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쯔걱...쯔걱...쯔걱...
오십대 쯤으로 보이는 중년의 밑에 깔려 신음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문 앳돼 보이는 여자. 중년이 흔드는 대로 몸이 흔들리는 그녀의 눈에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아파서 우는 게 아니다. 몸이 아픈 것쯤은 참을 수 있다. 부모에게 등 떠밀려 억지로 팔려온 이 집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생활을 하게 될 자신이 가여워서.... 그 서러움이 슬퍼서 운다. 그 처량함이 아파서 운다.
사업에 실패한 이다인의 아버지가 자신의 목숨 대신 딸인 그녀를 돈 대신 노도수에게 넘기면서 스무 살 이다인의 인생은 이 눈물방울처럼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자신의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였던 노도수는 비슷한 나이대의 중년 남성들보다 어려 보였고, 샤프하고 지적인 이미지에 여자 같은 얼굴선을 가진 남자였다. 하지만 스무 살인 여자가 자신의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서른 살이나 차이가 나는 사람을 남자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지금 이렇게 자신의 처녀를 무참히 짓밟으며 더러운 신음을 흘리는 중년 남자에게 속으로 저주를 퍼부으며 눈을 감은 이다인은, 자신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목숨을 살려달라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아버지의 목숨과 바꾼 몸뚱어리. 아직 채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가 이 중년 남자에 의해 꺾이고 있다. 즐거운 대학 생활도, 두근거리는 연애도, 여느 스무 살의 여자처럼 친구들과의 만남도, 수다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녀는...이곳, 노도수의 대궐 같은 집에 갇혀 평생을 이렇게 원하지 않는 관계를 가지며 세상엔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으읏-"
노도수의 입에서 나온 작은 신음과 함께 미친 듯이 푸샵질을 해대던 그의 허리가 멈췄다.
끝났나...
이다인은 자신의 안에서 빠져나가는 노도수의 페니스를 느끼며 얕게 몸을 떨었다. 아랫배가 욱신거리고 아파진다. 떨리는 몸을 힘겹게 이불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픈가."
자신의 처음을 가진 노도수가 탁자 위에 놓인 위스키를 입으로 가져가며 묻는다. 이다인이 대답을 하지 않자, 그가 낮게 웃는다.
자신에게 빌린 돈을 갚을 능력을 잃은 이성우의 집에서 이다인을 처음 봤을 때, 자신을 향한 경계하는 눈빛이 꼭 길들이기 힘든 고양이 같았다. 마치, 가지다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하면서 좀 다른 느낌. 여자를 보고 갖고 싶단 생각을 한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노도수는 턱까지 덮은 이불안에서 얕게 떨고 있는 이다인을 바라봤다. 까맣고 윤기나는 그녀의 긴 머리를 만지고 싶다는 욕구를 애써 눌러 참았다.
이미 놀란 아이를 더 놀라게 하고 싶진 않았다.
신기하군. 내가 이 아이를 이렇게나 신경 쓰고 있다니.
자신의 딸보다 어린 여자였지만 노도수는 갖고 싶은 건 갖고야 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졌고, 가지고 난 지금 더 목이 마름을 느낀다. 나이 오십 줄에 자신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딸보다 어린 이 아이가 신기하면서도 사랑스러워졌다.
깨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루고 싶다. 평생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겠지만 아니, 평생 자신을 남자로 보지도 않겠지만 평생 옆에 두고 갖고 싶은 여자니까.
....
.......
.....
7년 후.
대한 그룹 사유지. 천로.
대한 케피탈 천로지점의 간판이 걸린 건물 앞에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멈춰 선다.
차에서 내리는 검정 양복의 키가 큰 남자는 강태산. 회장 직속 경호 실장으로 이번 노도수가 탈세와 비자금 문제로 검찰 소환을 받으면서 이다인의 경호를 맡았다. 남자가 차 뒷문을 열자, 유난히 흰 얼굴의 긴 생머리가 인상적인 여자가 차에서 내린다.
무표정한 얼굴에 도도한 눈빛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빛나게 만들고 있다.
"여깁니다, 아가씨."
"... 그 아가씨 소리 좀 집어치우시면 안 돼요? 지금이 무슨 조선 시대도 아니고."
"....."
"그렇게 회장 사모 대하듯하지 않아도 돼요. 내가 진짜 할배 마누라도 아니고. 난 내 아빠 목숨 대신 할배에게 몸뚱어리 저당잡힌 여자일 뿐이란 말이지."
"들어가시죠."
"그 거슬리는 경어도 그만 쓰시고. 딱 봐도 아저씨, 사십은 훨씬 넘어 보이는 얼굴인데....나 스물일곱이거든요?"
"서른 다섯입니다."
"...아, 쏘뤼. 워낙 액면가가 있어 보여서."
피식. 입꼬리를 올리는 강태산의 입가에 보조개가 핀다.
"호오- 웃으니까 서른 다섯 정도로 보이긴 하네. 역시 사람은 웃어야 어려 보인다니까."
이다인의 말에 또 훗-하고 웃는다. 이다인은 그런 강태산을 보며 경호원 치고 웃음이 좀 헤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현관문 앞에 서서 벨을 누르는 강태산을 쳐다보던 이다인은 아무도 나오지 않는 집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강태산을 쳐다봤다.
"여기 맞아요?"
"분명 집에 계시다고 보고를 받았는데..."
멋쩍은 듯 웃으며 또다시 벨을 누르는 강태산. 몇 분이 지났을까, 벨만죽어라 눌러대던 강태산이 포기를 하고 전화기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하려던 바로 그때, 그렇게 쌔빠지게 벨을 눌러도 열리지 않던 현관문에 거짓말처럼 딸깍하고 열렸다.
"이사님!"
어디론가 전화를 하던 강태산이 문을 열고 나온 남자를 반갑게 부른다. 이다인은 반쯤 열린 문 안에서 눈썹을 꼼틀거리고 섰는, 모델처럼 키가 큰 남자를 올려다봤다. 뭘 하고 있었는지 이마와 구레나룻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남자는 급하게 나온 듯 걸치고 있는 가운의 끈도 다 묶지 않은 채였다.
얘, 설마 가운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거야?....이 새끼 이거, 변태 아냐?! 망할 영감탱이, 믿을만한 사람에게 보낼 테니까 안심하라더니 이런 변태 새끼한테 날 맡겨? 하여간 믿을 구석은 개미 새끼 더듬이만치도 없는 영감 같으니라고. 근데 얜 뭔데 이렇게 잘생겼어? 아직 데뷔 못 한 신인 연기자인가? 아님 모델? 뭐 이렇게 쓸데없이 멋있어? 내 살다 살다 뒤통수에 후광 비치는 놈은 또 첨보네. 맨날 우락부락한 영감 똘마니들만 보고 살아서 그런가 신선하다, 신선해.
가지다를 빤히 쳐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이다인과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인형같이 작고 하얀 여자아이를 말없이 내려다보는 가지다.
자신의 눈을 피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던 여자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어느새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영감이 사나운 고양이를 키운다더니, 진짜였군.
가지다는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이거냐? 영감 깔다구."
....
..
.....
가지다와 이다인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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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무겁진 않지만 가볍지도 않은 이야기입니다. 완결 지향합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