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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마스터
히토미와 아스카는 현재 생활에 만족했다.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불안을 느낄 일은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자신들을 거둬들인 강지건은 이상한 요구 같은 것은 일절 하지도 않았다.
말만 한다면 옷을 벗고 잠자리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강지건은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정말 더욱 의지하게 되었다.
“요번에 여행 갔다 왔는데.”
학교도 빼먹고 여행을 갔다.
히토미와 아스카의 이야기를 듣는 친구들은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나도 가고 싶다.”
“한 번 말해볼게.”
“정말?”
“응.”
얘기를 꺼내자마자 강지건은 버스를 빌려 친구들을 몽땅 태우고 여행을 떠났다.
이것이 알려지자 히토미와 아스카의 친구들은 항상 어울려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야마다상이 언제까지 받아줄 거래?”
“그냥 계속 있고 싶으면 그러라고 하더라.”
“돈 진짜 많이 버나보다.”
“혹시 나중에 애인 삼으려고 그러는 걸까?”
“그런 거면 좋겠다.”
히토미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야마다상의 애인이라니. 좋잖아?’
아주 가끔 만나게 되는 연인 같은 거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가족의 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 방황하던 히토미에게 강지건의 존재는 가족과도 같았다.
함께한 시간은 매우 짧았지만 느낀 정이 그만큼 크게 느껴졌다.
이는 아스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문제가 있어 가출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니 굳이 집에 돌아갈 필요성을 더욱 느끼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출석을 제대로 하니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별로 좋지 않은 등급의 학교였다.
출석이나 하는 수준이면 그걸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학교 안이건 밖이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내면 그걸로 만사 오케이라는 식이었다.
어쨌거나 두 사람은 졸업 시기가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슬슬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뭘 하는 게 좋을까?”
“야마다상한테 물어보자.”
“응.”
결국 두 사람은 강지건을 의지하기로 했다.
“니들 뭐하냐?”
두 사람의 원룸을 강지건이 방문했다.
시간에 맞추어 두 사람은 간단한 상을 보았다.
맥주와 맥주 안주를 준비한 것이었다.
“파파, 우리 미래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어서.”
“파파, 우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뭘 하고 싶은데?”
“모르겠어. 그런데 정말 뭐든 해도 돼? 돈 많이 들텐데?”
“뭐 배우는 거라면.”
“그럼 유학도?”
강지건은 길게 생각해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갈래? 미국? 영국? 말만 해.”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건데?”
“잘해줘도 뭐라 그러네. 싫음 말고.”
“아니, 그건 아닌데 가끔 불안해서 그래. 뭔가 막 속셈이 있으니까 몸을 바쳐라! 이런 거라면 차라리 속이 시원하겠어.”
“야, 내가 안는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젖비린내나는 꼬마 몸에 환장할 거 같냐? 어림도 없다.”
“왜? 여자는 젊을수록 좋은 거 아냐?”
“풉.”
강지건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오징어를 씹었다.
“지겹다 지겨워. 내 직업이 그건데.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랑 뒹굴면서 신경쓰고 싶지 않다.”
“그런데 AV 배우하면 어떤 느낌이야?”
“응, 섹스가 겁나 피곤한 느낌이야. 좋아하는 건 취미로 남겨둬라. 일이 되면 그것도 피곤해.”
강지건 본인이 느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몇몇 남자 배우들이 그런 모습을 보였다. 강지건은 이런 이들의 대화를 오다가다 들었다.
“나도 AV 배우하면 잘 할 수 있을까?”
“AV 배우 따윈 언제든지 할 수 있잖아. 다른 것부터 해보는 건 어때?”
“다른 거 뭐?”
“편의점 알바?”
“싫다.”
“진짜 싫어.”
히토미와 아스카는 정색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편의점을 자주 이용하다보니 가끔 진상 고객들에게 시달리는 알바생들을 보기도 했다.
그런 것을 볼 때마다 든 생각은 ‘저런 일은 안 해야지’라는 생각이었다.
“지금부터 공부할 거 아니면 사실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건 아니잖아.”
“와, 이렇게 보니까 우리 빨리 결혼 못하면 막 40살까지 온갖 일을 하다가 추하게 늙는 거 아닐까?”
“마케이누 되는 거야? 싫다.”
두 소녀는 호들갑을 떨다 강지건을 보았다.
“우리 둘을 번갈아가면서 부인으로 삼아보실 생각은?”
“어떻게 정상적인 사고를 안 하냐?”
“헤헤. 친구를 버릴 순 없잖아.”
“의리는 좋아 보인다.”
강지건은 피식 웃어넘겼다.
“그래도 뭔가 한 번 도전해봐.”
“으응, 지금부터 해봐야 파티쉐 정도 밖에 생각 안 나는데.”
“아, 모델이나 연예인 할 순 없을까?”
“그러게. 아이돌 도전해볼까?”
“아이돌?”
“응! 아이돌!”
순간 강지건은 아키하바라를 돌아다니다 본 아이돌들을 떠올렸다.
‘일본과 한국은 아이돌의 간극이 참 크지.’
한국에서 아이돌은 가수로 통하지만 일본에서는 달랐다.
일본에서는 종합 엔터테이너 정도로 여겼다.
그렇기에 가수 활동은 연예계 활동 중 하나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미성숙한 아이가 아이돌로 연예계에 데뷔하고 응원을 받으며 성장하는 서사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늦은 나이에 도전이냐? 중학생 때 시작해도 늦었을 텐데?”
“그렇긴 해.”
히토미와 아스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모델이 최우선일까?”
“성우를 해볼까?”
생각나는 것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아키하바라를 돌아다닌 이유는 거기서 나중에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가장 많이 보인 것은 메이드복을 입은 카페 직원과 행사 도우미 같은 것들이었다.
의류점 판매 직원이 되는 것도 생각해보기는 했지만 그리 마음에 드는 일은 또 아니었다.
“아이돌로 데뷔는 마음 먹으면 시켜줄 순 있지만 이건 사업이잖아? 그러니까 니들이 가능성을 보여야지.”
“기획사 능력 아닌가?”
“그 기획사에서 니들이 팔릴만하다고 생각해야 데뷔시켜주겠지?”
“으응, 그러네.”
일본 아이돌이 실력이 없어도 괜찮다고 하지만 세일즈 포인트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판단되면 받아주지도 않는다.
일본의 정서에 맞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의 아이돌 문화는 강지건에게는 매우 낯설었다.
‘뭐 이런 저런 것이 있는 거겠지.’
새로운 것을 하나 또 배웠다.
딱히 취향은 아니지만.
완성형 아이돌이 아닌 성장형 아이돌.
‘아이돌도 가챠. 가챠 왕국 다워.’
응원해서 잘 크는 아이돌이 있는가하면 얼마 안 가 그만두고 고향으로 가거나 다른 일을 하는 아이돌도 있다.
연습생 혹은 아이돌 중에 AV 배우로 전향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근데 노래라도 잘 부른다면 못 밀어줄 건 없는데. 그런 거 아니잖아. 니들.”
“데헷?”
“큥!”
장난스럽게 답하는 둘이었다.
“그냥 시골 내려가서 농사나 지어. 아니면 생선이나 다듬던가.”
“아, 우리 시골로 팔려가는 거야?”
“그냥 야마다상 애인하면 안 돼?”
“나 여자 많다.”
“피이.”
히토미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모르겠어. 뭘 해야 좋을지.”
“해보고 싶은 것 중에 안 해본 걸 해봐.”
“으음, 어릴 땐 운동 좋아했는데 포기했어.”
“왜?”
“집에서 안 도와줘서.”
가정환경이 안 좋았다. 단순히 돈이 없어서 못했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냥 집에서 뭘 하지도 못하게 했다.
“저런.”
안타까운 일이었다.
십대의 시간은 굉장히 중요하다.
인간은 태어나서 6살까지 뇌의 95% 정도가 자란다. 무럭무럭 자란다. 하지만 이게 성장의 끝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뇌가 성숙해지기 시작한다.
뇌세포간의 연결이 세밀해지는 것이다.
10대 때 왕성하게 뻗어나가며 불필요한 연결이 끊어지고 가지가 정리된다.
이게 의미하는 것은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경험에 의해 이리저리 이어지고 끊어지게 된다는 소리다.
무엇인가에 소질이 있다면 그것을 개발해서 연결해야 재능으로 발전한다.
10대 때에 재능을 키우기 제일 좋다는 의미다.
대뇌의 앞부분인 전두엽피질은 25세까지 성장한다.
사춘기에 가장 왕성하게 성숙해진다.
판단력과 결정력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판단력과 결정력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계기는?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다.
고통스러운 것을 피하고 이로운 행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반응하도록.
거짓말로 이득을 많이 보면 거짓말이 더욱 능숙해지고 공부로 인해 큰 보상을 받으면 공부에 더 집중하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취를 이뤘을 때의 느낌이 강렬하면 거기에 또 다시 집착하고.
환경이 굉장히 안 좋아서 가족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사람은 굉장히 방어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뇌의 형태를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면 심리나 반응조차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해진다.
뇌전을 이용하는 강지건은 이런 사실을 하나둘 깨달았다.
최근 분신을 만들어내면서 이러한 정보들을 흡수한 것이었다.
‘환경이 안 좋았으니.’
환경이 안 좋다는 것은 딱히 집에 돈이 있냐 없냐의 문제만이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도 가족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폭력적이거나 문제가 있다면 안 좋은 쪽으로 스위치가 눌리게 된다.
‘주희 생각나네.’
강지건은 가정환경 때문에 마조히스트의 조건을 갖추었던 서주희가 떠올랐다.
똑같은 행동이나 말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다 마조가 되는 것이 아니다.
마조 스위치가 만들어져있지 않으면 아무리 누르려고 해도 안 눌린다.
하지만 가정환경 때문에 스위치는 만들어졌고 강지건은 이를 찾아내서 눌렀다.
그러자 서주희는 자신의 욕망을 풀어냈다.
마조가 되어 강지건에게 매달렸다.
딱히 강지건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찾아서 눌렀다면 서주희를 진성 마조로 만들 수도 있었다.
‘바꿀 수 있을까?’
문득 강지건은 생각했다.
“나한테는 힘이 있지.”
“무슨 힘?”
“난 사실 초능력 매니저야. 너희들에게 힘을 줄 수 있어.”
“흐응?”
히토미와 아스카는 계속해보라는 표정이었다.
“잘하고 싶은 게 뭐야? 가수가 되고 싶어? 운동 선수가 되고 싶어? 내가 만들어줄 수도 있는데.”
“진짜?”
“정말?”
“해볼래?”
히토미와 아스카는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해줘.”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은 강지건을 신뢰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해서 손해볼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생각해봐.”
“난 가수.”
“나도 가수할래.”
히토미와 아스카는 무대에 서고 싶었다.
“사람들의 환호를 받아보고 싶어.”
“관심 받고 싶어.”
애정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