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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
강지건이 비웃으며 말을 건 상대를 바라봤지만 되돌아오는 반응은 의외로 잠잠했다.
“모텔 데려다 줘? 쉬었다 가던가. 여자랑 화끈하게 놀고 자면 더위도 가시고 시원해질 거다.”
“공짜?”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그런 모습으로 다니지 말고 가서 잠이나 자라.”
“싫은데.”
히죽.
강지건의 표정을 본 야쿠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부탁이다.”
고개까지 숙였다.
그때, 뒤에 있던 젊은 녀석이 욱했다.
“형님, 왜 이딴 녀석한테 고개 숙이십니까?”
“넌 닥쳐 새끼야.”
“눈치 좋네. 술이나 한 잔 하지?”
강지건은 피식 웃으며 근처의 술집으로 들어갔다.
말을 걸었던 야쿠자는 한숨을 쉬었다.
“형님, 대체 저 놈이 뭐라고 이러는 겁니까? 그냥 조용히 끌고가서 밟아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넌 그 놈 눈 못 봤냐?”
“눈이요?”
“난 그런 눈 몇 번 본 적 있다. 그건 그냥 미친놈들이야. 재미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네?”
“저 놈이 갑자기 칼이라도 들고 설치면 어떻게 될 거 같냐?”
“장사 망치죠.”
“그러니까. 내 자존심보다 조직의 장사가 먼저다.”
“네, 형님.”
“업소 관리하려면 언제나 장사부터 챙겨야 해.”
야쿠자는 부하와 함께 술집에 들어갔다.
“난 야마다 타로. 넌?”
“야마모토 타로.”
“어라, 우연인가? 이름이 참.”
“그러게. 웃긴 인연이군.”
강지건은 피식 웃었다.
“그래, 요기 행동 대장이신가?”
“넌?”
“나? 난 이런 사람.”
강지건은 레알핑크 명함을 내밀었다.
“레알핑크? 그 레알핑크?”
“그렇지.”
“혹시 배우 찾는 건가? 그런 거라면 우리가 공급해줄 수 있는데.”
“아, 오늘은 그냥 놀러 나온 거야.”
“그런가? 그런 차림으로?”
“술 마시면 더워.”
강지건은 주문한 사케를 쭉 들이키고는 생두부를 먹었다.
“자, 한 잔 받아.”
야마모토 타로는 잔을 받고 들이켰다.
“그런데 레알핑크는 어디 조직 밑에 있는 거지? 알려줄 수 있나?”
“외국 자본이 들어가 있어.”
“외국 자본? 중국? 멕시코?”
“왜 중국이나 멕시코를 떠올리는 거야?”
“외국 조직이라고 하니까.”
“동남아에도 조직은 있다고 친구.”
“그럼 동남아 쪽인가?”
“그건 아니고.”
히죽.
‘예전이라면 이런 사람하고 마주하는 것도 피했을 텐데.’
야쿠자와 마주 앉아 술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신선한 자극이 되어주고 있었다.
“장난치는 건가?”
“너라면 쉽게 알려주겠어?”
“숨기면 더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밝히는 게 좋지 않나?”
“이쪽도 사정이란 게 있으니까.”
강지건이 잔을 비우자 야마모토 타로가 다시 채워주더니 술을 더 주문했다.
잠시 뒤, 술과 함께 새로운 안주가 나왔다.
강지건은 술과 안주를 즐기다 입을 열었다.
“오늘 그냥 누구 하나 걸리면 작살내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네.”
“사람 잡고 싶어도 양아치라고 함부로 때리지 않았으면 좋겠군.”
“왜?”
“사람을 함부로 때려서야 쓰나.”
야마모토 타로의 말에 강지건은 피식 웃었다.
“댁들 일해주는 시다바리라서 그런 건 아니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야마모토 타로는 시치미를 뚝 뗐다.
일본 조직 폭력계에는 변화가 있었다.
전통적인 폭력조직인 야쿠자.
그리고 불량 청소년들이 집단을 이룬 갱단, 혹은 한구레.
이 한구레는 폭력 서클이나 폭주족에서 나와 야쿠자 되는 대신 범죄로 먹고 살면서 생긴 것이었다.
야쿠자는 간판을 내걸고 활동하지만 한구레는 이런 것과 상관없는 점조직에 가까웠다.
자기네들끼리 커넥션을 만들어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야쿠자는 모두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경찰이 관리하고 있지만 한구레의 경우에는 등록이 되어있지 않았다.
때문에 더 위험하다.
상당수가 젊다.
청소년이 많다. 때문에 큰 사고를 치고도 촉법 소년 혜택을 받고 빠져나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얼핏 보면 야쿠자들을 밀어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많이 달랐다.
하청처럼 움직이는 경우가 상당했다.
야쿠자가 직접 손대기 어려운 일들을 한구레, 준폭력단을 통해 하는 것이다.
특히 마약과 관련된 일은 모두 이쪽으로 넘기고 있었다.
꼬리 자르기 용이하니까.
야쿠자는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관리 받고 있었다. 조금만 허튼 짓 하면 조직이 박살날 수 있으니 편법을 쓰는 것이었다.
즉, 야쿠자가 직접 하기 어려운 일을 한구레에 외주를 주는 식이다.
물론 어린 청소년이 많기 때문에 때로는 통제가 안 되기도 하고 사고를 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사고를 친다고 해도 야쿠자는 자신들과 관련이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수사 대상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몰라. 덤비면 박살 낼 거야.”
“왜 그러지?”
“무료하니까.”
“그럼 도박은 어떤가?”
“도박?”
“파친코라도 하면 어떤가?”
“재미없는 소릴 하는군.”
“그럼 스트립바는? 풍속도 있고. 즐길 게 많은데 굳이 사람을 패야 하나?”
“그러고 싶은데?”
“그럼 이건 어떤가?”
야마모토 타로는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하격투장에 가보는 건.”
“룰이 있는 건가?”
“있지.”
지하격투장이라고 하지만 사실 기존의 종합격투기의 파이를 흡수해 야쿠자나 한구레 같은 폭력 조직들이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일본의 종합격투기가 몰락하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흐음.”
“피를 보고 싶은 거라면 맨주먹 싸움 같은 것도 좋지 않나?”
베어 너클 파이팅 챔피언십(Bare Knuckle Fighting Championship)이란 것이 있었다.
종합격투기는 아니다.
하지만 맨주먹이다.
진짜 맨주먹으로 서로를 때린다.
때문에 경기를 보면 피가 흐르는 경우가 상당하다.
여자 경기도 맨주먹으로 싸우며 얼굴이 엉망이 된다.
“굳이 길에서 이럴 거 뭐 있나? 응?”
야마모토 타로는 살살 꼬드겼다.
강지건이 응해서 싸우겠다고 하면 그것으로 파이터 한 명 확보하는 거다.
적당히 포장해 외국의 파이터들과 싸우게 할 수도 있다.
만약 이긴다면?
돈이 된다.
복권 구입하는 심정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됐어.”
유혈이 쫙쫙 흐르는 맨주먹 복싱이지만 강지건에게는 그다지 자극적이지는 않았다.
“난 그냥 길에서 덤비는 놈을 패주고 싶을 뿐인데.”
다른 세계에 가면 얼마든지 팰 사람이 있고 죽이기도 했다.
“뭐라고?”
“시비 거는 야쿠자 한 번 털어보려고 한 거야. 이렇게 꼬리를 말아버리니 흥이 식었어.”
모욕적인 말에 뒤쪽에 있던 야마모토 타로의 부하들이 발끈했다.
“형님! 얼마나 더 참아야 합니까?”
“우리 좀 봐주지 그러나. 우린 일반인 건드리면 바로 체포야. 이거 알면서도 이러는 거면 정말 재미없는데.”
야쿠자에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일본 경찰이었다.
잘못하면 경찰이 먹혀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한 때 야쿠자들이 설칠 때는 일본 사회가 공포에 물들기도 했었다.
“니들 싫어하는 조직은 없고? 가서 죽여줄게.”
“우린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어.”
야마모토 타로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사실 야쿠자 생활을 하려면 인내심은 필수였다.
조직은 규율을 엄청나게 중요시했다.
교육을 받으며 함부로 나대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길 듣는다.
실수하면 엄격한 처벌을 받기도 한다.
야쿠자 생활이 굉장히 빡빡하기 때문에 불량 청소년들은 오히려 야쿠자가 되길 거부하고 그냥 한구레, 갱으로 남아 설치고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야쿠자들은 선을 넘는 순간 무섭게 돌변한다.
“재미없긴.”
강지건을 술을 마셨다.
취하지도 않는다.
“심심하면 나랑 한 판 어떤가?”
“내 상대해주게?”
“그냥 놔두면 딴 데 가서 사고 칠 거 같으니까.”
“호오?”
“링에서 나랑 한판 붙는 게 어떤가?”
“이길 자신은 있고?”
야마모토 타로는 침묵했다.
싸움은 함부로 자신해선 안 된다고 배웠으니까.
오만해지는 순간, 방심이 목숨을 앗아갈 거라고 배웠다.
싸울 땐 항상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배웠다.
목숨 걸고 싸우는데 방심할 순 없다.
그러니 함부로 적을 얕보지도 않는다.
미지의 적은 아무리 약해 보여도 일단 조심한다.
덩치 큰 사자들이 작은 짐승이 달려들 때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나 살피는 것처럼.
독사와 같은 것들에게 당하면 아무리 덩치가 커도 죽는다.
“승패야 싸우면 알게 될 일 아닌가?”
“좋아. 그럼 안내해.”
강지건은 야마모토 타로를 따라 움직였다.
가부키쵸 인근의 한 체유관.
지하격투장에서 뛰는 선수들이 연습하는 체육관이었다.
“오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야마모토 타로는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강지건은 웃통만 벗고 맨발로 링에 올랐다.
“룰은 없는 거 맞지?”
“그래, 마음대로.”
“후훗.”
강지건이 안경을 벗다 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많이 본 얼굴이군.”
“내 이름은 야마다 타로야. 한국인이 아니라고.”
“그래, 이름이 뭔 상관인가.”
강지건의 몸에 그려진 문신은 엄청나게 화려했다.
야마모토 타로가 기억하는 강지건의 몸에는 문신이 없었다.
‘가짜 문신일지도 모르지만.’
몇몇 사람들은 촬영을 시작했다.
나중에 써먹을 수 있을까 싶어서.
하지만 강지건은 미국에서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었다.
일본에 왔다는 소식도 없었다.
출입국 기록이 확실하니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얼마든지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었다.
“먼저 덤벼. 실력 좀 보자고.”
강지건은 여유롭게 섰다.
가드도 내린 상태.
“사양하지 않겠다.”
야마모토 타로는 몸을 흔들며 조금씩 접근했다.
탐색전이 이어졌다.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는지 재기 위한 탐색전이었다.
당연히 키가 큰 강지건이 더 유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