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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
‘건방진 새끼.’
강지건이 다가오자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던 몸이 보였다.
‘응?’
민소매 밖으로 보이는 문신에 눈을 찌푸렸다.
‘야쿠자?’
경계심이 일었다.
“이봐. 야쿠자가 일반인을 괴롭히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어?”
“야쿠자? 누가?”
“너!”
“내가? 아닌데?”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비웃음을 머금고.
“겁먹은 개새끼 같네. 아니 계집애인가? 조잘조잘. 조잘조잘.”
“이!”
감정에 지배되는 10대. 그것도 폭력적인 성향이 무척이나 강한 장시옌은 바로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빼들고 달려들었다.
“오오?”
휘익.
허공을 가르는 나이프.
장시옌은 현란하게 나이프를 휘둘렀다.
“너 이거 어디서 배웠냐? 보통 솜씨가 아닌데?”
흥분해서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게 아니었다.
군인들이 사용하는 단검술에 굉장히 가까웠다.
“흥!”
다시 덤비는 장시옌.
“어른이.”
퍼억.
손목을 강타하자 나이프가 떨어졌다.
“말을 하면.”
퍼억.
턱이 돌아갔다.
“대답하라고 안 배웠냐?”
털썩.
장시옌은 그대로 쓰러지며 기절했다.
“니들 생각은 어때?”
“이익!”
리더가 당했지만 도망가지 않고 덤비는 멤버들.
그 순간 여자는 자유로워지자 냅다 도망쳤다.
허나 강지건은 신경쓰지 않고 플라잉소드 멤버들을 맞이했다.
“버르장머리가 없어요. 하여튼.”
퍼퍼퍼퍽.
빠르게 움직이며 연속으로 턱을 가격했다.
쇠파이프와 나이프 등 무기를 휘두르려던 플라잉소드 멤버들은 죄다 기절하며 쓰러졌다.
뒷골목에 서 있는자는 오직 강지건 하나뿐이었다.
“시시하네.”
강지건은 골목 끝을 보며 손짓했다.
거기에는 한 남자가 폰으로 촬영중이었다.
“이리 와. 얼굴 봤어. 도망치다 잡히면 죽는다?”
“하하, 죄송합니다.”
촬영하던 남자는 머리를 숙이며 다가왔다.
건장한 체격에 야구 점퍼를 입고 있었다.
“시로켄카이?”
“아, 아닙니다. 아직은.”
“찍은 거 어디로 보냈어?”
“네?”
“나중에 내 영상 딴 데서 나오면 너부터 죽일 거니까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음, 이름이. 그래 고바야시 켄조 맞지?”
순간 고바야시 켄조는 공포를 느꼈다.
처음 보는 남자였다.
이름을 말하지도 않았다.
아무런 접점이 없었는데 강지건이 폰을 보더니 자신의 이름을 맞추었다.
“집주소도 불러줘?”
“아뇨, 죄송합니다.”
고바야시 켄조는 냉큼 폰을 내밀었다.
“직접 확인해주시죠.”
손이 덜덜 떨렸다.
‘왜 이런 일을 나한테.’
근처에 일 없이 있다가 호출을 받고 냉큼 뛰어왔다. 한구레, 그냥 소규모 갱단에 소속된 불량 청소년이었지만 사실은 훗날 야쿠자 조직인 시로켄카이에 입단할 계획이었다. 덕분에 여러 모로 지원도 받고 일도 받으며 조직원들의 신뢰를 얻고 있었다.
좀 위험한 일을 의뢰받긴 했지만 꾸준히 일감을 받아오는 고바야시 켄조는 갱단 멤버들의 신뢰를 받았다.
그렇게 시로켄카이에 선을 대고 지내다가 갑자기 10만엔, 100만원을 줄 테니 영상 하나 찍어오란 말에 냉큼 받아들였다.
그랬는데.
“시로켄카이에서 시킨 일인 거 다 알아. 내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지간히 우습게 보였나보네.”
“아니, 그제 저.”
강지건은 바로 야마모토 타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우스웠나?”
“미안하다. 사실은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라서 어쩔 수 없었다.”
시로켄카이의 상부 조직인 켄진카이에서 내려온 지시였다.
보고를 받자마자 믿을 수 없다면서 일단 하는 일을 찍어두라고 지시를 한 것이었다.
거절하면 하극상인 상황.
“켄진카이 맞지? 거기 두목한테 시간 비워두라고 해.”
강지건은 피식 웃으며 통화를 끊었다.
고바야시 켄조의 폰에 찍힌 영상을 지우고는 다른 것들을 감상했다.
“여자가 꽤 많나봐?”
“그게 그냥 알고 지내다보니.”
“그래, 어쨌거나 괘씸하니까 일 좀 하나 더 해줘야겠다.”
강지건은 고바야시 켄조의 오토바이 뒤에 앉았다.
“시동 걸어.”
툭.
앞에 탄 고바야시 켄조의 헬멧을 툭 쳤다.
“뭐? 놈이 오겠다고 했다고?”
“네.”
“건방진 놈이네.”
켄진카이의 부두목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심하시는 게 좋습니다. 미친놈 같으니까요.”
“그래, 그러는 게 좋겠지.”
부두목은 금고에서 총을 꺼내 챙겼다.
“그런데 큰형님께 보고는.......”
“됐어. 이런 일로 큰형님을 번거롭게 할 수 없다.”
얼마 뒤, 강지건이 조직의 건물 앞에 나타났다.
“건물 좋네.”
강지건은 현제 켄진카이를 비롯해 야쿠자 조직에 사실 별 원한은 없었다.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맥주와 감자칩을 즐기다 질려서 찾은 것이었다.
‘야쿠자 영화 탓이야.’
보면 하고 싶다.
견물생심.
문득 스쳐가는 기억에 결국 선택했다.
‘나중에 한국에 가서도 할까 말까 할까 말까?’
세계는 넓고 폭력조직은 많다.
이들과의 싸움은 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하며 검증하는 과정에 불과했다.
어린아이가 영화를 보면 따라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강지건도 기분에 따라 해보는 것일 뿐이었다.
원한이나 이득과는 거리가 아득히 먼 행동이었다.
“야, 맞고 비킬래 그냥 비킬래?”
문을 지키는 야쿠자들은 표정을 굳혔다.
“칼이냐 총이냐?”
품에 들어갔던 손이 나오자 날카로운 단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칼 뽑았으면 잘리는 거 알지?”
야쿠자들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강지건의 몸이 움직였다.
서서히 다가갔다.
야쿠자들은 가까이 다가오자 단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모두 강지건의 손에 막혔다.
어느새 단도는 강지건의 손에 잡혀 있었다.
“어?”
“내놔.”
서걱.
새끼 손가락 하나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다른 야쿠자의 손이 잡히더니 역시 새끼 손가락 하나가 잘려서 떨어졌다.
“얌전히 있으면 더 아프겐 안 할 테니까.”
덜덜덜.
야쿠자들은 떨며 움직이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강지건의 움직임이었다.
그냥 모든 것이 빨려들어간 느낌.
‘대체 어떻게?’
안 돌아가고 지켜보던 고바야시 켄조도 깜짝 놀랐다.
강지건은 서서히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덤비는 야쿠자들의 새끼손가락을 자르면서.
그러자 얼마 안 있어 부두목이 나타났다.
“대체 무슨 원한이 있어 찾아온 건가?”
“원한까지는 아니고. 내가 한 말은 지키려고.”
“뭐?”
“분명 찍지 말라고 했는데 날 찍었더라고. 내 취미 생활을 찍어서 뭐하게? 약점 잡을라고? 니들이 시켰다며?”
건들거리며 강지건은 다가섰다.
“거기까지.”
부두목이 총을 꺼냈다.
“지금 날 쏘겠다는 거야?”
“돌아간다면 총 맞을 일도 없겠지.”
“당신 실수했어.”
“뭐?”
서걱.
다음 순간, 부두목의 손목이 떨어졌다.
총을 쥔 채로.
“크윽!”
피가 튀었다.
강지건은 어느새 부두목의 뒤에서 목에 단도를 들이댔다.
“바로 쐈어야지.”
따끔.
칼날이 목을 살짝 파고들자 고통이 느껴졌다.
“그, 그만!”
“크크크크크.”
강지건은 악당처럼 웃었다.
“오늘은 이걸로 끝낼게. 뭐 죽을죄를 진 것도 아니고. 대신 경고하는데 한 번 더 내 말을 우습게 알면 그땐 박살날 줄 알아.”
단도를 수건으로 닦아 바닥에 던진 강지건은 유유히 야쿠자 건물을 벗어났다.
“보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괴물.”
“으으으으. 빨리 차! 차 가져와!”
부두목은 폭주하는 차를 타고 응급실을 향해 달렸다.
‘시시하네.’
피를 보았지만 강지건은 큰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영화의 한 장면을 어느 정도 재현했다는 만족감이 전부였다.
‘긴장이 없는 게 문젠가.’
성취감이라고는 쥐뿔도 느껴지지 않았다.
손맛은 느끼지도 못했다.
장시옌을 팰 때도 죽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정도였다.
야쿠자들의 손가락을 자른 것은 실력 과시에 불과했다.
사실은 손톱만 도려내는 기예도 가능했다.
하지만 뭘 하건 만족은 없었다.
‘맥주 보다 못하네.’
건물을 나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인지 영역을 최대한 넓게 퍼트리며 사방에서 일어나는 일은 감상했다.
온갖 잡다한 정보가 다 들어왔다.
그러던 중, 자극적인 정보가 감지되었다.
‘이건 또 뭐야?’
여자가 납치되어 감금된 상태였다.
여자는 공포에 질려 덜덜 떨고 있었다.
“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알아줄 거니? 응?”
‘스토커?’
마음을 알아달란 남자의 손에는 식칼이 들려 있었다.
“날 받아주지 않겠다면 내가 널 받아줄게. 우린 한 몸이 되는 거야.”
식칼을 든 남자가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에라이.”
강지건은 미소 지으며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