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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시작
제타스 연습실.
강지건은 2군 선수들과 함께 1군 선수들의 연습 상대를 해주고 있었다.
2군 선수들은 요구된 플레이를 최대한 비슷하게 펼쳐보았다.
“탑갱 이후 귀환 바텀 봐주고.”
개막전 상대의 플레이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있다.
물론 이렇게 재현한 플레이가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시즌이 시작하게 되면 패치에 대한 연습을 하기도 하고 전략을 수정하기도 하니까. 또한 선수 보강이 이뤄진 경우에는 전혀 다른 색깔을 보일 수도 있었다.
“상대는 수비적인 플레이를 요구하는 스타일이야.”
한국 리그에서 수비적인 플레이는 완벽을 요구하는 운영 스타일이었다.
불리할 땐 절대 싸우지 않는다.
이것은 상당기간 굉장히 잘 먹히는 전략이었다.
무엇보다 쉽게 지지 않는 모습을 연출하기에 딱 좋아서 많은 팀들이 프런트에 뭔가 보여줄 때 이러한 전략을 많이 썼다.
줄건 주고 큰 싸움에서 꽝 붙자.
할 건 다 했다고 변명하기 딱 좋은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젠 메타가 변했다.
공격적인 운영이 대세였다.
눈 마주치면 싸우고 서로 죽고 죽이는 수싸움을 통해 주거니 받거니 하다 최후에 살아남아 승리를 거머쥔 팀이 전리품을 쓸어 담으며 스노우볼을 굴리는 구조로 가게 되었다.
탱커와 같이 버티는 챔피언이나 아이템 세팅 보다는 보다 빠르게 로밍을 하며 공격적으로 딜을 넣는, 피지컬을 살릴 수 있는 팀이 더 유리한 메타가 된 것이었다.
또한 아무리 수싸움을 잘 해도 결국 전투에서 이기지 못하면 모든 것이 뒤집어지는 메타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임기응변에 능한 팀이 더 유리하기도 했다.
감독과 코치가 작전을 짜주고 운영대로 이끌어가라고 주문해도 그게 항상 먹히는 것은 아니다.
픽을 보고 아이템 세팅을 보면 대충 뭘 하려는지 다 보인다.
실시간으로 계산하며 유불리를 파악하고 상대가 유리해지지 못하게 억제하려 든다.
이를 할 수 있는 팀은 강팀이 되고 못하면 잘 나가다가도 매번 뒤집히는 약팀이 되는 것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공격적으로 흔들어야 해.”
또한 팀의 성향은 감독과 코치 그리고 선수들의 궁합이 맞아야 한다.
줄 건 주면서 이득을 챙기는 전략을 선호하는 코치진이 공격적으로 싸움을 선호하는 선수들과 만나면 불협화음이 생긴다.
코치진 입장에서는 선수가 말을 안 듣고 항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선수 입장에서는 코치진이 자신의 플레이를 억압하며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보인다.
못하는 것도 할 수 있어야 한다지만 성향 자체를 바꾸라고 하면 쉽지 않다.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될 거 같으면 아무도 고생하지 않는다.
적응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패치 변경이 훨씬 빠르니 적응하기도 쉽지 않다.
다음 시즌, 다음 패치에 변해버리니 새롭게 적응하다가 시간만 보낼 가능성이 높았다.
괜히 메타 적응 속도, 학습 속도가 선수의 등급을 정하는 요소로 떠오른 게 아니다.
“좀 더 빨리 적응해라. 느리면 적응 끝났을 때 다음 패치 들어온다. 그러면 말짱 도루묵이야.”
“대전제는 이래. 대충 챔피언 매커니즘이 받아치는 스타일이니까 이걸 공격적으로 쓰려면 활동 반경에 문제가 생겨. 이 챔프는 발이 느리니까 절대 사이드로 가면 안 되고 미드에서만 움직여야 해. 그리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협동해야 하고. 절대 혼자서 움직이면 안 돼. 그리고 사이드로 가면 다른 팀원들하고 연계하기가 매우 힘드니까 조심해야 하고. 함정을 파는 거라면 상관없지만 이득을 취하려고 혼자 가면 절대 안 돼.”
코치진은 2군 선수들에게 지식을 쑤셔넣었다.
강지건은 2군 선수들에게 적절히 오더를 내리며 개막전 상대의 플레이를 익힐 수 있게 도와주었다.
여러 플레이를 따라해 보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습득하는 것도 빠른 학습 방법이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본인이 다 생각하고 해내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들다.
재능이 넘치는 선수들이나 할 수 있는 짓이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재능 있는 유망주들이 실력 있는 코치진을 통해 실력을 쌓다보니 갭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팀의 합이, 그리고 메타가 웃어주는 순간 어느 팀이든 무서운 포스를 뿜어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무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포스를 뿜어내는 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강지건이 있는 제타스에서는 메타가 어떤지는 상관이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어, 그래.”
강지건 때문이었다.
강지건의 도움으로 선수들은 새로운 플레이를 빨리 익힐 수 있었다.
순도 높은 경험을 쌓는데 강지건과의 연습이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수많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카피해서 보여줄 수 있으니 강지건과의 연습이 경험치를 쌓는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보니 제타스 선수들은 연습 시간에 굉장히 뜨거워졌다.
또한 강지건이 한 번씩 압도적인 피지컬을 보여줄 대면 다들 도전했다.
싸워서 이기고자 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수준의 수싸움에서 항상 지지만 이를 따라잡고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단 거 너무 많이 먹지 말고 밥 먹어. 운동도 좀 하고.”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만 했다.
욕망을 계속 자극하는 것이었다.
멘탈을 관리해주는 측면에서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학대라고 하지만 선수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것도 굉장히 중요했다.
스포츠에선 가끔 금메달을 따거나 우승을 하면 의욕을 잃고 방황하는 선수들이 있다.
이스포츠인 전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이룩하고자 한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의욕이 뚝 떨어진다.
이는 집중력 저하로 이어지기 딱 좋다.
집중력이 낮아지면 당연히 경기력이 떨어진다.
모든 선수가 이런 것은 아니다.
선수마다 멘탈 구조가 다르니까.
“그리고 탑. 넌 오늘도 너무 못했다. 그 실력으로 어디 가서 탑이라고 하지 마.”
“네.”
핀잔을 들으면 시무룩해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불타오르는 사람도 있었다.
‘꼭 이긴다!’
탑라이너인 칼록, 유민수는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탑이라는 자부심이 엄청나게 강했다.
탑 밑으로는 다 아랫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긁어주니 화내며 분노했다.
이어서 강지건은 적당히 선수들의 멘탈을 케어 해주었다.
“넌 가서 좀 쉬고.”
“넌 공부 좀 해.”
“체력을 좀 키워보는 건 어때?”
강지건이 조언을 남기고 퇴근했다.
“후우. 진짜 괴물 같다니까?”
“그러게.”
선수들은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강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강지건을 당해낼 수 없었다.
더구나 강지건의 오더는 매우 정확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들보다 사고의 속도가 훨씬 빠르니까.
똑같은 시간에 계산해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훨씬 많은 것이었다.
강지건은 0.1초도 다른 사람의 1시간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생각만으로는 따라잡을 존재가 없는 셈이었다.
이러한 차이가 판단력에 영향을 준다.
전체적인, 큰 그림을 그리는 판단력.
전투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대응하는 판단력.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낼 수 있기에 실력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보통은 싸움에 집중하다보면 전체적인 흐름을 잊기 마련이다.
적을 발견하고 싸우기 위해 쫓아가다가 어이없이 잘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전설은 1:1 싸움이 아니고 다대다의 싸움이다.
중간에 2:1로 협공당하는 상황이 오지 말란 법이 없다.
때문에 상대의 위치 파악은 물론 협공 가능성도 항상 염두에 두고 전투를 치러야만 한다.
말은 쉽지만 직접 하라고 하면 못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냥 상황 인지 방식 자체가 다른 경우가 있다.
지나치게 한 가지에 몰두하며 집중하게 될 경우 보이는 현상이다.
게임을 할 때 채팅창에 전혀 신경 못 쓰는 경우와 비슷하다.
또 어떤 사람은 미니맵을 잘 보지 않는다.
선수마다 강점과 약점이 있었다.
지나치게 전투를 의식하거나 또는 상대 움직임을 의식해 소극적으로 하는 등.
약점을 보완하려다 강점을 죽여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한 팀의 합이 자신의 장점을 살릴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바텀 중심의 운영을 하는 팀이라 탑은 그냥 국밥처럼 든든한 플레이를 요구 당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탑에서부터 초반에 공격적으로 풀어나가 바텀에 대한 압박을 시도조차 못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탑으로 안 오면 아예 다 밀어버리고 게임 끝내버릴 정도로 공격적인 초특급 탑라이너가 있는 경우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이런 팀에서는 바텀이 생존해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게 변한다.
정글러가 바텀은 내버려두고 탑만 봐줘도 게임이 유리해지니까.
우리 탑은 절대 안 지니까 탑을 봐주면 당연히 게임이 유리해진다. 반면 바텀에서는 무조건 버티는 생존 플레이를 하는 것만으로도 큰 기여를 하는 게 된다.
던지지만 않으면 이기는 것이다.
소위 말해서 알고도 못 막는 상황이 펼쳐진다.
이러한 상체 중심의 메타는 결국 게임사에서 공격적인 메타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며 발생한 현상이었다.
이 때문에 원딜이 하이퍼 캐리를 하는 경우가 점점 줄어들었다.
후반에 가면 원딜의 딜링 능력이 요구되지만 후반에 가기도 전에 게임이 말려버리면 어떻게 해보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대체 저런 실력으로 왜 이제까지 프로를 안 했는지 이해가 안 돼.”
“처음부터 저 정도는 아니었다던데.”
“그래?”
“어, 여러 선수들 플레이 익히고 프로로 뛰면서 더 늘어났다고 하더라고.”
“진짜 괴물이야.”
“그나저나 진짜 부럽다. 요번에 디지털 거래소 열었다던데.”
“코치님한테 한 번 부탁해볼까? 우리 카드도 만들어서 팔아도 되냐고?”
“그래볼까?”
“해보자. 솔직히 같은 팀에서 얼마나 뛰겠어? 올해로 끝날 수도 있는데.”
이스포츠 프로게이머들은 계약 기간이 짧다.
장기로 묶는 것은 팀도, 그리고 선수도 부담스럽다.
비싼 돈 주고 계약했는데 그저 그런 성적을 낼 수도 있고 선수의 경우에는 싼 값에 계약하고 엄청난 성적을 냈는데도 계약 때문에 더 큰 돈을 받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선수 수명이 짧다보니 돈 더 준다고 할 때 팀을 바꾸는 게 인생에 도움이 된다.
애초에 역사도 짧고 오래 기억되기도 힘든 것이 이스포츠 프로게임단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구단이 너무나 쉽게 매물로 나오며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는 경우도 흔했다.
세계 대회 우승팀도 매물로 나와서 팔리는 판이니까.
굳이 팀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이유다.
이스포츠 팬들도 팀이 아니라 선수에게 집중하는 경향이 더 큰 것이 이유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코인에 대해 잘 아시면 좀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물어볼까?”
“그래.”
선수들은 게임만 하지 않는다.
돈벌이에도 당연히 신경이 쓰인다.
중학교 혹은 고등학생 때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고 게임에 전념했기에 지식이 많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대학보다는 프로 데뷔가 더 먼저다.
프로게이머 은퇴하면 그냥 고졸 백수인 것이다.
게임 쪽으로 기회가 있다고 하지만 다른 일을 하려고 하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니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둬야 한다.
관심이 없을 수가 없다.
장래가 불투명하니 돈이라도 많아야 한다.
집에 돌아온 강지건은 제타스 선수들과 앱으로 채팅을 했다.
‘흐음, 돈이라.’
선수들의 고민을 들었다.
어디에 투자하면 좋겠냐는 의견부터 NFT를 만들어 팔고 싶다는 도움 요청까지.
“제타스 NFT 제작 진행해보자.”
“하시게요?”
“어, 해야지. 이것도 추억이니까.”
굳이 전설의 선수로만 기억되도록 만들 생각은 없었다.
“제타스 스프링 우승 NFT를 만들면 되겠네.”
전설에서는 세계 대회 우승팀의 스킨을 만들어서 판매한다.
NFT 카드 제작은 이와 비슷했다.
다만 스킨 제작이 아니라 선수들의 카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경매에 붙이는 것이다.
일종의 팬들을 위한 굿즈였다.
굿즈 대부분이 그렇듯 꼭 어딘가에 쓸모가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와 연관된 것을 가까이에 두고 추억을 되새기는 것이다.
“그럼 포스타에 문의하는 것은 어떨까요?”
“포스타에?”
“상 받는 가수들이 있으니까요. 이번에 데보라도 음원 차트 1위 찍었으니 기념으로 하나 만들면 좋지 않을까요?”
“희소성을 생각한다면 좀 더 큰 상이 좋긴 하겠지만 뭐 나쁘지 않겠네. 노래마다 하나씩 하는 게 더 나을 거 같기도 하고.”
“그럼 연락하겠습니다.”
라다의 연락을 받은 포스타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데보라의 NFT를 팔아서 수익을 낼 수 있다면 해야죠.”
연예 기획사는 연예인을 통해 수익을 뽑아내야만 한다.
그렇기에 연예인 NFT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적극적으로 응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