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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마스터
켄고는 홀로 남게 되자 한숨을 내쉬었다.
‘죽을 뻔 했다.’
위험한 남자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제 진짜 잘못하면 죽겠구나.’
쓰레기를 청소해야 한다는 생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사람을 죽이고 다닌 자신의 집을 정확히 찾아왔다.
살인을 한 것을 숨길 생각도 못했었다.
강지건이 자신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대단하신 분.’
순간 켄고는 생각해버렸다.
야마다 타로라면 히토미와 아스카를 맡길 수도 있겠다고.
‘그 분이라면 아무런 문제없이 보호하시겠지.’
켄고는 살인 의지를 버렸다.
이어서 모든 관련된 증거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살인을 할 때 입었던 옷은 모두 불태웠다.
흉기는 차를 타고 나가 바다에 던져 넣었다.
물론 바다에 던지기 전에 세제로 모든 것을 깨끗이 씻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깨끗이 씻은 다음에 용의주도하게 돼지피에 담그기까지 했다.
칼에서 루미놀 반응이 나온다고 해서 피해자의 유전자가 검출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돼지피로 인해 루미놀 반응이 온다고 해도 유전자가 혹시라도 붙어있다면 오염시킬 수 있었으니까.
켄고는 잡히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잡히면 응원하기 힘들어지니까.
‘돈 많이 벌어야 해.’
도쿄 앞바다에 칼을 던졌다.
이제 어지간한 일이 아닌 이상 사람을 죽인 흉기가 발견될 일은 없었다. 그리고 발견된다고 해도 누굴 죽이는데 쓴 흉기인지 특정 지을 수도 없었다.
범행 당시 사용했던 옷들도 다 태워버렸다.
수집했던 자료들도 다 폐기했다.
‘얌전하게 지내야지.’
이후 켄고는 더 이상의 정보 수집은 하지 않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응원할 수 있어.’
하지만 돈을 버는 것은 쉽지 않았다.
‘월급으론 무리.’
월급은 안정적인 수입원이지만 동시에 큰 돈을 벌게 해주기는 어렵다.
‘장사를 해야 해.’
켄고는 장사가 잘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히토미와 아스카가 신곡을 발표했다.
“아아! 아아아아!”
켄고는 눈물을 흘렸다.
“역시!”
명곡.
눈물이 흐를 정도로 영혼을 울렸다.
켄고는 행복했다.
‘응원하고 싶어. 더 응원해야 해.’
켄고는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싶었다.
히토미와 아스카에게 선물을 보내주고 싶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히토미와 아스카의 팬미팅이 있어 참석했다.
‘저 새끼는?’
켄고는 행복한 마음으로 팬미팅에 참석했다.
강지건이 보내준 티켓 덕분에 쉽게 참가가 가능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켄고는 진심으로 강지건에게 감사해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점점 자신의 순서가 다가오고 있었다.
사인을 받으며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시간.
비록 접촉은 허락되지 않지만 그냥 스쳐지나가면서 몇 마디 나누는 것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렇게 기다릴 때였다.
“어?”
웬 놈이 히토미에게 칼을 들이대려 하고 있었다.
순간 켄고는 움직였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죽인다!’
이를 악물고 최대한 달렸다.
아드레날린이 치솟았다.
시선은 온통 칼 든 놈에게 쏠렸다.
달리면서 가로 막는 사람을 밀쳐냈다. 그리고 칼 든 놈이 경호원에게 막혀서 난동을 부릴 때 켄고는 도착했다.
난동을 부리는 놈의 팔을 잡고 몸무게를 실었다.
뿌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칼이 떨어졌다.
‘이 새끼.’
목적을 달성한 켄고는 몸을 돌리고는 폭력을 휘둘렀다.
“죽어죽어죽어!”
죽이겠다는 생각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켄고는 결국 경호원들에게 막혀 더 때리지 못했다.
“놔! 저 새끼 죽여버릴 거야! 죽일 거야! 죽여야 한다고!”
켄고는 미친 듯이 발광했다.
눈에 핏발이 섰다.
“너 이 새끼 얼굴 기억했다! 딱 기다려!”
강지건은 웃으며 상황을 보았다.
‘뇌가 저렇게 반응할 수도 있군. 역시 사람의 뇌는 경험이 주는 충격에 의해 변화해. 반복되면 반복에 의해 서서히. 강한 충격은 강한 충격에 의해 급격히.’
뇌의 시냅스가 이리저리 연결되고 끊어지는 것을 보았다.
‘켄고 저 자식은 더욱 폭력적으로 변하겠군.’
폭력을 사용해 습격하려던 자를 무력화시켰다.
히토미를 지켜냈다는 ‘보상’에 켄고의 뇌는 격렬하게 반응했다.
강한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더구나 히토미가 지켜줘서 고맙다고 말한 순간 켄고의 뇌는 더욱 격렬하게 반응했다.
‘폭력에 대한 거부감이 더 낮아졌어.’
사실 인간이 가진 폭력에 대한 거부감은 길러지면서 뇌가 거기에 반응해 학습하는 것이었다.
사회에서는 살인을 나쁜 것으로 규정하며 살인을 했을 때, 폭력을 행사했을 때의 불이익을 끊임없이 주입하고 가르친다.
뇌가 아주 다 크지도 않은 6세 이전부터 시작되는 교육이다.
실제로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을 보고 또 처벌을 받으며 이쪽과 관련된 시냅스가 끊긴다.
폭력에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다.
폭력은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좋은 수단이 아니라고 뇌가 판단하고 적응해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경험을 거치지도 않고 똑같은 유전자를 타고 나지도 않는다.
남들과 조금 다른 뇌구조 혹은 신경계의 구조 같은 것이 주변에 대한 반응에 영향을 주고 같은 경험에서도 다른 판단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강지건은 켄고가 겪은 경험을 통해 어떻게 뇌가 변하는지 지켜보았다.
강렬한 경험이 뇌구조를 바꾸었다.
큰일을 겪으면 사람이 변하는 것이 이런 이유다.
뇌의 성장이 멈춘 시기라고 하지만 변화가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다.
인간은 살아있는 생물이고 뇌도 마찬가지다.
경험에 의해 얼마든지 변하기도 한다.
‘흐음.’
켄고가 행복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강지건은 결심했다.
‘그대로 놔둘 순 없겠네.’
‘하하, 내가 지켰어. 이제 히토미가 나를 다시 봐줄 거야. 어쩌면 사귈 수 있을지도?’
자신이 대단한 일을 했다고 여긴 켄고의 망상은 끝이 없었다.
어느새 자신은 히토미의 연인이 되어 있었다.
신이 나서 콧노래를 들으며 집에 들어섰다.
그리고 보았다.
“안녕?”
“아, 네. 안녕하세요.”
살짝 놀랐지만 이내 침착해진 켄고였다.
“오늘은 무슨 일이시죠? 혹시 칭찬해주시려고?”
“그런 게 아니야.”
“그럼?”
“히토미는 오늘 밤 내 여자가 될 거야. 침대에 어서 보지를 팍팍 쑤셔줄 생각이거든. 놀랐으니까 위로해주려고.”
“네?”
놀란 켄고는 이내 이를 뿌득 갈았다.
“설마. 저 때문인가요?”
“그래. 주제도 모르고 누굴 넘봐?”
“크윽.”
“날 죽이고 싶나?”
강지건이 몸을 일으켰다.
켄고는 답하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뭔가 무기가 될 것을 찾는 것이었다.
“아니면 히토미를 죽이고 싶나?”
순간 켄고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지금 죽이면 영원히 내 여자가 될 일은 없을 테니까?”
순간 켄고는 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지금 그 표정. 그 망설임. 그게 네가 죽어야 할 이유다.”
“아.”
순간 켄고는 깨달았다.
“내가.......”
덜덜덜 떨었다.
“미친.”
머리를 감싸쥐고 주저앉은 켄고는 땅에 머리를 박아댔다.
피가 나기 시작했지만 켄고는 멈추지 않았다.
“죽고 싶지?”
“네, 죽여주세요.”
“아직 제 정신은 남아있네.”
하지만 강지건은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저것도 없어지겠지.’
보상을 독점하고자 하는 소유욕이 시간이 지나며 강해지면 결국 죄책감 같은 것도 사라질 수 있었다.
나쁜 생각이 잠시 스쳤다고 누구나 다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복잡한 구조를 가진 뇌가 반응한 결과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 뿐.
혀가 예민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의 경우 음식을 먹고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귀가 예민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의 경우에는 노래를 듣고 보이는 반응도 다를 수 있다.
코가 예민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의 경우,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을 만나고도 상반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감각, 신경, 뇌구조.
인간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것들이다.
강지건은 이러한 것들을 읽어내며 켄고의 미래 선택을 읽어냈다.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예상이 가능했다.
“그럼 편히 자라.”
강지건은 켄고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켄고는 눈물범벅이 되어 울고 있었다.
“젠장.”
그때였다.
뇌전이 켄고의 머리를 때렸다.
켄고는 사망했다.
“흠.”
뇌사에 빠진 것이었다.
이어서 몸도 점점 기능을 정지해가고 있었다.
강지건은 죽어가는 켄고의 몸을 살폈다.
‘저게 저렇게 되는 거였네.’
냉정한 눈으로 생명이 소멸하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죽어가는 켄고의 몸을 끝까지 관찰했다.
“흐음.......”
생명에 관한 일에 관심을 보이며 집착하게 된 이유는 승급과 관련이 있었다.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 생명에 관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기회가 왔을 때 관찰하기 시작했다.
휴식을 취하면서도 할 건 했다.
‘되살려볼까?’
원리는 어느 정도 파악했다.
‘해보자.’
강지건은 쓰러진 켄고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이대로 살리긴 좀 그렇고. 기억도 좀 지우고. 스토커 성향도 지워볼까?’
마나를 일으켜 움직였다.
주변의 마나를 장악하고 육문공을 응용하며 죽은 켄고의 뇌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좋아. 대충 된 거 같은데.’
처음 시도해보는 일이라 확신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될 것 같은 예감에 강지건은 계속 일을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불씨.’
강지건은 뇌에 전류를 흘려넣음과 동시에 죽은 뇌를 움직이게 했다. 아울러 멈췄던 심장과 근육들도 다시 활성화되도록 전류를 흘려 넣었다.
마나가 흘러들어간 세포들도 하나둘 다시 깨어났다.
어느 순간 켄고의 몸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됐나?’
힘을 거두었다.
켄고는 계속 숨을 쉬었다.
“됐네.”
강지건은 켄고의 집을 떠났다.
잠시 뒤, 깨어난 켄고는 어리둥절해졌다.
‘내가 왜 여기서 자고 있지? 피곤했나?’
그때 뭔가 떠올리려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뭐지?’
이상한 느낌이었다.
뭔가 잃어버린 기분.
하지만 뭔지 몰라서 답답했다.
‘일단 씻자.’
켄고는 몸을 씻고 나와서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안주는 사두었던 과자.
“음.”
맥주와 과자를 세팅하고는 몸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티비를 켜지 않고 자연스럽게 음악을 틀었다.
히토미와 아스카의 노래가 흘러나오자 멍하니 노래를 들었다.
뭔가 그리운 느낌.
중요한 느낌.
“노래 좋네.”
하지만 기억은 모두 날아갔다.
켄고는 자신이 죽었다가 다시 부활한 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평범한 시민으로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