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아프고 아프고 아프고 아팠다>
한겸이가 천로로 돌아온 후, 아이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겸이를 대했고, 한겸이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갔다.
가지다와 고한겸이 매일 밤 술을 마시게 된 것 빼고는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지다는 한겸이가 온 날, 자신이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고, 보려고도 하지 않는 한겸이를 무력으로 끌고가 술을 마셨다.
첫날에는 둘 다 입술이 터져있어 싸웠다는 걸 알았고, 둘째 날엔 한겸이의 눈이 퉁퉁 부어있어 지다놈이 울렸구나 생각했다.
삼 일째 되던 날은 태산이의 생일이라 축하 겸 모두 다같이 마셨는데, 우리가 술을 마시며 떠들고 노는 사이에 또 한겸이와 지다만 따로 사라져버려, 가지다를 찾는 민준수에게 어째서인지 내가 시달렸다.
누가 보면 한겸이와 지다가 사귀는 줄 알겠다 싶을 만큼, 그 둘은 매일 밤 단둘이서 술을 마셨다.
때문에 민준수는 하루 종일 골이 나 있었고, 나는 나대로 뭔가 복잡 미묘한 기분이 되었다.
그도 그럴게, 한겸이가 집으로 온 지 일주일이 지날 동안 가지다는 오직 한겸이에게만 신경을 썼으니까.
참았다느니, 내가 들어갈 자리 좁히지 말라느니 해댔던 놈은 대체 어느 집, 어느 군이냔 말이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어떤 얘기길래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시간은 계속 흐르고, 이도 저도 아닌 관계에 나는 점점 불안해지고 있다.
...
....
.......
바닷가 앞쪽의 건물 완공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요즘 부쩍 천로를 자주 찾아오는 노도수와 민무영은 가지다와 김운, 민준수와 함께 꽤 오랜 시간을 건물에서 보냈다.
내가 알고 있던 불법 카지노와 비밀 호텔이 천로에서 자리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조금 달라진 거라면, 호텔 쪽의 관리는 천로가 아닌 풍로 민준수에게 맡겨졌다는 것이다.
정재계 인사들의 구린 뒷 스캔들과 각종 비리가 난무하던 비밀 호텔의 경영을 어째서 풍로가 하게 된 건지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이미 내가 알던 과거와 다른 과거이니 이곳에서의 풍로와 천로는 앙숙처럼 으르렁거리지 않겠구나 생각되었다.
이것이 나중에 우리가 겪게 될 비극의 시작임은 전혀 알지 못한 채.
....
.......
....
카지노와 호텔이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하고, 사람 하나 없던 조용한 천로도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차들과 검은 옷을 입은 천로인과 풍로인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가지다는 나와 지나에게 바닷가 근처로는 오지 못하게 했고, 경호 수업을 받은 강태산은 몇몇 다른 경호원들과 함께 카지노와 호텔 쪽의 경호를 맡았다.
혹시라도 모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우리가 지내는 집 쪽에도 경호원이 붙여졌는데, 이는 본격적인 천로의 외부인 통제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했다.
카지노 딜러들과 직원들의 총책임을 맡은 노지나는 하루 종일 사진이 붙은 명단을 가지고 사람 얼굴과 이름을 외우기에 바빴고, 벌써부터 억대의 돈이 도는 카지노의 이익금을 머리로 계산해 외우기 바쁜 고한겸 역시, 자신의 일을 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천로에서 나 말고는 모두가 그렇게 각자의 일을 하며 바쁘게 보냈다.
이쯤 되고 보니, 매일 집에서 빈둥거리다 시간이 되면 요리학원만 가는 나는, 뭔가 본질적인 고민에 휩싸였다.
더 이상 한겸이의 여자친구도 아니고, 내가 굳이 천로에 있을 이유가 없다.
노도수에게 잡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아빠의 돈을 갚는 것 대신 이곳에 오긴 했지만 더 이상 내가 여기 있을 이유는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있을 이곳에 있을 이유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가지다와 마주쳤다.
며칠 동안 바빠서 얼굴도 못 본 녀석을 학원에 다녀오자마자 집에서 보게 되니 뭔가 두근두근하기 시작한다.
"잘 지냈냐?"
"....보다시피. 어쩐 일로 오늘은 이 시간에 집에 있네?"
"휴식이야, 휴식."
"많이 바쁘지?... 커피 줄까?"
"그건 됐으니까 앉아봐. 간만인데 얼굴도장 좀 찍자."
내게 손을 내밀며 저러코롬 말하는 지다.
그런 지다를 보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조동아리가 마구 씰룩거리려고 해 애써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녀석의 옆에 앉았다.
"며칠 못 봤는데도 여전히 예쁘네, 우리 이다인은."
그 말에 또다시 내 건방진 조동아리가 씰룩거리려고 한다.
단박에 손으로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했다.
"비행기 태우기 전에 태우는 이유부터 말해."
"넌 안 보고 싶었냐?"
"엊그제도 봤잖아."
"그렇게 보는 거 말고, 이렇게 보는 거."
"이렇게 보는 게 어떻게 보는 건데?"
심드렁한 얼굴로 저러코롬 물었더니, 갑자기 내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심장에 가져다 댄다.
"이렇게."
응. 그러니까 미친 듯이 뛰어대고 있는데, 네 심장.
뭔가 부끄러워져 녀석에게 잡힌 손을 빼내며 "뭐야, 그게."라고 했다.
"사귀는 날 딱 정해서 백일 같은 거 챙기고 하는 스타일이야?"
담배를 꺼내 물며 뜬금없이 저러코롬 묻는다.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녀석을 쳐다봤더니 녀석이 불을 붙인 담배를 후-하고 뱉어내며 말을 잇는다.
"고한겸이랑은 얘기 끝냈거든. 이쪽도."
"...끝내다니...?..."
"이다인. 내가 가진다고."
뭔가.
심장이 쿵 했다가 마구 뛰어대기 시작한다.
한겸이가 천로로 돌아오고 몇 날 며칠 둘이서만 나가더니 그것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뭐, 그 녀석은 절대로 반대라고 아직도 악악거리긴 하지만, 어쨌든 결론은 그쪽으로 났으니까. 원래 좀 더 일찍 말하려고 했는데 작업장 오픈 때문에 바쁘기도 했고, 여러 가지."
"......"
"굳이 사귀자는 말을 안 해도 상관 없을 거란 생각도 했었는데 말이야."
"....."
"하지만 역시 그런 건, 말하는 쪽이 더 나을 것 같아서. 나도 확인 도장 찍어놓는 쪽이 마음 편하고."
그러니까, 이 남자.
사귀자는 말을 참 이상야릇하게 한다고 할까.
"그래서. 넌 어느 쪽? 챙기는 쪽이면 오늘부터 1일 하고."
너무 갑작스럽기도 하고,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기도 하고.
뭔가 입을 열 엄두가 안날 정도로 벙쪄있다, 나 지금.
"이다인."
"......"
"쪽팔리는 거 꾹 참고 말하는 건데 대답을 안 하네, 이 여자. 나 쪽팔려 죽으라고."
"......"
"다인아."
그러니까, 내 입은 왜 이렇게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않는 거냐.
것보다,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지 마. 내 얼굴 터지려고 해, 지금.
"야- 가지다 거."
".........무, 물건이냐, 내가?"
당황한데다 급하게 입을 열어서 그런지 목소리까지 뒤집혔다.
나야말로 쪽팔려 죽을 것 같아.
내 말에 피식- 입꼬리를 올리는 놈.
진짜 심장마비 걸릴 만큼 멋들어지게 웃었다, 방금.
"아쉽네. 물건이었으면 좀 더 가지기 쉬웠을 텐데."
"웃기지..!..."
"좋아해."
내가 웃기지 말라는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저러코롬 담백한 사랑고백을 해버리는 가지다.
덕분에 내 입은 벌어질 수 있는 최대까지 벌어져 금붕어마냥 뻐끔거리고 있고, 녀석은 그런 날 향해 마침표를 찍듯 한번 더.
"미치게 좋아해, 이다인."
심장은....
너무 기뻐도 터져버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
....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스위치가 켜진 건 아니었다.
처음은 풋풋하고 짧은, 기분 좋은 버드키스였다.
그런데 눈이 마주치고, 다시 입술이 맞붙으면서 머릿속의 이성은 내게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가지다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여기가 거실이라는 자각도 없이 내 옷을 벗기기 시작한다.
빨고, 핥고, 만져대며, 내 상의가 녀석에 의해 전부 벗겨졌을 때.
삐비비빅-
하는 기계음 소리에 나와 지다는 동시에 동작을 멈췄다.
철컥철컥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반쯤 벗겨진 옷과 옷가지들을 챙겨 가지다의 방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 들어가 쥐 죽은 듯 마주 보고 섰다.
"다인아-?"
하며 날 찾는 지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난 문에 등을 기대고 소리를 죽인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가지다만 올려다볼 뿐.
"얘 아직 안 왔나?"
중얼거리듯 말하던 지나가 2층으로 올라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지다가 내 가슴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녀석은 전혀 그만둘 생각이 없는 모양.
나 역시 녀석의 애무에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있었던 터라 딱히 멈추고 싶은 마음이 없다.
입술과 입술이 맞붙고, 내 가슴을 만지던 지다의 손이 아래로 내려온다.
회귀하기 전, 노도수에게 빼앗긴 처음을 가지다와 함께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늘 생각했었는데, 지금 이 순간, 정말로 그 일이 실현되려 하고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가지다의 테크닉과는 조금 다르지만, 만지는 느낌이나 집요하게 혀를 옭아매는 행위는 똑같다.
그러니까 몸은 아직 처녀인데 벌써 가지다와 몇 번의 잠자리를 가졌던 기억 탓에 내 팬티를 벗기고 자신의 상의를 벗고 있는 가지다와 눈을 맞춘 지금.
전혀 무섭거나 두려운 느낌이 없다.
무섭기는커녕, 온몸이 짜릿짜릿하며 근질근질한 느낌에 빨리 넣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어버린다.
무려, 첫 경험인 여자가 말이다.
무서웠던 고한겸 때와는 참 많이 다른 느낌.
나는 정말로 가지다를 많이 좋아하고 있구나라는 걸 새삼 실감한다.
그런데 이 녀석, 손가락을 내 아래에 집어넣다 말고 뜬금없이 나를 빤히 내려다본다.
그러니까, 이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쳐다보면....
날 쳐다보는 섹시한 녀석의 얼굴과 내 아래에 느껴지는 반쯤 들어간 녀석의 손가락 때문에 흥분지수가 극에 달하고 있는 중인 난, 저절로 나오는 야한 신음을 삼키려고 노력 중이다.
"이것도 꿈인가 헷갈려."
"...흣....!...."
녀석의 손가락이 깊숙이 들어와 나도 모르게 몸을 웅크리며 신음을 뱉었다.
그런 내 입술에 쪽하고 키스를 하며 녀석이 말을 잇는다.
"꿈보다 더 섹시하네, 우리 이다인.... 그래서 못 참겠어."
몸을 반쯤 일으키고 자신의 바지를 빠른 동작으로 벗으며 지다가 말했다.
"바로 넣어도 돼?"
내가 알던 가지다는 잠자리에서 이렇게 일일이 물어보지 않았다.
능숙하다 못해 선수 같은 느낌이 들었을 정도였는데, 어째서인지 지금의 가지다는 조금 서툰 것 같은 느낌이다.
그때의 가지다 보다 한참이나 어린 나이이니 그럴 수밖에 없나.
뭐, 이쪽이 꽤 귀여운 느낌이라 더 마음에 들지만.
나는 대답 대신 녀석의 목에 팔을 감았고, 녀석은...넣는 곳을 찾느라 조금 고생을 했다.
그런데....
힘들게 찾아 넣었다 싶은 순간에,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지다의 가슴팍을 세게 밀었다.
"아파앗-!"
지다는 정말로 아파하는 나를 보며 참기 힘들 정도로 아프면 체위를 바꿔보자고 했고, 몸을 일으켜 지다가 시키는 데로 엎드린 자세로 엉덩이를 들고 지다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역시, 반쯤 들어오자 죽을 것처럼 아파 견디기가 힘들다.
노도수에게 처음을 빼앗겼을 땐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아픈 건지 모르겠다.
"아파! 아파!"
내가 아프다고 발버둥을 치자, 반도 안 들어갔다고 말하는 지다.
그리곤 너무 큰 소리를 내면 밖에 다 들린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이 빡빡한 이물감으로 찢어질 것 같은 아픔에 눈물까지 흐르는 나는 자꾸만 아프다는 말만 해대고 있다.
"아- 아파아-! 흑- 아프다고!"
"윽- 조이지 마! 나도 아파!"
"아...진짜 아파서 죽을 것 같아."
"부탁이니까 힘 빼."
"안 돼. 아파! 흣-! 움직이지 마-"
기어이 울음을 터트리는 나를 보며 반쯤 들어가 있는 자신의 페니스를 더 넣지도, 그렇다고 빼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 지다.
한참 동안이나 난 엎드린 자세로, 지다는 내 뒤에서 페니스를 반만 넣은 상태로 그렇게 얼음 상태가 되었다.
아주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찢어지는 고통이 차츰 덜해지면서 급 미안한 마음이 들어버린 나.
"저기...참아볼 테니까....한번에 밀어 넣어줘."
내 말에 녀석이 내 턱을 잡아당겨 자신을 보게 만든다.
쪽-하고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고, 녀석이 내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말한다.
"이다인. 좋아해."
화르륵-하고 얼굴이 타올랐다.
"이, 이런 자세에서 말하지 마. 바보야."
"너무 아파하는 것 같으니까...."
아파, 당연히 정말로 너무 아프다고.
"제대로 좋아하니까 말이야. 정말이니까 믿어."
왠지 심장이 마구마구 몽글거려진다.
듣기 좋은 중저음의 진심 어린 목소리가 내 귓가에서 나지막하게 맴돈다.
"좋아해, 이다인."
"나..나도 좋아해. 많이 좋아하고 있어."
"응. 그러니까, 미안. 멈출 수 없어."
라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래쪽에 깊숙이 들어오는 이물감.
어째서인지 아까의 찢어지는 고통보단 조금 덜한 느낌이긴 하지만 여전히 아픈 건 사실이다.
"읏-"
"흣-"
나와 마찬가지로 지다도 아픈 모양이다.
힘을 빼라고는 하지만 그게 내 맘대로 되지는 않는다.
이런 행위가 분명 처음도 아닌데...물론 이 몸은 처음이지만, 기억과는 많이 다르다.
처음이라는 게 이렇게 힘든 거였나, 모르겠다.
지다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아픔에 이를 악물게 되다가, 시간이 갈수록 아픈 건 아픈 거대로 사실감이 들어 엄청나게 느껴진다.
내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듯, 계속해서 내 귓가에 좋아한다고 말하며 귓불을 핥아대는 지다 때문에 꽤 참을만하기도 하고, 녀석에 의해 몸이 흔들려지면서 어쩐지 나 역시 조금씩 찌릿 찌릿거린다.
"지다야."
"응. 아파?"
내가 녀석을 부르자, 단박에 움직임을 멈추고 저러코롬 묻는다.
"아니, 자세...바꾸면 안 돼?....얼굴 보고 싶어."
"아. 괜찮겠어?"
자신은 상관없지만 체위를 바꾸면 지금보다 힘들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지다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몸을 돌렸다.
역시 할때는 눈을 마주 보는 쪽이 좋아.
그래야 지금 이 남자가 오로지 내 것이구나 느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불안했던 예전의 습관 같은 느낌.
지금은 온전히 내 것이고, 걸림돌따위도 없는데 난 여전히 불안한 모양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렇게 소원했던 가지다와의 처음은....
설레고, 타오르고, 행복하고, 기뻤다.
하지만 역시.
아프고, 아프고, 아프고, 아프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