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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강탈 그리고 소문
모텔을 나오자 거너스 멤버 하나가 다가왔다.
모텔은 거너스와 손을 잡았던 켄진카이 소유로 있던 부동산이었다.
이것이 결국 거너스에게 넘어오며 거너스는 아지트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모실까요?”
“음, 바이크만 빌려줘.”
“네.”
평범한 옷차림으로 바이크에 올라탔다.
절대 빠르게 달리지 않았다.
거너스 멤버들의 폭주 이후 경찰들은 오토바이를 노이로제가 걸린 것처럼 단속했다.
조금만 속도를 올리거나 위반하는 게 포착되면 악착같이 따라와 대가를 치르게 했다.
청소년이라고 봐주는 것도 없었다.
특히 거너스 라이더들이 입는 옷을 입고 다니면 불심검문을 꼭 했다.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서.
하지만 청소년들이 코스프레를 하기 시작하며 이러한 일은 그다지 효과를 보지는 못하고 있었다.
일본 도쿄의 교통은 한 마디로 거너스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만든 것은 강지건이었다.
천천히 돌아다니며 감각을 널리 퍼트렸다.
순찰차는 교묘하게 피해 다녔다.
‘어디 보자.’
헌팅을 위해선 사냥감을 찾아야 한다.
‘많이 한적하네.’
밤거리는 과거처럼 붐비지 않았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섹스 상대를 찾는 남자와 여자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미팅을 하는 사람들도 줄어들었다.
순수하게 데이트를 즐기거나 친구들과 나온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섹스가 목적인 이들은 대부분 레알핑크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가상현실로 즐기면 훨씬 다양한 이성과 다양한 방법으로 즐겨볼 수 있으니까.
더구나 VRAV는 AV 배우와 직접 하는 기분을 낼 수도 있었다.
섹스를 즐기는 남자들은 더 이상 여자를 꼬신 것을 잘난채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새로운 배우 발굴을 위한 대화를 더 자주했다.
배우들의 등급을 나누는 일도 있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곱상한 소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은 느낌.
큰돈을 쓰지 않고도 섹스한 기분을 낼 수 있는 VRAV는 좋은 것이었다.
괜히 일본의 유흥 문화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고 하는 게 아니었다.
물론 진성으로 즐기고자 하는 이들은 여전히 현실에 집착하기도 했다.
아날로그파.
이들은 디지털을 허상이라며 비웃으며 진짜로 한 것을 최고로 쳤다.
어쨌거나 일본의 밤은 굉장히 한적해졌다.
하지만 밤에 거리로 나오는 이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뭐? 못 나온다고? 어. 알았어.”
연인들이 모이는 곳에 갔더니 잡히는 대화가 있다.
약속 펑크.
흔한 일이다.
근사한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을 잡고 나왔는데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서 취소되는 상황.
일부러 바람맞히려고 했다고 보긴 어렵다.
회사에서 일하다보면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해 잡히는 경우는 흔하니까.
하지만 비슷한 일이 너무 자주 발생하면 본의든 아니든 관계는 소원해진다.
“후우.”
강지건에게 한 여인은 폰을 멍하니 바라보다 하늘을 보는 것이 포착되었다.
미우라 쥬리는 가슴이 답답했다.
‘정말 일하는 걸까?’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번이 몇 번째인지 모른다.
연인이 데이트 약속을 깬 것이.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약속을 깨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었다.
정말 일이 바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의심이 생겼다.
찾아가서 확인해보고 싶을 정도였다.
‘아니야, 그런 짓을 했다가 걸리면 끔찍한 여자라고 하겠지.’
뒤를 밟는 여자라며 화를 낸다면?
스토킹을 한다며 헤어지자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헤어지면 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벌써 2달 째 연인과 데이트를 못했다.
통화는 가끔 하지만 짧았다.
‘이 정도면 끝나도 이상한 건 아니겠지.’
인생은 짧다.
미우라 쥬리는 자신의 나이를 떠올려 보았다.
‘24살.’
일본에서 흔히 떠도는 이야기.
여자 나이를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빗대어 25살 이후로는 안 팔리게 된다는 말.
신경 쓰이게 하는 말이었다.
미우라 쥬리는 믿고 있지 않는 말이었지만 신경이 쓰였다.
나이 들어서 결혼 못한 여자를 마케이누, 싸움에 진 개라고 표현하는 일도 잦았으니까.
‘답답해.’
24살.
연애의 황금기에 2달이나 데이트를 못했다.
연인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매번 약속이 깨지니 뭔가 굉장히 손해 본 느낌도 들었다.
“안녕하세요.”
“네?”
한숨을 푹푹 내쉬는데 말을 걸어오는 남자.
바라보니 누군가 번쩍 떠올랐다.
“강지건?”
“아닙니다. 야마다 타로라고 합니다.”
“네? 아네.”
이상한 사람.
미우라 쥬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뜸 자신의 이름을 밝히다니.
“시간 있으면 한 잔 어때요?”
“네?”
“당신이 마음에 들어서요. 얘기 좀 해보고 싶어요.”
직구.
쿵.
겁이 나기도 했지만 두근거리기도 했다.
더구나 상대는 못 생겼지만 월드 스타인 강지건과 똑같은 얼굴.
미우라 쥬리도 아는 얼굴이었기에 경계심이 그리 크지만은 않았다.
강지건이란 월드스타에게 호감이 있었기에 닮은 얼굴을 한 존재에게 자연스럽게 좋은 점수가 주어진 것.
괜히 인기 연예인들의 스타일링을 따라하거나 닮은 얼굴들이 인기가 많은 게 아니다.
정말 환장하게 좋아하는 사람과 닮았으니까 무의식적으로 호감을 느끼는 거다.
물론 연예인을 따라한다고 모두 인기가 있는 건 아니다.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오히려 혐오와 경멸의 대상이 될 뿐이다.
“어, 음.”
미우라 쥬리는 살짝 망설였다.
“너무 부담 가지지는 마시고요. 술이 좀 그러면 차라도 하죠. 친구를 부르셔도 좋고요.”
“그래요?”
“네, 그냥 얘기가 해보고 싶어서 그래요.”
부드럽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미우라 쥬리는 친구를 부르기로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친구는 금방 나오겠다고 했다.
강지건은 두 명의 여자와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미우라 쥬리 그리고 사카모토 카오리.
“취미가 참 활동적이시네요.”
“네, 산에 가면 정말 재미있어요.”
“그런데 여자 둘이 가는 건 좀 위험하지 않나요?”
“예전에는 친구들하고 같이 다녀서 괜찮았는데 이젠 힘들죠.”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등산을 즐겼다는 두 여자였다.
등산이라고 해도 암벽 등반이나 높은 산을 오르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적당히 풍경 좋은 곳을 찾아가 야영을 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제 슬슬 다음으로 넘어갈까요?”
“네?”
“아는 레스토랑이 있어요. 제가 살게요.”
“아니, 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제게 시간을 내준 보상이니까.”
“네.”
처음 보는 남자가 밥을 사겠다니 거부감이 들면서도 나름 호기심이 생겼다.
애초에 함께 할 생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만난 것이었다.
데이트도 어그러지고.
답답하고 우울한데 그냥 놀아볼 생각이었다.
세 사람은 그렇게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레스토랑은 매우 작은 곳이었다.
사실 간판이 세워진 것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체시가 갑자기 요리를 해보겠다면 시작했다.
강지건이 헌팅을 한다니 보고 있다가 냉큼 달려온 것이었다.
원래는 식당을 하던 곳을 간판을 떼고 레스토랑으로 인테리어를 조금 손보았다.
테이블을 모두 빼고 고급스러운 원목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다 놓고 자질구레한 장식들을 모두 떼어낸 뒤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영상을 띄웠다.
“와아.”
“멋있죠?”
인테리어는 간단했다.
컨셉은 우주.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까지.
우주의 별빛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본다.
상대를 볼 때면 배경으로 우주의 별빛이 가득한 게 눈에 들어온다.
뭔가 어지러우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
요리가 차례대로 나왔다.
“이건 우주식 같네요.”
에피타이저부터 굉장히 간단한 모습이었다.
“진짜 우주식은 아니죠. 흉내낸 거니까.”
“여기 자주 오셨나봐요?”
“네, 몇 번 왔어요. 제가 아는 친구가 하는 곳이라서.”
“그렇군요.”
한 번도 듣지 못한 특이한 레스토랑이었다.
음식도 상당히 맛있었다.
“어라, 맛있어요.”
사카모토 카오리가 기분 좋게 웃으며 허겁지겁 먹었다.
“야마다씨는 이런 요리 자주 먹나요?”
“네.”
“와아,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게임 관련 회사에 다닙니다.”
야마다 타로는 서류상 레알핑크 직원이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에피타이저 다음에는 메인 요리가 바로 나왔다.
아주 코스 형식만 취한 것이었다.
“메인은 갑자기 우주가 아닌 느낌?”
“뜬금없지만 햄버그 스테이크라니. 이상해요.”
“이게 바로 우주에서는 사치가 되는 겁니다.”
“왜요?”
“우주에선 직접 조리는 사치거든요. 불을 피우는 것도 안 되죠.”
포장된 것을 데워먹는 것이 현재 지구의 수준인 것이다.
“상상해보세요. 볶음밥을 만들려고 뒤집는데 내용물이 둥둥 떠다니면서 흩어지면 어떻게 될지.”
“어어, 끔찍할 거 같아요.”
쌀이니 계란이니 새우니 모두 떠다니게 된다. 기름도 방울져서 떠다닐 것이다.
무중력 상태니까.
사람도 떠다니고 물방울도 떠다닌다.
우주 정거장 내부에서 불을 피운다는 것은 이를 위한 특별한 시설을 만든다는 것이고 이것 자체가 큰 사치인 셈이다.
“정말 금방 그릴에 구운 햄버그, 그리고 쇠고기 스테이크 같은 게 우주 정거장 같은 곳에선 사치가 되는 거죠.”
와인을 한 모금하며 고기를 썰어 입에 넣자 환상적인 느낌이 혀를 통해 전신으로 퍼졌다.
“아, 이건 정말.”
“와인이 엄청 대단한 거 같아요.”
두 여자는 연신 밝은 표정이었다.
“식사에 초대한 보람이 있군요.”
“네?”
“두 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에요. 오늘 정말 행복합니다.”
“으응.”
부담스러웠지만 미우라 쥬리는 얼굴을 붉혔다.
싫지는 않았으니까.
엉겁결에 나왔던 사카모토 카오리도 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친구와 먼저 만났기에 마음 한구석에서 고개를 들던 욕망을 살짝 눌러주었다.
메인 다음에는 디저트였다.
달달한 디저트는 함께 나온 술과 상당히 잘 어울렸다.
“여기 바도 겸하는데 얘기나 계속 하죠.”
이어서 한쪽에 위치 한 바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술잔을 주고 받았다.
두 여인은 점점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