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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다 원하다-13화 (13/51)

13화

질투는 사람을 추하게 만든다. 다인이 그랬다. 원래 성격 자체가 차갑고 냉정하긴 했지만 상대방의 약점을 건드리며 상처 줄만큼 나쁜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지다의 아이를 갖겠다는 노지나의 말을 듣자마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부터 노지나의 남자였고, 알면서도 그 남자를 마음에 품은 건 자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원래 내 것을 빼앗긴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다인이었다. 주와 객이 바뀌어버린 느낌. 알면서도 가슴속 밑바닥부터 끓어오르는 질투에 점점 나쁜 여자가 되어간다.

"아빠가 널 너무 오냐오냐 키웠나 보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얼굴빛이 싹 바뀌는 노지나를 보며 그녀의 약점을 잡아 터트린 자신을 통쾌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말은 바로 해야죠. 키운 게 아니라 다 키운 걸 잡아다가 먹었죠. 아직도 먹고 있고."

".....이다인."

"네, 언니."

"기어오르는 걸 봐주는 것도 여기까지야. 난 우리 아빠가 아니야."

차가운 눈으로 다인을 보며 말하는 노지나를 무표정한 얼굴로 한참이나 뚫어져라 보던 다인이 입꼬리에 옅은 미소를 띠며 말한다.

"봐주지 말고 죽여요, 그냥."

"............"

"나 하나쯤 없애는 거....쉽잖아요, 언닌."

다인의 말에 지나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물컵을 잡는다.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이다인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한다.

"넌 내가 얼마나 무서운 여잔지 몰라."

"..........."

"내가 널 그냥 죽일 것 같아? 천만에."

"............."

"여자가 떨어질 수 있는 가장 밑바닥으로 널 떨어뜨릴 거야.....내 아빠에게만 몸을 주는 게 행복했었구나 생각 들게 만들 거야."

"..................."

"내 것에 욕심을 내면 어떤 결과를 얻게 되는지 똑똑히 겪게 해줄 거야."

"..............아하....그것참 등골 서늘해지는 이야기네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다인을 보며 피식 웃던 지나가 물컵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그러니까 이쯤에서 그만둬. 아직까진 나, 널 좋아하니까."

".......뭘....말인가요...."

".........가지다 흔드는 거."

.............

....................

............

2층 창가에 기대듯 앉아 담배를 피우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다인은 집 앞에 멈춘 차 안에서 가지다가 내리는 걸 봤다. 내리자마자 고개를 들어 자신의 방을 올려다보는 지다와 눈이 마주친 다인은 갑자기 복받치는 슬픔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세상은 참 아름다울 거라 생각했었다. 자신이 가지다를 좋아하는 만큼 가지다 역시 자신을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인다. 하지만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다.

가질 수 없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생길지는 머리 굴려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법적으로 결혼한 사람의 남자를 빼앗는 것만이 불륜은 아니다.

지금 자신과 가지다 역시 불륜이라는 생각에 이다인은 코끝이 찡해졌다.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은....어떤 의미로든 100% 행복할 수 없다. 그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없이 넘쳐나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알면서도 그 마음을 이어간다.

끊고 싶어도 끊지 못하는 마약 같은 그 마음에 자신들을 내던진다. 그렇게 남자가 있는 여자와 여자가 있는 남자는 끝이 보이는 사랑을 시작하며 모든 사랑에는 끝이 있다고 자신들을 위로한다. 남자의 여자와 여자의 남자가 얼마나 아플지 생각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행동이 그들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지 예측하지도 못한 채, 자신들의 아픔만 자신들의 슬픔만 생각한다.

남의 마음에 비수를 꽂은 것엔 전혀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자신들만 피해자인 양 그렇게 살아간다. 불륜이란..........그런 것이다.

다인은 가지다와 자신의 관계가 노지나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곰곰히 생각했다. 노지나는 오래전부터 가지다를 사랑했다.

가지다를 모르던 시절 이미 그를 이야기할때의 노지나의 표정으로 알수 있었다. 열살이나 어린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얼마나 힘들게 그 사랑을 지키려 노력하는지 역시 잘 알수 있었다.

몇년동안 본 노지나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그의 발목을 붙잡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 때문에 불편하지 않게 최대한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노지나는...가지다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수 있는 여자였다.

노도수를 싫어하긴 하지만 노지나를 싫어한 적은 없다. 적어도 자신이 가지다를 사랑하게 되기 전까진. 하지만 점점 질투심에 자신을 잡아먹힌 이다인은 가지다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고, 그를 아무렇지 않게 만지는 노지나가 미친 듯이 싫어졌다.

협박 같은 게 먹힐 리 없는 자신에게 죽이는 대신 이 남자 저 남자의 노리개로 만들겠다는 노지나를 보며 정말로 그러고 싶어 하는구나 생각했다. 자신의 남자를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자신의 아버지 여자에게 빼앗긴다면 자신 역시 그런 쓰레기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확실히......질투는 사람을 추하게 만든다.

...........

......................

........

"어떻게 됐어?"

재킷을 벗으며 소파에 앉는 지다의 맞은편에 앉으며 노지나가 물었다. 지다는 담배 하나를 꺼내 물며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는 말했다.

"다음 주부터 며칠 천로에 없을 거야. 강태산에게 집에 사람 몇 더 붙이라고 말해. 나 없는 동안엔 너도 몸 좀 사리고. 일이 잘 끝나도 폭탄은 터지게 될 테니까."

"어떤 폭탄이냐에 따라 다르지. 만약 풍로 회장이 전쟁이라도 선포하는 날엔...."

"섣불리 그러진 않을 거야. 해외 유학 중이던 외동아들이 이번에 귀국한 걸로 알고 있어. 자기 아들이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위인이야. 그런 아들이 다치는 걸 원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절대로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을 거야."

"그건 우리 쪽도 마찬가지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가지다를 보던 지나가 자신도 모르게 그를 따라 미소 짓는다. 거의 다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좀 씻어야겠다고 몸을 일으키는 가지다에게 노지나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한다.

"아, 내일 다인이와 병원에 다녀올 거야."

지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지다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묻는다.

"어디 아파?"

이다인이 어디 아픈 거냐고 묻고 있는 걸 잘 알고 있는 노지나는 한쪽 심장이 아파지는 걸 참으며 애써 피식 웃었다.

"물론 둘 다 안 아파. 저녁에 아빠한테서 연락이 왔어. 다인이가 하고 있는 피임 기구....제거하래."

"................"

"아이를 가질 생각이신가 봐. 그 나이에."

"................"

"그래서 말인데.........나도 가질 생각이야."

지나의 나지막한 말에 충격을 받은 듯 가만히 있던 지다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본다. 몸을 일으킨 노지나가 가지다에게로 가 그의 목을 안으며 그의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너의 아이."

............

.........................

...........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녘. 저절로 눈이 떠진 가지다는 자신의 옆에서 알몸을 자고 있는 노지나를 쳐다보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다인이 자신의 집에 있는 동안엔 다신 노지나를 안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그였지만 노지나는 자신의 본능에 스위치를 켜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짧은 한숨을 쉬고 침대를 빠져나온 가지다는 가운을 걸치고 담배와 라이터를 챙겨든 후 방을 나갔다. 그가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자 노지나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함에 흔들렸다.

테라스에 기대서서 담배를 피우며 바다를 쳐다보던 가지다는 등 뒤에서 나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자고 일어난듯한 얼굴로 다인이 부엌으로 가고 있었다.

피식- 부스스한 그녀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다인은 같은 나이인데도 키가 작은 편이라서 그런지 어린 소녀 같았다.

부엌에서 물을 가지고 나오던 다인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가지다를 보고 그에게로 왔다.

"왜 안 자...?...."

"......깼어. 너는?"

지다의 물음에 다인은 대답 대신 손에 들린 물컵을 약간 들어 보였다. 말없이 담배를 피우던 가지다가 자신의 옆에 서서 물을 마시는 다인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한다.

"......미안해."

".....뭐가.....?......."

"....그냥."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있는 공간에서 노지나와 관계를 가진 가지다가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것 역시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가지다에게 욕하고 화낼 자격은 자신에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다인은....가지다가 좋으니까 그저 좋아할 뿐, 그를 가지려는 욕심은 부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자신 역시 가지다의 여자가 될 수 없으니까. 자신 역시...그가 문밖에 있는 걸 알면서도 노도수와 관계를 가졌으니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었다고 해도 쾌감에 이성을 잃고 자신의 신음소리가 밖에 있는 가지다에게 들리든 말든 상관없었으니까.

"지다야."

"...응...."

"...사랑해."

"..........사랑해."

서로를 바라보며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는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을 약간 열린 문틈으로 보고 있던 노지나는 그들이 나누는 키스에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져내린다. 떨리는 손으로 방문을 닫은 지나는 쓰러지듯 침대에 걸터앉아 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움켜쥔다. 용서할 수 없는 배신감에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내 것이었다.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는 나만의 것이었다. 그런 내 것의 심장을 아버지가 사랑하는 여자가 가졌다. 용서할 수 없다. 나의 아버지와 나의 남자를 가진 여자를.

노지나는 처음으로 맛보게 된 이 절망스러운 아픈 감정에 금방이라도 입을 비집고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목구멍으로 애써 삼켰다. 그리곤 허탈한 듯 피식 웃으며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랑해...라고...."

자신에겐 한 번도 사랑한다던 말을 하지 않았던 가지다가 이다인의 사랑한다는 말에 단박에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그 절망적인 장면을 보고 조용히 방문을 닫고서 침대에 주저앉아 무력하게 울고만 있는 자신이 비참해졌다. 죽도록 비참하고, 죽도록 바보 같아졌다.

"....용서 안 해...."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닦으며 중얼거린 노지나는 가운을 걸치고 방문 앞으로 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떨리는 손을 애써 주먹을 쥔 채 소리 나게 방문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자신의 등장에 입술을 나누고 있던 가지다와 이다인이 놀라 서둘러 떨어진다. 노지나는 그들의 역겨운 입맞춤을 보지 못한 듯 금방 잠에서 깬 표정을 만들며 그들을 봤다.

"둘...거기서 뭐 해?"

"...깼어?"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보며 묻는 가지다에게 참을 수 없는 배신감이 들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목이 마르다며 주방으로 왔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물이 나오는 걸 참고 물컵에 물을 따라 마시면서 자신이 있는 주방으로 와 싱크대에 물컵을 내려놓고 돌아서는 이다인의 잠옷 단추가 열려져 있는 걸 본 노지나는 어쩌면 이들이 키스 외의 다른 짓도 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심장에서 불이 난다.

"이다인."

자신의 부름에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는 이다인이 새삼 미워졌다. 무표정한 얼굴로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 그녀의 뺨을 사정없이 갈기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자신은 지금...질투에 눈이 먼 여자였다.

"내 남자 흔들지 말랬지."

"........"

이다인은 가지다가 들어간 화장실 문을 잠시 쳐다본 후, 고개를 돌려 노지나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한다.

"....미안해요.....좀 빌렸어요."

쫙- 하는 소리와 함께 이다인의 얼굴이 돌아갔다. 노지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몸을 떨며 그녀를 향해 조용히 소리쳤다.

"죽여버릴 거야, 너."

지나의 말에 다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그녀에게 말한다.

"그래줘요....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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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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