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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
강지건은 외모지상주의에 역행, 아니 반기를 들었다고 해도 좋은 수준이었다.
고릴라를 닮은 얼굴은 미남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구나 강지건은 댄스 뮤직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개인의 인생 스토리 그리고 음악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더구나 본인은 가수가 아니고 프로게이머라고 직업을 소개할 정도였다.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게 이상하고 낯설게 느껴질 존재였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도 납득하기 어려운데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로 인지도를 쌓아올리고 노래까지 성공시켜버렸으니까.
신세대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생활 영역에 들어있는 존재가 바로 강지건이었다.
반면 기성세대 입장에서 볼 땐 반항아와 같았다.
그렇기에 신세대 입장에서는 더욱 열광하기도 했다.
반기의 선두 주자 같은 느낌이었다.
해외에서는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티스트.
더구나 빌보드 1위를 비롯해 여러 국가의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한 남자.
하지만 가수로서 활동은 제대로 하지도 않고 있는 남자였다.
꾸준히 하는 활동이라고 해봐야 위튜브였다.
당연히 강지건의 위튜브는 현재 엄청난 흥행력을 가지고 있었다.
위튜브에 소개된 사람들은 다들 관심을 받았다.
서주희와 황윤주의 존재도 외국인들에게 알려지는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강지건의 위튜브 영상에 나가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수단이니까.
아무리 소속사에서 띄우려고 해도 뜨지 못하는 연예인은 한둘이 아니다.
얼굴을 내밀 곳이 있으면 바짓가랑이를 붙들어서라도 자기 연예인을 꽂아야 하는 게 바로 매니저였다.
강지건의 위튜브 채널이라면 싸울 가치가 충분했다.
해외 진출에 매우 용이할 테니까.
“데뷔 준비 중인 친구들로 가야 합니다.”
“아닙니다. 최대한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데뷔한 신인으로 가야 합니다.”
“아니죠. 뭐니뭐니해도 회사 간판을 내보내야죠.”
“너무 작위적이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작위적이면 어때서요?”
서로 강지건의 영상에 나가려고 안달이었다.
결국 이 사안은 사장이 결정하게 되었다.
“길게 회의할 거 없고. 일단 지금 스케줄 되는 사람으로 가장 빨리 보내.”
“네?”
“한번만 하고 끝낼 거야? 인연을 만들어두란 말이야 인연을. 그리고 이번에 김재연 트레이너는 잠시 매니지먼트팀으로 이동시켜서 집중 마크하게 해.”
“알겠습니다.”
“속도가 생명이야. 질질 끌지 마. 저쪽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몰라. 우리가 질질 끌다가 딴놈이 낚아채면 어떻게 해?”
“당장 가능한 애들은 성적이 별로 좋지 않은데 괜찮겠습니까?”
“괜찮아. 아예 강지건하고 함께 일일 시리즈 하게 잘 좀 해봐.”
“네!”
일일매니저 얘기가 나오자 바로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중요한 건 최대한 친분을 만드는 거야. 다 알잖아!”
연락 한 번 하기가 힘들다.
특히 라다는 거의 철벽이었다.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제멋대로였다.
그런데 제멋대로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내놓는 곡이 다 대박내고 있었으니까.
엄청났으니까.
기분이 나쁘면 좋은 곡이 안 나올 수 있었다. 기분파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기분 나쁘게 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괜히 라이벌에게 곡이 가는 일이 벌어지면 굉장히 배아프다.
결국 현재 가장 간단한 일정을 가진 아이돌이 선택되었다.
티티 엔터테인먼트는 많은 아이돌을 배출했다.
대형 기획사다.
하지만 무조건 성공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언제나 대형 아이돌 그룹만 내보낸 것도 아니었다.
때로는 틈새전략 혹은 실험적인 그룹을 내보내기도 했다.
티티 엔터테인먼트에서는 희생 라인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간판 아이돌 그룹이 엄청나게 잘 나가고 있다면 전력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 다음 그룹의 힘을 빼서 내보낸다.
이것저것 실험을 마구 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데뷔조가 아예 없거나 하면 연습생들이 다른 회사로 빠져나갈 우려가 있으니까.
뛰어난 연습생들을 다른 회사에 빼앗기지 않고 묶어두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경쟁자 좋은 일을 안 하기 위해서.
이는 연습생에게는 매우 가혹한 일이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사운을 건 싸움이었다.
경쟁 회사가 크게 뜨면 상대적으로 밀리고 이는 수익으로도 이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국내 지분이 필요 없는 것 같지만 안 중요한 게 아니다.
국내 활동을 확실히 해서 인기를 끌어줘야 해외 진출이 더욱 순조롭다.
팬덤을 등에 업고 해외를 진출해야 인터넷을 이용한 홍보가 더욱 수월해진다.
또한 재능 있는 연습생들이 여러 실험적인 것을 소화하면 예술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 전략을 쌓는다.
좋은 것은 간판 그룹에게 바로 적용시켜주기도 한다.
연습생들은 이를 알면서도 티티 엔터테인먼트에서의 데뷔를 거부하지 못했다.
거대 기획사니까.
작은 회사로 가서 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해 데뷔하는 그룹은 엄청나게 많다.
아이돌이 한 트럭이다.
대부분 대중에게 이름 한 번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사라진다.
누군지 기억되지도 못한다.
흔한 일이다.
하지만 팬들은 그림자를 보지 않는다.
우주에 떠 있는 별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니 광활한 어둠을 바라보며 암울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형 기획사에서 데뷔하면 사람들에게 얼굴은 확실히 알릴 수 있다.
이름도 알릴 수 있다.
푸시는 확실하게 받는다.
이게 대형 기획사의 힘이다.
이걸 거부하기는 힘들다.
때문에 실험적인, 힘을 조금 뺀 그룹의 데뷔라고 해서 빠지지 못한다.
그저 더 열심히 해서 간판을 빼앗겠다는 독기를 품을 뿐.
실제로 최고 간판을 빼앗은 그룹이 있기도 했다.
이렇게 데뷔한 티티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그룹 중에 하나가 바로 타임걸즈였다.
하지만 이들은 데뷔할 때처럼 독기를 품고 있지 않았다.
“우리 다음 스케줄 뭐임?”
“행사 땜빵 났음. 가서 노래 부르래.”
“신곡이나 주지. 벌써 1년 지난 노래를 가서 불러야 한다니.”
“어쩌겠어.”
타임걸즈는 해체 직전의 걸그룹이었다.
5년 정도 된 걸그룹이었지만 이렇다 할 성적은 내지 못했다.
처음에는 오픈빨로 엄청난 푸시를 받아 음원 차트 1위를 찍어보기도 했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엄청난 기대를 모은 것과 달리 후속타가 없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정말 알차게 부려먹었다.
이런 저런 실험을 해대고 행사에도 열심히 돌렸다.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위해 정말 엄청나게 부려먹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그룹 멤버들이 버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근데 오늘 새 매니저랑 함께 온다고 준비하래.”
“새 매니저?”
“응.”
“어휴, 또 그만 뒀나보네.”
연예계에서 로드 매니저가 수시로 바뀌는 일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박봉에 미래가 밝지 않은 직업이다. 생활도 굉장히 불규칙하다.
연예계에 환상을 품고 발을 들였다가 실망하고 나가는 일이 부지기수다.
“어쨌든 준비하자.”
“응.”
타임걸즈는 준비에 들어갔다.
여민아는 타임걸즈의 막내였다.
25살.
걸그룹 막내가 25살이면 아이돌로 활동하기가 많이 애매하다.
성공한 걸그룹이라면 모를까 하락세를 타고 있는 경우에는 자기 살 길 찾아갈 나이다.
연예계에서만 너무 오래 구르다보면 할 줄 아는 게 더욱 줄어든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이직을 해야지 나이가 든 이후에는 다른 기회를 잡기가 더 힘들어진다.
간혹 역주행의 기적을 쓰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이건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다.
대다수는 그냥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 둬야지.’
25살.
지금까지 노래와 춤 그리고 예능 빼고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학교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공부에 취미가 없는데 연습생 생활까지 하다보니 공부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학까지 가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여민아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대신 데뷔를 했다.
늦은 데뷔.
그래도 처음에는 달콤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다시 뜨지 못하고 회사에서도 별로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끼워팔기로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 나중에는 땜빵용 그룹으로 돌려졌다.
저렴한 행사에 동원되어 열심히 뛰어야 했다.
‘그런데 그만두면 뭐하지?’
막막했다.
어려서부터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으로만 달려왔다.
연예인 활동 이외에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빵집을 할까? 그런데 빵집 너무 많은데. 카페를 할까? 뭐 하지?’
방송 활동 외에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
‘후우. 뭐 하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힘든 일을 하는 것은 상상도 되질 않았다.
공장 취직 따윈 관심도 없었다.
“언니, 언니는 그룹 해체되면 뭐 할 거에요?”
행사 나갈 준비를 다 마치고 잠시 대기하는 동안 그룹의 리더인 정소미에게 달라붙었다.
“나? 헬스클럽 할 건데.”
“헬스요?”
“응, 자격증 따고 준비해야지.”
“돈은요?”
“모아둔 돈하고 대출 끼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언니 돈 많이 모았어요? 서울 비싸잖아.”
“서울 말고. 경기나 다른 데 가봐야지.”
“언니 나도 데려가면 안 될까?”
“자격증이나 따고 말 하던가.”
“따면 데려갈 거야?”
“그냥 각자 갈 길 가는 게 좋지 않을까? 너 사실 이쪽에 관심 없잖아.”
정소미는 여민아를 밀어냈다.
“아잉.”
“징그러.”
같은 그룹에서 오래 활동했다고 꼭 정이 들고 가까워지는 건 아니다.
때로는 원수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타임걸스는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아주 좋은 편도 아니었다.
“시간 됐다! 가자!”
정소미는 메시지를 보고 일어섰다.
이후 숙소를 나서 차를 향해 갔다.
“어서 타.”
창문이 열리고 실장이 보이자 다들 깜짝 놀랐다.
후다닥.
인사를 하고는 차에 올라탔다.
여민아는 잽싸게 조수석을 향해 달렸다.
실장한테 잘 보여서 뭔가 도움이라도 받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을 열자 사람이 보였다.
“어?”
“안녕하세요.”
“어어?”
처음에 든 생각은 ‘못 생긴 남자’였다.
그러나 이내 누군지 깨닫고 두 눈이 커졌다.
“어어어?”
“어서 타세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죠.”
여민아는 후다닥 뒤쪽으로 탔다.
문이 닫히고 외부와 단절되는 순간.
“저기 옆에 계신 분이 이번에 오시는 로드분이신가요?”
자리 잡은 정소민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어, 오늘 일일매니저.”
“일일매니저요?”
“인사하시죠.”
“안녕하세요. 일일매니저 강지건입니다.”
“어?”
“으응?”
“꺄아아아아아아악!”
놀람과 환호가 뒤섞인 반응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차 안에 설치된 카메라들은 이런 모습을 다 잡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