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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다 원하다-7화 (7/51)

7화

다음날.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 느낌에 잠을 이루지 못한 다인은 새벽에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탓에 감기가 걸렸다. 아침 식사시간에 도우미 아주머니가 해주는 죽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지나에게 먼저 일어나겠다고 말한 후 2층으로 올라왔다.

따라오는 강태산에게 하루 종일 방에만 있을 거니까 걱정 말고 할 일 하시라고 말하고 방문을 닫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아무 생각 없이 멀뚱 멀뚱 누워 있다가 아침에 자신과 눈을 맞추며 아무렇지 않게 잘 잤냐고 묻는 지다가 생각나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어....

또다시 찢어질 듯 아파오는 심장을 움켜쥐고 몸을 웅크렸다. 눈에서 또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직도 어제의 그 잔인한 소리들이 귓가에 남아있다. 노지나의 달뜬 신음과 간간히 내는 가지다의 색스러운 신음소리. 둘의 살 마찰 소리와 시간이 지날수록 빨라지는 쯔걱거리는 소리. 자신과 섹스를 할 때, 절정쯤에 냈던 그르렁거리는듯한 신음을 노지나와 섹스를 하면서도 냈다.

미친 듯이 화가 나고 슬프고 서운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질 자격이 자신에겐 없다. 처음부터 자신의 남자가 아니었다.

이게 벌인가...

심장 안에 칼이 있어 숨 쉴 때마다 심장을 그어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다. 사랑이라는 걸 하게 될 줄도 몰랐다.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그를 유혹하지 않았을거다.

노도수를 상처 주고 싶은 마음에 그의 아들 같은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노도수가 다칠 줄 알았는데 자신이 다쳤다.

더 상처받기 전에 여기서 그만둬야 한다. 그만 둘 수 있다.

고작 삼일이다. 삼 일 동안 꿈을 꿨다 치면 된다. 행복한 꿈에서 행복했었으니까 그걸로 됐다.

더 이상 보상받지 못할 마음에 아프지 말자. 그래, 이제 그만 꿈에서 깨자. 천천히 눈을 감는 다인의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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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나와 함께 호텔에 온 지다는 김운이 주는 서류를 보며 노지나와 상의를 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도 감기로 앓아누운 다인이 계속 신경 쓰이는 지다는 김운이 주는 새로운 서류를 받아 노지나에게 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운이랑 둘이 좀 하고 있어."

"어디 가는데?"

지나의 물음에 재킷을 걸치며 그녀를 쳐다보는 지다.

"네가 내 비서냐? 뭘 일일이 물어."

그의 말에 지나가 눈을 흘기며 빨리 오라고 말한 뒤 김운과 서류의 내용 이야기를 나눈다.

빠른 걸음으로 호텔 밖을 빠져나온 지다는 호텔 옆에 붙어있는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 집으로 갔다. 거실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강태산이 가지다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눈으로 몸을 일으켰다.

지다는 태산에게 자신이 있을 테니까 밥이라도 먹고 오라며 2층으로 올라가 다인의 방으로 갔다. 침대 옆에 조심히 앉은 지다는 자신이 온 줄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다인을 멍하니 쳐다보다 그녀의 눈가에 아직 맺혀있는 눈물방울을 보고 심장 한쪽이 묵직해진다.

엄지로 조심스럽게 그녀의 눈물을 닦아준 지다가 그녀의 이마에 손바닥을 얹는다. 생각보다 열이 심한 것 같아 들고 왔던 약을 놓고 물을 가지러 1층으로 내려갔다.

물을 들고 올라온 지다가 약을 잡아 그녀의 입에 넣어주려다 그 약을 자신의 입에 넣고 물을 마신 후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자고 있던 다인이 눈을 뜨자 지다가 약과 물을 그녀의 입안으로 흘려 넣어준다.

다인의 목젖이 꿀꺽하고 움직였다. 입술을 떼고 그녀를 빤히 쳐다보는 지다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지다를 말없이 올려다보는 다인. 둘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아무 말없이 서로의 눈을 응시한다.

"...아파...?"

먼저 침묵을 깬건 지다였다. 다인의 이마를 정성스럽게 쓰다듬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파...."

지다는 다인의 작고 힘없는 말에 미안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애써 삼켰다.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이다인이 있는 이 집에서 노지나와 잔 거? 내가 이 여자에게 뭔데. 이 여자가 나한테 뭔데. 이다인은 안돼, 가지다. 이 여자는 아니야. 네 것이 될 수 없어.

억지로 달래보고, 다그쳐보고, 협박도 해본다. 하지만 자신의 심장은 꿈쩍 않고 이 여자를 보고 두근거린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몇 분 사이에 몇 번 이고 다짐을 한다.

이 여자는 안된다고. 하지만 그 다짐들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에 눈 녹듯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 갖고 싶다.

이 여자를 온전히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싶다. 오로지 그 열망 하나만이 그를 잠식했다.

지다는 자신을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꿈벅 거리는 다인에게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뜨거운 입술이 지다의 입술에 닿는다.

아파서인지 닿은 입술이 거칠다. 지다는 혀를 내밀어 말라버린 다인의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훑는다.

천천히 눈을 감는 다인이 지다의 혀를 받아들이려 입술을 벌렸다. 그렇게 시작된 키스는 점점 깊어지고, 호흡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새로운 각도로 질리게도 맛보는 혀와 입술에 다인은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낀다.

그저 미치도록 사랑스러워 키스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점점 깊어지는 키스에 딸깍 스위치가 켜졌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녀의 옷을 벗겨 위에 올라타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감기로 인한 열과 지다의 애무에 의한 열이 지다가 입으로 먹여줬던 감기약의 기운과 한데 섞여 몽롱해져 있는 다인의 상태를 더욱 몽롱하게 만들었다. 지다가 자신의 가슴을 빨고 핥으며 손가락을 아래에 넣을 때도 지금 이게 꿈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다인의 이마와 코에 짧게 입을 맞춘 지다가 다인의 두 허벅지를 벌려 그녀의 안으로 들어가고서야 갑작스러운 통증에 숨을 삼키며 현실인 걸 알게 된 다인이었다. 그런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만지며 그녀를 내려다보는 지다.

"사랑해."

다인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지다가 속삭였다. 한치의 거짓말도 없는 진심이었다.

사실 한번 입 밖으로 꺼내고 나면 브레이크를 걸 수 없으리란 걸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참으려고 했다. 안된다고 몇십 번 몇백 번 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다인의 안에 들어가 있는 지금 앞으로 어떻게 될지라는 생각 따윈 들지 않는다.

갓 사랑에 눈을 뜬 어린애처럼 그저 이 여자를 놓고 싶지 않고, 갖고 싶다는 열망만이 존재한다.

지다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다인 역시 정신을 차릴 수 없긴 매한가지. 잘못 들었나 하고 자신의 귀를 의심하기도 하고, 되물으면 물거품이 될까 봐 조심스러워 묻지도 못한 채, 한참을 지다가 흔드는 데로 몸이 흔들리던 다인은 짜릿한 쾌감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야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연다.

"...뭐...?...."

"....사랑해."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던 지다가 다시 한번 그르렁거리듯 목소리를 내었다. 다인은 진짜냐고 묻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그의 빨라지는 펌프질에 쾌감을 느끼며 야한 신음만 흘려댈 뿐이다. 지다에 의해 몸이 흔들려지며 그의 목을 끌어안은 다인은 이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대로 죽어버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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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호텔로 돌아오지 않는 지다를 기다리다 집으로 온 지나는 소파에 앉아 김운, 강태산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는 지다를 보고 황당한 얼굴이 된다.

"집에 있었어?"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 지다가 자신의 옆에 앉는 지나에게 왔냐고 묻자, 그녀가 그의 입에 물린 담배를 빼 자신의 입술에 물며 김운을 부른다.

"지다 집에 있다고 왜 말 안 했어?"

"운이가 니 비서냐? 그런 거까지 보고하게?"

다시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지나의 머리를 약하게 툭 건드리며 지다가 말했다. 그런 지다의 팔에 팔짱을 끼며 눈을 흘기는 지나.

"누가 비서래? 운이는....내 왼팔이지."

김운을 쳐다보고 씽긋 웃으며 말하는 지나. 지나와 눈이 마주치자 귀까지 빨개진 김운이 고개를 숙인다. 그 순진함이 귀여운 지나였다.

"왼팔 같은 소리 한다. 야, 더워. 좀 떨어져."

"근데 태산이는 그렇다 치고, 운이 넌 여기 왜 있어? 호텔엔 누가 붙어있어?"

"아...저녁 같이 먹자고 해서요. 성렬형님 계세요."

"이야- 팔자들 좋네, 우리 아빤 병원에 있는데 밑에 놈들은 술이나 마시고."

노지나의 말에 강태산과 김운이 곤란한 표정을 짓자, 지다가 자신의 팔에 매달려있는 지나를 떼어내며 말한다.

"말 좀 가려서 하라고 몇 번을 말해? 넌 농담 삼아 하는 말이지만 듣는 얘들은 진심으로 받아들인다고."

"진짜? 농담이야, 농담. 너희들은 나랑 같이 한 세월이 얼만데 아직도 농담 진담 구분을 못하냐? 지다는 잘만 구분하는데."

"아 좀, 떨어지라니까. 더워."

껌딱지처럼 자신에게 붙어있는 지나에게 떨어지라고 말하자 지나가 하나도 안 더운데 왜 난리냐며 투덜거린다. 주방에서 나온 도우미 아주머니가 식사가 다 되었다는 말을 하자 거실에 있던 사람들 모두 몸을 일으킨다.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려는데 김운이 태산에게 묻는다.

"다인이는요?"

"몸이 안 좋으셔서 쉬고 계십니다."

"어디가 아픈데요?"

"감기."

"감깁니다."

지다와 강태산이 동시에 답한다. 김운은 아- 하며 약은 먹었나라고 중얼거린다. 그런 김운에게 신경 끄고 밥이나 먹으라며 심드렁하게 말하는 지다. 김운은 피식 웃으며 도우미 아줌마에게 잘 먹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숟가락을 들다가 아줌마가 따로 차리고 있는 죽을 보고 아줌마를 부른다.

"다인이 거예요?"

"네. 아가씨가 식사를 못 하신다고 해서 죽을 좀 만들었어요."

"주세요, 제가..."

숟가락을 놓고 몸을 일으키는 김운에게 강태산이 자신이 주겠다고 말하고 몸을 일으켰다. 도우미 아줌마가 그냥 밥들 먹으라며 상태도 볼 겸 자신이 올려다 준다고 말한다.

"...아직 자고 있어요. 나중에 일어나면 내가 알아서 먹일 테니까 놔두고 그만 가보세요. 애가 좀 아프니까 내일 아침에도 좀 부탁드릴게요."

지다의 말에 노지나가 그를 쳐다본다. 강태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고, 도우미 아줌마는 그럼 부탁한다며 앞치마를 벗고 주방을 나갔다. 말이 없는 식사 시간이 계속되고, 한참 뭔가를 생각하며 밥을 먹던 노지나가 가지다를 쳐다보며 말한다.

"나 없는 사이에 다인이랑 친해졌어?"

"무슨 말이야?"

"아니, 안 하던 짓 하니까. 나 아플 땐 전혀 신경도 안 쓰더니..."

"너 내 앞에서 아픈 적 한 번도 없거든?"

그 말에 픽하고 웃는 지나. 하긴 그래라며 물을 마신다.

"그래도 좀 묘하다? 천하의 가지다가 여자 아프다고 손수 죽을 가져다주겠다니. 너 나 아파도 그럴 거냐?"

"할멈은 건강하자나."

"또 그 할멈이란 소리. 야, 나 밖에 나가면 이십 대 초반으로 봐, 이거 왜 이래?"

"좋겠네."

심드렁한 가지다의 말에 김운과 강태산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득거리자 노지나가 그들을 째려본다.

"김운."

"네, 누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나, 이십 대 초반 같아, 안 같아?"

"같습니다."

"야, 물어볼 사람한테 물어봐라. 이 자식은 절대 객관적일 수가 없어."

노지나라면 껌뻑 넘어가는 자신의 오랜 친구 놈을 손가락질하며 가지다가 말했다. 그런 지다를 보며 김운이 조용히 미소 짓는다.

노지나는 김운의 그 미소가 좋았다. 어릴 때부터 누나 누나 하며 자신을 잘 따랐던 아이였다.

가지다를 좋아하게 되면서 자연히 가지다와 동갑인 김운도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자로 보였다 일 뿐, 노지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가지다뿐이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노지나도 많은 마음고생을 했다. 열 살이나 어린 남자에게 모든 걸 주다 보니 미래가 불투명해졌지만 그만두기에도 늦은 후였다.

언젠가 가지다의 입에서 결혼하자는 소리가 나오길 기다리며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서른일곱이나 먹은 지금, 사십이 되기 전엔 결혼식을 올리고 싶은 마음에 하루하루 마음을 졸이고 있는 그녀였다.

"이렇게 모여서 밥 먹는 것도 오랜만인데 술이나 한잔할까?"

노지나의 말에 밥을 다 먹은 강태산이 숟가락을 놓으며 말한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지 말고 한잔해. 언제 또 이렇게 같이 마셔보겠어?"

"괜찮습니다."

"...다인이 때문에 그래? 가끔 보면 태산씨 꽉 막힌 데가 있다니까. 걱정 마, 지다집은 전쟁이 나도 안전할 테니까."

곤란해하는 강태산의 어깨를 툭 치며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낸 지나가 지다와 김운, 태산에게 나눠주며 말한다.

"하여간 우리 아빠가 사람 보는 눈은 있다니까. 태산씨 맥주 한잔한다고 2층에 있는 이다인 어떻게 되지 않으니까 걱정 말고 마셔."

늘 생각했던 거지만 노지나의 성격은 조용조용하고 차분한 회장인 노도수와는 달리 화끈하고 시원시원했으며 추진력이 있었다.

얼떨결에 노지나가 내민 맥주를 마시게 된 태산은 그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술을 마셨다. 자신보다 어리지만 존경해마지않는 천로의 가지다와 회장님의 외동딸, 그리고 회장님이 신뢰하고 믿는 김운과 같이 앉아 술을 마시는 게 얼떨떨하면서도 기분 좋았다.

술을 마시면서 티격태격 거리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말을 하기도 하는 그들을 보며 자신과 다름없는 보통 사람이라는 생각에 더욱 기분이 좋아지는 태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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