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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다 원하다-33화 (33/51)

33화

나야말로 너 때문에 죽겠다.

날 내려다보는 이 얼굴이 숨 막히게 잘나서.

단박에라도 이 넓은 품에 안겨 스물일곱의 우리를 얘기하고 싶어서.

믿든, 믿지 못하든.

어쨌든 좋으니, 나와 네가 사랑했던 사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

"꿈에 나오는 것까지는 백번 양보해서 괜찮다 쳐도, 대체 왜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하는 건데? 사람 잠도 못 자게."

응. 그러니까 지금 네가 하는 말은 나한테 해봐야 나도 어쩌지 못한달까.

내가 일부러 네 꿈에 들어가 질질 짠 건 아니니까 말이지.

"우는 이유를 말하면 이렇게 신경 쓰이지는 않잖아. 뭐냐고, 신종 악몽이냐?"

악몽이고 뭐고, 난 회귀까지 했는데 넌 그런 꿈 하나가 대수냐.

왜 내가 네 꿈에 나오는지 솔직히 그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니까, 나도.

그것보다...내 꿈에도 나왔으면 좋겠다, 스물일곱의 가지다.

그런데...

멍하니 서서 녀석의 얼굴을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었나 보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것도 잠시.

녀석이 내 말 제대로 듣고 있느냐며 내 머리통에 자신의 손을 얻자, 갑자기 물밀듯이 밀려오는 그리운 감정에 나도 모르게 녀석에게 폭삭 안겨버렸다.

"뭐....!...."

당황한 녀석이 얼음이 되어 뭔가를 말하려다 저러코롬 입을 닫는다.

응, 그러니까 이 상황은 나도 당황스러운데.

아침부터 고한겸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래.

날 내려다보는 네 눈이 너무 멋나서 그래.

내 머리에 손을 얹은 네 손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손과 같아서 그래.

몰라,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일단은 기왕 이렇게 된거 좀 더 안고 있자.

만약에 이게 마지막이라도, 이렇게 안은 느낌을 앞으로도 평생 추억할 수 있으니.

한참 한참을 말없이 녀석에게 안겨있는 나와 어정쩡한 자세로 내게 허리를 잡혀 굳은 채 서있는 지다.

키 차이 때문에 녀석의 목을 끌어안을 수 없는 게 조금 아쉽지만, 녀석이 일부러 고개를 숙여줄리는 없으니까.

얼마나 지났을까.

미친 듯이 뛰어대는 심장이 내 것인지 지다의 것인지 헷갈려지고 있을 때쯤, 녀석이 약한 신음을 내며 말한다.

"숨...쉬기 힘든데."

"아...!...."

나도 모르게 너무 꽉 안고 있었던 탓에 힘들었던 모양이다.

서둘러 녀석의 허리에서 손을 떼고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날 빤히 쳐다보는 녀석의 시선에 귀까지 뜨거워진다.

뭐, 뭔가 변명을...

"아, 그러니까 지금 이건 말이야..."

"허락 없이 나 안았지."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저러코롬 묻는 녀석.

응, 그러니까 이건 말이야.

"그럼 나도 허락 안 구한다."

...하며 내 팔을 잡아당겨 내 입술에 그대로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는 녀석.

미친 듯이 뛰어대던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추락하고, 이내 녀석의 감촉에 온몸이 찌릿찌릿해져 와.

당황해서 꾹 닫힌 내 입술을 끈질기게 혀로 핥다가 아랫입술를 약하게 씹어대는 녀석 탓에 다리에 힘이 풀려버리고, 그런 나를 자신의 품에 힘주어 끌어당기던 지다의 혀가 내 입속으로 들어왔다.

뜨겁고 몰캉한 느낌에 남아있던 이성이 도망을 가버리고,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혀를 탐했다.

이런 키스를 한 적이 있던가.

이렇게 두근거리고, 이렇게 슬프고, 이렇게 애절한.

부족한 공기에 숨쉬기가 힘든데도 난 이 키스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건 지다도 마찬가지인 듯.

각도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내 입안을 헤집고 다녀 이쪽은 제대로 서있기가 힘들 정도니.

한참 한참, 턱이 아플 만큼 시간이 흐르고서야 녀석의 가슴팍을 약하게 밀며 내 쪽에서 떨어졌다.

녀석도 숨이 찼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를 내려다봤다.

금방까지의 키스로 녀석의 입 주위가 온통 번들번들하다.

그게 섹시해 미치겠는걸 보니 내 이성은 진짜로 도망을 간 모양.

한참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빤히 쳐다보는 우리들.

어떤 말을 어떻게 꺼내는 걸로 이 납득하기 힘든 상황을 녀석에게 이해시켜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그때.

"나....너 좋아하냐...?..."

뜬금없이 나를 보며 저러코롬 묻는 지다.

너 나 좋아하냐도 아니고, 나 너 좋아하냐고?

아니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내가 아냐?!

거기다 금방 키스까지 해놓고 그런 걸 물어보고 싶으냐, 넌.

"...난 너 좋아해. 밸런타인 데이 때 초콜릿 줬는데 까이기도 했고."

내 기억에 없는 일을 말하려니 조금 거부감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사실은 내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알았던 너도, 날 좋아했어."

물론 그때의 가지다도 노지나가 먼저였긴 하지만.

나름 마음을 굳게 먹고 믿기 힘든 말을 뱉어낸 건데, 이 녀석은 그것보다 내가 자길 좋아한다는 말에 더 필이 꽂히는 모양.

"아아, 초콜릿 일은 기억 전혀 안 나니까, 나. 그날은 기집애들이 하루 종일 불러재껴서 짜증 나기도 했고."

신경질적으로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중얼거리듯 말하는 걸 보니.

어어, 너 인기 많다고 자랑질 하는 거지? 지금.

그것보다, 나 지금 내 회귀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건데.

"가지다...있잖아."

"야, 한 번만 더 해보자."

내 말은 씹어재끼며 저러코롬 말하며 한 손으로 내 턱을 잡아당기는 녀석.

이 새끼 이거, 왜 갑자기 발정 나서 이래?!

잠...!..내 말부터 좀 들으라고, 새꺄!

"이것 좀...!... 나 미래에서 온 거라고!"

순간.

꽤나 긴 정적이 흐르고.

황당한 얼굴로 날 내려다보며 얼음처럼 굳어버린 녀석.

"..........하아....?...."

아주아주 긴 정적을 깨고 녀석이 뱉은 말은 꼴랑 저 단어 하나.

그러니까.

그 황당하다는 얼굴은 백번 이해하겠는데.

지금 무슨 재미없고 웃기지도 않은 농을 하고 있느냐는 그 표정도 이해하겠는데.

아주 옛날,

우리나라에 'i'll be back'의 열풍을 몰고 왔다는 터미네이터도 아니고, 미래에서 왔니 어쩌니 하는 것도 우습긴 한데.

"스물일곱에 죽었었어. 눈 떠보니 과거더라. 내가 알던 과거랑은 조금 달랐지만."

어쨌든 이미 뱉어낸 말.

난 끝까지 해야겠으니.

"못 믿겠지만...굳이 믿어달라고도 안 하겠지만, 거기에서 넌 날 사랑했어. 나대신 네가 총에 맞을 만큼."

뭐, 미쳤다고 정신병원에 가두거나 하진 않겠지.

나는 벙찐 채 멍하니 서있는 놈에게 스물일곱의 우리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엔 이 돌은 아이가 무슨 소릴 하냐는 표정이었지만(특히 노도수가 날 돈대신 데려왔다는 대목에서) 점점 놀라는 얼굴이 되는 걸 보니 내가 하는 이야기가 녀석의 꿈에서도 꽤 나온 모양.

"그래서 나 대신 네가 총에 맞았고, 나도 머리 쪽에 맞았어. 그리고 끝이었는데...눈을 떠보니 거짓말처럼 이곳인 거야."

자, 이제 네 차례야.

무슨 말이든 해보렴.

날 미쳤다고 해도 좋아.

분명 믿지 않을 거라는 거, 믿기 힘든 일이라는 거 잘 아니까.

내 말이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굳은 채 서있던 놈은 아주아주 한참만에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으로 가져다 문다.

손이 떨리고 있는 걸 보니 꽤나 당황한 모양.

라이터가 잘 켜지지 않는지 몇 번이나 틱틱 소리가 나게 만들더니 이내 길게 한숨을 쉬며 나를 본다.

"야."

"...응...."

".....너 혹시 꿈이 드라마 작가냐...?..."

진심 진지하게 물어보는 녀석 때문에 할 말을 잃었다.

뭐, 좋다 이거야.

내 말을 쉽게 믿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걸 아니까.

"내 말이 믿기 힘들다는 건 알고 있어."

"....혹시 오늘 만우절이라거나..."

"오늘 3월 7일인데."

".....아니면 몰래카메라?"

"미안하지만 아니야."

"......지나가 나보다 훨씬 누나였었다고?"

"유감이지만 내가 있던 곳에서는 그랬어. 할배...아니, 노도수 회장도 지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고, 태산 아저씨도...그러니까 강태산도 나이가 많았어."

"흐응.....그나저나 민준수는 그때도 내게 끈적거렸단 말이지."

중얼거리듯 말하는 가지다 때문에 지금의 민준수도 가지다에게 흑심이 있다는 걸 알게 돼버린 나.

과거는 바뀌었는데 놈의 취향은 바뀌질 않았군.

"....이... 말도 안되는 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믿....지 못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믿으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야. 그냥... 자꾸 네 꿈에 나타나는 나 때문에 힘들다고 하니까. 왜 나타나는지 제대로 된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 지금 나하고 관계있을지도 모르고...."

"노지나를 두고 내가 너랑 바람을 피웠다고?"

급자기 내 말을 끊으며 저러코롬 말하고 날 쳐다보는 녀석.

"바람....이라고 할까. 그것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해. 너하고 나는....."

"하물며, 영감의 여자였다던 너를....내가?"

비웃기라도 하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내 말을 끊어버리는 녀석의 눈이 꽤나 시리다.

물었다가 손에 쥐었던 담배를 다시 입으로 가져가 불을 붙이고는 후-하고 연기를 내 얼굴 쪽으로 내뿜는 녀석의 행동에 뭔가 울컥함이 올라온다.

이 자식.

진심으로 날 같잖아하고 있어.

멋대로 키스를 해 사람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더니, 또 멋대로 같잖다는 얼굴로 내 심장에 가시를 꽂는다.

급하게 피워댄 담배를 손가락으로 멋들어지게 튕겨낸 가지다가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날 보고 말을 이었다.

"헛소리 즐."

시리디 시린 저 한마디에 애써 뽑아낸 가시가 또다시 박혀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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