. 유리코에게는 미안하지만 대신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래?”

미즈키가 간청하는 눈빛으로 부탁을 했다. 그 눈빛을 보고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알았어. 물어보고 올게.”

부탁할게, 라며 손을 흔들고 멀어져가는 미즈키를 배웅한 뒤에 나는 노크했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걸까? 문을 밀어보자 의외로 스르륵 열렸다.

“열려 있네? 아무도 안 계세요?”

얼굴을 들이밀고 들여다봤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열어둔 창문에서 바람이 들어오고 있을 뿐이었다.

“문 잠그는 걸 잊었나?”

한 걸음 들어가 다시 살펴봤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방 안은 조용했다.

“실례합니다.”

불러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럴 때는 일단 돌아가야 할까, 아니면 계속 기다려야 할까?

그때 창문 쪽에서 뭔가 반짝 빛났다. 시선을 빼앗긴 채 바라보고 있으니 다시 빛났다. 아무래도 창가에 걸린 뭔가가 태양 빛을 반사해서 빛나는 모양이었다.

뭘까? 조금 궁금해졌다. 훔쳐봐서는 안 될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스틸 선반에 실험 도구가 잡다하게 늘어져 있는 좁은 방 안을 가로질러 창가에 걸려 있는 것을 손으로 뺐다.

“이건…….”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단추였다. 백합 모양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봐서 유리가하라 고등학교의 교복에 달려 있던 것이다. 내 소매의 단추와 비교해봐도 틀림없이 같은 것이었다.

단추 구멍에는 뜯어진 실이 붙어 있었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실 끝 쪽이 불에 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어째서 창가에 그을린 실이 붙은 단추가 걸려 있지? 마쓰자와가 죽은 날에 일어났던 화재와 관련이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스러웠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단추를 주머니에 급히 넣고 뒤돌아보려고 했을 때 어깨에 뭔가가 올려졌다.

“으악!”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뒤를 돌아보자 등 뒤에 유리가 서 있었다. 그의 오른손이 내 어깨를 잡은 것이다.

“뭐, 뭐예요. 유리 선배였어요?”

안도하여 주저앉았다. 유리는 이상한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왼손에는 열쇠를 들고 있었다.

“후보자님, 어떻게 된 일인가요? 볼일이라도 있으세요?”

유리의 목소리는 기분 탓인지 들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사건이 일어나서 기쁜 걸까?

“저기, 마쓰자와의 추락 사건에 대한 것인데요.”

내가 머뭇머뭇 이야기를 꺼내자 유리는 “아아”라고 기쁜 듯이 크게 숨을 내뱉었다.

“유리코 님 후보가 죽다니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에요.”

유리는 요란스러운 몸짓으로 무대 위에 선 배우처럼 한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올해는 양상이 예년과 다른 모양입니다. 유리코 님과 관련해서 사람이 죽은 일은 기록에 따르면 초대 유리코 님이 스스로 뛰어내려 자살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니까요.”

이상할 정도로 들떠 있는 유리의 행동에 놀랐지만 그의 말에는 중요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저기, 초대 유리코 님이 자살했어요?”

그러고 보니 테니스부 선배에게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초대 유리코 님이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 기억이 지금 유리의 발언과 이어졌다.

“네, 그랬죠. 자세히 이야기해드릴까요?”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문득 몸을 잔뜩 앞으로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샌가 나 스스로 유리코 님과 관련된 사건에 강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초대 유리코 님은 학교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했어요. 그것이 유리코 님 전설의 발단입니다.”

유리의 이야기에 긴장감이 느껴졌다. 이 이야기는 분명 신봉자인 그에게는 중요한 이야기일 것이다.

“초대 유리코 님의 자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문헌에 따르면 그 원인은 집단 괴롭힘과 실연 때문인 듯합니다. 유리코 님은 심한 집단 괴롭힘을 당했고, 동시에 슬픈 실연을 했나 봐요. 아무래도 그 괴로움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모양입니다.”

유리가하라 고등학교는 20년 전까지는 여학교였으니까 어쩌면 여학생 특유의 음흉하고 변덕스러운 괴롭힘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연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겠지만 학교와 상관없는 남자와 연애한 결과였을까?

“유리코 님이 죽은 후 유리코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 주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름이 유리코인 학생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불행이 찾아온 거죠. 그런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는 사이에 학생들이 신성한 유리코 님의 존재를 깨닫고 그녀를 받들어 신봉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유리코 님 전설의 발단인가. 하지만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그 문헌이라는 건 뭔가요?”

내가 관심을 보이자 유리는 아, 하고는 창가에 있는 목재 선반으로 향했다.

“이거예요. 우리가 성전이라고 부르는 초대 유리코 님의 일기입니다.”

일기! 그런 것이 남아 있었다니.

“원래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지만…… 유리코 님 후보자께는 특별히 보여드릴게요.”

낡은 노트 한 권을 건네받았다. 표지가 누렇게 바래 있어 매우 오랜 세월이 지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표지에는 제목 없이 그저 ‘1970 유리코’라고 연도와 이름만이 적혀 있었다. 그 글자도 몇 군데가 긁힌 자국처럼 벗겨져 있었다.

“흰 백합 모임의 다른 자료는 20년 전에서 18년 전, 그리고 13년 전부터 현재까지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일기는 예외였던 모양이에요. 귀중한 것이라 엄중하게 보관되어 있었나 봅니다.”

무척 중요한 자료인 모양이었다. 나는 신경 써서 조심스럽게 노트를 만졌다.

“이거, 읽어도 되나요?”

“네, 괜찮습니다.”

유리가 끄덕였다. 이것이 초대 유리코 님의 일기…….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낡은 노트를 천천히 넘겼다.

1970년 유리코 일기

6월 1일 월

나는 유리코. 유리가하라 고등학교 1학년이다.

오늘부터 짧은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세상이지만 적어도 일기를 쓸 때만큼은 행복을 찾고 싶다. 그래서 행복했던 일은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기록할 생각이다.

6월 2일 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름다운 수국을 발견했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한참을 가만히 보고 있었더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웃었다. 그렇게 웃지 않아도 될 텐데.

6월 3일 수

같은 반 여자애가 머리를 귀엽게 묶고 있어서 눈길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기분 나빠 했다. 내가 그렇게 이상한 걸까?

6월 4일 목

나는 예쁜 여자아이가 되고 싶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산들바람 같은 미소를 짓고 싶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 사실이 슬프다.

6월 5일 금

같은 반 여학생이 나를 보고 불결하다며 웃었다. 분하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30분 넘게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씻고 있는데.

6월 6일 토

이래서는 안 된다. 일기 내용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좀 더 행복한 일을 찾아 밝은 내용으로 채워야지. 그래,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에 무지개가 걸려 있었던 일이라든가. 무척 아름다웠다.

6월 7일 일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한 일이라고는 『빨강머리 앤』을 열중해서 읽은 것뿐. 앤은 행복해서 좋겠다. 사이좋은 친구가 있는 것이 부럽다.

6월 8일 월

쉬는 시간에 몰래 『빨강머리 앤』을 읽고 있었는데 반 친구에게 들켰다. 같은 반 아이들 모두 큰 소리로 웃었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괴로워서 조금 눈물이 흘렀다. 모두가 울보라며 비웃었다.

6월 9일 화

어제의 분한 마음이 아직 남아 있지만 이것도 하나의 계기라고 생각하여 긍정적으로 여기기로 했다. 좋아하는 것이 알려진 이상 더 숨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일은 모두가 입을 다물 정도로 앤같이 예쁜 모습으로 학교에 가야지.

6월 10일 수

정성을 다해 꾸미고 학교에 갔다. 앤을 모티브로 한 귀엽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지만 모두의 비웃음을 사고 선생님에게도 몸단장을 제대로 하라며 야단맞았다. 예쁘고 싶었을 뿐인데. 슬프다. 눈물이 흘렀다.

6월 11일 목

화장실이 싫다. 너무 싫다. 안에 들어가 있으면 세면대에서 하는 대화가 들리는 것도 싫다. 언제나 나를 바보 취급하는 대화뿐이다.

6월 12일 금

가방에 넣어두었던 『빨강머리 앤』이 사라졌다. 필사적으로 찾아보니 소각로에 있었다. 아직 불을 붙이기 전이라 다행이었지만 책은 재를 잔뜩 뒤집어썼다. 멀리서 여자아이들이 나를 보며 킥킥 웃고 있었다. 화가 끓어올랐다. 저런 애들은 죽었으면 좋겠다.

6월 13일 토

계속 일기 내용을 원망과 괴로움으로 채우게 된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좀 더 밝은 것을 찾아야지. 소각로에서 우왕좌왕하는 나를 보고 웃던 여자애와 오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수확이었다. 말다툼이 벌어지긴 했지만 분명 내 마음을 알았을 것이다.

6월 14일 일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건 너무 과한 반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가 시작될 때는 밝은 얼굴로 반 친구들을 대해야지. 웃으면서 친구들을 대하면 분명 알아줄 것이다. 여자애들은 원래는 다정할 테니까.

6월 15일 월

소각로 앞에서 나를 보고 비웃었던 여자애가 다쳐서 입원했다고 한다. 동네 도서관의 옥상에 있다가 누군가에게 밀려 떨어졌다는 듯했다. 범인은 젊은 남자로 고등학생으로 보였다고 한다. 다만 얼굴은 보지 못한 모양이다. 등줄기가 서늘해졌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안심했다.

6월 16일 화

어제 쓴 반 친구의 추락 사건, 선생님은 내가 범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설마 의심받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분명하게 이야기를 했더니 이해해주셨다. 일단은 다행이다.

6월 17일 수

아무래도 반 분위기가 이상하다. 어쩐지 모두가 나를 피하는 것 같다. 혹시 추락 사건과 관련해서 나를 의심하는 걸까? 괴롭힘이 줄어든 건 다행이지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쓸쓸하다. 어쩔 수 없이 『빨강머리 앤』을 계속 읽었다.

6월 18일 목

오늘도 마찬가지로 괴롭힘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은 느껴졌다. 우리 사이를 잘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무언의 압박이 등 뒤에 딱 달라붙는다.

6월 19일 금

결국 괴롭힘이 다시 시작되었다. 반에서 기가 센 여자애가 『빨강머리 앤』을 여자 화장실 변기에 버린 것이다. 나는 당황하며 주우러 갔지만 불결하다며 여자애들이 비웃었다. 『빨강머리 앤』은 말려서 괜찮아졌지만 나는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 죽여버리고 싶다.

6월 20일 토

『빨강머리 앤』을 화장실에 버린 기가 센 여자애와 이야기를 했다. 나는 보기 흉하게 고함을 치고 말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는 내 마음을 알아주었을 것이다.

6월 21일 일

내일 기가 센 여자애와의 만남이 기대된다. 어떤 얼굴로 학교에 올까? 가능하다면 화해하고 싶다.

6월 22일 월

기가 센 여자애가 결석했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져 입원했다고 한다. 학교에 나오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 화해할 수가 없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고교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도망치는 걸 봤다고 한다.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이건…….”

읽던 도중에 나도 모르게 말이 흘러 나왔다. 이건 말 그대로 유리코 님 전설 탄생의 기록이잖아? 유리코 님에게 거슬리는 행동을 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불행한 일을 당한다. 글을 쓴 유리코는 그런 일을 겪고 있었다.

“저, 이게 정말로 초대 유리코 님이 직접 쓴 글인가요?”

내가 바싹 마른 목소리로 물어보자 유리는 “그렇습니다”라며 끄덕였다.

“흰 백합 모임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초대 유리코 님이 직접 쓴 일기입니다. 틀림없는 진품이에요.”

이 글을 쓴 사람이 전설의 시작인 초대 유리코 님이라고? 충격을 받았다.

동그스름한 글씨체는 어딜 봐도 여학생이 썼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떠세요, 참고가 되었나요?”

유리가 다시 물어보았지만 나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아니, 유리코 님의 탄생을 문자상으로 목격하고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결국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제대로 마음을 전달한 것일까. 마음은 아직 낡은 일기 안에 있었다.

그때 입구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유리, 있어?”

뒤돌아보자 지나치게 마른 유리코 선배가 서 있었다.

“아, 후보자님. 또 오셨군요. 고맙습니다.”

나를 보자마자 갑자기 송구스러워했다. 그냥 자연스럽게 대해도 되는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보다 주변에 이상한 일은 없으세요? 유리코 님 후보가 한 명 죽다니, 다른 유리코 님 후보가 위험해질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유리코 선배의 말을 듣고 나는 자신의 위치를 떠올렸다. 나도 위험한 일을 당할지 모르는 것이다.

일기를 읽고 유리코 님의 과거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지금 상황을 아는 것이 더 중요했다. 나는 마쓰자와의 사건에 대한 정보를 모아야만 한다. 경찰이 가장 중요한 유리코 님에 대해서 거들떠보지도 않는 상황에서는 공권력에 의한 사건 해결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정보를 수집하여 미즈키에게 전달해 추리를 하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저기, 마쓰자와의 사건과 관련해서 뭔가 아시는 건 없나요?”

그런 생각으로 나는 과거 이야기는 일단 잠시 접어두고 물어보았다.

“유리코 님 후보 추락 사건 말이죠? 물론 자세하게 조사하고 있어요. 무엇이든 질문하세요.”

유리코는 새로 마련한 노트를 꺼내면서 내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왔다. 노트에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는 걸 보니 아주 작은 일까지 조사한 듯했다.

“음, 그러면 피해자 마쓰자와의 당일 모습은 어땠나요?”

시험 삼아 물어보자 유리코 선배는 “그거라면” 하며 경쾌한 손놀림으로 노트를 넘겼다.

“마쓰자와 유리코는 사건 당일 점심 무렵부터 상태가 이상했다고 해요. 평소에는 침착한 학생이었는데 어쩐지 묘하게 안절부절못하고 오후 수업 중에도 딴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고요. 같은 반 학생의 말에 따르면 창가에서 특별동 옥상 위를 보고 있는 듯했는데, 방과 후에는 동아리 활동에 참가했지만 해 질 녘에 동아리 활동이 끝나자 항상 함께 하교하는 친구를 먼저 보내고 교내로 돌아갔어요. 아마도 그 후 옥상으로 직행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음에 목격되었을 때는 특별동 옥상에서 떨어져 있었어요.”

자살이라고도 볼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미즈키가 말했듯이 자살일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분명히 누군가가 옥상으로 불러냈으리라.

“이상입니다. 다른 질문 있으세요?”

유리코가 일단 노트에서 시선을 떼고 말했다. 나는 다음으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추락과 거의 동시에 특별동 뒤편에서 불이 났었는데, 그건 무슨 일이었나요?”

“그 화재에 대해서는 사실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어요.” 유리코는 더욱 신나게 노트를 넘겨 기세 좋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화재는 특별동 뒤편, 그러니까 정원과는 반대쪽인 풀숲에서 일어났어요. 평소에 거의 사람이 다니지 않는데다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있어 밖에서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화재가 언제 발생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아요.”

유리코는 그렇게 말하면서 창가로 걸어가 열려 있는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 창문 아래는 특별동 뒤편, 바로 화재가 일어난 부근이었다.

“하지만 이 일에 문제가 되는 건 화재 자체가 아니에요. 무엇이 불에 탔는지에 대한 것이에요.”

갑자기 문제점이 바뀌었다. 무슨 일일까?

내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에 유리코 선배는 눈을 천천히 크게 떴다. 크게 뜬 그 눈에는 호기심과 함께 두려움의 감정이 들어 있었다.

“교복 블라우스와 스커트, 그리고 붉은 셔츠가 불에 탔다고 해요. 타다 남은 잔해가 있어서 그렇게 판명되었답니다.”

온몸이 뻣뻣해지면서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붉은 셔츠라고 하면 유리코 님 후보자가 유리코 님의 힘을 잠정적으로 얻기 위해 입는 옷이잖아?

“유리코 님 후보 중 누군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태웠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유리코 님 후보 중 누군가가 화재를 일으켰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추락 사건과 뭔가 관계가 있는 걸까?

“참고로 옷 사이즈는 전부 M이었어요.”

M 사이즈. 다시 말해 그 옷을 입고 있던 인물은 평균적인 체형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 화재와 관련된 일인데요, 사건 발생 직전에 특별동 계단을 올라가는 수상한 사람을 봤다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에요.”

다시 관심이 끌렸다. 만약 범인이 존재한다면 목격된 수상한 그 사람이 범인이었던 걸까?

“어떤 모습이었나요?”

내가 몸을 앞으로 내밀자 유리코는 두세 번 눈을 깜박이고는 금기를 다루는 듯한 진중한 말투로 말했다.

“교복 블라우스 아래에 붉은 셔츠를 입었고 스커트를 입고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모습이었다고 해요.”

가슴 깊은 곳에서 공포심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유리코 님의 힘을 빌린 후보자의 모습이었다.

“얼굴은? 얼굴은 못 봤나요?”

“안타깝게도 뒷모습밖에 보지 못했다네요. 작은 체형이었다는 것 같아요.”

불에 탄 옷이 M 사이즈였다는 것과도 일치하는 목격 증언이다. 그렇다면 그 인물은 입고 있던 옷을 태운 걸까?

내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유리코 선배가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조사에 따르면 마쓰자와 유리코에게는 자살할 동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 건은 살인 사건이고, 목격된 인물이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도 적지 않은 모양이에요. 하지만 문제는 옥상이 흔히 말하는 밀실 상태였다는 거예요.”

“밀실, 이라고요?”

내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되묻자 유리코는 알아듣기 쉽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히가시다 선생님에 대해서는 알고 계세요? 옥상 관리 책임자인데요.”

물론 알고 있다. 우리 반 담임이다.

“추락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에 히가시다 선생님은 정해진 일과대로 옥상 문이 잠겨 있는지 확인하러 갔다고 해요. 옥상 문은 안쪽과 바깥쪽 양쪽으로 열쇠 구멍이 있고, 양쪽 다 같은 열쇠로 열 수 있어요. 섬턴 자물쇠 같은 것은 달려 있지 않고, 안쪽에서 잠그면 열쇠 없이는 바깥쪽에서는 열 수 없어요. 그날 선생님은 옥상 문이 잠겨 있지 않은 것을 발견했어요. 열쇠 구멍에 철사를 꽂은 흔적이 있었다고 해요. 피킹 같은 수법으로 잠긴 문을 연 모양이에요. 선생님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며 손에 들고 있던 단 한 개밖에 없는 열쇠로 문을 다시 잠갔는데, 실수로 깜박하고 옥상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도 하지 않았대요. 문이 건물 안쪽에서 잠긴 이상 바깥쪽, 그러니까 옥상 쪽에서는 탈출할 수 없어요. 만약 마쓰자와 유리코를 밀어 떨어뜨린 범인이 있다면 그 범인은 옥상 쪽에 갇혀버리게 되는 거죠.”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추락 사건 발생 당시 옥상은 밀실 같은 상태였다.

“하지만 선생님이 문을 확인한 때가 추락 후였을 수도 있잖아요. 범인이 이미 범행을 끝내고 옥상에서 빠져나왔다면 문제될 부분이 없잖아요.”

“그게 그렇지 않아요. 히가시다 선생님은 옥상 문을 잠글 때 귀가하라는 교내 방송을 들었어요. 그 방송은 추락 직전에 나왔어요. 즉, 방송이 나온 시점에는 마쓰자와 유리코가 아직 추락하기 전이고, 게다가 범행 직전인 동시에 그녀와 범인은 함께 옥상에 나가 있었다는 거죠. 따라서 범행을 끝내지 않은 범인은 아직 옥상에 있었을 거예요.”

분명 마쓰자와가 떨어지기 조금 전에 귀가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순서를 생각해보면 만약 범인이 존재한다면 그 범인은 옥상에 갇히게 된다.

“그러면 범인은 옥상에서 탈출하지 못했단 말인가요?”

“그렇겠죠. 게다가 추락 후에 히가시다 선생님이 다시 확인하러 갔어요. 잠긴 문을 열고 옥상을 전부 조사했다고 해요. 그런데 옥상에는 아무도 없었던 모양이에요. 계단실 뒤쪽과 위도 철저하게 살펴봤지만 아무도 없었다나 봐요.”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진 범인. 뭔가 미스터리 소설 같은 전개가 시작되었다. 그때 갑자기 유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범인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쪽이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몽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역시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유리코 님의 힘이 작용하여 마쓰자와 유리코를 떨어뜨린 겁니다. 그렇지 않은 이상 앞뒤가 맞지 않아요.”

확실히 그렇다. 유리코 님에게 당했다는 마쓰자와가 한 말도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유리코 님의 힘이 작용하여 마쓰자와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초대 유리코 님의 망령처럼 영적인 존재가 저주 같은 힘을 사용하여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닐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저는 현장을 목격하지는 않아서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밖에 할 수가 없네요.”

유리코 선배가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정보가 너무 많아 머리가 터질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이제 충분하다는 의미를 담아 손을 저었다.

“아, 유리. 뭔가 더 해줄 이야기는 없어? 이를테면 추락 사건이 일어났을 때 목격한 것이라든가.”

유리코가 마지막으로 유리에게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아무것도 없다는 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그런 둘을 보고 나는 의문이 생겼다.

“저기, 추락 사고가 일어났을 때 우리가 여기서 나온 직후였잖아요? 유리코 선배와 유리 선배도 동아리실에서 막 나왔을 때였는데 함께 가신 것 아니었나요?”

“아, 네. 함께 가지는 않았어요. 저와 유리는 여기에서 나온 후에 바로 헤어져서 항상 각자 집으로 돌아가거든요.”

그렇다면 이해가 되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제 더 물을 것이 없다는 몸짓을 보였다.

“그럼 초대 유리코 님의 일기를 계속 읽으실 건가요?”

유리코가 낡은 노트를 다시 내밀었지만 이미 뇌가 꽉 차버린 나는 더 이상 정보를 머리에 넣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제 괜찮습니다. 오늘은 일단 돌아갈게요.”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화학 준비실을 나왔다. 머리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피로감이 온몸을 묵직하게 눌렀다.

“흐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구나.”

나와 미즈키는 나란히 자전거를 밀며 걸었다. 해 질 녘 둘이서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걸으며 나는 지금 흰 백합 모임에서 얻은 정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미즈키에게 전했다.

“나는 도통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어?”

내가 묻자 미즈키는 균형 잡힌 모양의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잠시 생각했다.

“음, 그렇지. 우선 사건 당일 마쓰자와 유리코의 상태가 이상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어. 안절부절못했다거나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거나. 혹은 옥상 쪽을 바라봤다는 거. 방과 후에 옥상으로 오라고 누군가 불러냈다고 볼 수 있어.”

역시 그렇구나. 여고생이 이유도 없이 출입 금지인 옥상에 갈 일은 거의 없다.

“유리코 님을 떠올리게 하는 교복과 붉은 셔츠가 불에 탔다는 것도 꽤 흥미로워. 사건과 무관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나도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가 있는 게 분명했다.

“유리코 님의 힘에 의한 사건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도록 계획한 범인의 위장 공작? 아니면 어떤 트릭을 꾸민 결과 발생한 일? 대체 뭘까? 현시점에서는 아직 모르겠어.”

미즈키는 어려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미즈키라고 해도 바로 미스터리를 풀 수는 없는 모양이다.

“사건 직전에 특별동 계단을 올라갔다는, 양 갈래로 머리를 땋고 붉은 셔츠에 스커트 차림을 한 수수께끼의 인물. 지금 상황에서 본다면 그 인물이 범인이라고 생각해야겠지. 유리코 님 후보가 갖춰 입은 차림인지, 아니면 그렇게 보이기 위한 변장일지 모르겠지만.”

일부러 눈에 띄는 차림을 한 범인, 분명 목적이 있어서 그런 차림을 했을 것이다.

“게다가 옥상 밀실은 중대한 문제야. 히가시다 선생님이 문을 잠근 탓에 범인은 분명히 옥상에 갇혔고 탈출할 수 없었어.”

“그런데 범인은 연기처럼 옥상에서 사라져버렸어.”

“그러게. 옥상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밝혀내지 않는 한 마쓰자와를 떨어뜨린 범인은 유리코 님의 망령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미즈키는 유리코 님의 망령이 범인일 가능성을 부정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도 부정하고 싶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 가설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초대 유리코 님의 일기 말인데. 이건 상당히 중요한 증거물이야.”

의외의 발언이었다. 틀림없이 미즈키는 과거 일에는 관심 없고 현재 문제만을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일기 내용은 좀 전에 이야기한 대로인데 어느 부분이 중요한 거야?”

내가 묻자 미즈키는 고민하면서 대답했다.

“콕 집어서 어느 부분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일기 내용은 분명히 꽤 옛날이야기일 게 분명한데 어딘가 현재와 이어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거든.”

미즈키의 직감은 잘 맞는 편이다. 고등학교 입시 시험 전에 예상 문제를 뽑아줬을 때도 비슷한 문제가 상당히 많이 나왔다. 이번에도 분명 그럴 것이다.

“일기를 전부 읽은 건 아니지?”

미즈키의 질문에 나는 약간 곤란한 기분으로 대답했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지쳤어. 다음에 다시 열심히 읽어올게.”

속마음으로는 그 일기가 조금 무서웠다. 무엇이 어떻게 무서운지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욕실에서 머리를 감을 때 등 뒤에서 문득 느껴지는 기척 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이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도망칠 구실로 핑계를 댔지만 미즈키는 “그래”라고만 중얼거리고 나를 탓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의 태도가 고마웠다.

“아무튼 범인은 살아 있는 인간이야. 유리코 님의 저주같이 실체가 없는 존재는 절대 아니야. 내가 이 미스터리를 풀어서 유리코를 안심시켜줄게.”

주먹을 쥐고 미즈키가 맹세했다. 그런 모습이 든든해서 나는 “응” 하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미즈키를 보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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