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서로를 원하다>
천로로 돌아오는 차 안. 다인은 잠이 든 척 의자에 기대 노도수가 했던 말을 생각한다.
제발 죽여달라는 자신의 말에 무섭게 자신을 가졌던 노도수는 행위가 끝난 후, 상처받은듯한 얼굴로 다인의 얼굴을 쳐다봤다.
'내가 널 죽여 줄 것 같으냐....네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 내게 너는...목숨이다.'
'지금도 충분히 죽을 만큼 아프다. 나를 더 아프게 만들지 마라.'
노도수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다인에게 말했다.
'....너의 전부를 원한다. 너의 마음까지....죽어도 안되겠나....'
노도수가 자신을 미친 듯이 좋아하고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자살시도를 마지막으로 했던 날, 다인이 깨어나지 않을까 봐 식음 전패하고 그녀의 옆에 붙어 있던 노도수였다.
다인이 눈을 뜨자마자 세상을 다 가진듯이 기뻐하며 울었었다. 7년 동안 한 번도 자신 말고는 다른 여자를 만난 적도, 관계를 가진 적도 없는 노도수가 자신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게 무서우면서 소름 끼치는 다인이었다.
죽여달라는 자신의 말에 세상이 무너진듯한 얼굴을 하며 괴로워하는 노도수를 보며 그 집착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생각에 또다시 소름이 돋았다.
잠이 든 다인을 한없이 바라만 보고 있는 가지다를 백미러로 보던 김운은 휴게소에 다다르자 한쪽 구석에 차를 주차한다. 시동을 끄고 여전히 다인만 한없이 바라보고 있는 지다를 쳐다보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른다.
"휴게소야. 뭐 먹을 것 좀 사다 줄까?"
".......아니."
"......다인이 좀 깨워야 하지 않아? 화장실이라도 다녀와야...."
"괜찮아. 좀 자게 둬."
여전히 눈은 다인을 향한 채, 중얼거리듯 말하는 지다. 김운은 그런 지다를 쳐다보며 짧은 한숨을 쉰다.
"넌. 너도 뭣 좀 먹어야지, 아침도 안 먹었잖아."
"...나중에."
지다의 말에 운전석 문을 열고 나가려던 김운이 다시 차 문을 닫고 앉으며 가지다를 본다.
"지다야."
"............."
"...두 시간 정도면 되겠냐...?...."
김운의 말에 다인을 보고 있던 지다가 고개를 돌려 김운을 쳐다본다. 김운은 그런 지다를 보며 피식 웃고는 말을 잇는다.
"그 정도만 자리 비워주면 되겠냐고."
".........고맙다."
고개를 끄덕이며 김운에게 말하는 가지다. 김운은 운적석과 조수석 앞의 블라인드를 내린 후, 근처에 있겠다고 말하고 나간다. 지다는 김운이 나가자 다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잡아 고개가 자신 쪽으로 오게 만든다. 다인이 천천히 눈을 뜬다. 그런 다인을 보며 지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깼어...?...."
"....안 잤어..."
다인의 이마에 입술을 내려놓은 지다가 그녀의 머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으며 자신의 품으로 안는다. 다인은 코끝이 찡해지는 걸 느끼며 눈을 감는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지금, 아무 말없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아주는 지다의 손길에 위로를 받는다. 다인은 지다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그의 체취를 맡는다.
기분 좋고 편안한 느낌에 그의 허리를 힘주어 끌어안는다. 이 남자가 좋다.
이 남자를 원한다. 이 남자가 아니면 안 된다. 하지만 그것 역시 안된다.
아프고 안타까운 생각들이 몽글몽글 머릿속에서 집을 지었다. 이대로 둘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은 충동이 가슴 깊이 올라왔다.
다인의 이마에 머물러 있던 지다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져 그녀의 입술로 향한다. 둘의 뜨거운 입술이 맞붙었다. 혀와 혀가 얽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조금은 부드럽게 시작되었던 그들의 키스가 점점 거칠어졌다. 지다는 본능적으로 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다인의 가슴을 애무하기 시작한다.
가지다는 노도수에게 밤새 괴롭혀진 다인을 그저 따듯하게 안아줄 생각이었다. 아파할 거란 걸 알고 있었기에 손을 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에 의해 상의가 벗겨진 그녀의 젖가슴이 그의 입안에 들어와 있다.
부드러운 혀로 두 젖가슴을 번갈아가며 애무하자, 다인이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야릿한 신음을 흘리고 있다. 그녀의 목에 새겨진 키스마크에 입술을 대고 강하게 빨아드리자 그녀의 몸이 순간 움찔거린다.
키스 한 번으로 스위치가 켜졌다. 둘, 모두에게 말이다.
"...흣...!..."
자신의 유두를 물고 있는 지다의 입술에 힘이 들어가자 다인의 상체가 요동을 친다. 지다는 다른 쪽 젖가슴을 손으로 쥐고 천천히 위로 쓸어 올렸다.
손바닥에 쓸리며 치솟는 다인의 유두가 놀랄 정도로 부풀어 올라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지다는 그녀의 허리를 조금 들어 올려 바지를 벗긴 다음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게 만들었다.
백허그 자세로 두 손을 뻗어 자신의 가슴을 만지고 있는 지다 때문에 다인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지다가 다인의 허리를 잡아 자신 쪽으로 좀 더 끌어당기자 엉덩이 사이에 느껴지는 지다의 페니스에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인다.
아침까지 노도수에게 몸을 내어준 탓에 손만 닿아도 아래가 욱신거린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자신을 배려해 터질듯이 부풀어 오른 페니스를 넣지 않고 참는 지다보다 자신이 더 참기가 힘든 느낌이다.
"...넣어줘..."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지다의 목을 끌어안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녀의 말에 끙-하는 신음을 흘린 지다가 참지 못하고 자신의 페니스를 잡아 그녀의 동굴 입구에 맞춘다.
아플까 봐 참고 있던 그에게 다인의 속삭임이 불을 붙인 격이었다. 긴 애무 탓이었는지 지다의 페니스가 아주 쉽게 그녀의 안으로 진입을 했다.
그가 다인의 허리를 잡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자 다인 역시 허리를 움직인다. 점점 빨라지는 움직임에 다인의 신음소리도 커진다.
둘에게 절정이 가까워 왔을 때, 다인 스스로가 몸을 돌려 지다의 목을 끌어안은 채 엉덩이를 움직였다. 움직임이 빨라지고 서로의 입술을 찾으면서 그들은 절정을 맞았다.
행위가 끝난 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만지며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사정이 끝난 뒤에도 지다는 다인에게서 자신의 주니어를 빼지 않았고 다인 역시 놔주지 않았다.
다인의 얼굴을 만지며 그녀의 눈, 코, 입에 버드 키스를 날리던 지다가 몸을 움직이자 다인이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말한다.
"빼지 마...빼기 싫어."
"....아프지 않아...?...."
"응...빼지 마...내 안에 그대로 있어."
지다는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있는 다인을 안아 부드럽게 등을 쓸어준다.
"조금 만지는 걸로도 아파하던데....영감이 심하게 했어...?...."
지다의 말에 한참이나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다인.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달랐어..."
한참 후, 어렵게 입을 연 다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전에는....아파도 참을 수 있었어....만져도...참을 수 있었어. 그런데...온몸에 소름이 돋아. 물고 빨고 핥고....전엔 하지 않았던 걸 해."
".............."
"....너 때문에 길들여져버린 내 몸이....그의 혀에 반응을 해."
".................."
다인이 지다의 목을 조금 더 세게 끌어안으며 말을 잇는다.
"그게 죽을 만큼 비참해...내 몸이....내가 그 정도로 바닥인 걸 알아버려."
흐느끼며 우는 다인을 말없이 꼭 안아주며 지다가 말한다.
"당연한 거야, 바보야. 누구든 스위치를 누르면 켜지게 되어있어. 네가 바닥이라서가 아니야."
"아...."
다인이 갑자기 몸을 움찔하며 약한 신음을 흘렸다.
"...미안......스위치 켜졌다."
지다의 말에 다인이 훗-하고 낮게 웃는다.
"움직일게."
이야기 도중 다인의 안에서 커져버린 자신의 페니스에 다인을 눕게 만든 지다가 그녀의 입술을 찾으며 그녀의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쯔걱 쯔걱 쯔걱.
둘의 허리가 박자를 맞춰 쉴 새 없이 움직인다.
.............
......................
........
약 세 시간 동안 담배 한 갑을 다 피운 김운이 간단히 먹을 음식들과 음료수를 사들고 차 쪽으로 갔다. 자신이 온 걸 확인 시키기 위해 운전석에 서서 차 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차 안에서 타라는 지다의 목소리가 들려 차 문을 열었다.
운전석에 앉아 사들고 온 봉지를 뒤에 있는 지다에게 내밀었다. 별로 먹고 싶지 않다는 다인에게 캔 커피 하나를 들려주고 자신 역시 커피를 따 마신다. 김운은 그런 둘을 백미러로 보다 짧은 한숨을 쉬고 시동을 걸었다.
"지나 누나가 도착하는 데로 호텔로 오래."
김운의 말에 지다는 대답 없이 창밖을 쳐다보며 커피를 마신다. 김운은 짧은 한숨을 쉬며 말을 잇는다.
"김의원이 그냥 쉬기만 하려고 천로까지 온건 아닌 것 같대. 너와 꼭 만나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더라."
".............."
"뭐 짚이는 거 있어?"
김운의 물음에 가지다는 한참을 말없이 창밖만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김운을 본다.
"...태원건설 리스트."
나지막한 가지다의 말에 김운이 놀라 지다를 본다. 지다는 턱짓으로 앞을 보라고 했고, 이내 김운이 고개를 저으며 앞을 본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태원건설 리스트는 풍로에 가있어. 설마....빼내 올 생각은 아니지?"
"...지역 투표가 얼마 남지 않은 거지. 투표가 진행되기 전에 리스트를 손에 넣지 못하면 2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물 건너 가는 거야. 김의원 입장에선 똥줄이 탈만도 하지."
"그렇다고 풍로 놈들을 건드리겠다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나 있어?"
"이미 녀석들이 먼저 건드렸어."
"무슨...!...."
"강태산이 아니었다면 이다인은 내 손에 들어오기 전에 고속도로에서 죽었어."
".............."
"아니, 죽이진 않았겠지. 어마어마한 몸값을 지닌 여자니까 말이야."
다인은 가지다의 말에 서울에서 천로로 내려올 때, 자신들의 차를 뒤쫓던 놈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총을 가지고 있었지.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아무렇지 않게 총을 쐈어. 아마 그들은 날 산 채로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았겠지. 날 죽일 수 있었는데도 내게 총을 쏘진 않았어. 어쨌든 태산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그들에게 잡혀갔을 거야.
멍하니 생각에 잠긴 다인을 쳐다보던 지다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을 이었다.
"시작은 그쪽이 먼저야. 이쪽에선 그 전쟁을 받아들이는 거고."
"하지만...."
"걱정 마. 애들 피 뿌려서 전쟁을 하겠다는 건 아니니까."
"................."
"리스트건은...내가 알아서 처리해."
창밖을 바라보며 말하는 지다를 백미러로 한참 쳐다보던 김운은 긴 한숨을 쉬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는다.
조직처럼 체계적이고 획일화된 대한 그룹에서 가지다는 노도수 회장 다음으로 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오더 하나에 몇천 명의 사람들이 움직였고, 몇백 건의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목숨을 3년 전 페라리사건때 잃을뻔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노도수 회장은 김운에게 몇 번이고 가지다의 안전을 당부했다. 김운 역시 노도수 회장이 없어지면 차기 회장은 가지다뿐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노지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김운은 문득 떠오른 3년 전 페라리 사건을 머릿속으로 기억해냈다. 3년 전, 그날은 가지다가 천로에 부임을 하고 처음으로 긴 휴가를 얻게 된 날이었다.
친구인 김운과 노지나와 함께 노회장의 별장에 가기로 한 지다는 갑자기 터진 일을 처리하기 위해 김운과 노지나를 먼저 보내고 노지나의 페라리 열쇠를 받았다. 그때 한창 풍로의 조직인 제일 그룹 놈들과 영역 싸움을 하고 있던 중이라 김운은 가지다에게 혼자 운전하지 말고 애들을 달고 오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지다는 김운의 말을 듣지 않고 일을 끝내자마자 혼자 페라리를 타고 별장으로 향했고 사건이 일어난 건 그때였다.
한적한 국도를 지나고 있는 가지다에게 풍로 놈들이 따라붙은 것이었다. 노지나의 페라리가 대한민국에는 몇 대밖에 없는 극소수 한정판 모델이었기에 풍로 놈들은 당연히 노지나인줄 알았다. 하지만 운전자는 가지다였고 풍로 놈들은 당황했지만 수적으로 우세했기에 가지다의 차를 사방에서 막아 세웠다.
그때부터 여섯 대의 차에 타고 있던 풍로 놈들 23명과 가지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마 풍로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햇병아리가 지다에게 총을 쏘지 않았다면 23:1은 가지다의 승리로 끝이 났을 것이다.
천로와 풍로는 영역싸움을 해도 총은 쓰지 않겠다고 합의를 한 상태였다. 하지만 룰을 모르는 풍로의 햇병아리가 지다에게 총을 쐈고, 합의는 깨졌다. 자신의 총에 쓰러진 가지다를 보고 자신이 살인을 했다며 절규한 햇병아리 덕분에 풍로 놈들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고, 운 좋게도 총알이 귀에 스친 가지다는 천로 사람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진다.
그때 생긴 23:1의 전설의 가지다는 총을 맞아도 죽지 않은 사나이라는 소문으로 유명해졌고, 그를 보기 위해 천로에 지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한참 생각에 잠겼던 김운이 백미러로 가지다를 쳐다봤다. 창밖을 쳐다보고 있는 다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녀의 머리를 자꾸만 잡아당기는 지다는 참다 참다 폭발한 다인이 자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치자 어린아이같이 해맑게 웃는다.
저렇게도 웃네.
김운은 지다의 처음 보는 환한 웃음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왜 이래? 뭐 잘못 먹었어? 금방 마셨던 커피에 뭔 약이라도 들었냐?"
미간을 찌푸리며 다인이 말했다. 안 그래도 차가 흔들릴 때마다 온몸이 부서질것 같아 힘든데 쉬지도 않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지다 때문에 약간 짜증이 난 그녀다. 그런 그녀를 쳐다보던 지다가 엄지를 뻗어 그녀의 미간을 약하게 눌러주며 말한다.
"창밖에 뭐라도 있냐? 왜 자꾸 밖만 쳐다보냐."
"....그럼 어딜 봐."
"나 봐."
"................."
"내 얼굴 봐. 잘생겼으니까."
가지다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던 다인이 이내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다.
"......웃겨."
"나도 예쁜 너만 볼테니까. 밖에 그만 보고 나 좀 봐."
김운은 참기 힘든 오글거림에 헛기침을 두어번 한다. 가지다는 그런 김운을 보며 말한다.
"운아, 차 세우고 한 시간만 자리 좀 비워주면 안 되냐?...아니, 두 시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