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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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

계산을 빠르게 마치고 나왔지만 남자가 따라 붙었다.

‘돈 아깝게.’

결국 택시를 잡아 타려고 했다.

하지만 남자가 빠르게 다가왔다.

빠지지지직.

전기 충격에 메구미는 기절했다.

남자는 쓰러지려는 메구미를 안아 지탱하며 택시를 불렀다.

새벽.

술에 취한 아가씨를 부축하고 어디론가 가는 모습은 너무나 흔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납치가 완성되려는 순간이었다.

“야.”

“어?”

야은설이 나타나 스토커 앞에 섰다.

“다 봤어 임마. 좋은 말 할 때 얌전히 물러나라.”

“무슨 소리?”

“스토커 새끼. 전기 충격기 쓴 거 다 봤어. 여기 녹화도 했는데? 지금도 녹화중인데?”

야은설이 폰을 들고 있는 것을 본 스토커는 조심스럽게 메구미를 내려놓았다.

“지금 무슨 얘기를 하시는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스토커는 조금씩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몰라?”

야은설은 방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훗.”

스토커는 웃더니 달려들었다.

사정거리 안, 잽싸게 달려들며 준비한 전기충격기를 뻗었다.

제 때에 반응하지 못하면 당하고 만다.

총과 단검을 든 사람들이 싸울 경우 누가 이길까?

답은 거리에 있다.

총을 가지고 있어도 허리춤에서 뽑아야 하는 사람은 가까이에서 단검을 들고 덤비는 사람에게 당할 수 있다.

숙련된 칼잡이들이 몇 초 만에 좁힐 수 있는 거리는 상당하다.

총을 뽑아 조준하기도 전에 칼이 목에 박히는 수가 있다.

괜히 미국 경찰들이 과민 반응을 보이다 용의자를 쏴버리는 게 아니다.

경찰이 총을 가지고 있다지만 언제나 방어적인 포지션을 갖게 된다.

싸움에서 선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총이든 칼이든 먼저 뽑아들고 덤비는 쪽이 훨씬 더 유리하다.

야은설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꾸욱.

“이게 뭐야?”

야은설은 웃으며 전기충격기를 잡은 손목을 낚아챘다.

너무나 쉽게 전기충격기를 빼앗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였다.

지구인 정도는 무기를 들 것도 없고 초능력을 쓸 필요도 없다.

맨 몸으로도 충분히 제압 가능했다.

정확한 타격! 빠른 속도!

모든 것이 일치하며 스토커를 무력화했다.

“넌 좀 맞자.”

퍼퍼퍼퍼퍽!

야은설의 주먹이 박힐 때마자 스토커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무슨 힘이.’

덜덜덜.

저항의지를 지우는 폭력이었다.

몸을 둥글게 말고 최대한 보호나는 게 전부였다.

“선택해. 팔? 아니면 다리?”

“네?”

“어디로 할래? 팔? 아니면 다리?”

야은설이 히죽 웃고 있었다.

“대답 안 하면 죽인다?”

덜덜덜.

스토커는 얼결에 다리를 택했다.

빠직.

야은설이 발목을 밟아 부셨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착하게 살아. 알았지?”

이어서 손목도 밟았다.

“왜?”

“죽일까?”

스토커는 덜덜덜 떨며 기었다.

고통이 느껴졌지만 생명의 위협이 더욱 컸다.

정신없이 기어서 도망쳤다.

주변에는 이를 지켜본 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촬영중이었다.

야은설은 메구미를 부축하고는 택시를 불러 올라탔다.

마스크와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습이 드러날 일은 전혀 없었다.

한적한 골목의 카페.

메구미는 정신을 차리고는 흠칫 놀라며 주변을 보았다.

‘여긴?’

“정신이 들어요?”

“네.”

“큰일날뻔 했어요.”

“큰일이요?”

“여기.”

야은설이 영상을 보여주었다.

스토커에게 당하며 쓰러지는 자신의 모습을 본 메구미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제가 당신 구했으니까 걱정 마요.”

“정말 절 구한 게 맞나요?”

“믿기 싫음 말고. 어쨌든 여기 커피랑 케이크 값은 댁이 내요. 난 갈 테니까.”

야은설이 망설임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메구미는 벌떡 일어나 말렸다.

“죄송해요. 상황이 혼란스러워서.”

“뭐 그럴 수 있죠.”

“저기, 제가 도와주신 보답을 하고 싶은데.”

“됐어요. 그런 거.”

“그래도 제가 마음이 편치 않아서.”

메구미는 매달렸다.

스토커 때문이었다.

스토커에 대한 흉흉한 소문은 일본에 널리 퍼져 있었다.

연예인만이 아니다.

평범한 여자들도 스토커 때문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었다.

스토커로부터 지켜준 야은설과 가까워지고 싶었다.

불안한 만큼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 스토커는 당분간 병원 신세 질 테니까 걱정 마요.”

“네?”

“나중에 밥 사고 싶으면 여기로 연락.”

야은설이 번호를 주고는 사라졌다.

집에 도착한 메구미는 집안을 살폈다.

“후우.”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뒤에야 안심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토커의 표적이 되었었다는 점에 소름이 돋았다. 더구나 평소에 뭔가 이상한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아니, 있었다.

빨래감이 가끔 사라졌었다.

속옷이 많이 없어졌지만 티셔츠나 원피스가 사라진 일도 있었다.

경찰에 몇 번 신고했지만 범인이 잡혔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이사 갈까?’

가장 흔히 하는 생각.

하지만 이사 정도로 스토커를 떼어놓기는 어려웠다.

‘외국?’

최소한 나라를 바꾸지 않는 한 어려웠다.

엄청난 능력자가 아닌 이상 스토커들이 다른 나라까지 쫓아오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모르겠다.’

메구미는 불안 속에 누웠다.

잠이 잘 오지 않았지만 억지로 잠을 청했다.

자야 밤에 또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자고 일어난 메구미는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고는 몸을 풀었다.

‘발은 괜찮네.’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조금 무리를 하면 통증이 생긴다. 하지만 일상생활은 문제없었고 가볍게 춤을 추는 것 또한 괜찮았다.

메구미는 인근 공원을 찾아 땀을 뺐다.

가벼운 조깅으로 몸을 푼다.

이후 집에 돌아와 계란을 하나 삶아 먹는 것으로 단백질을 보충했다.

‘연락해봐야지.’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을 끝낸 뒤, 야은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어제 도움 받았던 와타베 메구미입니다.”

“아, 와타베씨. 그래서 용건이?”

“네, 제가 보답하고 싶은데 만날 수 있을까요?”

“음, 나 데이트 중인데. 애인도 같이 만나도 됨?”

“네, 물론이죠.”

“그럼 이따 봐.”

예의는 이미 밥 말아먹은 것 같은 언행에도 메구미는 싫은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 일은 쉬어야겠다.’

메구미는 일을 쉬겠다고 바에 연락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메구미는 놀랐다.

“어? 어제 그?”

“안녕하세요. 야마다 타로입니다. 또 만나서 반갑네요.”

“네, 와타베 메구미입니다.”

인사를 하며 메구미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스트립바에서 마주쳤던 남자가 자신을 구해준 여자의 애인이란 사실이 황당했다. 하지만 이내 이해했다.

‘애인이니까 근처에 있었을지도? 혹시 애인을 찾고 있던 중이었을까?’

일본 여자들이 남자가 밤문화를 즐기는 것에 무조건 관대한 것은 아니었다.

불건전하며 바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

의심스러운 애인의 뒤를 쫓던 야은설이라고 생각한 메구미였다.

‘스토커를 제압할 정도면 강한 여자가 분명해.’

남자를 휘어잡는 여자.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저 야마다씨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강지건의 몸은 야은설이 어떻게 해보기 어려운 수준으로 보였다.

‘그런데 강지건하고 진짜 비슷하네.’

세계적인 스타가 된 강지건은 일본에서도 유명했다.

잘 생긴 것은 아니지만 빌보드 1위를 한 것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더구나 위튜브를 통해 비교적 쉽게 활동을 접하기도 했다.

물론 현재는 강지건보다 진매령과 윤경미가 더 유명했지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메구미는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하며 식사 접대를 하겠다고 했다.

먹고 싶은 것을 고르라는 말에 야은설은 강지건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커피랑 케이크로 하지 뭐.”

“아니 저 때문에 굳이 그러실 거 없어요. 정말 제대로 대접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아니, 밥은 내가 만들어 먹는 게 더 나으니까. 굳이 돈 줘가면서 사먹긴 좀 그래.”

강지건은 솔직히 말했다.

“네?”

“못 믿겠으면 내가 요리해줄까? 재료는 네가 사고.”

“으음, 그럼 어디서?”

“내 방으로? 아니면 네 방으로?”

어느새 무례하게 반말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메구미는 반발하지 않았다.

반말하며 무례한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잘 어울려 보였다.

“저 그럼 제 방에서 해주세요.”

“조리 기구는?”

“그냥 기본인데요.”

“그럼 간단한 걸로 가야겠네. 가자 마트로.”

이후 마트에서의 쇼핑이 시작되었다.

비싼 것은 고르지 않았다.

“원래 한없이 맛있는 걸 먹으려면 재료 선정부터 제대로 해야 해. 요리사의 기본은 재료에 대한 지식이 우선이거든.”

“요리사신가요?”

“아니, 나 여기 다녀.”

강지건의 명함에는 레알핑크라고 찍혀 있었다.

“어, 여긴.”

“사실 내가 거기 스카우팅 매니저야. 이쪽으로 돌아다닌 이유야 AV 배우 찾느라 그런 거고.”

강지건의 설명에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그럼 절 찾아오신 건?”

“맞아. 출연 제안하려 했지. 하지만 그건 그거고. 고기는 이걸로. 이게 그렇게 좋은 건 아니지만 평타는 치니까.”

강지건은 망설임 없이 제일 좋은 것들만 골라서 바구니에 담았다.

‘AV 출연이라.’

메구미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계산 해야지?”

“네.”

잠시 뒤, 세 사람은 메구미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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