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프롤로그
세찬 바람이 정면에서 불어와 몇 번이고 내 뺨을 때렸다.
학교 옥상, 펜스 바깥쪽. 건물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내게 그 바람은 경고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몇 번이고 내 뺨을 때리며 그만두라고, 자살처럼 바보 같은 짓은 생각도 하지 말라고, 그 바람이 나를 붙잡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결심이 조금 흔들렸다.
바람에 스커트가 뒤집히고 머리카락이 헝클어졌다. 흐트러진 스커트와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지금 죽는 마당에 흐트러진 스커트나 머리카락 따위가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그런데도 나는 스커트와 머리카락을 가지런하게 매만졌다. 역시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인가 싶어 입안이 씁쓸해졌다.
발아래, 운동장에서 동아리 활동 중이던 학생들이 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입에서 입으로 말을 전하고 손가락으로는 나를 가리키며 허둥거렸다.
곧 교사들이 뛰쳐나와 “가만있어, 지금 그쪽으로 갈 테니까”라고 외쳤다.
아아, 사람들이 여기로 오면 귀찮아지는데. 구조라도 되면 다시 살아가야 한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그것만은 사양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문득 바람이 멈췄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화였다. 옥상은 파도가 치지 않는 잔잔한 바다처럼 조용해지고 아래에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도 어째서인지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거의 사라진, 진공 같은 상태가 순간 찾아왔다.
뒤집어진 스커트가,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그대로 아래로 축 늘어졌다.
마치 저 세상처럼 현실감이 옅어진 순간이었다.
……내게 죽으라고 하는 걸까.
소리 없이, 나를 맞이하는 듯한 고요. 저승의 문이 열리고 죽음이 손짓하며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홀연히 발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거기에 발이 닿을 곳은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곳에 뭔가가 있어 짓밟는 기세로 발을 내디뎠다.
몸이 기우뚱 기울었다. 내디딘 발이 닿을 곳 없이 공중을 헤매며 그 기세에 다른 쪽 발도 허공으로 떠올랐다. 옥상 끝에서 몸이 멀어졌다.
나는 허공에 던져졌다. 중력에서 자유로워지며 전신이 가벼워졌다. 동시에 많은 것에서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뭔가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시시한 규칙도, 윤리도, 도덕도.
나는 자유다.
큰 소리로 외치고 싶은 충동이, 내 가슴에 밀어닥쳤다.
하지만 이런 꿈같은 시간도 결국엔 끝을 맞이했다. 갑자기 시야가 또렷해지고 풍경이 만화경처럼 빙글빙글 돌아 지면이 커지면서 눈앞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구경꾼들의 비명이, 바람 소리가, 귀 끝에서 높은 음으로 재생되었다. 내 고막이 불쾌하게 떨리며 현실감이 돌아왔다.
아, 죽는구나. 기묘한 체념과 함께 나는 각오를 다졌다. 눈을 감고 덮쳐오는 충격에 몸을 굳혔다.
아주 잠깐, 잠깐만 참으면 된다.
온몸에 힘을 넣었다. 주먹을 꽉 쥐고 다리에 힘을 줬다.
갑자기 강렬한 충격이 온몸을 타고 흐르며 몸속 뼈가 가루가 되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기침이 나더니 입안에서 따뜻한 뭔가가 흘러나왔다. 쇠 맛, 피였다.
견디기 힘든 통증에 뇌가 비명을 질렀다. 전신은 경련하듯 떨리고 목구멍에서는 의미도 없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의식이 희미해졌다. 눈앞은 암전된 듯 깜깜하고, 소란스러운 주위 소리도 다시 들리지 않았다.
사라져가는 의식 속에서 주변에서 사람들이 집요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나를 현세에 잡아두려는 듯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불렀다.
…….
유…….
유리…….
아, 정말, 나는 외치고 싶어졌다. 내 이름은 단 하나뿐이야. 더할 수 없이 사랑하는, 아름답고 우아한 최고의 이름.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피를 토하면서 신음하듯 대답했다.
……내 이름은, 유리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