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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강지건이 권태라는 적과 싸우고 있음을 깨닫게 된 안틸로프이들은 회의에 들어갔다.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권태로 인해 폭주했을 때 침식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고요.”
보통 사람이 권태를 느끼는 것에 이렇게 보여서 회의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강지건의 말은 안틸로프인들에게 매우 심각한 사안이었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콜드슬립 상태에서 안틸로프인들은 가상현실을 이용해 활동했다.
가상의 회의실에는 개척 함대의 모든 안틸로프인들이 참여한 상황이었다.
“침식을 제거하더라도 회장님이 폭주하시게 되면 결국 다시 침식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아직 회장님께서도 본인이 가진 힘의 정체를 다 모르시니까요.”
“회장님이 가진 힘의 정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등급이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최고 등급에 도달하면 알 수 있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추측은 추측에 불과합니다. 추측을 토대로 계획을 세우지 맙시다.”
“그렇다면?”
회의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회장님이 최고 등급에 이르러 진실을 알게 되기까지 폭주를 막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권태를 이기는 데는 흥미만한 것이 없죠.”
“이번에 낙스와 같은 수준의 문명인 딕스를 여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최대한 다양한 세계의 문명을 보존해둘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침식을 정화한 이후에 카리아 제국으로 편입하는 속도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포인트가.”
“포인트는 이미 편입한 세계에서 벌이는 사업으로 대체합시다.”
“사업은 제국으로 편입하지 않고도 할 수 있죠.”
“우리의 목표는 침식과 싸우는 것입니다.”
안틸로프인들은 굉장히 심각했다.
“권태가 침식의 원인이라면 권태에 대항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새로운 게임 개발에 신경 써 주십시오.”
“여러 세계에서 엔터테인먼트 정보를 입수하는 겁니다.”
“회장님의 즐거움을 위해 좀 더 노력합시다.”
“다양한 즐거움을 위하여.”
“회장님을 위하여!”
안티로프인들은 정화된 세계의 개발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전설 세계 대회.
제타스의 돌풍은 대회에서도 멈추질 않았다.
“멈추지 않아요! 대체 누가 이들을 막을 수 있습니까!”
“1군도 아니죠!”
“1군도 아닙니다! 1군이 나오면 더 못 막아요! 답도 없어요!”
흥분한 한국 중계진은 주먹을 휘두르며 외쳤다.
“제타스! 드디어 상대 본진 깨면서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결승까지 올라가는 길은 순탄하기만 했다.
별로 어려울 게 없었다.
완벽하게 메타를 파악하고 적응한 제타스였다.
피지컬도 최고조에 달한 상태.
> 와.
> 내 눈에 보였어. 뭘 할 지 보였다.
> 하지만 너는 막을 수 없다
> 그냥 밀고 들어가네
> 싸움에 미친놈들
결승까지 가는 길에 만난 중국팀들을 전투로 발랐다.
그것도 수적 열세 상황에서 싸우는데 이뤄낸 결과였기에 사람들은 충격을 먹었다.
> 4:3은 이해해.
> 4:2도 발라버리는 피지컬
> 왜 못 맞 춘 거 야
> 왜 싸 운 거 야
> 줄건 줘를 했다면 30분은 버틸 수 있었겠지?
> 버틸 수는 있었겠지.
> 진짜 올해 제타스는 미쳤다
> 1군 아직도 안 나옴
> 환상의 1군 아님?
> 환상은 아니지.
다들 결승을 기대하고 있었다.
> 그런데 강지건 은퇴한다던데?
> 가수잖음
> 가수 활동도 열심히 안 하던데?
> 이제 돈 많이 벌었으니 하고 싶은 거 하려나보지
강지건이 은퇴할 거란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이스포츠 관계자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반색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강한 선수는 양날의 검과 같았다.
리그 인기를 끌어 모으는 아이콘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여러 팀의 열정을 꺼버리는 장벽이 되기도 하니까.
역사가 깊은 스포츠라면 어느 한 팀이 무조건 강한 게 꼭 나쁘지 않다.
왕조 얘기도 하면서 스토리 메이킹이 가능하다.
하지만 언제 수명을 다할지 모를 게임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선수들은 좀 더 자신이 활약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아마추어들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규 유입이 줄어든다는 것은 게임의 수명이 줄어들고 있다는 말과 같다.
아마추어가 적으면 프로의 레벨도 떨어지게 된다.
경쟁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프로에 입성하는 선수들이 세계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란 어렵다.
대한민국이 인기 게임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는 것은 초등학생 때부터 피시방에서 부모님의 명예를 걸고 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소년들이 어렸을 때부터 공을 차며 축구를 하는 것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항상 한국이 세계 대회 우승을 한다?
유럽이나 다른 나라 유저들 입장에서는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질 수 있다.
선수들까지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면 프로를 지망하는 아마추어들은 아예 다른 게임을 물색할 가능성이 높았다.
같은 노력을 한다면 좀 더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게임을 택하는 게 합리적이니까.
죽어라 노력해서 겨우 프로 데뷔했는데 우승은 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사라질 게임보다는 빠르게 성공해서 명예와 돈을 거머쥘 수 있는 게임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다.
전설도 점점 게임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과거의 유저들에게는 이미 식상한 수준에 도달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메타를 바꾸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게임 자체에 질려버리는 일이 늘어나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게임을 하지 않는 것도 기존의 유저 이용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신규유저 유입을 유발하는 것이 바로 이스포츠였다.
국뽕을 건드리는 것이다.
여러 나라에서 선전하는 모습.
국뽕 마케팅으로 신규 유저들을 모으려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강지건처럼 규격외의 존재가 계속 우승을 차지한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흥미가 떨어질 수 있었다.
유럽 같은 경우에는 게임에 흥미가 떨어지면 그냥 축구 중계를 보면 된다.
어차피 축구가 대세니까.
더구나 새로 만들어지는 게임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다.
굳이 전설에만 목매달 필요가 없다.
그러니 압도적인 강자는 현재 필요하지 않았다.
현재 필요한 것은 여러 리그가 골고루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었다.
치열한 경쟁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며 다시 한 번 신규 유입의 물결을 만들어야만 했다.
게임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수단이 바로 이스포츠인 셈이었다.
이 때문에 강지건의 은퇴는 그리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메타 변화나 패치로 막을 수 없는 인간이 알아서 떠나주겠다고 하니 개발사에서도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결승 진출이 확정된 이후 인터뷰가 있었다.
이번에는 경기에서 뛰지도 않은 강지건에게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결승이라는 이벤트에 걸맞는 스토리 메이킹을 위한 것이었다.
“은퇴하신다는 소문이 있는데 진짜인가요?”
“네, 은퇴할 생각입니다. 이제 제 나이도 있고 그러니까요.”
“나이는 문제가 안 될 정도로 기량이 확실하신데요?”
“그게 문제죠.”
“네?”
“절 막을 사람이 없는데 계속해서 뭐하나 싶더라고요.”
강지건의 도발이 시작되었다.
“한 때는 동경했었는데 이제는 다 제 발 아래에 깔려있네요. 제가 더 밟아봐야 발목을 잡힐 뿐이죠. 그래서 떠납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서요.”
“아, 그런 거였나요?”
인터뷰를 하던 아나운서가 살짝 당황한 표정이었다.
“제가 아니꼽다면 최선을 다해서 덤벼야 할 겁니다. 부디 절 패배자로 만들 정도로 강한 팀이 있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우리팀 선수들이 최고입니다. 저 없어도 우승할 수 있었죠. 요번에 제가 결승에 나가는 것은 그냥 제가 은퇴한다니 껴준 겁니다. 제 은퇴경기죠.”
막말을 마구 지껄였다.
도발이 멈추질 않았다.
인터뷰는 그대로 결승 오프닝 영상에 활용되었다.
결승 홍보 영상에 사용되며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강지건은 보통 선수가 아니었다.
세계적인 가수였다.
> 너무 오만하자나
> 오만? 아니지 브라더는 사실만을 말했을 뿐이야
> 얼른 은퇴하고 가수나 하라고!
> 콘서트 언제 염? 미국으로 온다는 소문 있던데
> 모든 것은 아메리카로 모인다
> 좋은 것은 아메리카로
> 그런데 저렇게 말하고 지면? 패배자로 은퇴하는 건가?
> 지는 거 보고 싶다!
> 패배해라!
> 져라!
수많은 이들의 응원과 저주 속에 결승전 당일이 다가왔다.
결승 상대는 유럽팀이었다.
세대교체는 물론 슈퍼팀을 만든 유럽팀이 결국 리빌딩에 성공했다.
리빌딩에 성공한 유럽팀은 중국팀과 한국팀을 눌러버렸다.
당당하게 결승에 진출했다.
하지만 결승 상대가 너무 나빴다.
제타스는 압도적인 상체게임으로 일방적으로 몰아쳤다.
메타에 완벽하게 적응한 상태에서 전투력도 뛰어났다.
주도권을 잡고 계속 흔드니 유럽팀은 장기를 발휘하지 못하고 휘둘리다가 계속 패배했다.
하지만 유럽 선수들은 웃었다.
“잘 한다. 좀 더 해보자.”
“아직 끝나지 않았어!”
“좀 더 신중하게!”
어려움 속에 선수들은 점점 하나로 뭉쳤다.
하지만 마지막 세트.
탑이 교체되었다.
교체선수는 강지건이었다.
“드디어 나왔습니다!”
“그런데 정글이 아니네요?”
“탑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입니다.”
“원래 처음 알려지게 된 계기가 탑라이너인 칼록 선수를 잡으면서였죠?”
“그렇습니다. 그때의 인연으로 제타스에 코치로 고용되었고 결국 선수로 뛰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파란만장하군요.”
강지건의 스토리가 흘러나온다.
이제는 은퇴를 앞둔 선수.
단 한 세트.
한 세트만 이기면 우승이었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시작되자마자 인베이드를 들어오는 유럽팀을 카운터쳤다.
3킬을 먹고 시작했다.
시작부터 3킬.
균형이 깨진 상황에서 강지건은 탑에서 계속 압박하다 솔킬을 따냈다.
적 정글이 들어왔다.
2:1 상황에서 절묘한 무빙으로 포탑으로 빨아들여 둘 다 따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이러면 이러면 게임 끝난 거죠!”
“이거 큽니다!”
순식간에 균형이 무너졌다. 상대는 숨도 못 쉬고 물러나야만 했다.
탑에서 압도적으로 밀어버리니 다른 라인들이 더욱 편하게 게임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대각선, 바텀으로 가면 탑은 더욱 밀린다.
반대로 탑에 정글이 합류해 균형을 맞추려고 하면 제타스의 다른 라인은 편안하게 게임을 할 수 있다.
순식간에 10킬이 나버리자 유럽팀 선수들은 멘탈이 박살났다.
뭘 해도 뒤집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자 도박적인 플레이가 더 늘어나며 킬만 상납했다.
결국 20분이 되기도 전에 게임이 끝나버렸다.
“우승! 제타스가 세계를 집어삼켰습니다!”
“환상의 1군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아아! 1년만 더 하지! 은퇴한다니 너무 아까워요!”
강지건은 세계 대회 우승에 숟가락을 꽂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