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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다 원하다-14화 (14/51)

14화

<질투는 사람을 추하게 만든다>

"그래줘요....제발."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주방을 나가던 다인은 화장실에서 나오는 가지다와 눈이 마주친다. 지다는 눈물을 한가득 머금은 채 뺨이 붉어져 있는 다인을 보고 얼굴이 굳는다.

지다가 입을 열기도 전에 다인이 그의 시선을 피하고 2층으로 빠르게 올라간다. 지다는 그런 다인이 자신의 눈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고개를 돌려 주방에 서서 화를 참기 위해 주먹을 쥐고 있는 지나를 본다.

"....때렸어...?...."

주방으로 들어온 지다가 지나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노지나가 훗하고 웃자, 그녀의 눈에 매달려있던 눈물이 뺨위로 흘러내린다.

"할멈...."

"..............."

"때렸냐고."

"때렸으면?"

"....왜."

"왜일까."

".....지나야."

"...잤니..?..."

"............"

노지나가 가지다를 쳐다보며 되물었다.

"잤냐고."

지다는 말없이 노지나를 쳐다보다가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더 흘러내리자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응..."

가지다의 대답을 듣자마자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마구 쳐대며 절규하는 노지나.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니가 우리 아빠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니가 사람이야?! 너희가 사람이냐고!!"

자신의 가슴을 마구 쳐대며 소리치는 지나의 두 팔을 말없이 꼭 잡은 지다가 벗어나려고 힘을 주는 지나를 끌어당겨 안아버린다.

"놔, 이 나쁜 자식아!"

안간힘을 쓰며 가지다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노지나와 그런 노지나를 더 힘주어 안는 가지다. 둘은 그렇게 노지나의 버둥거림이 잠잠해질 때까지 안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노지나의 울음이 그쳐갈 때쯤. 지다가 그녀의 뒷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안해."

가지다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그녀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가지다는 노지나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으며 미안하다고 했다.

노지나는 그런 가지다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가지다의 품에 안기자 아까까지 심장을 쑤셔댔던 배신감이 눈 녹듯 사르르 녹아버렸다.

지나는 가지다를 힘주어 꼭 안은 채 울먹이며 말했다.

"미안하면 다시는 그러지 마....한 번쯤의 실수라면....덮어줄게."

여자로서의 자존심을 버렸다. 어차피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견딜 수 없는 건 노지나 자신이었다.

한 번쯤은 용서해줄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여태껏 살면서 가지다가 잠자리를 가진 여자들은 열 손가락이 넘는다.

자신이 모르는 것까지 치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남자란 원래 자신 앞에서 자빠지는 여자들에겐 약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아버지 여자인 것만 빼면 이다인 역시 그런 여자들 중 하나. 가지다는 언제나 늘 그렇듯 다른 여자들을 안고나면 자신에게 왔다. 자신이 가지다의 집이었다.

가지다는 그런 그녀의 말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손을 멈춘 후, 자신의 품에서 노지나를 떼어내고는 그녀를 내려다봤다.

"...아빠가 알게 되면 아무리 너라도 죽일 거야."

"......할멈."

"내가 덮어줄게. 없었던 일로 해줄게. 그러니까 넌."

"사랑해."

노지나의 말을 끊으며 그녀를 보고 말하는 가지다. 아마 이 장면을 당사자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본다면 분명 가지다가 노지나에게 하는 사랑고백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지다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노지나는 그 고백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지금 자신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의 의미도 잘 알고 있다.

"....나 사랑해...다인이."

"으흑-"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와버린 노지나는 자신도 모르게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지다는 그런 지나를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숙이며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미안해....너 힘들게 하는 사람이 나라서....미안하다. 다인일....사랑하게 돼버려서....미안해....너한테는 미안한 거 투성이야. 니가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널 불행하게 만드는게 내가 돼버려서....너무 미안해."

"............."

"그런데 지나야....다인이는 아무 잘못 없어. 내가 시작했어. 내 마음이 그 앨 원해."

지다의 말에 애써 참았던 울음들이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터져 나온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서럽게 우는 노지나는 가지다의 다음 말에 심장이 찢어질 것 같은 아픔을 느낀다.

"....그러니까 나한테 해....다인이는 건드리지 마."

..............

............

......................

다음날. 노지나가 말도 없이 사라졌다. 노지나의 경호원에게서 서울에 있다는 전화를 받기 전까진 가지다는 불안감과 죄책감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말없이 사라진 노지나 때문에 밥도 먹지 않고 김운에게 전화해 그녀의 위치를 알아보라고 말하고 생각에 잠겨있는 가지다를 보는 다인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한 남자지만 그에게 노지나는 떼려야 뗄 수없는 여자임이 분명했다.

그것이 또 다인을 슬프게 만들었다. 서로 사랑하지만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남자. 설사 된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여자에게 상처를 주고 행복할 수는 없다.

알고 있으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남자와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여자.......그들은 지금....딜레마에 빠졌다.

침대 위에 엎드린 채, 멍하니 눈만 꿈벅 거리던 다인은 뒤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열린 방문으로 지다가 서있다.

"뭐해?"

"........졸았어."

천천히 몸을 일으킨 다인의 팔을 잡아당겨 자신의 품으로 넣은 가지다가 그녀를 꼬옥 안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밥 먹자. 배고프다."

".....언니는....?....."

"...........서울 집에...."

"...........가봐야 하지 않아..........?......."

"......안 가."

"......안 가도 돼?"

".......어."

그리곤 조금 긴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건 다인이었다.

".........뺏은 사람은 난데....왜 내가 뺏긴 기분일까."

".......다인아."

"불륜 저지르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견디나 몰라....이렇게 심장이 터져버릴 것처럼 슬픈데."

".......다인아."

"......사랑하지 말 걸 그랬어."

".............."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해.....?........."

가지다가 하루 종일 머리가 터져라 생각했던 물음이 이다인의 입에서 나왔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이미 다인에게 빠져버릴 대로 빠져버린 지다가 이제 와서 다인과의 일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안 보면 안 된다.

이젠 안보고 살수 없을 만큼, 이 여자가 아니면 안 될 만큼 심장 전부가 그녀로 가득 차있다. 그렇다고 아버지 같은 노도수를 쉽게 배신할 수도, 소중하고 지켜주고 싶은 누나 같으면서도 여동생 같은 노지나를 쉽게 버릴 수도 없는 가지다였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갈림길에 서있는 가지다는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한 걸음만 떼면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걸고 싶은 여자를 얻게 되고, 한 걸음만 떼면 사랑했던 사람들이 상처받는다.

....우리는....어떻게 해야 할까.....

다인의 여린 어깨를 힘주어 끌어안은 가지다가 한참 후에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낸다.

"..........도망갈까......"

............

........................

..........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온 노지나는 일산 근교에서 유흥촌을 관리하는 이대영을 만난다. 이대영은 오래전에 노지나에게 크게 도움을 받은 일이 있어 노지나의 전화 한통에 곧바로 그녀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노사장님."

서른여덟이나 먹은 나이에도 여전히 이십 대 같은 미모라는 이대영의 칭찬이 마르지 않는다. 노지나는 비행기 그만 태우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며 이대영에게 긴히 부탁할게 하나 있다고 말했다.

"노사장님 부탁이라면 목숨을 내놓으라고 해도 들어드려야지요. 이 목숨이 노사장님 때문에 얻은 목숨 아닙니까."

"........이다인.....알 거예요."

"...노회장님의 숨겨둔 여자...아닙니까?"

"네. 지금 천로에 있어요. 이사장님이 그 아이를 좀 만나주셨으면 해요."

"제가요?"

"이번에 아빠가 그 아이와 결혼식을 하게 됐어요."

"예?!"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계집이 내 새엄마가 될 판이예요. 난 그게 아주 마음에 안 들어요. 내 마음 이해하죠?"

"......아, 그럼요, 그럼요. 당연히 이해하고말고요."

"그래서...이사장님이 저를 위해 자그마한 수고를 좀 해주셨으면 해서 뵙자고 했어요."

"수고라면...."

"이사장님, 예쁜 여자....좋아하죠?"

"......예......?........."

...............

............................

.....................

노지나의 사무실에서 나와 차를 탄 이대영은 기사에게 자신의 사무실로 가라고 말한 뒤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노지나의 아버지인 노도수 회장이 몇 년 동안이나 죽고 못 사는 여자애가 있다는 소문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런 그가 그 여자애와 결혼까지 하려고 한다는 말에 조금 쇼크를 받았다.

자신도 딸이 있지만 딸보다 어린 여자와 결혼을 하는 건 쉽게 마음먹을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회장 같은 위치의 사람이 굳이 결혼이 아니더라도 그녀를 평생 옆에 끼고 있을 수 있을 텐데 왜 법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노지나의 부탁 역시 이대영을 벙찌게 만들었다.

'지금 가지다 집에 있어요. 3일 동안은 혼자 있을 거예요. 지다가 일 때문에 여기 서울에 오게 됐어요. 개인 경호원이 하나 있긴 한데 그 경호원이야 내가 알아서 처리하면 되니까 이다인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일 거예요.'

'설마...나더러 노회장님의 여자를 강간하란 소립니까?'

'어머, 이사장님. 강간이라뇨....후훗- 말도 안돼요. 서로 즐기는 게 어째서 강간이 되나요.'

'걱정 말아요. 그 애, 우리 아빠 말고도 다른 남자들과 꽤 관계를 맺어왔으니까.'

노지나는 이대영이라면 천로에 속한 사람이 아니니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설사 노회장의 여자에게 손을 댄 게 알려진다고 해도 노지나 자신이 잘 처리해주겠다고 말했다.

'이사장님은 삼 일 동안 어리고 예쁜 애랑 뒹굴어서 좋고, 나는 이사장님과의 관계를 빌미로 예비 새엄마 기를 꺾을 수 있어서 좋고. 거기다 수고비 조로 원하는 액수도 챙겨 드릴 거예요. 물론 이사장님이 거절하셔도 다른 누군가는 날 위해 이 일을 해주게 될 거예요. 난 그저 이사장님이라면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실 거 같아서 제일 먼저 이사장님을 부른거고요...............어때요? 이만하면 괜찮은 딜 아닌가요?'

원하는 만큼의 돈까지 지불하겠다는 노지나의 말에 거절할 이유가 없는 이대영은 내일 아침 천로로 내려가기 위해 자신이 운영하는 유흥촌의 실장에게 전화를 했다.

기본적으로 어리고 예쁜 영계들을 보면 사족을 못쓰는 이대영이었기에 그가 이다인을 만나도 머뭇거리지 않을 거란 생각에 그를 택한 노지나였다. 리스트 건으로 가지다가 서울에 있는 3일 동안이 이대영이 이다인을 임신을 시킬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시기였다.

피임기구를 뺀 지금, 주기를 따져봐도 내일부터 삼일은 이다인이 임신하기에 가장 적합한 날이다. 거기다 이대영의 씨 뿌리는 솜씨는 과히 일품이 아닌가.

사십둘의 많지 않은 나이에 6명의 배다른 자식이 있다면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이대영에겐 피임을 하고 있으니 걱정 말고 즐기라고 말해뒀다.

나중에 이다인이 자신의 바람대로 임신을 하게 되면 이대영은 노도수에 의해 소리 소문도 없이 죽게 될 것이다. 이대영만 사라지고 나면 아무도 이 일이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는 걸 알수 없다.

노지나는 이대영의 아이를 가진 이다인을 자신의 아버지인 노도수는 용서할 수 있어도 가지다는 용서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한 번도 배신의 아픔을 당해보지 않은 가지다가 얼마나 많은 충격을 받을지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에게 집은 노지나 자신뿐이었다.

다른 여자의 품이 집이 되어서는 안된다. 집 나간 아이를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가지다의 아픔이야 자신이 치료해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노지나는 이대영이 일을 실수 없이 처리해주길 바라며 강태산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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