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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다 원하다-41화 (41/51)

41화

부드럽고 몽글몽글한 지다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떨어졌다.

"....이건 인사 같은 키스."

자기도 모르게 내게 입을 맞춘 모양이다.

급당황해 저러코롬 어색한 말로 수습을 하려는 지다를 보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풋-하고 약하게 웃자, 웃지 말라며 내 이마를 검지로 약하게 누른다.

"아야."

".....그리고 이건, 니가 알던 가지다의 키스."

하며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잡아당겨 키스를 하는 놈.

아까의 풋풋했던 키스가 아니다.

입안 깊숙이 들어온 지다의 혀에 희미하게 맥주 냄새와 담배 냄새가 섞였다.

조금 짧다 싶은 키스를 끝내고 내게서 입술을 뗀 지다가 자신의 타액으로 젖은 내 입술을 엄지로 닦아준다.

"그리고 이건......지금의 내 키스."

그리고 또다시 내 입술을 덮친다.

부드러우면서도 다정했던 조금 짧다 싶은 아까의 키스와는 사뭇 다르다.

한겸이가 하는 키스보다 집요하다고 해야 할지, 숨쉬기가 곤란해져 머리를 뒤로 빼는 걸 허락하지 않고 끊임없이 내 혀를 옭아맨다.

지금의 가지다 키스.

그러니까 이건.... 무슨 의미?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러니까 혀가 얼얼할 정도가 될 때까지 지다와 키스를 했다.

입술과 입술이 떨어진 후엔 갑작스러운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그저 멍하니 바다만 보고 있었다.

좀 길다 싶은 침묵이 지나가고, 뭔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라이터 켜지는 소리. 담배연기를 내뿜는 가지다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문득, 정말로 뜬금없게도.

키스하고 나서 담배 피우면 맛있나?...란 생각이 들어버렸다.

"그러니까....키스하려던 건 아닌데... 말이야."

"......"

"이런 식으로 고백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말이지."

고, 고백이었던 거냐?!

"적어도 고한겸이랑 정리가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식으로 쳐다보니까 뭔가 참을 수가 없게 돼버렸다고 할까."

눈에 담배연기가 들어갔는지 담배를 끼운 손으로 왼쪽 눈을 비비며 저러코롬 말한다.

그게 또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멋있다.

그러니까 별것도 아닌 행동에 일일이 반응을 한다, 내 망할 심장이.

것보다....

도대체 내가 어떤 식으로 쳐다봤길래 참을 수가 없는 거냐.

저 물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하지만 미안하다고는 안 할 거야, 하고 싶었으니까."

"........."

"사실은 더한 것도 하고 싶지만 그러면 정말 고한겸한테 미안해지니까."

더한 거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그러니까 이다인."

"....어, 엉...?...."

"한번 더."

....

.......

....

지다가 지금 날 좋아해서 이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녀석은 꿈과 현실이 혼동되어 있는 중에 술도 취했겠다, 단둘이겠다, 머릿속으로 생각이란 걸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 것일 터.

원래 사람이라는 게 알코올과 분위기에 약해지는 존재들이니.

그렇다고 키스 정도는 뭐 어때라고 생각하는 건 또 아니다.

하지만 갖고 싶어 죽겠다는 듯, 이런 식으로 키스를 하는 지다를 거부할 의지는 내게 없달까.

지금은 한겸이에게 미안한 마음보다, 숨쉬기도 어렵게 파고드는 지다의 입술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꽤 오랫동안 맞붙었던 입술이 떨어졌을 땐, 한꺼번에 들어오는 공기에 저절로 숨이 헐떡거려졌다.

금방까지 집요하게 내게 키스를 했던 가지다는 또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고, 그걸 본 나는 단박에 녀석의 입에 물린 녀석의 담배를 빼앗아 바닥에 버렸다.

아아. 뭔가 욱해서 몸이 먼저 움직여버렸다.

벙찐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지다를 보자, 아차 싶었다.

자아, 이젠 이 상황을 수습할 일만 남았어.

담배도, 키스도.

"그, 금방 키스하고 바로 담배 피우는 건 좀...예의가 아니라고 할까, 기분...나쁘다고 할까."

".....응, 미안. 뻘쭘해져서 나도 모르게."

요우 요우.

너도 뻘쭘하긴 한 모양이구나.

"......"

"........"

뭔가....아까보다 더 어색해졌어.

이 어색함을 없앨 방법을 모르겠어, 나.

그런데...

좀 어색하다 싶은 침묵을 깨고 아무렇지 않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는 녀석.

"이제 그만 갈까?"

"아, 응...."

녀석을 따라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아무렇지 않게 내 손을 잡는 녀석.

멍하니 맞잡은 손만 쳐다보며 걷다가 문득, 이러고 집에 가도 괜찮나?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저기....손.......잡고 들어가는 건 좀 그렇지 않아?"

무엇보다 집엔 널 좋아하는 게이 놈이 있을 텐데.

우리 둘, 이렇게 손잡고 들어가면 분명 두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거라고, 민준수가.

"왜, 공범 주제에 쫄았냐?"

공범이라니, 공범이라니.

우리가 은행을 털거나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그래도.

알고 있구나.

이러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우리가 지금, 한겸이에게 대단히 미안할 짓을 했다는 것 정도는.

뭔가, 우울해져버렸다.

아니, 침울해진 건가.

그런데 갑자기, 지다가 내 손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꽉 준다.

고개를 돌려 녀석을 올려다봤더니 녀석이 나를 보며 말한다.

"이다인."

"응."

"나 혼자 해."

"....엉...?..."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기에 저러코롬 물었더니, 녀석이 병신 같으니까 엉이라고 하지 말란다.

그 말에 뭔가 또 욱해져버렸다.

"너 지금 나한테 욕했지?"

"병신이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욕했잖아."

"병신이라고 했다."

이 새끼, 이거.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그러니까 병. 신. 그거 욕이라고."

"......병신이냐? 병신이 왜 욕이야."

"욕이지! 것보다 또 병신!"

녀석이 잡은 손을 획 뿌려치고 성큼성큼 앞서 걸으며 어떻게 내게 욕을 하냐며 꽁시렁 꽁시렁 거렸는데 얼마 못가 녀석에 의해 잡혀버렸다.

어이 어이.

기본적으로 화가 난 여자를 잡을 때는 팔을 잡는다거나 어깨를 잡는 게 정상 아니냐?

어째서 내 옷 뒷덜미를 잡는 거냐.

"놔."

"야."

"놓으라고."

"야, 공범."

"놓으라니까?!"

바둥바둥 거리며 내 옷 뒷덜미를 잡고 있는 녀석의 손을 밀어내는데, 특유의 듣기 좋은 중저음으로 나지막하게 말하는 녀석.

"내가 말하는 병신은 좋아한다 하고 똑같은 거다."

그게 말이 되지, 어?!

...그것보다.

저거 분명 고백이지?

두 번의 삶을 살고 있지만, 고백을 이런 식으로 하는 놈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

"...알았으니까 놔. 옷 늘어나."

내 말에 옷 뒷덜미를 놓고는 다시 내 손을 잡는 녀석.

"상식적으로 말이야. 잡으려면 팔을 잡던지, 지금처럼 손을 잡아야지. 여자 뒷덜미를 잡는 남자가 어디 있어?"

"옷 잡았는데."

"그러니까!"

"너 작아서 손잡으려면 수그려야 해. 수그리면 가오 떨어져서 안 돼."

떨어질 리가 있겠냐?!

"......것보다 아까 하던 말."

"아까 하던 말 뭐."

아직 좀 토라져 있는 탓에(뒷덜미를 잡은 것 때문에) 볼멘소리로 저러코롬 되물었더니, 녀석이 걸음을 멈추고 내 손을 당겨 녀석을 쳐다보게 만든다.

"나 혼자 한다는 말."

그래, 참.

그 말의 정확한 뜻을 몰라 궁금해하고 있었다, 나.

"고한겸한테 미안한 거, 고한겸한테 용서받는 거. 전부 내가 해. 나 혼자 해."

"....무슨 의미야?"

"넌 아무렇지도 말라는 말. 고한겸한테 미안하지 말라는 말. 나하고 키스하고, 나하고 손잡은 것 때문에 고한겸한테 죄책감 갖지 말라는 말."

"............"

"나 혼자 해. 미안한 거, 죄책감 드는 거, 전부."

"............"

"넌 그냥 이대로 있어. 고한겸과 헤어지고 싶지 않으면 헤어지지 않아도 좋아. 오늘 있었던 일 잊고 싶으면 잊어도 좋아. 술김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니가 알던 가지다가 잠깐 내 머리에 들어온 거라 착각해도 좋고, 뭣하면 꿈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그러니까 갑자기 이건.

또 어떤 의미...?....

.............

.........................

..........

집으로 돌아온 후,

녀석이 했던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멍하게 생각에 잠겼다.

날 좋아하게 되었다는 건 알겠다.

자신 때문에 내가 한겸이와 헤어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겠다.

내가 녀석과 한 키스 때문에 한겸이에게 미안해지지 않길 바라는 것도,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것도 너무 잘 알겠다.

하지만, 가지다는 그걸로 된 건가....?.....

날 좋아하지만 나와 사귀고 싶은 마음은 없는 건가?

한겸이와 헤어지고 자신에게 오라는 말은 차마 미안해서 할 수가 없는 건가?

..........어느 쪽.......?.........

다음날.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늦게 일어나버렸다.

아침밥 당번이던 민준수가 몇 번이나 나를 깨우러 왔던 건 기억이 나는데, 일어나니 점심때가 넘어있었다.

역시 졸업하자마자 딱히 하는 것 없이 빈둥빈둥거리다 보니 시간 개념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비몽사몽 상태에서 욕실로 가 샤워를 하고 속옷을 가져오는 걸 잊어버린 탓에 수건으로 몸을 돌돌 말아 화장실에서 나왔다.

조금 개운해진 느낌에 기분 좋게 방문을 열었는데 어째서인지 민준수가 내 침대 위에서 팔짱을 끼고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다.

"....뭐 하고 있어, 내 방에서?"

"너 어제 지다하고 둘이서 술 마셨어?"

"어."

"어째서?"

"어째서라니? 지다랑 둘이서 술 마시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었냐?"

"그게 아니라."

"안이든 밖이든 상관없는데 말이야. 보다시피 나 수건 한 장 딸랑 걸치고 있거든, 지금? 뭐 물론, 가지다 밖에 안 보이는 넌 내 알몸을 봐도 심드렁하겠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남자, 여자고. 남자인 네 앞에서 속옷을 입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데, 나."

"............."

"그러니까 일단 좀 나가줄래?"

녀석은 한참이나 쫙 찢어진 족제비 눈으로 날 야리더니 이내 토라진 여자애처럼 획하고 고개를 돌려 나가버린다.

하여간 귀엽다니까.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에 고개를 저으며 옷을 갈아입었다.

잠시 후,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을 연 민준수가 방으로 들어오며 말한다.

"다 입었지?"

성격도 급하다.

고작 둘이 술 마신 것 가지고 이렇게 뿔이 난 건가?

게이들의 질투는 원래 이렇게 무지막지한 것인가, 아님 유독 이놈만 이런가 궁금해졌다.

"왜. 뭐가 불만인 건데?"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화장대 너머로 침대 위에 털썩 앉는 녀석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디서 마셨어?"

팔짱을 낀 채,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저러코롬 묻는다.

그러니까 이건 흡사.

자신의 남자와 몰래 바람을 피운 여자를 찾아와 왜 그랬냐고 다그치는 느낌이랄까.

"바닷가."

"에-?! 저기 밑에 벤치?!"

"엉."

"말도 안 돼! 거긴 나랑 둘이서 마시기로 했던 곳이라고!"

어이 어이.

흥분하지 말라고, 게이 총각.

.....

..............

........

흥분해서 씩씩거리는 민준수를 달래길 몇 분.

이 녀석이 이렇게까지 화내는 이유는 녀석의 말을 다 듣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어제 내가 지다에게 전화를 하기 전, 지다는 민준수와 단둘이 집에 있었단다.

남자 둘이서 별로 할게 없어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는데, TV에서 나오던 맥주 광고에 술이나 한잔할까라는 말을 주고받았단다.

"그럼 탁 트인 바닷가에서 마실까 하길래 맥주를 사러 가려던 참이었다고!"

애석하게도 그 순간에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나.

그러니까 이 녀석이 이렇게 흥분하는 마음도 대충 이해는 간다.

뭔가, 위로의 말이 생각나지 않아 그저 멍하게 투덜투덜거리는 녀석을 보고 있는데 내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동글 거리는 얼굴이 등장한다.

"일어났어, 여자친구야?"

아침부터 씩씩하구나.

아니, 점심인가.

"......준수, 왜 내 여자친구랑 바람피워?"

"피우겠냐?!"

"근데 왜 내 여자친구 방에 있어? 둘이?"

뭔가 한겸이의 바람피워란 단어에 뜨끔했다.

이거 이거.

이래서 인간은 나쁜 짓을 하면 안 되는 건가 보다.

바람의 바짜만 들어도 뜨끔거려지고 있으니, 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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