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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시작

한숨 자고 일어났을 때, 나나미는 보았다.

강지건에게 깔려서 신음하는 모에미를.

“하악! 당신 너무 좋아요!”

“나나미 일어났어?”

강지건이 돌아보며 손을 내밀었다. 엉겁결에 잡은 나나미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틈이 없었다.

“이리 와.”

상체를 일으킨 강지건의 품에 안겨 키스 당하는 나나미는 몸을 맡겼다.

“좋았어?”

“네.”

“그럼 이제 나나미는 내 딸?”

“아니, 그건.”

“괜찮아. 우리끼리 있을 땐 딸 해.”

“어떻게.”

“나보다 나이 많지만 날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뭐.”

“그런 가요?”

여자가 또 있다는 이야기에도 놀라지 않았다.

강지건의 행동에서 그럴 거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측했다. 나나미도 딱히 그런 것에 신경쓰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복이었다.

“나는 나나미가 좋아. 나나미도 나 좋지?”

“네.”

“그럼 그걸로 된 거야. 우리 관계는.”

“그런데 정말 강지건인가요?”

“그래.”

나나미는 신음하는 모에미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강지건은 일본어를 못하는 줄 알았는데.”

“내겐 특별한 능력이 있으니까.”

“특별한 능력이요?”

“알게 되면 영원히 날 벗어날 수 없게 될 텐데. 알고 싶어?”

“영원히라니.”

강지건은 웃으며 모에미를 가리켰다.

“내 비밀을 알게 되고 퇴사했지.”

“그런데 하야시상을 어떻게 알게 된 건가요?”

“우연이었어. 나나미의 애인이 모에미를 해치려 했었거든. 강간하거나 혹은 살인을 저질렀을지도 모르지.”

“네?”

“몰랐어? 네 연인이라는 남자가 모에미에게 칼 들고 나타난 거. 복수한다고 하던데.”

“그런.”

사실을 알게 된 나나미는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날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하지만 부담스러웠다.

정말로.

자신을 위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사람.

실제로 고마운 일이긴 했다.

하지만 감당하기 벅찬 것도 현실이었다.

살인을 저지를 정도의 사랑에 그대로 응답해줄 자신이 없었으니까.

더구나 정말 살인이라도 저지른다면?

자신은 공범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범죄자의 애인이란 꼬리표는 싫었다.

“헤어지길 잘한 거 같네요.”

그렇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인을 하는 게 무조건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다.

안 받아주면 나쁜 사람이 될 순 있지만 나나미에게는 이미 마음을 내준 사람이 새로 생겼으니까.

“어쨌거나 우연히 근처에 있다가 구해주게 됐어. 그리고 모에미는 남편에게 복수하기로 한 거고.”

“복수요?”

“응, 불륜을 저지르고 AV를 찍을 거거든.”

“AV요?”

“응.”

“저도 찍어야 하나요?”

“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어쨌거나 능력 얘기하고 있지 않았나?”

“네.”

“알고 싶어?”

나나미는 고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되니 더 이상 제대로 된 판단이 어려웠다.

한 때 사랑했던 남자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더구나 세상은 위험하게만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 모에미를 구한 강지건이 상당히 든든하게 느껴졌다.

“제가 평생 보호해달라면 해주실 건가요?”

“그래, 나나미는 내 딸이잖아?”

“정말요?”

“그래, 하지만 내 말을 잘 들어야지. 일부러 위험한 짓을 하면 나도 보호해주긴 어려워.”

“그건 안 해요.”

나나미는 결심했다.

“알려주세요. 당신의 능력을.”

순간 풍경이 바뀌었다.

세 사람은 마겔의 저택 풀장으로 이동되었다.

“여긴 마겔이란 세상이야.”

“네?”

“이제 곧 알게 될 거야. 내가 어떤 존재인지.”

강지건은 나나미를 눕히고는 대물로 찔렀다.

“흐윽!”

갑작스러웠지만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아아.’

드넓은 풀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름다운 저택이었고 풀장이었다.

사치스러운 느낌에 나나미는 마음이 활짝 열렸다.

사치는 곧 힘이다.

힘을 느끼게 된 나나미는 강지건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졌다.

더 알고 싶어졌다.

‘파파.’

정신적인 지주가 되기에 좋은 존재인지 알고 싶어졌다.

점점 마음에 대물 기둥이 박히며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절정에 도달했고 나나미는 초능력을 얻게 되었다.

염력을 얻게 된 순간 나나미는 신기한 감각을 맛보았다.

갑자기 주변의 공간과 사물이 자연스럽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축하해. 너도 이제 초능력자야.”

“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지? 그걸 잘 이용하면 네 초능력을 확인할 수 있어.”

강지건이 초능력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나나미는 조심스럽게 하나씩 시도해보았다.

그러자 근처의 작은 돌 하나가 둥실 떠올랐다.

“염력이네.”

“초능력.”

나나미는 엄청난 충격에 제대로 말도 잇지 못했다.

놀란 얼굴로 강지건을 바라보았다.

“어때?”

“좋아요.”

“나 아니었으면 못 얻었어.”

“네.”

나나미는 새로 태어난 느낌이었다.

‘초능력자.’

특별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파파.”

“훗, 이제 내 딸 할 거야?”

“네, 파파. 나나미는 파파의 딸이에요. 착한 아이가 될 게요.”

“나한테만 착하면 돼. 알았지?”

“네, 파파.”

순종적으로 변해 품에 안겼다.

“나나미는 파파를 느끼고 싶어.”

찌걱.

대물이 나나미를 찔렀다.

“파파!”

그때 옆에서 모에미가 정신을 차리고 나나미를 안아주었다.

“마마도 잊으면 안 돼.”

“응!”

특별한 인간으로 태어난 날, 나나미는 강지건과 모에미를 부모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이는 상관없었다.

한편, 칼에 찔린 하야시 켄은 죽지 않고 병원에서 깨어났다.

위험한 상황에 이르긴 했지만 어찌어찌 살 수 있었다.

근처에 지나가던 간호사가 있던 덕분이었다.

응급처치를 받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도중에 응급실 준비가 된 병원을 찾느라 헤매면서 사경을 헤매긴 했었으나 무사히 치료를 받고 살아나게 되었다.

“하야시상, 지금 대화 괜찮습니까?”

정신을 차리자 경찰들이 찾아왔다.

“네.”

“혹시 찌른 사람이 누군지 짐작가시는 부분이 있습니까?”

흉기에 시민이 찔린 사건이었다.

수사하지 않고 넘어갈 순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처음 보는 남자. 더구나 얼굴도 가리고 있어 알 수 있는 게 전무했다.

흉기도 발견되지 않았다.

인근에 카메라도 없었다.

목격자도 없었다.

“그럼 찔린 상황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그곳에는 어떤 일로 가시게 됐습니까?”

수사관은 사소한 정보도 놓치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켄은 솔직하게 답하지 않고 거짓을 말했다.

“아내를 찾고 있었습니다.”

“아내요?”

“네, 갑자기 집에 들어오지 않아서. 회사를 찾아갔는데 퇴사했다고 해서.”

“으음.”

수사관들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시군요.”

켄은 절대 나나미를 찾아갔었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언급도 해선 안 돼.’

나나미가 수사 선상에 오르고 정보를 캐기 시작하면 자신의 범죄가 드러날 수 있었으니까.

‘원한에 의한 것이라면.’

나나미를 떠올리니 자연스럽게 원한을 가졌을법한 사람이 떠올랐다.

‘나나미의 가족이나 애인이려나.’

단순 강도였다면 지갑이라도 훔쳐가야만 했다.

하지만 상대는 찌르고 튀었다.

원한도 강도도 아니면 정신병자라고 봐야 했다.

물론 정신병자일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려웠다.

어쨌거나 켄은 나나미가 조사 받는 것을 꺼렸기에 정보를 숨겼다.

이로 인해 당연히 수사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서로 돌아간 수사관이 보고를 올리자 수사 지휘관은 결론을 내렸다.

“묻지마 범죄로 판단된다. 주변을 탐문하고 유사한 사건 기록과 대조한다.”

수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결국 미해결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매스컴에서는 정신병자에 의한 묻지마 사건이 벌어지고 있으니 유의하란 이야기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물론 해결되는 것은 없고 떠들기만 하다가 넘어갔다.

나나미는 퇴사했다.

집도 빠르게 정리해버리고는 모에미와 함께 출국 절차를 밟았다.

돈을 다 챙겨서 환전했다.

한국에서 살 생각이었다.

일본에 남아 친인척과 연결되는 것도 싫었다.

더구나 집은 무왕계의 절벽 위를 선택했다.

거대한 자연 속에 집을 얻고자 했다.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싶었다.

쇼핑이야 관리실에 가면 뭐든 구할 수 있으니까.

돈을 벌러 다닐 필요도 없었다.

직업을 구하지 않고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에미와 나나미는 자유를 느꼈다.

“파파, 그러니까 마마하고 AV 찍는 거야?”

“응.”

“나도 할래.”

나나미는 모에미와 함께 AV를 찍을 결심을 했다.

“그 놈의 속을 긁을 수 있다면 할 거야.”

더구나 사토미로부터 들은 이야기, 강지건이 가진 판타지에 대해 듣자 나나미와 모에미는 더욱 확고하게 마음을 굳혔다.

어차피 이제 지구인들과는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다.

주소지만 한국으로 해놓고 생활은 무왕계를 비롯해 여러 세계에서 하면 그만이었다.

여차하면 우주선도 탈 수 있는데 지구에 연연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너희 둘은 이제부터 사토미랑 잘 지내야 해. 알았지?”

“네!”

사토미가 AV 배우였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두 다 강지건의 여자일 뿐이었다.

“잘 부탁해요.”

“우리 잘 해봐요.”

세 여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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