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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

검녀 헬스클럽에 가입한 미국의 대부호들.

그들은 시술을 받자 훨씬 더 젊은 모습을 갖게 되었다.

더구나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던 노인이 자신의 다리로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몸에 병이 있던 이들은 증상이 크게 완화되며 치유될 기미마저 보였다.

그야말로 기적.

“절대 외부에 알리지 못하게 해.”

“알겠습니다.”

노인들은 철저한 정보 통제를 요구했다.

주치의들은 함구해야만 했다.

사회에서 의사는 높은 지위를 가진 존재가 분명하지만 미국 경제를 주물럭거리는 노인들에게는 권력자가 아니었다.

더구나 이제 병을 치료해주는 것은 의사가 아니었다.

“저도 검녀문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검녀문은 회장님의 여자들입니다. 남자는 안 된다고요.”

“그럼 어떻게 하면 제가 배울 수 있겠습니까?”

진매령의 검녀문에 들기를 희망하기 시작했다.

무엇인지 몰라도 진매령과 야은설이 보여준 신비한 힘을 얻고 싶었다.

“회장님이 거느린 조직이 많습니다. 거기에 가입하게 된다면 가르쳐드릴 순 있어요.”

“가입하겠습니다.”

“아무나 받지는 않아요.”

“아, 그렇군요. 당연히 그렇겠지요.”

다들 수긍했다.

엄청난 힘이었다.

영생을 꿈꿀 수 있는 힘.

이를 얻게 되는 일이었다.

아는 것이 적기 때문에 빼앗는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괜히 빼앗으려 했다가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는 셈이다.

잘못하면 잃을까 너무나 두려워 손을 댈 생각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죽다 살아났다.

새로 태어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다들 진매령과 야은설 그리고 강지건을 철썩같이 믿게 되었다.

사기?

젊음을 얻을 수 있다면 100번 1000번이라도 속아줄 수 있었다.

젊음, 세상에 없던 상품이다.

그 가치는 무궁무진했다.

“일단 여러분의 활동을 보고 평가하겠어요. 중요한 건 그 분의 만족도입니다. 지구에 질려버리지 않게 해주세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즐거우실 수 있는지.”

“권태와 싸우고 계신다고만 알아두세요.”

“알겠습니다.”

“너무 과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것을 기억해두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진매령의 충고는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회장님을 즐겁게 해드려야 하는데.’

빌 그랜트는 자신의 부친이 젊어진 모습을 보며 경악했다.

“아버지 지금 모습은 대체.”

“더 묻지 마라.”

빌 그랜트의 부친인 라이언 그랜트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아버지, 의사들이 하는 말은 걸러 들어야 합니다.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방법은 위험해요.”

“걱정 마라.”

라스푸틴이 러시아 황실을 흔들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진매령 또한 라이언 그랜트의 신뢰를 얻었다.

미국 금융가의 큰손, 아니 핵심 세력 중 하나인 그랜트 가문이었다.

미국 경제를 쥐락펴락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혹시 진매령 그 여자와 관련된 일입니까?”

“어허, 그 여자라니. 예의를 갖춰라.”

“네?”

“행여나 이상한 짓은 하지 마라. 다 지켜보고 있으니까.”

“아버지!”

“너도 젊어지고 싶지 않냐?”

“네?”

“지금의 모습이 한계가 아니다. 너도 윤경미의 자료를 보았으니 알 거 아니냐.”

“그렇다고.”

“지금까지 가졌던 상식을 버리거라.”

라이언 그랜트는 다시 한 번 경고했다.

“만약 허튼 짓을 하면 내가 널 막을 것이다.”

빌 그랜트는 이를 악물었다.

“통제되지 않는 힘은 위험합니다.”

“그 힘이 어떤 힘인지는 알고?”

대답할 수 없었다.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

“강지건을 봐라.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모습을 보였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제대할 때까지 그냥 평범한 인간이었다.”

강지건에 대한 조사는 끝났다.

“하지만 제대 이후 사람이 변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라이언 그랜트는 탄산수로 입을 축였다.

목구멍을 긁어주는 느낌이 시원했다.

“그는 정말 강지건일까?”

완전히 헛다리짚었지만 합리적인 생각이었다.

“네?”

“그는 과연 강지건이 맞을까? 잘 생각해보거라.”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완전히 다른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 인간이 맞기나 할까?”

‘맞아, 어쩌면 외계인 혹은 악마? 아니야, 악마 따윈 세상에 없어.’

결국 합리적인 판단은 외계인 혹은 강지건의 모습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존재로 좁혀졌다.

“강지건의 신분은 정말 가족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지. 위장 신분으로 사용하기에 좋다는 거다. 그리고 진매령과 야은설의 신분은 또 어떻고? 라다 갈킨은?”

조사를 했다.

분명 시스템상에는 존재하는데 막상 직접 탐문해보면 존재하지 않았다.

유령 같았다.

“증인 보호 프로그램 대상자도 아니었다.”

“타국의 스파이일 가능성은요?”

“아들아, 그게 얼마나 머저리 같은 소린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죄송합니다.”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사람이 외국에 스파이로 침투할 이유가 무엇일까?

더구나 이런 힘을 가진 사람을 곱게 놔줄 국가가 있다는 것도 믿기 힘들다.

“그렇다면 체포해서 비밀을 알아내야 하지 않습니까?”

“자꾸 머저리처럼 욕심을 다루지 못한다면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라이언 그랜트는 험한 말을 입에 담았다.

죽음이 가까워졌을 땐 자식과 핏줄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것에 힘썼다.

자신이 이룩한 비밀스러운 왕국을 그대로 물려주기 위해서.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냥 계속 살면 된다.

자신의 왕국을 영원히 지배할 길이 열렸는데 굳이 자식에게 물려줄 필요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빌 그랜트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지켜보겠다. 잘 하거라. 너도 기회를 얻고 젊어져야 할 것 아니냐.”

“네.”

“어떻게 해서든 검녀 헬스클럽에 가입하고. 집안의 여자들에게도 전해라. 어떻게 해서든 검녀문의 제자가 되라고.”

“검녀문의 제자요?”

“검녀 헬스클럽의 위에 있는 조직이다. 진매령이 검녀문의 문주다.”

“그녀가 보스인 겁니까?”

“검녀문은 강지건을 모신다고 했다. 진매령은 그를 회장님이라고 부르지만 아마 주인님이란 표현이 더 맞을 거 같다.”

“그가 핵심이군요.”

현재 맥주와 감자칩을 씹으며 인터넷 방송으로 농담 따먹기나 하는 인간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엄청난 걸 요구하지 않으니 편의를 봐주고 뒤를 쫓는 자들은 막아라.”

“왜 우리가 해야 합니까?”

“우리가 안 해도 다른 놈들이 할 거다. 눈 밖에 나게 되면 네게 순서가 갈 거나 같으냐?”

빌 그랜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80대의 모습에서 60대의 모습으로 변했다.

좀 더 젊어지고 힘이 넘치는 모습.

당장이라도 여자 하나를 데려다가 궁둥이를 쑤셔댈 것 같은 정력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정말 젊어질 수 있는 걸까요?”

“증거를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면 나도 어쩔 수 없다.”

다시 한 번 윤경미의 모습을 떠올렸다.

10대 후반의 소녀 같은 모습, 자신의 자식과 또래처럼 보이는 외모였다.

“아직 실감이 잘 안 되는 군요.”

“다들 그럴 거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경쟁자들을 이겨야 한다. 검녀문에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강지건 회장의 조직 일원이 되어야 해.”

라이언 그랜트의 의지는 확고했다.

빌 그랜트에게도 의지가 전해졌다.

“알겠습니다.”

맥주 조공은 멈추지 않았다.

감자칩 조공도 마찬가지였다.

강지건은 매일 새로운 맥주와 감자칩을 선보이며 음주 생방송을 이어갔다.

> 오늘은 게임 안 함?

“재미없음. 해보지 않아도 알아. 내가 이겨. 나 세계대회 우승자야.”

> 결승전에 수저 올린 거잖음

“됐고. 오늘은 포커나 할 거임. 자, 다들 드루와.”

시청자들과 포커를 치면서 이런 저런 영상을 틀어놓고 잡담을 나누었다.

> 그런데 앞으로 뭐 할 거임? 계획은?

“왜?”

> 콘서트 안 함? 제발 해주세요.

“공연? 지금은 딱히 생각 없는데. 공연이 재미있긴 한데 막 일처럼 하면 지겨울 거 같아서 쉬고 있어. 심심해지면 그때 또 할 거야.”

> 그럼 심심해지게 만들어야 하나?

“날 심심하게 하면 좋지 않은 수가 있어. 사라질 거야.”

> 안 돼!

“아, 맥주도 많이 남았고 감자칩도 많이 남았는데. 이제 좀 질리네.”

> 게임 하쉴?

“게임 됐고.”

강지건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냥 쉴래.”

방송을 종료했다.

“지겨우신가요?”

라다가 다가왔다. 걱정하는 표정.

“그냥 다른 걸 해보고 싶어서 그래. 일단 일본에 가볼까 해.”

“일본이요?”

“응, 돌아다니다 야쿠자 만나면 때려주지 뭐.”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은 폭력적으로 변하기 쉽다.

“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강지건은 일본으로 떠났다.

갑자기 사라졌지만 이 사실을 알고도 뒤를 추적하는 미국인들은 없었다.

일본 가부키쵸.

강지건은 터벅터벅 거리를 배회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상의는 몸에 딱 붙는 민소매 하나만 걸친 상태.

휘황찬란한 문신이 손목까지 그려져 있었기에 훤히 드러났다.

일본에서 문신은 이미지가 굉장히 좋지 않다.

조폭이나 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기피의 대상이 될 뿐이다.

때문에 조폭들도 문신을 하고 이를 드러내지 않으려 옷으로 가린다.

더욱 여름에도 노출이 심한 옷은 피한다.

강지건처럼 민소매를 입고 문신을 드러내는 건 둘 중 하나다.

가짜를 하고 허세를 부리거나.

“어이, 거기 너.”

“왜?”

“어디 놈이냐?”

도발.

가부키쵸는 야쿠자들이 관리하는 거리로도 유명했다.

경찰 대신 야쿠자들이 관리한다.

의외로 치안 상태는 괜찮다.

야쿠자들이 신경 쓰기 때문이었다.

손님을 받아야 하는데 문제가 자꾸 발생하면 장사 안 되니까.

물론 야쿠자들이 관리하니 대부분의 업소들은 야쿠자와 연결 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왜?”

“좀 가려라. 니가 그러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피하잖아. 장사 망칠 일 있어?”

주변의 사람들은 강지건을 피해 움직이고 있었다.

괜히 눈이라도 마주칠까 피하는 것이었다.

뭔가 사고를 치려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더워서 그러는데.”

“한 겨울에 덥기는 뭐가 더워?”

“술 마셔서 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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