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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틸로프
일본.
강지건은 뒷골목에서 라면을 즐겼다.
푸드 파이터로 명성을 쌓기 위해 상금이 걸린 곳마다 찾아가 박살을 내놓았다.
본체와 다른 분신들이 열심히 싸우고 힘을 쌓는 동안 일본에서 분신으로 여가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문제가 심각하군.’
예전에는 먹고 다니는 것만으로 충분히 힐링이 되었었다.
하지만 분신을 죽이며 힘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상당했다.
‘밋밋해.’
대형 라면을 꿀꺽했는데도 만족도 못 느끼고 있다.
별 다른 감흥이 없었다.
강지건은 심각함을 느꼈다.
‘정신적으로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고 있었다.
이를 적절히 해소하지 않으면 무엇인가 끊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섹스로는 안 돼.’
천만 대물 군단으로 서번트들과 섹스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천만이 느끼는 절정의 쾌락이 지속적으로 강지건의 의식에 전달되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 몇 명을 더 안는 것이 대단한 자극이 되어주지는 않는다.
‘뭔가 힐링이 필요해.’
먹는 것으로도 부족했다.
뭔가 더 짜릿한 게 필요했지만 지금까지 강지건에게 짜릿했던 것은 섹스.
섹스는 즐거웠고 짜릿했다.
하지만 힘을 키우는 수단이 되자 느낌이 많이 변했다.
즐겁긴 하지만 일이라는 느낌.
취미를 일로 삼는 사람들이 주로 느끼는 벽에 부딪힌 것이었다.
취미는 취미로 즐길 때 즐겁다.
취미로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즐거움만 추구할 수 없게 된다.
여기까지는 다들 각오하고 뛰어든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자신의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때 생긴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었던 취미가 일이 되어버리니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하나 없어진 셈이다.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던 것일수록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게 될 확률이 크며 고통은 더욱 커진다.
강지건은 그러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즐기기만 했다.
강해지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강해지면 될 일이었다.
강해지기 위한 노력 조차 즐겼었다.
하지만 이젠 그러지 못했다.
안틸로프, 침식의 근원이라는 적과 맞서 서둘러 강해져야 하는 상황.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편히 즐긴다는 것은 무리였다.
고통이나 투쟁 자체를 즐긴다면 이야기가 많이 다르겠지만 강지건은 투쟁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먹는 게 안 되면 게임이라도 할까? 뭔가 다른 감각이 필요한데.’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때가 찾아왔다.
어지간한 일은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학살?’
문득 스쳐지나가는 생각하나.
뭐든 마구 죽이고 파괴하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아니야. 잠깐 즐거울지 몰라도 결국 원점이야.’
문제의 근원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분신의 죽음을 계속해서 느낄 수밖에 없다.
파괴 행위는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몸부림이 될 뿐.
‘부정적인 행동을 모두 제외한다면.’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은 검이었다.
‘그래, 검술이라도 더 연마하자.’
강지건의 취미활동이었던 무공 수련.
다시금 시작할 때가 되었다.
무왕계.
강지건은 분신을 둘 준비했다.
이어서 분신으로 서로를 향해 검을 들이대며 싸우기 시작했다.
‘검총검결.’
한 순간이라도 실수하면 베인다.
둘 다 자신의 분신이니 고통을 느끼는 것도 결국 본인이다.
강지건은 분신들을 마치 다른 자아를 가진 존재들처럼 다루기 시작했다.
똑같은 검술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를 죽여야 할 적으로 인식하며 살벌한 검술을 펼쳤다.
혼자놀기를 하며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투닥거리게 하는 것과 같았지만 레벨이 달랐다.
맨손으로 왼손과 오른손이 싸우는 게 아니다.
검을 들고 서로 찌르려 했다.
강지건은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고 분신을 공평하게 사용했다.
그렇기에 분신 비무는 굉장히 오래 이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강지건은 검총검결을 완벽하게 체득하기 시작했다.
무의식에 자연스럽게 검결이 스며들었다.
기본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완성된 검결은 바로 안틸로프의 본체에서 활용되었다.
- 검을 잡다니 특이하군. 그런 능력이 아니지 않나?
“분신으로 수련 중이다.”
- 훌륭한 자세야. 그렇다면 나도 상대를 해줘야겠지.
안틸로프의 서번트들이 나타났다.
죄다 검을 든 서번트들이었다.
“간다!”
수련은 수련이 아니게 되었다.
채채채챙!
검총검결에 이어 기본기가 다져진 강지건은 더욱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안틸로프의 서번트들도 만만치는 않았다.
뇌전과 같은 속도로 싸우고 있었으나 강지건도 안틸로프의 서번트들도 막상막하.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슬슬 힘의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강지건이 조금씩 밀렸다.
‘어쩔 수 없군.’
강지건은 분신들을 불렀다.
1만의 분신을 불러들여 싸움을 붙였다.
분신 검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 의식 분할이 매끄럽군. 수준급이야.
‘이미 해본 건가? 그럼 이 정도 수준으로는 저 녀석을 이기지 못할지도 몰라.’
강지건은 작은 정보라도 간과하지 않고 분석했다.
안틸로프가 했던 일이라면 자신은 더 잘 해야 한다.
‘더 강해져야 해.’
싸우다 상처를 입은 분신은 일부러 죽여서 힘을 흡수했다.
빈자리는 새로운 분신으로 채웠다.
1만의 분신으로 서서히 압박해 들어가니 안틸로프의 서번트도 더욱 늘어났다.
취미로 검술 수련이라도 하려고 했던 것도 본체의 전투로 인해 시들해졌다.
‘빌어먹을.’
정신적인 피로가 누적된다.
아직 육체를 버리지 않았기에 피로가 쌓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뭔가 또 다른 걸 해야 할 텐데.’
시간이 지나며 점점 누적되는 피로로 인해 독기는 더욱 강해진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수반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니 신경이 곤두서고 있었다.
‘풀어야 해.’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게 되면 어떤 바보 같은 선택을 하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강지건은 새로운 자극을 필요로 했다.
‘콘서트라도 열까?’
문득 오랫 동안 하지 않았던 일을 떠올렸다.
‘그래, 투어라도 하자.’
뭔가 전투나 수련과 거리가 먼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어야만 했다.
강지건은 적당한 앨범을 골랐다.
스딘부르크의 유명 헤비메탈 밴드의 앨범이었다.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린 앨범.
헤비메탈의 전설로 알려진 명작의 향연.
미국에서 놀고 있던 분신을 이용해 콘서트에 나서기로 했다.
“하하, 이거 진짜 오랜만이군요.”
“네, 수고해주세요.”
포스타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오랜만에 강지건이 콘서트에 나설 거라고 하니 어마어마한 관심이 쏠렸다.
강지건은 일단 당장 공연이 가능한 무대를 먼저 선택했다.
규모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미친 듯이 음악에 매진하고 싶었다.
> 어이. 지금 내가 들은 게 맞아?
> 헤비메탈이라니.
음원이 풀리는 것은 순식간.
풀리자마자 세계의 모든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해버리는 기염을 토해냈다.
호기심이 강한 이들, 강지건의 팬들 등 많은 이들이 음원을 구입한 탓에 일어난 일이었다.
> 이것도 라다가?
> 작사 작곡 봐. 강지건이라고 하잖아.
> 천재의 친구가 알고 보니 천재였다?
> 진짜 다 해먹는구나
> 그런데 헤비메탈이라니 진짜 의외다. 힙합을 할 줄 알았는데.
> 그나저나 기타 연주 실력이 어우.
> 강렬하다
> 복싱을 하더니 굉장히 거칠어졌어
북유럽에서는 난리가 났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쪽에서는 헤비메탈이 굉장히 강세였다.
> 오오 신이시여
> 난 비행기표를 샀어. 티켓도 살 거야.
> 그가 투어를 기획하고 있다고?
> 돈을 열심히 모으는 중이야. 역사가 될 투어를 따라가야 해.
> 그 분을 영접하러 가겠다. 돈은 준비되었다.
> 신혼여행으로 그의 콘서트를 보러 가고 싶어
> 신이시여
북유럽에서는 신처럼 추종하기 시작했다.
> 헤비메탈의 영광이 재림한다
> 진짜 엄청난 리프야. 강렬하고 새로워. 미치겠다.
> 연습 중. 진짜 이건 명곡의 향연이다.
세계는 다시 한 번 더 시끄러워졌다.
미국에는 수많은 밴드를 위한 클럽이 존재했다.
재즈, 락, 심지어 컨트리 음악까지.
규모를 개의치 않는다면 공연할 수 있는 무대는 상당히 많다.
강지건은 거대한 규모의 공연부터 하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공연을 하고자 했다.
밴드는 혼자 할 순 없지만 강지건은 가능했다.
혼자서 드럼, 베이스, 일렉, 그리고 보컬까지.
각기 다른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로 밴드 멤버까지 구성했다.
원래라면 멤버를 구하고 연습하고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강지건에게는 별 상관이 없었다.
안드로이드를 쓰면 되니까.
혼자서 밴드를 못할 이유는 없다.
오케스트라도 혼자서 할 수 있었다.
“가자!”
작은 무대에 선 강지건은 폭발적으로 기타를 연주했다.
귀를 찢는 것 같은 금속성의 소리가 청중의 귀를 긁어버린다.
“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
강지건의 강렬한 함성이 노래와 섞인다.
전투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시작.
자리에 있던 이들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전쟁 노래를 듣고 있자니 싸우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았다.
“우워어어어어어어어!”
함성을 지르는 부분은 정말 알기 쉬웠다.
한 번 듣고 꽂혀버린 이들은 따라서 함성을 내질렀다.
거친 헤비메탈이 작은 무대에서 뿜어져나온다.
사람들은 압도되며 광분했다.
> 헤이 소문 들었나?
> 지금 역사적인 투어를 하는 중이래.
> 규모를 가리지 않고 매일 공연을 한다던데
> 진짜 목이 괜찮을까?
> 격일로 바꿔줬으면 좋겠어. 대신 좀 더 큰 곳에서 하고.
> 그의 목이 걱정이야.
1달 동안 강지건은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소리라도 마구 질러대니 속이 좀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계속 소리 질렀다.
소리 지르는 것에는 헤비메탈만한 게 또 없다.
‘더, 더 강하게!’
터질 것 같은 마음을 담아 소리 질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답답함을 느꼈다.
‘이게 아니야.’
악기 연주 기본기 정도는 빠르게 습득하는 강지건.
공연을 통해 점점 음악적 감각이 발전했다.
원래부터 노래를 잘 불렀지만 이제는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마음을 담아 함성을 내지르다보니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가 떠오른 것이었다.
‘이게 아니야.’
강지건은 작곡을 시작했다.
마음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