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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다 원하다-49화 (49/51)

49화

민무영은 이대영의 문제를 마무리 짓기 위해 나를 풍로로 보내 달라고 했고, 노도수는 거절했다.

그걸 계기로 풍로와 천로의 동맹은 철회되었다.

어제까지 같은 식구라며 웃고 떠들던 풍로와 천로인들은 어쩔 수 없이 서로 등을 돌렸고, 민준수는 우리와 같이 살던 집에서 나가게 되었다.

그 녀석은 짐을 챙겨 나가면서, 이 모든 일은 너 때문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까놓고 100% 나 때문이 아닌 걸 녀석도 알면서, 역시나 날 싫어하는 녀석다웠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천로에 있는 풍로 소유의 호텔은 바람 잘 날 없이 시끄러웠고, 지다와 아이들도 쉴 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어쨌거나 이 일의 시발점이 되어버린 난, 또다시 회귀하기 전처럼 집 안에서 갇혀 지내야 했다.

이대영과 우연히 엮인 게 이렇게 파장이 클 줄은 몰랐는데, 이 지경까지 되고 보니 노도수와 애들에게 미안해졌다.

그래도,

회귀하기 전의 천로와 풍로처럼 서로 총까지 겨누며 정말로 죽이려고 으르렁거리지 않는 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이대영의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또다시 사건이 터졌다.

카지노 일로 바빠서 요 며칠 집에도 들어오지 못한 운이가 등에 칼을 맞은 사건이었다.

밤이었고, 카지노 건물 뒤쪽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천로인들은 풍로의 짓이라고 분노했고, 당사자인 김운은 아직까지 병원에서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천로인들 중 유일하게 한가한 내가 운이의 간호를 맡게 되었는데, 내가 천로를 나가면 안된다고 난리를 부려 댄 고한겸과 가지다 때문에 운이가 깨어나 천로에 돌아갈 때까지 병실밖에 경호가 붙었다.

지다는 운이를 찌른 놈을 알아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고, 노지나는 깨어나지 못하는 김운 때문에 우는 일이 많아졌다.

아니라고는 해도, 지나 역시 운이를 좋아했던 모양이었다.

그 후로도 연이어 터지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로 천로는 싱숭생숭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거의 일주일 만에 깨어난 운이는 뒤에서 찌른 놈이 누군지 전혀 알지 못했고, 운이를 찌른 놈을 알아내려던 지다와 태산도 별 성과 없이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났다.

운이의 회복이 생각보다 빨라 내일은 퇴원해도 된다는 의사의 말에 아침부터 기분이 요란하게 몽글거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병원에만 내내 있던 탓에 지다와 있을 시간이 없었다.

간간이 병원에 들려 얼굴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걸로 이 외로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제야 좀 제대로 사귀게 되었는데 어째서인지 걸림돌이 많은 느낌이다.

그래도 이젠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다.

내일 퇴원을 한다는 소리에 지나와 한겸이가 왔다.

지나와 운이, 둘이 있게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음료수를 사 오겠다며 한겸이를 데리고 나왔다.

우리에게 붙는 경호에게 한겸이가 있으니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녀석과 병원 옥상으로 올라왔다.

"음료수 파는 곳이 여기야?"

"아- 운이랑 지나, 둘만 있게 해주자. 잠깐 동안만이라도."

내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한겸이.

왜 둘만 있게 해주냐고 묻는 한겸이에게 운이가 지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지나도 운이가 좋은데 아직 자각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거라 말했다.

내 말에 한겸이는 놀란 얼굴을 했다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이내 동글 거리던 눈을 초승달로 만들며 웃는다.

"응. 둘만 있게 해주자."

오랜만에 한겸이와 둘이서 하늘을 쳐다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희정이와는 어떻게 지내냐 묻는 내게 사랑이 아니니까 역시 사귈 수는 없어 친구로 지내는 중이라고 했다.

처음엔 희정이도 힘들어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신에겐 이다인이 제일 소중하지만 희정이 역시 소중한 친구라며 운이와 지나, 지다와 태산, 민준수처럼 희정이도 그렇단다.

"그런데 역시, 이다인은 달라."

뭔가 이야기의 흐름이 갑자기 곤란한 쪽으로 흐르는 느낌에 당황한 얼굴로 한겸이를 쳐다보자, 어느새 촉촉해져버린 눈으로 나를 보며 말을 잇는 한겸이.

"다인아....내가 자꾸만 너 포기 못 해서 미안해. 이렇게 오랜만에 둘이 있는게 너무너무 행복해서 미안.....혼자만 행복해서 미안."

"...한겸아.."

"그렇지만 방해는 안 할 거야. 혼자만 좋아하는 거니까. 절대로 절대로 가지다한테서 너 뺏는다거나 그런 생각은 안 하니까. 그러니까..."

"......"

"계속 이렇게....혼자만 몰래몰래 좋아해도 돼...?..."

혼자만.

몰래몰래.

이런 말을 들을 땐 도대체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해야 이 아이의 동글 거리는 예쁜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을지 모르겠다.

"...한겸아..."

난감하고 미안한 마음에 한겸이를 올려다보며 이름을 부르는데, 한겸이가 놀란 얼굴로 옥상 문쪽을 쳐다보고 있다.

누군가가 온 건가 싶어 고개를 돌리는 그때, 뭔가가 머리를 때리는 느낌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땐, 낯선 곳에 한겸이와 갇혀있는 내가 있었다.

....

......

...

"살아났어?! 다인아! 괜찮아?!"

아고고고, 머리야.

뒤통수가 깨질 듯이 아프다.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뒤통수를 만졌더니 커다란 붕대가 만져진다.

아마도 피가 났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여긴 어디냐.

"아파? 많이 아파?"

"괜찮....헉! 한겸아! 너 얼굴이 왜 이래?!"

내게 괜찮으냐고 새빠지게 물어대던 한겸이의 얼굴이 가관도 아니었다.

입술은 터질 대로 터져있고 눈 밑 언저리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는...

"누가 이랬어?! 대체 어떤 새끼가 이런 거야?!"

이런 몰골로 내 깨진 뒤통수만 걱정하는 놈이라니.

정말 너를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자기는 괜찮다며 머리에 다시 피가 날지도 모르니까 소리 지르지 말라는 한겸이가 내가 정신을 잃고부터의 일을 설명했다.

풍로 놈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의 검은 무리들이 손에 각목 같은 것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오더니 순식간에 날 기절 시켰단다.

그리곤 뭐 하는 거냐고 달려드는 자신을 개 패듯 팼단다.

눈을 떴을 땐 이 방이었고, 내 머리에 피가 너무 나길래 아무나 약 상자라도 달라고 소리쳤단다.

키가 조그마한 남자가 무서운 눈으로 방문을 열어 약 상자를 던지듯 주고 나가, 자신이 응급처치를 했단다.

여기가 어딘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간간이 들리는 사람들의 대화에 도련님이 어쩌고라는 말이 들렸던 걸로 보아 여긴 풍로인들의 아지트임에 틀림없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래, 천로인들은 도련님이란 단어를 쓰지 않아.

늘 도련님이란 호칭은 민준수....

라는 생각이 퍼뜩 들면서 고개를 들어 한겸이를 쳐다봤다. 녀석도 날 쳐다본다.

나와 한겸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민준수?!"를 외쳤다.

....

.......

....

창문 하나 없는 방에 한겸이와 갇혀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겸이의 얼굴에 난 상처에 약을 발라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사실은 내가 회귀를 했다는 것도 말해버렸다.

물론 믿을 거라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어째서 지다를 좋아하냐고 묻는 한겸이의 말에 지다를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인 회귀하기 전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생각과는 달리 한겸이는 만화 같은 내 이야기를 믿는 얼굴이었고, 지다가 나 대신 죽고 나도 죽었다는 대목에선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그래서 다시 열여덟 살로 돌아왔을 때, 학교에서 지다를 보고 정말 기뻤었어. 살아서 내 눈앞에 있으니까..."

한겸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자신은 거기에서도 날 혼자만 좋아했냐고 묻는다.

말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망설이다가 그때는 네 존재 자체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나도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노도수 역시 지금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한겸이는 내 말에 그렇구나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뭔가 잠깐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이내 방긋 웃으며 내게 말한다.

"뭐야. 거기가 더 좋은 곳이네. 나 같은 애 없으니까."

"....."

"다행이다. 우리 엄마...거기서는 안 울겠네."

한겸이는 자꾸만 다행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나를 보며 말한다.

"어쩌면...어쩌면 나는 그때 네 대신 죽은 가지다가 만든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뭐...?..."

"나는...나도, 이다인이 죽으려고 하면 내가 대신 죽을 수 있으니까.... 사실은 내가 그때 가지다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한겸아."

"응, 농담."

이라며 환하게 웃는 고한겸의 얼굴에 어째서인지 슬픔이 묻어난다.

하지만 일단은 그런 것보다.

여기가 어디고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부터 생각하는 게 좋겠다.

나와 한겸이가 사라진 걸 알면 분명 가지다가 위험을 무릅써서라도 찾으려고 할 테니.

...

......

.............

============================ 작품 후기 ============================

원래 50화로 깔끔하게 완결을 내는 게 목표였는데 어쩌다 보니 한겸이의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본의 아니게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고 하고 있습니다=_=;;;

너무 빠른 잘라먹기 진행에 가뜩이나 재미없는 이야기가 더 반감될 수도 있겠으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 쓰다 보니 우다와 지다가 헷갈려 몇 번이나 이름을 고쳐 쓴 글쟁이가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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