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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
강지건이 가진 능력 중에 하나는 바로 포털 이용이었다.
이를 통해 관리실로 이동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확한 위치만 파악하면 세계 어디에든 포털을 열어 이동이 가능했다.
즉, 비행기나 배를 타지 않아도 일본 방문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입국 심사를 받지도 않는다.
더구나 일본에서 실종되었던 사람의 신분증을 위조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불심검문에도 걸릴 일이 없었다.
강지건이 일본에서 사고를 쳐도 출국 사실이 없으니 완벽한 알리바이가 된다.
뿔테 안경을 쓰고 모자를 쓴 강지건은 여유롭게 삿포로 거리를 걸었다.
하얀 옷을 입고 있는데 옷 속이 훤히 비친다.
안에는 도깨비 문신이 있었다.
진짜 문신을 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템을 이용해 문신을 새긴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을 뿐.
저렴한 아이템이기에 사서 착용했다.
그리고 이것만으로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리게 하는 효과가 나왔다.
야쿠자라고 오해받기에 딱 좋았다.
‘효과 좋네.’
일부러 야쿠자 코스프레를 했다.
원래의 신분을 감추기 위한 노력이었다.
물론 야쿠자 코스프레를 하면 예상치 못한 주목을 받기가 쉽다.
강지건은 밤이 되자 적당한 걸즈바를 찾아갔다.
걸즈바는 그냥 여자들과 이야기를 하며 노는 바이다.
스낵바와 같지만 다른 점은 바로 연령대.
스낵바가 아줌마 아저씨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면 걸즈바는 좀 더 젊은 사람들이 가는 곳.
중요한 점은 2차를 나가는 것도 아니고 터치할 수 있는 곳도 아니란 점.
무엇보다 바가지를 씌우는 곳도 많기 때문에 조심해야만 한다.
하지만 강지건은 바가지 따윈 신경 쓰지도 않았다.
돈 많으니까.
걸즈바에 들어가자 여자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다.
“어서 오세요.”
“내가 요 동네 온지 얼마 안 되는데 맛집 좀 알려주지 않을래?”
“물론이죠.”
여자들과는 수다를 떨며 술을 잠깐 마셨다.
가격은 절대 저렴하지 않다.
비싸다.
바가지도 많다. 이렇게 하면서도 여자들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도 힘들다.
일본에서는 술집의 종류에 따라 할 수 있는 행위가 정해져 있었다.
술 마시면서 터치가 가능한 집, 키스까지 허용되는 곳, 혹은 세트로 정해진 행동만 할 수 있는 곳 등등.
각 가게마다 규칙이 있기 때문에 이를 따르지 않으면 쫓겨난다.
“이 근처에서는 여기가 정말 맛있어요.”
“그래? 얼마나 맛있는데?”
강지건은 웃으며 여자의 이야기를 계속 유도했다.
마츠모토 아유미는 손님을 접대하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편안해.’
이미 익숙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묘하게 즐거웠다.
가끔 마음에 드는 손님을 만날 때면 느끼는 감정이었는데 이날은 더욱 특별했다.
‘꽃미남은 아닌데.’
강지건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미남은 아니었다.
모자와 안경을 쓰고 있음에도 드러나는 못생김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외의 모든 것은 합격이었다.
강렬한 인상.
다부진 몸.
남자다운 모습이었다. 여자 앞에서 떨거나 그러지도 않고 능숙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 더욱 매력적이었다.
또한 말도 재미있게 잘 했다.
“혹시 안내해 줄 수 있을까? 일 끝나고 나서.”
은근한 제안.
말만 하지 않고 만엔짜리 지폐 1장을 내민다.
“이건 질문의 대가.”
테이블 위에 지갑을 올려놓고 웃고 있었다.
“흐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매상 좀 올려줄게.”
또 다시 1만엔.
“흐응.”
“이게 마지막 제안이야.”
마지막 1만엔.
총 3만엔을 그냥 받았다. 원래라면 손님과의 2차는 하지 않았을 아유미였다.
가게에서는 매너 좋다가도 2차 가서 개차반으로 돌변하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2차에서도 그냥 데이트만 하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선을 넘는 경우도 있었다.
때문에 안전을 위해서라면 2차는 피하는 게 제일 좋았다.
일본에는 수많은 종류의 술집이 있었다.
풍속에서부터 그냥 이야기만 하는 곳까지.
가게마다 규칙이 있고 정도에 따라 가격이 올라간다.
여자들은 자신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의 가게를 골라 일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2차가 없는 것도 아니고 2차에서 썸씽이 아주 안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 가수 닮은 거 같은데.”
“그런 소리 많이 들어.”
강지건은 슬쩍 셔츠 안쪽의 몸을 보여주었다.
문신이 보였다.
“나하곤 상관없는 세계지만.”
“그러네요.”
아유미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야쿠자!’
강지건이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위험한 남자!’
보통이라면 거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유미는 오히려 눈을 빛냈다.
‘한 번 만나볼까?’
원래는 야쿠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때는 보통 소녀들이 그렇듯 꽃미남을 좋아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한 이후, 생각이 변했다.
남편은 기둥서방처럼 놀고 먹었다.
가끔 폭력도 휘둘렀다.
그러다 빌기도 했다.
이미 결혼을 한 상태이기에 아유미는 어쩔 수 없단 생각을 했다.
그저 남편이 어서 정신차리길 바라며 일을 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슬슬 한계였다.
젊을 땐 미남이던 남편은 집에서 놀기 시작하더니 점점 아저씨가 되어가고 있었다.
환상을 깨지고 희망도 안 보이고.
이런 상황에서 꽃미남이던 남편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강지건이 나타났다.
질문 몇 개 하는데 3만엔을 아무렇지도 않게 준다.
더구나 야쿠자로 추정되었다.
그냥 가짜 문신으로 사기 치는 걸 수도 있음을 알지만 미처 떠올리진 못했다.
‘살기 위해선 뭐든 할 수 있는 남자.’
나쁜 짓을 해서라도 돈을 번다니.
기둥서방인 남편에게 질린 아유미는 강지건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그럼 기다려줄래요?”
“좋아, 끝날 때까지 나랑 놀자. 혹시 카드 같은 거 있어?”
“네.”
“가져와봐. 내가 재미있는 거 보여줄게.”
카드를 받은 강지건은 마술 몇 가지를 선보였다.
“와앗! 어떻게?”
“후훗, 내가 말이지 어릴 땐 마술사가 꿈이었어.”
담배를 꼬나문 강지건은 능숙하게 카드를 섞으며 계속 간단한 마술을 선보였다.
그러자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자, 모였으니까 다들 한 잔씩 해. 내가 쏜다.”
자신의 쇼를 보는 사람들에게 강지건은 맥주를 한 잔씩 돌렸다.
사람들은 즐거워하며 함께 떠들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 영업이 끝나는 시간이 되자 다들 일어났다.
강지건은 아유미와 함께 거리로 나왔다.
“이 시간에 맛집들이 열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하는데 있어요.”
아유미가 이끌고 간 곳은 한 골목.
선술집들이 즐비한 가운데 밥집도 종종 있었다.
“밤에 하는 집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고요.”
작은 라면집이었다.
앉는 자리는 없고 서서 먹는 곳이었다.
한쪽에서는 젊은 종업원이 배달 가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 미소 라면 드셔보시면 아마 잊지 못할 걸요.”
후루룩.
“괜찮네.”
“으응? 정말요? 맛있는 게 아니고요?”
“응, 괜찮네.”
강지건의 혀에는 부족한 점들이 포착되었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헤에?”
그냥 맛있어도 그저 그런 척하는 연기를 했다.
‘이게 츤데레 뭐 그런 건가?’
아유미는 이를 보고 오해했다.
강지건이 유도한 점이기도 했다.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며 거리를 좁히는 것.
이미 아유미에 대한 조사는 끝난 상태였다.
심리를 분석하고 빠르게 공략할 수 있는 여자를 뽑아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아왔다.
“괜찮네.”
“후훗, 다음은 어디로 갈까요?”
“어디로 가고 싶어?”
“흐응, 글쎄요?”
아유미는 잠시 걷자고 했다.
라면 가게를 나온 두 사람은 밤거리를 걸었다.
찬란한 간판들 사이로 들려오는 소음이 밤을 물들였다.
강지건이 슬쩍 손을 잡았다.
아유미는 피하지 않고 잡았다.
데이트를 하는 기분에 마음이 점점 들떴다.
“잠깐 쉬다갈까?”
강지건은 적당한 모텔을 턱으로 가리켰다.
선택의 순간.
여기서 거절하면 그냥 잠시 거리를 걷고 이야기를 하다 헤어지는 코스.
받아들인다면 모텔로 직행.
‘집에 가야.......’
기둥서방이 티비를 보고 있는 상황이 떠올랐다.
일도 안 하고 집에서 놀고 먹는 남편.
가끔 용돈 달라며 손을 내밀면 지갑을 열어야만 한다.
‘가기 싫어.’
끄덕.
집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결국 모험을 택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모텔로 들어섰다.
모텔 방 안.
안으로 들어서고 문이 닫히자 아유미는 강지건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입술이 닿으며 진한 키스가 이어졌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어질한 느낌마저 아유미에게는 황홀하게 느껴졌다.
강인한 남자의 팔이 몸을 속박하는 게 좋았다.
‘묶이고 싶어.’
속박 당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강한 손길이 옷을 벗길 때 순응했다.
얼마 안 가 나신이 되었다.
강지건이 모자와 안경을 벗었다.
“어?”
“왜?”
“강지건?”
“아니라니까.”
윗도리를 벗은 몸에는 현란한 문신이 박혀 있었다.
만지는 걸로는 확인이 힘들었다.
가짜 문신 대부분은 물이나 비누로는 지워지지 않으니까.
제거를 위한 제품이나 알코올 혹은 오일이 필요했다.
“닮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그래서 AV 찍으란 얘기도 많고.”
“진짜요?”
“그래.”
강지건은 한숨을 내쉬며 토사 방언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강지건이란 놈이 토사벤을 할 수나 있을 거 같나?”
“네? 네? 어 방금 그거. 토사?”
“그래. 토사벤이다. 내가 이걸 써야 사람들이 믿더라.”
토사 방언은 일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지역 사람은 알아듣기 힘들어 하는 방언이었다.
일본 방언 중에는 멸종 위기에 있는 것도 있고 아예 다른 언어 취급 받는 것도 있다.
“확실히 강지건이 토사 사람은 아닐 테니.”
아유미는 강지건의 거짓말을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강지건이면 더 좋은 거 아냐?”
“하윽!”
강지건의 손이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맞아요. 진짜였으면 좋겠어요.”
“그럼 소원을 빌어봐. 혹시 알아? 진짜로 이뤄질지?”
장난스럽게 말하며 아유미를 번쩍 들어올렸다.
“꺅!”
소리를 지르면서도 활짝 웃는 아유미였다.
이내 침대 위에 눕혀지고 위로 강지건이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