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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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

‘아씨 나도 모르게.’

조금 망설이는 척이라도 해야 했는데 너무 단칼에 잘라내 버렸다.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주둥이는 사고를 친 뒤였다.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지 못한다.

대화 주제는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김재연은 느끼고 있었다.

‘좆됐다.’

앞으로 굉장히 힘들어질 것임을.

회사에서의 일을 대충 정리한 김재연은 검녀 헬스클럽으로 향했다.

‘이거라도 잘 해야지.’

아무런 소득이 없으면?

힘들 거 같았다.

뭐라도 회사 매니지먼트팀에 내보일 게 있어야 했다.

매니지먼트팀과 돈독한 관계를 쌓는다면 나름 회사에서 입지를 구축할 수 있게 되니까.

“안녕하세요!”

“어, 왔어?”

헬스클럽에는 윤경미가 죽치고 앉아 있었다.

“계속 여기 계시는 건가요?”

“응, 나 시험 봐서 여기 취직할 거야.”

“진짜요?”

“응,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

가볍게 말하지만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엄청나게 친한 사이라는 게 드러나는 말이었다.

“저 큰일났어요.”

김재연은 옆에 붙어서 수다를 떨다 슬쩍 얘기를 꺼냈다.

“왜?”

“어자 그 로션 있잖아요. 여기 보세요. 하루 만에 더 어려졌어요.”

“좋잖아?”

“네, 근데 이거 직장 상사한테 찍혔어요.”

사연은 얘기하니 윤경미가 깔깔 웃었다.

“아유, 그냥 주지 그랬어.”

“그래도 되나요? 귀한 거 같은데.”

“나중에 또 받으면 되는 걸 뭐.”

“하지만 귀한 거 같은데.”

“설마 나 걱정해주는 거야?”

윤경미가 발랐다면 엄청난 효과를 보았을 거 같았다.

“네.”

“나야 홍보하느라 그런 거고.”

“홍보요?”

“응, 좀 약하게 만든 거 홍보하느라 그런 거지.”

“그럼 회사 차리실 건가요?”

“응, 알아보는 중이야.”

화장품 제조 및 판매 관련 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예전에는 수제 화장품이나 비누 같은 것은 만들어서 나누거나 선물해도 괜찮았지만 법이 바뀌면서 불법 행위가 된 것이었다.

문제는 제조를 위해 등록을 하려면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결국 기존의 업체를 인수하는 게 훨씬 더 빨랐다.

“와, 이런 거라면 금방 부자 되시겠어요.”

“친구 사업 도와주는 거지 뭐.”

“그렇군요.”

김재연은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해두었다.

‘엄청난 부자가 될지도 모를 사람들.’

로션의 효과는 본인이 보았다.

‘이거의 100분의 1만 효과를 봐도 팔려.’

현상 유지만 해줘도 엄청난 인기를 끄는 대박 상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안티 에이징이라고 거창하게 말하지만 그냥 자외선 차단 성분을 넣고도 안티 에이징이라고 광고해서 팔아먹는 화장품이 수두룩하다.

햇빛, 자외선은 피부 노화를 일으키는 주범 중 하나.

그러니 자외선 차단 성분은 안티 에이징, 노화 방지 성분이 들어간 거다.

따지고 보면 사기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준의 노화 방지가 되는 것도 아니다.

법정에다 고소해봐야 이기기 힘들다.

정말 노화를 억제할 수 있는 수준의 화장품이 나온다?

그렇다면 그 원료의 가격은 황금처럼 비싸질 것이다.

돈 많은 여자들이 다 독차지하려고 들 테니까.

‘이건 엄청난 대박이야.’

뭔지 몰라도 만약 자신이 본 효과가 진짜라면?

세계 재벌가의 여자들이 돈 싸들고 찾아올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허술하게 하다니. 뭔가 좀.’

불안해보이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강지건을 비롯해 다들 느슨하기만 했다.

강지건은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머리가 나쁘니까.

게임에 관해서는 비상한 면이 있지만 게임에 국한된 이야기였다.

다른 이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라다는 물론 안틸로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구의 모든 통신은 이미 안틸로프의 감시하에 있었으니까.

인공지능이 다 감시하고 있었다.

우주를 아우르던 문명의 인공지능이었다.

현 지구의 통신을 감시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미 OP 그룹은 몰론 세계의 대기업 그리고 정부의 시스템마저 감시하고 있었다.

강지건에게 적대적인 행위를 하려 한다면 사전에 알아서 차단이 가능했다.

음해를 하려는 자들의 신분도 다 확인했다.

악플을 다는 사람들의 인적사항까지 파악하고 있을 정도였다.

어떤 공격이든 완벽하게 막아낼 자신이 있기에 조금 허술하지만 위튜브 조회수를 최고로 찍을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이었다.

자신이 있었다.

“그나저나 재연아 부탁이 하나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우리 지건씨 혹시 일일매니저 한 번 해볼 수 있을까?”

“네?”

“위튜브 영상 말이야. 우리 지건씨가 사회 경험이 부족하잖아. 그러니까 이거저거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일일매니저 안 될까?”

“네?”

돈 생각을 하다 갑자기 들어온 제안에 김재연은 깜짝 놀랐다.

‘이거면 나 대박 아닌가?’

“이 정도면 우리 재연이 회사에서 곤란할 일 없겠지?”

“언니.”

“재연이 힘내. 언니가 도와줄게. 대신 알지?”

“네, 충성을 다 할게요.”

김재연은 환하게 웃었다.

충성의 대상은 당연히 강지건 팬클럽이었다.

강지건이 티티엔터테인먼트에서 일일매니저를 하는 위튜브 영상을 찍는다면 자연스럽게 접점이 만들어진다.

잘하면 라다와 어떻게 이어질 수도 있었다.

이것만 해내면 김재연은 회사에서 원하는 일을 해낸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일일매니저. 일일 트레이너도 하고!’

티티엔터테인먼트라면 없는 일거리도 만들어줄 수 있었다.

더구나 세계적인 스타인 강지건이 하는 일이었다.

슬쩍 위튜브 영상에 얼굴을 내미는 것만으로도 홍보 효과가 생길 수 있었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큰 신경 쓰지 않겠지만 강지건은 세계적인 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아무리 반짝이라고 누군가 폄하한다고 해도 대단한 일임은 부정할 수 없다.

세계에는 반짝하지도 못하고 끝나는 가수가 훨씬 더 많으니까.

윤경미는 서둘러 연락하는 김재연을 보며 은근히 웃었다.

강지건은 델과 체시를 네이가에 그대로 남겨두기로 했다.

“제국을 만들어. 독립해. 국가명은 카리아로 해놓을게.”

“네, 맡겨만 주세요.”

시스템에는 카리아국을 조직으로 등록했다.

지금은 카리아 영지민이 전부인 굉장히 작은 소국이었다.

하지만 강지건은 인구수 증가에 퀘스트를 부여해 등록했다.

‘꽤 쏠쏠해.’

위튜브만큼이나 쏠쏠했다.

10만 단위로 늘어나게 해놓았다.

“다른 세계에도 카리아 제국을 세우게 되면 인구 10조짜리 제국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거야.”

“그렇겠죠?”

“그럼 포인트 걱정을 하지 않고도 지낼 수 있을 거 같아.”

“열심히 하겠습니다, 주군.”

“열심히 할게요!”

델과 체시는 결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포인트 걱정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델의 경우에는 소원을 죄다 성취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정복은 정말 전함을 이용해도 되나요?”

“응, 어느 세월에 하나씩 정복하겠어? 그냥 전함으로 후딱 끝내. 관리실로 가지고 가는 것도 좀 귀찮고.”

“네.”

“알아서 사용해. 알아서.”

강지건은 모든 것을 델과 체시에게 일임했다.

‘복잡하게 내가 신경 써봐야 소용없어.’

본인의 지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음을 잘 아는 강지건이었다.

스킬을 구매한다면 변화시킬 수 있었지만 강지건은 이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머리 좋아졌다고 퀘스트 포인트 깎이면 어떻게 해?’

아직까지 충분한 포인트를 벌어들이지 못했으니 강지건은 변화를 추구하는 것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의 발전에만 빠져 퀘스트를 망각하게 된다면 결국 발전의 수단을 스스로 차버리게 되는 꼴이니까.

‘나 혼자만 강해져선 안 돼. 다 같이.’

서번트들도 강해져야만 했다.

그래야 더 많은 세계를 더 빨리 정리하며 침식도와 싸울 수 있으니까.

‘내가 서번트를 서포트 하는 거야.’

왕은 꼭 앞에서 싸울 필요는 없다.

아니, 왕이 앞에서 싸워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작은 소국이란 의미일 뿐이었다.

“그럼 가볼게.”

“최대한 빨리 제국을 완성하겠습니다.”

“그래.”

일을 맡기고 강지건은 지구로 돌아왔다.

이어서 윤경미에게 김재연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일일 매니저? 좋지.”

고민할 것도 없이 허락했다.

위튜브에 흥미로운 영상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매니저의 일이 재미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강지건이 매니저의 모습을 한 것은 흥미를 유발한다.

스타의 새로운 모습이니까.

‘일일 시리즈로 이거 저거 하면 또 영상 좀 뽑을 수 있겠지.’

“바로 일정 잡아.”

“네!”

윤경미가 신이 나서 전화기를 들었다.

티티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팀.

“그러니까 강지건 일일 매니저 영상을 찍게 되었다고?”

“네,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우리 애를 보내야죠!”

매니저들이 아우성이었다.

인기 남자 아이돌 그룹의 매니저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대한민국 1등을 한다고 해도 국내용이다.

빌보드 1위 찍은 사람하고 비교하라고 하면 팬덤을 제외하고는 죄다 강지건 편을 들 정도로 대한민국은 외국에서 뭔가 이룬 사람들을 대우했다.

국내 1위는 잘 알아주지 않는다.

무역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엄청나다보니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어떤 성적을 거뒀는지가 굉장히 중요했다.

이는 사업만이 아니라 문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외국에서 상 받았다고 하면 문학이라고는 관심도 없던 인간들도 문학 소설을 사서 볼 정도니까.

더구나 강지건은 굉장히 기형적으로 성공한 케이스였다.

위튜브 스타.

기존의 방법이 아닌 인터넷을 이용한 세계 진출이었다.

과거 대한민국 연예인들이 해외 진출을 시도하지 않은 게 아니다.

대형 기획사들이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는 일이 빈번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발전과 맞물려 위튜브를 통해 세상에 자신을 알리는 게 가능해지자 게임의 룰이 변해버렸다.

유명 쇼의 호스트나 피디들에게 로비를 하지 않고도 명성을 얻을 길이 생긴 것이었다.

더구나 위튜브에서 음악을 듣고 음원을 구입하는 일도 상당히 많았다.

이러한 시대에 대한민국 아이돌 그룹은 최적화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댄스 뮤직.

춤과 음악은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한다.

라디오 시대에는 노래와 감성이 중요했다면 비디오 시대에는 외모와 연기도 중요해졌다.

패션은 두 말 할 것도 없었다.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던 대한민국에서 연예인의 외모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덕분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한국 아이돌 그룹이 생겨났다.

하지만 강지건은 이런 흐름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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