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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마스터
“이거 웃기네.”
일본의 정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강지건에게 다 알려지게 되어 있었다.
히토미와 아스카와 어울리던 친구들이 하나둘 살해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강지건에게도 알려졌다.
더구나 내부 회의에서는 히토미와 아스카가 과거를 지우려고 친구들을 죽이고 있다는 소리까지 나왔었다.
히토미와 아스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요?”
거너스 산하의 조직에서는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일본을 은밀하게 지배하고 있는 세력이 거너스였다.
그리고 거너스에 투항했던 야쿠자 보스와 간부들은 정계에 발을 들였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작은 공격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레알핑크와 연결된 야마다 타로가 최근 손을 댄 프로젝트가 바로 히토미와 아스카였다.
이 둘이 추문에 휩싸이는 거야 어떻게 넘어간다고 하지만 연쇄살인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은 심기를 굉장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마치 자신들을 노리고 억지로 연결점을 만들려는 수작이 아닌가 싶어서.
강지건을 찾은 야마모토 타로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명령만 내린다면 허튼 짓을 하는 놈은 누구든 다 날려버리겠다는 각오가 보였다.
“이런 건 조용히 처리해야지. 의외로 정치와는 전혀 연결이 없을 수 있으니까.”
강지건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일본의 네트워크를 죄다 뒤졌다.
이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아날로그를 좋아하니까 이럴 땐 정보 얻기가 힘드네.’
아날로그의 장점이 드러났다.
네트워크를 통하면 뭐든 감청이 가능한데 아날로그는 직접 감시를 해야 한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정보를 주고받거나 회담을 하는 경우에는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직접 심문하거나 하지 않는 이상 정보를 얻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네트워크에 정보를 올리지 않으면 흔적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강지건의 소스는 네트워크에 한정되어 있지는 않았다.
“조금 기다려봐.”
강지건은 궤도에 인공위성을 잔뜩 띄운 뒤 히토미와 아스카의 친구들을 밀착해 감시하기 시작했다.
괴한의 수법은 정말 교묘했다.
어두운 밤에 돌아다니는 이들은 죽었다.
비오는 날도 조심해야 했다.
밤보다 비가 오는 날에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
살해 현장도 여러 곳이었지만 공통점은 감시 카메라가 없고 목격자가 별로 없는 외진 곳이라는 점.
그나마 있는 목격자들도 너무 멀어서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이 다수.
하지만 그렇다 한들 우주의 띄운 우주선과 드론을 이용해 감시하는 강지건의 감시망을 빠져나가지는 못했다.
‘얼척 없는 놈이네.’
상대는 그냥 외톨이였다.
방구석 외톨이는 아니었다.
그냥 혼자 사는 남자였다.
전형적인 스토커.
강지건은 몰래 범인의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집요한 관심을 알 수 있었다.
스토커로서 히토미와 아스카의 주변 정보를 수집하다가 잇페이를 비롯한 녀석들의 흉계를 알아차린 것이었다.
사랑하니까 살인도 가능했다.
‘엄청난 사랑이군.’
부담스러울 정도의 사랑이었다.
범인에게 있어 히토미와 아스카는 하나의 빛이었다.
스스로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며 일기를 써댔으니까.
자기가 지켜주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투철했다.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사생팬의 레벨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이 자식을 가만히 놔두긴 그렇고.’
놔두면 계속 사고를 치게 생겼으니까.
‘조용히 죽일까?’
죽이는 것은 쉬웠다.
‘아니면 좀 가르쳐볼까?’
강지건은 결정을 내렸다.
켄고는 아르바이트를 끝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언제나 그렇듯 음악을 들으면서 걷는다.
히토미와 아스카의 노래를 들으면 언제나 소름이 돋는다.
너무 좋아서.
행복해지는 기분.
암울했던 인생에 찾아온 한 줄기 구원의 빛.
‘오늘은.’
그렇기에 용서할 수 없었다.
‘오늘도 응원해야 해.’
응원을 위해 죽인다.
히토미와 아스카의 앞길을 막으려고 한 놈들을 죽여야만 했다.
불미스러운 뉴스로 활동을 접는다면?
상상만 해도 켄고는 죽을 거 같았다.
분노가 치솟았다.
‘죽여야 해. 놈들은 다 죽어야 해. 세상을 살 가치가 없는 쓰레기 새끼들은 다 청소해야 해. 히토미와 아스카를 위해서 청소해야 해.’
켄고는 노래를 껐다.
분노가 치솟은 동안에는 노래를 듣지 않는다.
‘이런 마음으로는 노래를 들을 수 없어.’
더러운 감정으로 노래를 더럽힐 거 같아서였다.
‘청소하고 들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매일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
히토미와 아스카를 위해 돈을 벌 것.
히토미와 아스카의 앞길을 막는 쓰레기를 청소할 것.
식사는 돈을 벌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와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그렇게 발걸음을 빨리하며 집에 들어섰다.
그리고 굳었다.
“안녕?”
켄고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도망치면 히토미와 아스카에게 말해버릴 거야. 네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그러면 두 사람은 널 혐오하겠지. 경찰이 쫓아올 거고. 넌 네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미움 받을 거고. 그래도 도망칠 거야?”
히토미와 아스카의 팬으로서 야마다 타로를 모를 순 없었다.
모르면 진짜 팬이 아니란 소리까지 나돌 정도였다.
월드스타 강지건과 똑같은 얼굴을 한 야마다 타로가 자신의 원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이 섬뜩해지는 일이었다.
“얼른 안 들어와?”
켄고는 집안에 들어서서 문을 닫았다.
“원하는 게 뭡니까?”
“그냥. 너 때문에 히토미와 아스카가 경찰의 의심을 받기 시작했거든.”
“네?”
“히토미와 아스카가 사주해서 과거를 정리하려 한다고 떠드는 수사관이 있어서.”
순간 켄고의 눈이 번뜩였다.
“그 새끼가 누군데요?”
“가서 죽이게?”
“알려주세요.”
“그런 짓은 하지 마라.”
“하지만.”
“레알핑크를 무시하지 마. 총리까지 만든 회사다.”
순간 켄고는 입을 다물었다.
AV로 유명한 레알핑크였지만 지난 선거에서 벌어진 일을 알고 있었다.
일본의 정계를 물갈이해버린 세력.
이후 일본의 경제는 거짓말처럼 되살아나고 있었다.
경제민주당의 독주가 시작되었고 옛 일본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다는 평가가 매일 올라오면서 기존의 세력들은 철저하게 몰락했다.
연일 비리 수사에 끌려 다니고 있었다.
누구도 그들을 비호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비호하면서 저항하려던 이들은 숙청당했으니까.
비리 의혹을 받다가 자살 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자살 당하면? 언론에서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것으로 몰아갔다.
언론에서 그렇게 바람을 잡으면 사람들은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과거 일본 정치인들이 그렇게 일본 국민을 길들였다.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온 것이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모두 경제민주당을 찬양했다.
어쨌거나 어마어마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경제민주당을 처음부터 후원했던 것이 바로 레알핑크였다.
AV 회사라고 무시할 순 없었다.
현재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며 일본의 재벌 그룹으로 성장하는 중이었으니까.
야마다 타로는 그런 회사의 중역이었다.
AV 배우이지만 힘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야쿠자라는 설도 있었다.
일본의 어둠을 손에 넣은 남자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럼 절 어쩌실 겁니까?”
“생각 중이었다. 죽일까 살릴까? 내가 키운 히토미와 아스카에게 요상한 마음을 품고 있는 널 어떻게 할까 고민 많이 했지.”
“당신이 키웠다고?”
“게임 센터에서 만난 게 계기였지. 그냥 심심해서 돌아다니면서 놀다가 만났어. 놀다보니 집에 가기 싫다고 해서 원룸 하나 얻어서 살게 해줬지.”
“설마.”
“건드리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표정 지을 거 없고. 어쨌거나 걔들은 정말 아무 생각 없었어. 집에도 가기 싫어했고. 그래도 졸업이 다가오니까 고민하더라고.”
강지건은 켄고의 반응을 살폈다.
자신이 모르는 히토미와 아스카의 이야기가 나오자 얌전한 고양이가 되었다.
“그래서 재능을 이끌어낼 수 있게 좀 도와줬지.”
“감사합니다.”
“그래, 나한테 감사해야지. 내 덕분에 너도 두 사람의 노래를 들은 거니까.”
켄고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절 어쩌시려고?”
“고민 중이다. 스토커치고 상당히 과격한 놈이라서. 치워버리는 게 좋겠다 싶은데. 쓸모가 있을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기회만 주십쇼. 뭐든 하겠습니다.”
켄고는 바로 도게자했다.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박았다.
강지건의 눈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눈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쓰레기를 치우려고 할 때의 눈빛.
‘여기서 죽을 수 없어. 아직 더 노래를 듣고 싶어.’
“살고 싶냐?”
“네.”
“왜?”
“죽으면 히토미와 아스카의 노래를 더 못 듣잖아요.”
“흐음.”
강지건은 켄고의 뇌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초감각과 수많은 의학적 지식 그리고 경험을 통해 익힌 지식들이 상대의 생각을 읽는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저 자식 뇌는 저렇게 반응하네.’
실시간으로 보면서 익히고 있었다.
켄고를 죽이지 않은 것은 살펴보고 싶어서였다.
“너 잘 하는 게 뭐냐?”
“어 음.”
순간 켄고는 답을 잘 못했다.
“살인?”
“네.”
“어이없는 새끼.”
“죄송합니다.”
“널 히토미랑 아스카와 만나게 해주고 싶지 않아. 넌 위험한 놈이니까. 그거 아냐? 내가 아는 어떤 여자는 스토커에게 잡아먹힐 뻔했어. 개새끼가 사람을 진짜 먹으려고 했더라고.”
“저는 안 그래요!”
“그 새끼도 처음부터 그렇게 미쳤겠어? 다들 증상이 점점 악화되다보니 그런 거겠지. 너 새끼도 아까 내가 히토미랑 아스카와 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화냈잖아?”
“아닙니다.”
“아니긴.”
피식. 강지건은 비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이거 차고 있어라.”
강지건은 스마트 워치를 하나 주었다.
“이건?”
“스마트 워치야. 물론 너 감시용이고. 아직 널 어떻게할까 생각은 안 했는데 좀 두고 보려고.”
“그럼......”
“일단 살려는 줄게. 지켜볼 거야.”
강지건은 일단 관찰해보기로 했다.
휴식을 하며 색다른 자극을 찾던 차였다.
그렇기에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켄고를 관찰 대상으로 삼은 것이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많이 감사하고.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라.”
“네.”
“간다. 아, 이걸로 뭐 맛난 거라도 사먹고.”
강지건은 만엔 한 장을 쥐어주고는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