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풍로 민준수>
가지다에게 이다인의 이야기를 들은 노도수는 화를 참지 못하고 탁자 위에 있던 꽃병과 와인잔들을 손으로 밀어 떨어뜨린다. 와장창 소리에 놀란 경호원들이 빠르게 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나가라는 지다의 턱짓에 서둘러 다시 밖으로 나간다.
"그래서 지금 그 아이의 위치는"
"풍로일 거야."
"풍로라는 거냐, 아니라는 거냐. 확실히 대답해."
"....아직 확실한 위치를 알아내지 못했어. 이대영은 우리 애들이 잡아올 거야. 그 새끼를 족치면 알게 되겠지."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굼벵이 새끼들도 아니고 아직도 알아내지 못한 게 말이 되나! 그 아이가 잡혀간지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흥분하지 마, 영감. 천로 애들 여덟 명이 다쳤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운이가 이다인을 찾고 있어."
"....."
"영감만 속타는 거 아니야. 나도....미치겠다고."
중얼거리듯 말하는 가지다를 빤히 쳐다보던 노도수.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여는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노지나가 들어온다.
"너!"
노지나를 보자마자 흥분하는 가지다. 노지나는 그런 가지다를 한번 쳐다본 후 노도수에게 간다.
"아버지."
쫙. 노지나의 고개가 힘없이 돌아갔다. 딸의 뺨을 있는 때린 노도수가 시린 얼굴로 노지나에게 말한다.
"이게 다 무슨 짓이냐."
노지나는 노도수에게 맞은 뺨에 손을 가져다 대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노도수를 본다.
"무슨 짓이야!"
"...죄송해요."
"...뭐라...?..."
"....이대영이 민회장에게 이다인을 넘길 줄은 몰랐어요."
"그게 무...!.."
"이유가 뭐야."
노도수의 말을 끊으며 가지다가 묻는다. 노지나는 고개를 돌려 가지다와 눈을 맞춘다.
"이유가...뭐냐고."
"하."
기가 찬듯 웃으며 지금 내게 이유를 묻느냐고 말하는 노지나. 그런 그녀를 시린 눈으로 쳐다보는 가지다. 그리고 그 둘을 말없이 바라보는 노도수. 노도수는 자신의 딸과 아들 같은 놈 사이에 뭔가가 있다는 걸 직감하며 조용히 노지나를 불렀다.
"이대영을 시켜 그 아이를 납치한 이유가 뭐냐."
"....."
"이유를 말해봐라. 이유 없이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지 않느냐, 넌."
"그렇게 생각하셨다니, 그것참 감사하네요."
"지나야."
"납치하라고 시킨 건 아니었어요."
"......."
"그냥 좀먹으라고만 했지, 납치해서 풍로에 주라고 한 적은 없어요."
"뭐?!"
"너!!"
"그 멍청이가 멋대로 풍로에다 준거라고요!"
"도대체 왜!"
노도수가 화를 참지 못해 소리를 지르자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은 눈으로 가지다를 쳐다보며 말하는 지나.
"내 물건에 손댔으니까."
"....뭐라...?..."
미간을 찡그리며 묻는 노도수.
"내가 물건이냐."
시리디 시린 눈으로 노지나를 쳐다보며 묻는 가지다. 그런 가지다를 보며 노지나가 소리친다.
"뺏길 수 없어! 뺏기지 않을 거야! 넌 내 거야! 처음부터 내 거였어!"
"내가 물건이냐고!!!"
노지나와 같이 소리치는 가지다를 쳐다보며 노도수는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었다는 걸 직감한다. 그 일에 자신이 사랑하는 이다인이 껴있는 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다인은 누가 봐도 아름다운 아이였다. 한창 혈기 왕성한 가지다가 그 아이에게 마음을 빼앗길 거란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니다.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고서도 지다에게 다인을 맡긴 건 노도수 자신이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그가 가지다보다 훨씬 이다인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 믿음이 이다인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아니라, 남자 자체를 싫어하는 이다인의 성격을 믿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다리를 벌리는 여자를 이대영에게도 준게 뭐가 나쁘냐는 노지나의 말에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노지나!!"
"너한테도 다리 벌린 년이야! 이대영이 좀 먹는게 뭐가 나빠!!"
"씨발, 지금 뭐라고!"
"둘 다 그만두지 못해!"
노도수의 호통에 지다와 지나는 입을 다문다. 노도수는 이다인이 가지다에게 다리를 벌렸다는 노지나의 말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가지다의 멱살을 잡고 네놈이 내 여자에게 손을 댄 것이냐고 묻고 싶었다. 배신감과 절망감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흘러 손끝이 아렸다. 하지만 우선은 이다인을 찾는 게 먼저였다.
그 아이가 가지다와 관계를 가졌든 아니든 우선은 그 아이를 자신의 옆에 가져다 놓아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나 넌 가서 민무영과 접촉해. 날 만나야겠다고 하면 그러겠다고 해....그리고 그대로 전해. 그 아이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건드렸다간 내 손으로 저승길에 보내 주겠다고."
노도수의 말에 노지나가 몸을 돌려 병실을 나가려 한다.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가려던 가지다를 불러 세운 노도수가 시린 눈빛으로 그에게 말했다.
"넌 여기 있어."
"영감!"
"그 아이를 찾을 때까지 넌 이 병원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그 아이와 네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 아이를 찾고 난 후 물을 것이다. 지금은 묻지 않겠다. 난 네 놈을 일찍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러니까 그때까지라도 목숨 부지하고 싶으면 내 말 들어라."
".....영감...."
"아무말도....그 아이가 오면 듣겠다. 그 아이에게 듣겠다. 그 아이의 입으로 들을 것이다."
멍하니 앉아 중얼거리듯 말하는 노도수. 그런 노도수를 쳐다보는 가지다의 눈동자가 촉촉히 젖어들어있다. 가지다는 울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번 쳐다본 후 긴 한숨을 내쉰다. 그리곤 고개를 내려 노도수에게 말한다.
"이다인을....사랑해."
가지다의 말을 들은 노도수의 눈동자가 커진다.
"알아. 영감한테 이래선 안된다는 거....죽여도 좋아. 얌전히 죽어 줄게, 약속해. 대신 이다인을 찾고 난 후에...그 녀석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선 후에...그때 죽을게."
".....!....."
노도수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가지다를 쳐다보자, 가지다가 노도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며 말한다.
"키워줘서 감사했어. 그렇게 원하던 가족이 되지 못 해서....미안해."
....
.......
....
"원하는 게 뭐예요..."
여태까지 동글 거리던 귀염성 있는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시린 얼굴로 자신을 보는 민준수를 보며 다인이 물었다. 전화기를 든 손이 저절로 떨리는 이유는 앞에 서있는 이 남자가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원하는 거라니. 오해한 거예요, 누나."
씩 웃으며 말한 민준수가 다인에게 다가와 손을 뻗는다. 다인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눈을 질끈 감는다.
"우아- 너무하네. 나 사람 같은 거 안 잡아먹는다니까요? 너무 무서워하는 거 아니에요? 하하."
손을 뻗어 다인의 머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은 민준수는 검지로 그녀의 뺨을 톡톡 건드리며 말을 잇는다.
"노도수 회장이 그렇게 누나한테 목멘다면서요?"
민준수의 검지가 이다인의 목을 지나 그녀의 가슴으로 미끄러지듯 내려가자 다인이 놀라며 숨을 멈춘다. 민준수는 가슴 위에서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다가 콕콕 누르며 말을 잇는다.
"벗기는 게 감촉이 더 좋으려나."
"왜, 왜 이래요."
두려움에 몸을 떨며 다인이 말하자 검지로 그녀의 가슴을 눌러대던 민준수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맞은편에 앉는다. 다인과 눈이 마주치자 이전의 해맑은 어린아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연다.
"우리 아버지가 소문 안 퍼지게 하려고 그렇게 노력을 하더니, 역시 노력한 보람이 있네.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걸 보니."
"....."
"걱정 말아요, 누나. 나 누나 덮치거나 하진 않아."
"......."
"에에- 못 믿는 얼굴이네. 이것 참 곤란한데.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무덤까지 가져가고 싶어하던 비밀을 누나한테 말해줄수도 없고."
"........."
"아아- 어쩔 수 없네. 난 내 진실을 경멸하는 우리 아버지보다 지금 날 강간범 취급하는 누나의 눈빛이 더 참기 힘드니까."
라고 말한 민준수가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의 바지를 내린다. 놀란 다인이 고개를 돌리자 똑똑히 보라며 다인의 턱을 잡아 돌리는 준수.
"봐...죽어있죠?"
그리곤 갑자기 다인의 손을 잡아 자신의 팬티 안으로 넣는다.
"....뭐, 뭐 하는!!"
"봐요. 아무 반응 없잖아."
다인의 손안에 있는 물컹하고 부드러운 민준수의 주니어는 전혀 커지지 않았다. 다인은 이 미친놈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몰라 벙쪄있기만 했다.
뭐야, 왜 이래. 이 새끼 변탠가? 등등의 생각을 하며 민준수의 팬티 안에 들어가 있는 자신의 손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다인은 자신을 보며 씽긋 웃는 민준수의 말에 미친 듯이 두렵고 무서웠던 마음이 조금씩 사그라지는 걸 느낀다.
"나 여자한테는 안서요."
"....뭐..."
"게이라고, 나."
자신의 팬티 안에 들어있는 다인의 손을 가리키며 이 정도면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닌 거 알겠죠?라고 말하는 민준수. 이다인은 그런 민준수를 쳐다보다 서둘러 그의 팬티에서 손을 빼낸다. 민준수는 피식 웃으며 냉장고 문을 열고 뭔가를 찾으며 말했다.
"그래도....아무것도 안 하고 놀면 너무 심심하잖아?"
냉장고 안에서 하얗고 작은 유리병을 꺼낸 민준수는 이다인에게 약병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마셔요. 기분이 좋아질 거야."
유리병을 받지 않고 쳐다만 보는 다인의 손을 잡아 유리병을 쥐여준 민준수가 짧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억지로 먹이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서 웬만하면 그냥 마셔주면 좋겠는데요. 누나."
"......필로폰....?..."
다인이 중얼거리듯 묻자, 민준수가 한참을 아이처럼 크게 웃었다.
"하하, 걱정 말고 마셔요. 누나를 타락의 길로 이끌 생각은 없으니까. 물론 나도 그 정도로 바닥은 아니고....뭐, 대마초 정도는 피워봤지만, 미국에선 불법이 아니거든요."
씽긋 웃으며 빨리 마시라고 말하는 민준수. 다인은 그런 민준수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병안에 있는 투명 액체를 목구멍으로 흘려 넣었다. 민준수는 그녀가 유리병 안의 투명 액체를 모두 다 마시자, 피식 웃으며 의자에 앉아 담배 하나를 문다.
"...나도 줘."
민준수의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손을 내미는 다인. 민준수가 그녀에게 담배를 주며 말한다.
"기분이 어때? 아직은 아무렇지 않지?"
라이터로 자신이 문 담배에 불을 붙인 민준수가 다인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며 묻는다.
"이미 마셨으니까 내가 뭘 마신 건지 말해주지 그래?"
"미약이야."
".....미약....?..."
"중국에서 가져온 약이지. 성욕을 일으키는 약이야."
민준수의 말을 들은 다인이 준수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자 민준수가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해맑은 웃음을 짓는다. 당황스러워서인지 약기운 때문인지 저절로 손이 떨리고 몸이 더워지기 시작한 다인은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몸을 일으킨다.
"누나."
자신을 부르는 민준수를 쳐다본 다인은 악마같은 미소로 옷을 벗으라는 민준수의 말에 자신이 잘못 들은게 아닌가 생각한다.
"...뭐...?..."
"벗으라고."
"분명 안 건드리겠다고!"
"워워. 진정해요, 누나. 안 덮친다니까?"
"....근데 벗기는 이유가 뭐야."
어느덧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온 다인이 민준수를 보며 묻자 민준수가 씨익 웃으며 답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놀면 심심하다고 했잖아요?"
"...뭘 할 생각인데."
"난 아무것도 안 해. 그냥 보기만 하지."
"뭐?"
"내가 왜 미약을 먹으라고 한거 같아요?"
"....."
"벗고 만져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거든. 여자들이 하는 자위."
"...제정신이 아니야."
다인도 모르게 중얼거리듯 튀어나온 말에 민준수가 해맑게 웃는다.
"억지로 벗기고 싶진 않아요."
"......"
"약기운이 슬슬 올라오지 않나? 빨리 벗고 해봐요. 나 지루해지려고 하니까."
다인은 민준수를 빤히 쳐다보다 무표정한 얼굴로 옷을 하나둘 벗기 시작한다. 민준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담배 하나를 물어 불을 붙인다.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자위를 배워서 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요? 손 가는 데로 움직여봐요. 그러라고 미약을 먹인 거니까."
탁자에 턱을 괸 채 말하는 민준수를 쳐다보며 속으로 미친 변태 새끼라고 욕 한 다인은 옷을 벗으면서 닿는 자신의 손에 몸이 저절로 흠칫거리는 걸 느낀다.
"노도수가 만진다고 상상해요."
턱을 괸 채 눈을 반짝거리며 말하는 민준수. 이다인은 그런 민준수를 보며 게이가 여자 혼자 자위하는 걸 왜 보려는 건지 의문스러워진다. 어차피 게이들은 여자한텐 관심 없는 거 아닌가? 설마 카메라가 숨겨져 있거나 한 게 아닐까.
옷을 전부 벗고 왼손과 오른손으로 중요 부위를 가린 채 방 안을 두리번 거리는 이다인. 그런 그녀를 쳐다보며 민준수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보이고는 씽긋 웃으며 말한다.
"빨리 시작 안 하면 이 손으로 해버릴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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