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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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

윤경미는 어이가 없었다.

‘이 놈은 또 뭐야?’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상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세상은 원래 그랬다.

조용한 거 같지만 사실 그냥 어딘가에서 조용히 빌드업하고 있었을 뿐이다.

운이 나빠서 마주치거나 혹은 필연이거나.

팬클럽 활동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이런 갑작스러운 일을 경험하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정말 엉뚱한 곳에서 갑자기 태클을 걸어오기도 하니까.

‘한 주먹도 안 될 놈이.’

강지건에게 갈 것도 없었다.

초능력을 쓴다면 윤경미가 직접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확?’

하지만 직접 싸울 수는 없었다.

일상을 버릴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지구의 질서를 파괴할 생각이 아니라면 초능력을 함부로 쓸 수 없었다.

‘일단 별 피해는 없는데.’

최태식의 도발은 먹힐 이유가 없었다.

강지건의 팬덤 선에서 정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윤경미는 최근 누군가 때리고 싶어 하는 강지건을 경험했다.

‘화풀이가 필요한 눈치였어.’

가족의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였다.

다른 세계에서 화풀이를 했다고 하지만 문제의 근원이 존재하는 이상 스트레스는 계속 쌓이기 마련이었다.

‘이 녀석으로 하면 되겠네.’

강지건이 작정하고 싸운다면 지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가만히 서서 얻어맞기만 한다고 해도 버티면 최태식의 힘으로는 절대 쓰러트릴 수 없었다.

인간이 때리는 주먹 한 방에 강지건이 무너질 일은 절대 없었다.

“날 향한 도발이라.”

“어떻게 해요?”

“판 벌려.”

강지건은 도발을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슬슬 만져주지 뭐.”

강지건에게 최태식은 살아있는 샌드백이나 마찬가지였다.

“너무 힘 쓰면 안 되니까 조심해요.”

“응.”

힘쓰면 죽는다.

오히려 세심한 힘 컨트롤이 필요하다.

조금만 세게 때려도 뼈가 박살날 테니까.

기분 나빠서 욱하는 순간 상대를 죽여버릴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말을 무는 모기를 보자 반사적으로 찰싹 때리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하기 이전에 때리고 보는 것이다.

“조심할거야. 걱정 마.”

강지건은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요즘 격투기 좀 하는 분이 저한테 도발을 하시더라고요. 나 이긴다고. 그런데 어쩌죠? 난 프로게이머로 시즌 우승도 해본 사람인데.”

생방송을 진행했다.

> 고로치 우승자 출신이지.

> 빌보드 1위도 했지

“저한테 한 주먹도 안 되신다는 분 보니까 뭐 크게 대단한 우승 경력은 없으시더라고요.”

> 나도 봄

> 그냥 아마지 뭐

> 팩트: 대한민국 격투기는 아마추어를 더 대접해준다.

“맞는 말이긴 해요. 프로는 다 죽었죠. 메달이나 국제 대회를 중심으로 하는 아마추어들만 먹고 사는 추세니까요. 아, 그래도 태권도는 한국을 대표하는 무술이라고 해서 그나마 나은 편이죠.”

대회 우승 같은 건 못하더라도 단증만 따면 일단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간다.

체육관은 꼭 대회 우승자만 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 이거 맞다

> 복싱은 진짜 세계 챔피언 나왔어도 다 옛날 얘기지

> 지금은 그냥 뭐

> 동양 챔피언 같은 거 먹어봐야 알아주지도 별로 알아주지도 않음

> 한국 챔피언 해봐야 먹고 살기도 힘들지

> 한국 프로 격투기는 망한 거임. 해외 진출 아니면 답 없음

> 걍 우물안 개구리가 잘 났다고 떠드는 꼴이지 머

> 요즘 시대에 격투기 잘해서 뭐함. 누구 패고 다닐 것도 아니고. 호신술이라면 달리기랑 체력 운동이나 하셈

“태권도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격파쇼 같은 게 있어서 퍼포먼스에 활용하는 경우가 꽤 많죠.”

> 그건 그렇지

> 실전보다는 퍼포먼스가 더 돈이 되는 시대인 걸.

> 실전이라면 그냥 킥복싱이나 그런 게 더 나을 걸.

> 단검술을 익히세요. 칼 들면 유리해집니다.

> 총을 사세요. 아차 대한민국은 총기 구하기가 어렵지!

“요즘에는 암살자들이 자주 쓰는 건 총이 아니라 약물이잖아요. 시대가 변했죠. 총으로 암살하는 건 진짜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나 전쟁 중일 때 얘기죠. 아, 그리고 진짜 접근이 어려우면 저격보다는 미사일 날려서 폭격해버리기도 하죠.”

국가에서 암살할 때 쓰는 가장 과격한 방법이다.

> 하긴 누구 암살한다고 멀리서 저격하고나 자동차에 폭탄 설치하는 영화 보면 좀 그렇긴 함.

> 근데 암살을 약물로 함?

> 그냥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에 살짝 심장마비 오는 약을 뿌려버리면 뭐.

>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약물만 다른 걸로 바꿔서 쓰게 만들면 암살 성공

> 심장마비는 흔한 거라서 타살 의심을 하기가 어려움

> 술 마실 때 수면제도 있고 약을 슬쩍 타는 방법도 있고

> 접근 가능하면 약물을 쓰지 굳이 총을 써봐야 추적이나 당하는데 뭘

“폭탄이나 누구나 알 수 있게 독극물을 쓰는 건 그냥 암살 했다고 광고하려고 하는 거라고 들었어요. 대들면 다 죽인다는 메시지 같은 거.”

> 맞는 말이지. 사실 죽여서 땅에 파묻는 것도 별로야

> 굳이 청산가리 같은 독을 쓸 필요가 없음

> 상대의 건강 상황을 알면 심장 마비가 오게 만들기만 하면 됨

> 진짜 파묻고 어쩌고 하는 건 우발적으로 죽여서 타살 의심 받기 쉬우니까 시체 숨긴 뒤 알리바이 만드는 거고

대화는 암살에 관해서 계속 얘기했다.

강지건은 이러한 흐름을 막지 않았다.

“암살자들은 약사가 더 되기 쉽겠죠. 여러 약물에 접근도 가능하고 지식도 상당하고.”

> 하지만 약사가 과연 자연스럽게 접근이 가능할까?

“어, 그럼 연기자가 더 어울릴까요? 배우 같은 거.”

> 단역 전문가들이 암살에 최적화 된 거지 그럼.

> 존재감이 없자너

> 암살자는 원래 존재감이 없어야 함

> 막 학교에서 존재감 없어서 친구 없고 그런 애들 생각난다

> 암살자 불땅해

“아니 뭐가 불쌍해요. 이상한 소릴 하시네. 일단 게임 한 판 돌릴게요.”

강지건은 충분히 메시지를 전달했다 생각하고는 게임을 돌리기 시작했다.

1시간 뒤, 갑자기 도발적인 후원 메시지가 떴다.

최태식이었다.

> 거 싸움 같은 거 해보지도 못하신 분이 입은 살아계시네요.

“본인 등판?”

금방 누가 후원했는지 알게 되었다.

“일단 1,000원 고마워요. 잘 쓸게요. 개꿀.”

> 아씨.

“1,000원 고마워요. 잘 쓸게요. 개꿀.”

> 야

“개꿀.”

능욕이 이어졌다.

강지건은 일반 채팅으로 올라오는 최태식의 글은 모두 무시했다.

쪽지도 무시하고 다른 것은 다 무시했다.

“대화를 하고 싶다면 대화비를 내세요, 휴먼.”

> ㅋㅋㅋ

> ㄹㅇㅋㅋ

> 왜 돈을 안 내는 거야? 그래서 언제 싸움?

“언제 싸우냐뇨. 그거야 대전료에 달렸죠. 저 같은 유명인이 어디 무료로 싸우는 거 봤어요? 프로모션도 없이 싸우면 손해지.”

> 맞다

> 하긴

> 공짜로 싸워질 이유가 없지. 생기는 것도 없는데

> 몸값이 안 맞아서 싸워주질 못함

> 더러운 세상. 돈 없으면 싸우지도 못해

“그리고 말이죠. 저는 파이터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만에 하나 나한테 지면 어떻게 해요? 밥줄 끊기실 텐데? 응? 나 그렇게 잔인한 사람 아니에요. 그러니까 생계 챙기세요. 대전료도 못 낼 거면 그냥 조용히. 오케이?”

> 마지막 은근 라임 넣네

> 확실히 아티스트임

> 맞지 만에 하나라도 강지건이 이기면 밥줄 끊기는 거지

> 가수한테 쳐맞는 격투가가 있다?

> ㄹㅇㅋㅋ

> 뭔데 뭐야?

> 잘 모르면 ㄹㅇㅋㅋ만 치라고!

최태식은 열이 올랐다.

하지만 강지건의 말이 틀린 건 없었다.

대전료를 언급한 순간 아무리 도발해도 먹히질 않는다.

유명인이 공짜로 싸워줄 이유는 없는 것이다.

‘패드립을 할 수도 없고.’

싸우기 위해 쓰는 가장 흔한 수법.

부모 욕하고도 가만히 있으면 개새끼 인증이 되니까.

하지만 패드립은 양날의 검이었다.

‘역풍 맞을 가능성이 너무 높아.’

먼저 꺼내는 쪽이 더 위험하다.

서로 이미지가 개판인 사람들이라면 상관없지만 강지건 같은 경우에는 예외였다.

그냥 고소로 가면 끝나니까.

“아우 그냥!”

패주고 싶었다.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덩치가 엄청나게 크지만 소심해서 더 작은 사람에게 농락당하는 사람도 있었다.

최태식도 몇 번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강지건도 똑같이 이길 수 있을 거 같았다.

물론 진실을 알았다면 절대 시비 걸지 않았겠지만.

“에휴, 돈 없어서 싸우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네요. 이건 싸움이 성립이 돼야 뭘 증명하던가 하죠.”

최태식은 슬쩍 한탄했다.

‘이러면 혹시 돈 더 들어올지도 몰라.’

싸움이 하고 싶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이었다.

강지건의 생방송은 금방 화제가 되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프로모션을 하겠다며 나섰다.

돈 많은 사람들.

이들은 돈냄새를 맡고 달려들었다.

‘강지건의 싸움이라면 돈 내고 볼 사람이 많을 거야.’

인터넷으로 유료 방송만 내보내도 쏠쏠하게 챙길 수 있을 거 같았다.

유료 방송에 광고 몇 개 슬쩍 끼워 넣으면 수익이 쏠쏠해질 수 있었다.

현재 프로 격투기도 결국 돈이 문제다.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면 은퇴한 전 챔피언도 불러다 링에 세운다.

한 마디로 추억팔이.

때로는 복싱 세계 챔피언이 종합 격투기 챔피언과 붙기도 한다.

인지도에 따라 대전료가 다르게 책정된다.

선수의 실력보다는 인지도, 혹은 스타성이 더 중요했다.

때로는 국가적 관심을 받고 있는 선수와의 대전도 추진한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에는 살살 띄워주기를 한다.

그러면 중국과 일본에서는 국민이 응원해주니까.

이러한 관심이 곧 돈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프로 스포츠 팀에 후원금을 주며 스폰서가 되는 이유도 바로 홍보가 목적이다.

유럽의 유명 리그 축구팀 유니폼 가슴에 자사의 로고를 넣는 조건으로 거금을 주기도 한다.

다 돈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면 돈도 몰리고 선수들은 광고판이 된다.

몸값을 더 높게 책정 받을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데 몸값을 높게 쳐주지는 않는다.

강지건의 경우에는 가수지만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빌보드 1위의 가수지만 엄청난 몸을 가지고 있다.

강한 이미지가 있다.

또한 대전료를 주면 싸우겠다며 떠들기까지 했다.

정말 매치만 붙이면 엄청난 흥행이 가능해보였다.

때문에 프로모터들이 달라붙었다.

‘이런 건 시간 싸움이야.’

먼저 낚아채는 사람이 승자다.

포스타 엔터테인먼트에 프로모터들의 제의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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