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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스 - 바다로 가는 길

밤이 되었다.

마구간에 강지건의 잠자리가 마련되었다.

짚단 위에 천을 깔고 그 위에 누웠다.

부스럭거리는 느낌이 별로 좋지 않다.

‘후우.’

강지건은 인내했다.

‘이런 경험 또 어디 가서 해보겠어.’

개척 시대 체험이었다.

강지건은 인터넷도 티비도 없다.

책도 없다.

‘잘도 박네.’

주인의 집에서는 한창 섹스 열풍이 불고 있었다.

아투크가 아내와 열심히 섹스를 하고 있었고 자식들이 이를 몰래 훔쳐보는 중이었다.

‘생긴 것 답지 않게 부드럽네.’

거칠기만 할 거 같은 아투크는 부드러운 남자였다.

강지건은 심심해서 감각을 통해 이를 살피고 있다가 이내 감지의 영역을 줄였다.

‘이 능력도 조금만 써야지.’

현재 하는 여행은 일종의 고행이었다.

권태에서 벗어나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한 고행.

‘그나저나 밤새 뭐하지?’

초인이 된 이후에는 수면도 별로 필요 없었다.

자고 싶으면 잘 순 있지만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딕스의 밤은 하나의 고문이었다.

‘차라리 뭔가 공부라도 하고 싶다.’

강지건은 밤새 자신이 배웠던 것들을 암송하며 시간을 보냈다.

새벽이 오자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었다.

마구간을 청소하는 일부터 시작해 물을 떠오는 것까지.

“우물을 안 파나?”

“몇 번 시도했는데 안 나와서. 나오면 좋겠는데.”

우물이 없으니 결국 근처에 개울까지 마차를 몰고 가서 물을 떠온다.

샤워 따윈 꿈도 못 꾼다.

물을 적신 천으로 몸을 닦아내는 게 고작이다.

세수도 마찬가지.

손은 밥 먹기 전에만 물수건으로 닦아내는 수준이었다.

물을 마구잡이로 쓰다보면 물을 더 자주 뜨러가야 하니 아껴 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대부분의 물은 사람보다 말에게 주어졌다.

“그나저나 하루 일을 쉬니 정말 조쿤.”

아투크는 가만히 서서 강지건이 양동이로 물을 퍼올리는 것을 감상했다.

물을 퍼서 마차의 물통에 부었다.

“천천히 해도 되네.”

“빨리 끝내고 싶군.”

강지건에겐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평범한 지구인이라면 허리 좀 아팠겠어.’

부지런히 움직였다.

한 밤 중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는 게 덜 지루했다.

물을 길러온 이후에도 일은 계속 이어졌다.

아투크는 일을 하지 않고 주둥이로 지시만 내렸다.

“아, 정말 네가 일하는 걸 보면 얼른 돈 벌어서 노예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먹여 살릴 돈은 있고?”

“뭐 입 하나 더 늘어나는 수준인데 어려울 거 있나?”

“그러다 도망가면?”

“그건 그래. 계속 지켜보거나 해야 하는데.”

“돈 많이 벌길 빌어주지.”

“그래, 빌어먹을 돈만 많으면 메이드와 집사를 두고 편히 살 수 있을 거야.”

강지건이 아투크의 일을 대신 해주었다.

아투크에게는 예상치 못했던 휴일인 셈이었다.

“오늘 하루 수고했어. 내일은 마을에 데려다주지.”

“고맙군.”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식사를 하고 나자 시간이 많이 남았다.

강지건은 조용히 마구간으로 되돌아왔다.

아투크와 조금 친해졌다고 해서 함께 집을 쓸 정도는 아니니까.

‘그냥 걸어갈 걸 그랬나?’

사실 인근의 지리는 다 알고 있었다.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았다.

걸었다면 벌써 도착했을 것이다.

하지만 체험 중이었다.

체험을 위해 선택한 코스였다.

이를 벗어날 생각은 없었다.

‘치킨 피자 콜라 햄버거 떡볶이 순대 위스키 으으으음.’

맛보고 싶은 게 많았다.

머리가 아팠다.

‘좋네.’

벌써부터 지구가 그리워졌다.

강지건은 인내했다.

‘다시 리셋하는 거야.’

밤이 찾아왔다.

야심한 시각, 아투크의 목장 인근에 출몰하는 원주민들은 눈을 빛냈다.

“오늘은 저길 털자.”

“말 좋다.”

“여자도 있다. 내가 봤다.”

“가자.”

약탈을 결심한 원주민들은 기세등등했다.

약탈에 주저함은 없었다.

애초에 자신들의 터전에 밀고 들어온 것이 개척자들이었다.

예전에는 그나마 거래를 통해 뭔가 주고 받았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거래는 줄어들고 땅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사기까지 쳤다.

당연히 분쟁이 있었고 개척자들의 군대가 와서 원주민 전사들을 죽였다.

이후 원주민들은 원한을 품었다.

침략자들에게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었다.

전사들이 화풀이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지건은 잠이 오지 않아 누워서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무료함을 이겨내기 위한 고안해낸 방법이었다.

열심히 홀로 게임을 복기하며 플레이를 하던 중이었다.

혼자서 1인 10역을 하며 게임을 머릿속에서 돌렸다.

그렇게 열심히 머리를 쓰는 도중에 감각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뭐지?’

감각을 퍼트리자 금방 알 수 있었다.

‘원주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강지건은 마구간 안에 놓은 쇠스랑을 주었다.

‘무장은 활과 창이네.’

총은 없었다.

‘먼저 나가서 싸울까? 아니면 기다렸다가 싸울까? 뭐가 더 나을까?’

잠시 고민하던 강지건은 먼저 튀어나갔다.

‘지루해서 못 참아!’

꽝!

문을 박차고 나갔다.

“이 놈 시끼들!”

붕붕.

쇠스랑을 흔들며 다가가자 원주민들이 달려들었다.

타악!

찔러 들어오는 창을 가볍게 쳐내고는 주먹을 휘둘렀다.

빠악!

코가 단숨에 뿌러지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만약 부러진 뼈 때문에 호흡기가 막힌다면 질식해 죽을 것이다.

‘힘 조절.’

강지건은 온 힘을 다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전투를 하다보면 실수로 힘이 더 들어갈 수 있었다.

힘을 제대로 썼다면 코가 부러지는 게 아니라 머리가 폭발했을 것이다.

“이익!”

두 번째 공격도 가볍게 피하고 쇠스랑으로 팔을 긁어준다.

무기를 놓치자 들어가는 고환차기.

일명 고자킥이 작렬했다.

“꺽!”

뒤이어 전투가 이어졌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10명이 쓰러지는데 필요한 시간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상황의 불리함을 파악하고 도망칠 결정을 내리기에도 짧은 시간이었다.

어어? 하는 순간 모두 끝났다.

“누구냐!”

한참 뒤에야 아투크가 총을 들고 나타났다.

“쏘지 마! 나다 강지건!”

“강지건! 무슨 일이냐!”

“웬 놈들이 몰래 접근해서 싸웠다. 이 놈들 묶어.”

잠시 뒤, 횃불을 들고 온 가족이 나왔다.

“이 놈들이?”

원주민이란 사실을 알게 되자 아투크의 눈이 뒤집어졌다.

“죽일 건가?”

“아니. 데려가서 현상금 받아야지. 분명 현상금 걸린 놈이 있을 거야. 없으면 그때 죽여도 돼.”

퍼억.

아투크는 발길질을 하고는 강지건에게 인사했다.

“이거 신세를 졌군.”

“뭐 나도 신세를 지고 있으니까.”

“고맙다. 정말 고마워.”

아투크는 바로 강지건의 총과 검을 돌려주었다.

“의심한 건 미안하지 않다.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고맙다.”

“이해해.”

무법자들이 넘쳐나는 곳에서 상대를 의심하는 걸 탓할 순 없다.

하지만 도움을 받았다면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자, 들어오라고. 마구간에서 있지 말고.”

원주민을 사로잡는 공을 세우자 아투크는 친목을 다지기 위해 노력했다.

원주민들을 모두 묶어서 창고에 가둔 뒤, 아투크는 술을 꺼내 왔다.

“한 잔 할 건가?”

“좋지.”

버번 위스키였다.

옥수수로 만드는 위스키, 만든지 얼마 안 된 버번 위스키는 맛이 굉장히 거칠었다.

“흐음, 날뛰는군.”

“그게 별미지! 하하하!”

아투크는 다시 위스키를 따라주었다.

“그런데 진짜 잘 싸우더군. 현상금 사냥꾼은 다 자네 같은가?”

“내가 특별한 거지.”

“그런가? 정말 대단하군. 혹시 군인이었나?”

“아니, 그냥 살려고 싸우다보니 늘더군.”

“혹시 나도 좀 가르쳐줄 수 없나?”

아투크가 싸울 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지건처럼 강하지는 않았다.

“가장 좋은 건 도망치면서 총이나 활을 쏘는 거지. 가까이 붙지 않으면 다칠 일이 줄어드니까. 주먹질 같은 건 배워봐야 별로 쓸모도 없어.”

“왜 그런가?”

“상대를 압도할 정도로 강한 게 아니면 결국 공멸하거든. 같이 찌르거나 때리게 되면 결국 둘 다 다칠 뿐이야.”

양측이 독기를 품고 싸운다면 결국 공멸한다.

결국 주먹질로 안전하게 상대를 제압하려면 상대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해야만 한다.

약간 더 나은 수준으로는 자신도 다칠 위험이 있는 싸움법이다.

괜히 냉병기의 시대에 갑옷과 방패가 중요했던 게 아니다.

“만약을 위해선 창질이나 조금 연습해.”

“요 단검을 잘 쓰는 방법 같은 건 없나?”

“없는 건 아닌데.”

강지건은 아투크를 바라보았다.

“단기간에는 힘든데.”

“아, 얼마나 걸리나?”

“그거야 원하는 숙련도에 따라 다르지. 하지만 난 비싸다고.”

“그런가.”

아투크는 입맛을 다셨다.

“아쉽군.”

“그래도 간단한 건 가르쳐주지. 한 번만 보여줄 테니까 잘 봐둬.”

강지건은 심심풀이로 영상을 통해 봤던 단검술을 알려주었다.

특공무술 영상 중에 나온 것으로 간단한 기본 동작이었다.

굉장히 간단한 거 같지만 모든 것이 다 기본에서 시작한다.

기본이 되어 있어야 더 어려운 것도 가능해진다.

애초에 시간도 별로 없는데 복잡한 걸 가르쳐줘봐야 낭비다.

“오오, 간단하군?”

“능숙해질 때까지 하면 단검은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되겠지. 물론 실전에서 써먹을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

단검술 실전이란 곧 살인을 의미했다.

총이 있는 시대에 단검을 들고 적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은 굉장히 좋지 않은 상황이란 의미다.

“무기를 쓸 일이 없도록 하는 것. 그게 최고의 호신술이지.”

싸울 일이 없게 하는 것이 최고고 그 다음은 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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