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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 비무 그리고 방문자
‘칼. 수련해볼까?’
지구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도 점점 시들해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너무 많이 하니까 지루해지는 중이었다.
어쩌다 한 번 돌아볼 땐 새롭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면 노동처럼 느껴진다.
노동처럼 느껴지는 순간 즐거움은 반감된다.
‘무왕계에서 비무행이나 해봐야지.’
싸움, 승리를 위한 비무행은 절대 아니었다.
능력만 사용하면 무왕계의 인간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으니까.
다만 취미로 춤을 배우는 것처럼 순수하게 육체의 힘만으로 검술을 익혀볼 생각이었다.
어딘가에 쓸모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그냥 해보고 싶으니까 하는 것이다.
“나 검술 좀 배울게.”
“알겠습니다.”
야은설이 히죽 웃으며 따라붙었다.
“제가 모셔도 되죠?”
“물론.”
“저도 할게요.”
라다도 다가왔다.
“그래.”
“저를 빼놓으시면 곤란해요.”
현재 지구의 사업은 물론 세계의 사업은 조직원들이 굴리는 중이었다.
이제 라다와 진매령 그리고 야은설이 직접 뛰어다니며 뭔가 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랜만에 함께 가보자.”
강지건의 첫 서번트인 라다와 그 다음 순번인 진매령과 야은설을 데리고 무왕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무왕계.
세계의 권력자들을 털어서 카리아 제국의 밑으로 귀속시켰지만 그렇다고 문명을 한꺼번에 바꾸지는 않았다.
무왕계는 순수하게 그냥 남겨두었다.
강지건의 별장과 같은 세계로.
때문에 무왕계의 사람들이 스스로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면 발전을 내버려두기로 했다.
무공을 이용하는 자들은 평범하게 살아갔다.
강지건과 라다 진매령 그리고 야은설은 초호화 마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겉모습은 마차지만 캠핑카나 다름없었다.
앞에 말들이 마차를 끌게 해두었지만 사실 마차 자체가 말없이도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었다. 다만 무왕계의 사람들을 생각해서 마차처럼 위장했을 뿐이었다.
두두두두.
마차가 관도를 달린다.
잘 닦인 길을 따라 달리는 데 갑자기 산적들이 튀어나왔다.
문명을 발전시켰다면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배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구역이라 생각되는 곳에서는 무법자들이 설친다.
살인멸구가 가능하다?
범죄를 저질러도 아무도 모를 수 있다.
이런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괜히 아무 것도 신경 안 쓰고 헤벌레 웃으며 다니는 게 멍청한 짓이다.
사람만 믿고 정글 속에 들어갔다가 살해 당할 수도 있다.
안내원은 그냥 어디로 가서 실종되었다고 하면 그만이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막 한 가운데에 묻어버리면?
시체가 언제 발견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때로는 자기 집 밑에다 묻어버리는 인간들도 있다.
그러면 적어도 살면서 발각될 확률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땅에 묻힌 시체는 누군가 파내기 전까지는 아무도 발견 못한다.
100년이 흐른 뒤에는 사건을 조사해봐야 재판 따윈 하지도 못한다.
어쨌거나 외진 곳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문명국가의 일부라고 해도 외진 곳에서는 범죄가 일어나기 쉽다.
목격자가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 순간 친절하던 지인이 악마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아무래도 상관없는, 죽음을 불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거 한다고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강지건이 탄 마차의 앞을 가로막은 마적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배고파서 근처의 마을을 약탈했다.
그리고 마적이 되어 돌아다녔다.
죽기도 하고 새로운 동료를 얻기도 하면서 살아남은 마적 집단은 점점 강해졌다.
시간이 오래 지나자 마적 집단은 하나의 훌륭한 무력 단체로 성장했다.
싸움의 귀신들이나 오래 살아남으니까.
그런 이들이 모이고 모여서 거대한 집단을 이루니 막을 자들이 별로 없었다.
군대가 동원되어야 할 수준이었다.
배고파서 마적이 된 자들은 이제는 성공을 위해 약탈한다.
꿈을 꾸기도 한다.
문파를 설립하거나 한 지역의 패자가 되거나.
여러 가지 꿈을 꾸며 약탈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하하! 안녕들 하신가? 어디 가시는 길이신가?”
“그건 알아서 뭐하게?”
“뭐? 대화 할 생각이 없으신가? 그럼 신상에 매우 안 좋을 텐데?”
“왜?”
“통행료가 비싸질 거야.”
“통행료?”
강지건은 피식 웃으며 마부석에서 내려왔다.
손에는 검을 들고.
“나와 비무해서 쓰러트린다면 저 마차를 주지.”
“여자들은?”
“날 죽여야 할 걸?”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군.”
마적 두목이 손짓하자 젊은 남자가 말에서 내려 다가왔다.
손에는 창을 들고 있었다.
“솜씨가 어느 정도인지 한 번 볼까?”
젊은 마적이 창으로 찔렀다.
챙!
강지건은 어렵지 않게 쳐냈다.
반사신경과 육체능력만 이용해도 어지간해서는 공격을 허용할 일은 없었다.
“호오? 한 수 있다는 건가? 그럼 이것도 막아보시게.”
챙챙챙!
삼연속 찌르기.
창과 검은 길이에서부터 다르다.
복싱으로 치자면 인파이터와 키가 크고 리치가 긴 아웃복서와 붙은 꼴이다.
신장, 리치의 차이는 치명적이다.
자신의 공격은 닿지 않는데 상대는 얼마든지 견제는 물론 치명적인 공격을 찔러넣을 수 있으니까.
이를 극복하려면 보다 빠른 움직임이 필요하다.
과감한 돌진.
카운터 공격.
혹은 맷집.
복싱에서는 맞으면서도 뚫고 들어가는 게 가능하지만 냉병기를 이용한 전투에서는 이게 힘들다.
한 번 상처가 나면 출혈이 생기니까.
출혈이 있는 쪽이 매우 불리해진다.
전투 시간이 길어지면 출혈이 있는 쪽은 실신하게 되니까.
상처를 제때 치유하지 못하면 사망에 이른다.
굳이 심장을 찌르거나 목을 칠 필요도 없다.
팔이나 다리만 베어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때문에 창을 든 사람은 매우 유리하다.
강지건은 검을 들고 있는 쪽이었다.
리치가 짧으니 위험한 쪽이다.
더구나 자신의 모든 능력을 봉인하고 순수하게 육체적인 능력과 검술만 가지고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강지건은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여기서 이렇게.’
창을 쳐내고 찌르고 상대의 공격을 살피면서 조금씩 경험을 쌓고 있었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챙챙챙!
공격은 하지 않는다.
다가가지도 않는다.
다만 상대의 공격을 읽고 쳐내기만 할 뿐.
페이크도, 현란한 연속기도, 온 힘을 다한 필살의 일격도 모두 부드럽게 쳐냈다.
‘역시 사기적인 몸.’
마적과 싸우면서 강지건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육체가 어느 정도인지 깨달았다.
‘주먹으로만 쳐도 다 박살 낼 수 있을 거 같아.’
마나 따윈 쓰지 않고도 무적으로 군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많은 여자와 쉬지 않고 섹스를 하며 갈고 닦은 육문공, 의식하지 않아도 계속 자동으로 수련되는 육문공에 의해 강지건의 몸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괴물 같아지고 있었다.
‘나라는 괴물. 막을 수 없는 거물.’
챙챙챙!
“후욱!”
마적은 물러섰다.
“한 수 있는 놈인 줄 알았더니만 한 수가 더 있었군.”
마적의 두목이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너는 혼자다. 혼자서 뭘 할 수 있지?”
“더 강한 사람 없나? 날 쓰러트릴 자신이 전혀 없는 건가?”
“네가 이긴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보여준 것을 보고도 그런 소릴 하나?”
“흥, 그까짓 잔재주.”
“그럼 너에게 비무를 청한다. 내가 이기면 마적은 내 아래 들어오고 네가 이기면 내 목숨을 내놓겠다.”
“하하! 네가 날?”
“네 부하들은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겠군. 날 우습게 여기면서 싸우려 하지 않는 두목을 말이야. 설마 부하들보고 나를 죽이라고 시킬 건가? 난 혼잔데? 나 하나 잡지 못할 능력이라면 두목의 자릴 내놓는 게 맞지 않나?”
순간 마적들의 분위기가 슬쩍 바뀌었다.
기본적으로 약탈자들이다.
신뢰?
얄팍하다.
우두머리가 죽으면 다음 실력자가 우두머리가 될 뿐이다.
“네 놈 밑으로 들어간 부하들이 무슨 꼴을 당할 줄 알고?”
“적어도 불필요하게 떠돌아다닐 일은 없을 것이다. 전부 내 상단에서 고용할 테니까.”
“뭐 상단?”
“우리 집은 검녀문과 거래하는 상단이다. 내가 부자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지.”
순간 부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끼어들었다.
“두목, 애송이 취급을 했으면 한 번 이겨보쇼.”
“뭐? 너 이 새끼!”
“굳이 힘들게 떠돌아다닐 필요 있나? 검녀문과 거래에 발만 걸쳐도 떼돈을 버는데. 이러고 다니느니 그냥 은퇴해서 술집이나 하고 싶은데?”
“맞아. 난 객잔을 할 거야.”
“난 포목점.”
“난 땅을 사서 농사를 지을 거야. 대지주가 될 거야.”
“난 기루나 하고 싶은데.”
마적 생활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편한 것도 아니다.
검녀문과 거래를 하게 되면 약탈하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었다.
워낙에 소문이 났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삼류 무공이라도 비급을 가져다주면 후하게 셈해주기도 했다.
“난 무관을 차려서 삼류 무공을 잔뜩 만들어낼 거야. 그걸 검녀문에 넘기면 늙어 뒈질 때까지 돈 걱정은 없다고.”
부두목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마적 생활을 청산할 길이 보였다.
“다 이 놈의 말뿐인데 그냥 믿는 건가?”
“여기 패.”
강지건은 품에서 패를 꺼내 던져주었다.
“그거면 확인이 되나?”
“이게 뭔줄 알.... 어?”
황금패였다.
검녀문과 거래하는 상인에게만 주어지는.
“자, 나랑 비무해서 이기면 그 패는 니꺼야. 이래도 싫어?”
“흥! 못 믿겠다?”
“못 믿어? 아니 못 믿는 거야? 아니면 질까봐 겁이 나는 거야? 쫄았어? 쫄았네. 쫄았으니까 자꾸 혓바닥일 길어지지. 하여간 니들도 고생이나. 저런 겁쟁이를 두목으로 삼고. 아마 위험한 일은 다 니들이 앞장서고 좋은 건 저 놈이 다 쳐먹겠지. 그게 좋냐?”
두목은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두목, 젊은 놈 하나 못 잡는 거요? 우리가 저놈 잡기 위해 싸워야 하는 거요? 몇이 죽을 때까지?”
불만이 폭발했다.
“좋다!”
결국 두목은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닫고 이를 뿌드득 갈았다.
“네 놈은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말을 달려 창을 내지르는 두목.
하지만 강지건은 여유롭게 피하며 창을 쳐냄과 동시에 말의 다리를 베어냈다.
모든 것은 한 순간.
육체의 힘만으로.
촤악!
공간이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