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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다 원하다-2화 (2/51)

2화

<시크한 그와 까칠한 그녀>

"초면인 사람한테 이거라뇨. 댁 눈엔 내가 물건으로 보여요?"

가지다를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한 이다인이 자신의 옆에 서있는 강태산 쪽으로 몸을 기울여 그만 들을 수 있게 속삭이듯 묻는다.

"깔따구? 그게 뭐예요. 욕은 아니죠?"

피식. 가지다가 입꼬리를 올리자, 그런 가지다를 보며 눈썹을 꼼톨거리는 이다인. 그녀는 우물쭈물하고 있는 강태산을 한번 쳐다보고, 자신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가지다를 쳐다본다.

"사람을 언제까지 이렇게 문밖에 세워 둘 거예요? 여긴 손님 대접을 이런 식으로 하나?"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는 이 당돌한 여자가 꽤 신선한 가지다는 잡고 있던 문 손잡이를 밀어 활짝 연 후, 한 손을 안으로 내밀며 고개를 약간 숙여 들어오라는 포즈를 취한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가지다를 지나쳐 현관 안으로 들어가는 이다인을 보던 그가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영감이 아기 고양이를 너무 오냐오냐 키웠군.

가지다를 지나쳐 집안으로 들어온 이다인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자신을 보고 손을 흔들어 보이며 웃는 여자를 보고 눈이 커졌다.

"왔어?"

가지다와 같은 색 가운을 걸치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자는 노도수의 외동딸 노지나였다. 서른이 훨씬 넘은 나이였지만 동안인 아버지를 닮은 탓에 이십 대 후반쯤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노도수의 딸이라고는 해도 그의 집에서 사는 5년 동안 대여섯 번밖에 본적 없는 여자였기에 여기에서의 만남이 조금 의외였다.

"옷 입으라고 했잖아."

노지나의 입에 물린 담배를 빼앗아 물며 빨리 가서 옷 입으라고 노지나의 어깨를 툭툭 치는 가지다. 그런 가지다에게 하던 건 마저 해야지 하며 그의 입에 물린 담배를 빼내 자신의 입에 무는 노지나.

지나 언니와 이 남자, 어떤 관계인지 대충 감은 오는데.

이다인이 저도 모르게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가지다는 그런 그녀를 한번 쳐다본 후, 그녀의 옆에 서있는 강태산에게 2층으로 짐을 올리라고 말한다.

"오늘부터 당분간 여기 2층에서 생활하게 될 거야. 여기서 지내게 된 이상, 내 허락 없인 밖으로 못 나가. 여기가 영감 소유지이긴 해도 여러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꽤 위험하니까."

"뭐, 그거라면 말 안 해줘도 알아요. 할배 집에서 살 때도 지겹도록 감옥살이했었으니까 뭐, 여기 왔다고 색다를 거 없죠."

무표정한 얼굴로 저렇게 말한 이다인이 노지나를 쳐다보며 말을 잇는다.

"내가 안전하게 있을 곳으로 보내준다더니, 그게 지나 언니 집이었군요."

"아- 아냐."

노지나가 픽 웃으며 손을 흔든다.

"난 여기 볼일 있어 온 거고, 여기 지다 집이야. 아빠한테 들은 적 있지 않아? 아들 같은 녀석 하나 있다고."

"아, 뭐. 들은 거 같기도."

"이 녀석이거든. 여기 천로 구역 대가리."

노지나의 말에 쯧-하고 혀를 차는 가지다. 그런 가지다를 보며 노지나가 피식 웃으며 알았어 알았어. 한다.

"여기 천로지점 대표 이사야, 너랑 동갑. 어리긴 해도 일 하나는 끗발 나게 잘해서 우리 아빠가 좋아죽으시는 녀석이지. 여하튼 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이 녀석 보러 오는 거야."

"아, 그래요."

"그나저나, 괜찮아?"

"...뭐가요?"

"아빠가 갑자기 그렇게 돼서...아, 아닌가. 너 우리 아빠 미워하지, 참."

훗. 하고 웃는 노지나를 빤히 쳐다보던 이다인이 한참 후에야 씽긋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미워하지 않아요."

이다인의 말에 의외라는 표정을 하는 노지나와 이다인을 말없이 보는 가지다. 그런 그들을 보며 또 씽긋 미소를 짓는 이다인.

"싫어하는 거죠. 미워하다는 애정이 전재된 감정을 말하는 거니까요. 난 할배한테 애정 따위 없거든요. 할배가 말 안 해요?...차를 좀 오래 타서 피곤한데 이만 올라가도 되죠?"

어깨를 으쓱하며 2층으로 올라가던 이다인이 아, 하며 몸을 돌려 가지다와 노지나를 쳐다본다.

"근데 두 분, 뭔가를 하고 있던 참인 거 같은데...거기서 마저 하실 생각인가요?...내가 야동을 라이브로 듣는 거에 별로 취미가 없어서. 웬만하면 방 안에 들어가서 하시는 게 어때요? 이 집, 방음시설은 잘 돼있는 편인가요?"

라고 말한 이다인이 쌩하고 2층으로 사라진다. 황당한 얼굴로 2층을 올려다보던 가지다는 갑자기 까르르하고 웃는 노지나 때문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진짜 대박이다. 아하하하-"

"영감이 애를 너무 오냐오냐 키우는 거 아냐?"

"뭐 어때, 귀엽잖아. 나 전에 쟤랑 아빠랑 같이 밥 먹은 적 있는데 우리 아빠, 쟤한테 아주 꼼짝도 못하더라. 완전히 대박이더라니까? 까놓고 우리 아빠가 쟤를 오냐오냐 키우는 게 아니라 쟤가 너무 센 거야."

"그럼 너도 세서 이러냐?"

"뭐야?"

자신에게 눈을 흘기는 노지나의 이마에 가볍게 꿀밤을 먹이고는 피식 웃으며 하던 거 마저 할 거면 방음 잘 되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고 말하는 가지다. 그의 말에 노지나가 환하게 웃으며 가지다의 목에 매달린다.

...........

...................

............

사방이 숲과 바다로 둘러싸여있는 천로에서의 고요하고 조용한 생활이 익숙해진 어느 날. 같이 산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데도 얼굴을 볼 수 없던 가지다가 강태산과 이다인의 아침 식사시간에 나타났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밥을 차리려고 하자, 커피나 한잔 달라고 말하고는 강태산의 옆에 앉더니 태산을 부른다.

"며칠이나 걸려?"

"노지나 사장님이 주신 문서를 일본에 계신 민회장님께 넘겨드리고 하면... 빨라도 3일 정도는 소요될 것 같습니다."

"...그래. 중요한 거니까 실수 없도록 해."

"네. 걱정 마십시오. 저...그런데 이사님"

"왜."

"그때까지....다인 아가씨 좀 잘 부탁드립니다."

강태산의 말에 밥을 먹다 말고 태산을 쳐다보는 이다인. 그런 이다인을 흘끔 쳐다보던 가지다가 도우미 아주머니가 주는 커피를 받아 마시고는 말한다.

"요즘 풍로놈들 움직임은 어때."

"아직은 다인 아가씨가 여기 계신 걸 눈치채지 못한 모양입니다만, 이사님도 아시다시피 여기 드나드는 고위급 간부 중 풍로와 연관된 자들도 있으니까 계속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래."

"내 목숨이 그렇게 위험해요?"

무표정한 얼굴로 밥을 먹던 이다인이 짧은 한숨을 쉬며 그들의 대화에 끼어든다.

"왜? 내가 뭔데. 나 죽으면 회장 할배가 죽기라도 하나?"

"그것보다..."하는 강태산의 말을 자르며 가지다가 말한다.

"죽이진 않겠지. 네 몸값이 얼만데. 계산 느린 놈이나 영감에게 원한 있는 놈이 아닌 이상 몇십억을 호가할지도 모르는 널 죽이려 들진 않을 거다."

"내 몸값이 왜 몇십억인데요?"

"...지금 우리 영감의 아킬레스건이 너니까. 그래서 풍로 놈들도 모자라 잔챙이 양아치 놈들까지 널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켠 거고."

"그러니까 할배의 아킬레스건이 왜 나냐고. 나 할배 비밀계좌...뭐, 그런 거 알고 있는 거 없는데."

"나도 모르지. 영감이 왜 너한테 그렇게 목을 매는지."

"....목을 매요?"

"영감이 검찰에 소환되기 전에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뭔 줄 알아?"

"....비밀계좌 숨기기?"

"나도 그럴 줄 알았지. 아니야."

"...뭐였는데요?"

"너. 너 나한테 보내는 거."

"....그러니까 왜?"

"그러니까 그게요...."라며 가지다와 이다인의 대화에 강태산이 끼어든다.

"몇 년 전부터 공공연하게 소문이 돌았습니다. 대한 그룹 회장님이 어린 여자에게 빠져있다고. 처음엔 그저 그런 소문으로만 생각했는데 2년 전 회장님이 아가씨 소유의 섬을 사셨습니다.

남태평양 근처에. 그걸 알고 우리 천로와 적대관계에 있던 풍로 회장이 아가씨를 보고 싶어 해 사람을 보내기 시작했고, 그것 때문에 회장님과 풍로 회장의 사이가 더 안 좋아지면서 회장님이 아가씨를 보호하기 시작...."

"자, 잠깐, 잠깐. 뭘 사요? 내 소유로. 뭘 사??"

"...섬이요."

강태산의 말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이다인은 자신의 명의로 된 섬이 있다는 사실에 영감이 드디어 노망이 난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걱정 마. 영감 노망난 건 아니니까."

자신의 머릿속을 스캔이라도 한 듯, 가지다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한다.

"그만큼 네가 소중하다는 거겠지. 영감한테."

"회장님의 목숨 같은 분이라고, 회장님처럼 보호해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

"영감 경호를 맡던 녀석이 따라왔길래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너 영감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을 했길래 영감 목숨과 동급이 될수 있느냐고.... 혹시 영감 아이라도 가졌냐?"

순간, 이다인의 눈이 시려진다. 가지다를 야리는 이다인의 눈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강태산이 입을 열려는 그때, 이다인이 무표정하다 못해 차가운 얼굴로 가지다를 부른다.

"어이, 거기 대가리 양반. 터진 주둥아리라고 함부로 나불대는 거 아니다?"

"....뭐?"

"아가씨!"

"씨바, 할배가 제발 죽은 듯이 있으래서 말 좀 들으려고 숨만 쉬고 있었더니, 더럽게 깔짝거리네."

"씨바? 뭐, 깔짝?....야, 돌았냐?"

"안 돌았다, 왜. 뭐, 왜. 그렇게 째려보면 어쩔 건데? 너한테 욕했으니까 나 죽이려고? 해. 해봐, 한번. 내 모가지 몇십억짜리라며. 혹시 그깟 욕 한번 들었다고 몇십억짜리 목 비틀 정도로 멍청한 놈은 아니지 않나?"

"뭐, 놈?"

"왜. 놈 아니고 년이야? 내 눈엔 놈 같은데."

"아, 뭐 이런."

"아, 뭐 이런 뭐. 야. 너 나랑 나이 같다며. 근데 왜 태산 아저씨한테 반말해? 왜 막 이름 부르니? 혹시 너 혓바닥이 다른 사람들보다 짧아?"

"아놔, 씨발."

"참으세요. 이사님!"

화를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가지다를 두 손으로 저지하는 강태산. 그러거나 말거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컵에 물을 따라 마시며 말을 잇는 이다인.

"지가 천로 대가리면 대가리지, 얻다대고 반말질이야? 엄연히 일곱 살 이나 위인 사람한테. 하여간 요즘 애들은 개념이 없어, 개념이. 아니, 군대도 갔다 왔다면서... 어디 시베리안 정글 부대라도 다녀오셨나. 요즘 군대에선 닥치고 삽질만 시키나? 인성교육은 안 해?"

"아가씨도 이제 그만 좀 하세요!"

"내가 뭘요! 뭐 틀린 말했어요?!"

가지다는 눈썹을 꼼틀거리며 이다인을 야리다가 자신의 팔을 잡고 자꾸만 참으시라는 강태산의 손을 탁 쳐내고 밖으로 나간다. 가지다가 나가는 걸 째려본 이다인이 짧게 혀를 차며 감히 누굴 건드려?라고 낮게 중얼거린다.

"아가씨, 정말 이러실 겁니까?"

"아, 내가 뭘요."

"저 오늘 바로 일본에 다녀와야 해서 3~4일 정도 아가씨 옆에 못 있습니다. 저 없는 동안 이사님이 아가씨 보호하실 거라고요. 그런 이사님을 화나게 하시면 어떡합니까? 아, 진짜...아가씨가 지금 얼마나 위험한지 납치라도 당해봐야 알겠습니까?"

자신의 목숨이 어느 정도 위험하다는 건 서울에서 천로로 올 때, 자신들의 차를 뒤따라왔던 놈들 때문에 익히 알고 있었다. 벌건 대낮에 대한민국 땅덩어리에서 총을 가진 놈들이 자신이 탄 차를 뒤따라 왔고, 그걸 일찍 캐치한 강태산이 천로 소속 사람들에게 연락해 고속도로에서 위험천만한 레이스를 펼쳤으므로. 천로 사람들이 탄 검은색 세단 여섯 대가 총을 가진 자들의 차를 둘러싸는 진풍경을 보고 액션 영화를 보고 있는 착각을 했을 정도였다.

아무튼,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놈들이 총을 가지고 있는 위험한 놈들이라는 걸 알고 있는 지금, 자신을 보호하는 믿을만한 사람의 갑작스러운 부재가 불안하기는 한 이다인이다. 하지만 영감의 아이를 가진 거냐고 지껄인 가지다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기긴 싫다.

영감의 아이를 가진 거냐니... 어디서 그런 끔찍한 소릴.

"그 사람 말고는 나 보호해줄 사람 없어요?"

"가지다 이사님. 저보다 믿을만한 분이십니다. 대한민국에서 이사님보다 주먹 센 분도 없고, 상황 대처능력도 아주 빠르신 분입니다. 괜히 대한 그룹의 톱인 이 천로지점의 대표이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대표이사는 무슨, 조폭들 주제에."

"이사님 앞에서 조폭이라고 하시면 안됩니다?! 저...웬만하면 잘들 좀 지내십시오. 회장님이 가장 아끼고 아들처럼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이사님도 회장님을 아버지처럼 생각하시고요."

...영감이 아들처럼 생각한다고...?....저 자를...?...

"회장님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이사님께 아가씨를 맡기신 건 분명, 아가씨의 목숨이 아주 위험한 정도라는 거고, 그런 아가씨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분은 이사님뿐이라는 겁니다. 더구나 제가 일 때문에 며칠 아가씨 옆에 있지도 못하는데, 아가씨가 의지할 분은 가지다 이사님뿐 아닙니까? 그런 이사님과 이렇게 사이가 나쁘면 손해 보는 건 아가씨란 겁니다. 제 말 이해하시겠습니까?"

"............"

"아가씨 걱정 없이 편하게 다녀올 수 있게 협조 좀 해주십시오."

"그렇게 걱정되면 날 데리고 가요, 일본에."

"...잊으셨습니까? 아가씬 회장님 허락 없이는 한국 뜰 수 없습니다."

".....한국만 뜰 수 없으면 다행이게요? 이 한국 땅덩어리 안에서도 할배 허락없인 어디도 못 가는데. 도망 안 간다니까 사람 참 안 믿어요."

"...가실 거잖습니까."

".............."

"회장님 말입니다. 아가씨 정말 아끼십니다. 그건 좀 알아주십시오."

"난 할배가 정말 싫어요. 그것도 좀 알아주실래요?"

"....왜 그렇게 싫습니까?...나이가 좀 많으셔서 그렇지...솔직히 잘생기셨잖습니까. 돈도 많고, 아가씨한테 정말 잘하시고."

"아저씬 회장 할배가 왜 그렇게 좋은 건데요? 난 그게 궁금하네요."

"...집도 절도 없는 절 거둬주고 먹여주고 키워주신 분입니다."

"......"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저.... 머리 커서는 동네 양아치 짓 하면서 친구 원룸에 빌붙어 지냈고요. 어느 날 동네 구멍가게 할머니 집에서 돈을 훔치다가 회장님께 딱 걸렸습니다. 검은색 세단이 구멍가게 앞에 세워져 있었는데 안에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었거든요. 좃 됐구나 생각했는데 회장님이 차로 부르시더니 그러시는 겁니다.

어차피 나쁜 짓을 할 거면 자신보다 더 나쁜 놈에게 나쁜 짓을 하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저 불쌍한 할머니 돈 훔쳐서 뭐 하냐고. 그때부터였습니다. 회장님 옆에서 회장님 경호하고 지낸 게...제가 주먹은 꽤 쓸만했거든요....회장님은 말입니다, 아가씨. 객관적으로 보면 돈 빌려주고 높은 이자 받는 참 나쁜 일을 많이 하는 분이시지만, 제 주관적 입장에선 적어도 사는 것에 여유가 없는 불쌍한 사람들에겐 악하지 않은 분이십니다.

적어도 회장님은, 정말 힘든 사람들에겐 너그러우신 분입니다, 그건 늘 옆에 있으셨으니 아가씨가 더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알아? 뭘...?....정말 힘든 사람들에겐 너그럽다고...?....그럼 난...?.... 그럼 우리 집은...?....

이다인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애써 삼켰다. 자신의 아버지도 그랬다.

세 식구 잘 살아보겠다고 시작한 사업이었고, 사기를 당해 길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해졌다. 그때, 회장 영감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자신의 아버지에게 언제까지 돈을 갚지 못하면 목을 내놓아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했고, 살고 싶으면 돈 대신 외동딸이라도 내놓으라고 엄포를 놓았다.

법치국가인 이 나라에서 돈 대신 사람을 주고받는다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자신이 그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의 주인공이 되었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지내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도 모른 채,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단짝 지은이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 채, 그저 영감의 숨 막히는 손바닥 안에 갇힌 채, 인형처럼 먹고, 자고, 꾸미며...그렇게 지내고 있는 다인이었다.

"그러니까 제 말은... 회장님은 좋은 분이시라는 겁니다."

"뭐... 날 노예처럼 부려먹지 않으니 바닥까지 쓰레기는 아니라고 치죠. 숨 막히게 갑갑하긴 하지만 이렇게 공주 대접받으며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좋은 옷, 좋은 음식 먹고 사니까. 날 감금 시켜놓고 제 욕정만 채우는 역겨운 영감이긴 하지만, 그래요. 바닥까지 쓰레기는 아니라고 칩시다."

저렇게 말하고 도우미 아줌마에게 잘 먹었다며 몸을 일으킨 다인에게 자신이 일본에 다녀 올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말고 몸 조심히 잘 있으라고 말하는 강태산.

"아저씨가 보태지 않아도 나, 충분히 갑갑하고 답답한 감금생활하고 있으니까 집 밖에 나가지 말라는 말은 좀 참아줘요. 두발 달린 짐승한테 이 집 앞마당 나가는 것도 못하게 하면 그건 너무 잔인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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