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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우승 그리고...
제타스 연습실.
선수들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휴식이 주어졌기에 늦게 나와 천천히 기본 연습을 소화하고 끝날 예정이었다.
그 동안 감독과 코치진의 역할이 중요했다.
결승 상대인 대영을 분석하고 작전을 짜야 했다.
예상 가능한 밴픽.
경우의 수를 따져가면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플레이는 단숨에 늘어나는 게 아니다.
계획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실수가 나올 확률이 늘어난다.
“픽 자체는 완벽한 카운터인데 이거대로 게임이 흘러갈까요?”
밴픽과 초반 게임 흐름 시나리오를 짠다.
상대의 반응도 예측해서.
초반에 확실히 적을 잡으면? 그 다음에는 선수들의 역량이 더욱 중요해진다.
현장 지휘관의 역할이 더욱 각광 받는다.
베테랑 선수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을 짠다.
천재 선수들은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상대의 허를 찌른다.
어떤 식이든 무엇인가 있어야 한다.
초반에 엄청 잘 나가다가 중간에 귀신 같이 무너지는 경우는 현장 지휘관의 능력이 부족했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초반에만 중점을 둬서 선수들이 잘 하지 못하는 것을 하도록 만든 경우다.
“흠, 지나치게 정글에 무게가 실리는데요 이러면.”
“대영 원딜을 잡지 못하면 힘들어질 겁니다.”
“후반에 힘이 빠지는 조합이네요.”
“한타 중심 조합은 생각은 나쁘지 않지만 지나치게 뻔하죠. 상대가 안 싸워주면 끌려 다닐 위험이 높아요. 한 번이라도 주도권을 내주면 어렵습니다.”
여러 의견이 휘몰아쳤다.
강지건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의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일하게 내버려두었다.
‘뭔 일 생기면 내가 캐리하지 뭐.’
밀크셰이크를 쪽쪽 빨면서 회의를 지켜보기만 했다.
혼자 일 안 하고 놀고 있는 것 같은 모습.
허나 아무도 강지건에게 뭐라 하지는 않았다.
얄미워하지도 않았다.
“강지건 선수. 이런 플레이 가능합니까?”
“네, 할 순 있는데 함께 합을 맞추는 건 좀.”
“왜요?”
“저 혼자 타이밍 잡아봐야 같이 못 들어가면 다 어긋나잖아요. 원콤에 상대 딜러부터 지우자는 것은 좋은 의견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빗나가거나 엇갈리면 죽도 밥도 아니죠.”
실제로 공격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유리한 상황에서 이기지 못하고 밀려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콜이 엇갈리거나 타이밍이 맞질 않아 상대가 반응할 틈을 준 경우다.
하지만 한타 순간은 지극히 짧다.
꽝하고 붙으면 초반에 많은 것이 결정된다. 물론 전투가 길어지며 역으로 치고 나갈 각이 안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투 방식에 달려있었다.
“한타를 위한 진영은 연습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조합에 따라 한타시 적절한 위치가 존재한다.
서로 연계를 하기 위한 위치다.
위치 선정을 잘 하면 한타 구도에서 좀 더 유리해진다.
물론 이런 위치 선정을 어그러트리는 스킬을 가진 챔피언도 있기 때문에 예상 밖의 상황에 대응할 수도 있어야 했다.
강지건은 이 부분을 짚었다.
선수들이 팀으로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궁합이 맞아야 했다.
이질적인 플레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싸우는 경우도 있다.
서로 자신에게 맞춰주길 원한다. 물론 이런 경우 코치나 감독이 중재를 해주지만 문제가 속으로 썩는 경우도 있다. 참고 지내다가 갑자기 터져 나오기도 한다.
포메이션 연습은 잘 하기가 어렵다. 선수들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전투 상황에서 변수는 많다.
이것은 결국 경험을 통해 맞춰가야만 했다.
“흠, 그럼 운영은?”
“제가 탑으로 가도 대영 탑라이너가 버틸 가능성이 있습니다.”
라인전에서 밀려도 꾹 참으며 버티는 플레이가 가능한 선수들이 있다.
생존력을 습득한 선수들.
원래부터 피지컬과 전투력이 강했던 선수들이 생존력을 갖추게 되는 순간 가치가 뛴다.
챔피언폭까지 넓다?
더더욱 가치가 높아진다.
“으음, 그럼 미드는?”
“미드도 빈틈은 아니죠.”
“그럼 원딜은?”
“더 잡기 힘들 겁니다.”
라인에서는 절대 밀리지 않는 대영 선수들이었다.
“결국 정글 싸움인가요?”
“정글을 잡아야 하긴 하죠.”
“그럼 이번에는 정글에 서주었으면 좋겠네요.”
“그래도 2세트 정도는 지혁이한테 기회를 주었으면 합니다.”
“2세트나요? 왜죠?”
“우선 지혁이의 성장이 중요하니까요. 큰 게임은 선수 성장에 소중한 자산이 됩니다.”
‘무엇보다 패패승승승이 더욱 짜릿해 보이기도 하고.’
뒤가 없는 방법이었다.
이런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일부러 져주다 이길 순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정글러인 한지혁을 생각해 해주는 말이라고 여겼다.
“그럼 그렇게 하죠.”
“감독님, 이건 좀. 너무 위험부담이 큰 거 아닙니까?”
프런트 직원이 슬쩍 끼어들었다.
프런트 입장에서는 선수 성장보다는 우승이 더 중요했다.
우승팀이라는 사실은 하나의 실적이니까.
선수를 성장시킨 프런트보다는 우승을 한 프런트 혹은 이윤을 남긴 프런트가 실적으로 어필하기 좋다는 것이다.
어차피 선수들의 계약 기간은 짧기 때문에 성장 시켜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팀에서 뛸 확률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스프링 우승도 중요하지만 선수들 성장이 더 중요합니다. 대신 무조건 2세트를 지혁이에게 주는 건 아닙니다. 첫 세트에서 완벽하게 진다면 바로 교체할 겁니다.”
희망이 없는 수준으로 두들겨 맞아서 진다면 빠르게 교체하는 편이 낫다.
멘탈 나간 선수들에게서 던지는 플레이가 나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요행을 바라며 캐리를 위해 무리하게 전투를 벌이는 플레이.
잘 되면 좋지만 잘 안 될 가능성이 확실히 높다.
이런 경우는 피해야만 했다.
선수들의 컨디션을 보고 멘탈이 나갔다 싶으면 바꿔주는 게 낫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는 선수가 있을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다.
전설은 보통 주전 선수들이 붙박이로 뛰며 다른 선수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일이 굉장히 적다.
합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선수가 한 명 바뀌는 것으로 플레이가 어긋나기도 한다.
또한 주전이 되지 못한 선수가 멘탈 나간 주전보다 더 잘할 거라는 보장도 없다.
경기를 많이 뛰지 못한 선수는 실력이 좋아도 경기 감각이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때문에 리빌딩 과정에 있는 팀이 아닌 이상 잦은 교체는 피하는 추세였다.
제타스에는 강지건이 있기에 교체를 통한 경기력 향상이 가능한 것이었다.
“좋습니다. 감독님만 믿겠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대영을 상대하기 위한 작전의 방향성이 정해졌다.
이제부터는 좀 더 세부적인 사항들을 가다듬을 차례였다.
오후가 되어 선수들이 출근했다.
다들 웃고 있었다.
결승 진출을 확정 짓고 하루 쉬면서 얼굴이 다들 좋아졌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얼굴.
“승리는 다 털어냈지?”
“네, 코치님.”
같은 선수이기도 하지만 코치로 먼저 들어와 다들 코치로 대했다.
강지건도 딱히 더 가까워지고자 하는 생각이 없어 이런 거리를 유지했다.
“아직 들떠 있으면 다 잊어. 지난 경기의 감각에 너무 취하면 안 된다. 결승 상대는 대영이니까.”
가끔 그런 일이 있다.
엄청난 대승을 거둔 나머지 플레이가 대승을 거뒀을 때의 감각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이것은 약이기도 하지만 독이기도 하다.
대승을 거뒀을 때의 플레이가 통하는 상대가 있고 안 통하는 상대가 있다.
대영은 다른 팀들과 차원이 다른 경기력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 최강의 팀.
영원한 강자는 없다지만 지금 현재는 대영이 세계 최강이었다.
선수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분명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선수를 떠올리지 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선수들이 한 팀을 이뤄서 내는 시너지는 세계 최강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강지건이 상대팀에 없을 때의 얘기였다.
“지난 경기 감각으로 상대하면 분명히 말해준다. 진다.”
홈런을 친 이후, 선풍기로 변하는 타자와 같다.
쉬워 보이니까 자꾸 스윙이 커진다.
괜히 야구에서 타자들이 불이 붙었을 때 타임을 부르거나 투수를 교체하는 게 아니다.
타격 타이밍을 어그러트리기 위해서다.
전설도 마찬가지였다.
솔로 랭크에서 잘 나갔다고 솔로 랭크에서 하던 식으로 프로에서 경기하면 질 확률이 높아진다.
약팀에게 잘 통했던 플레이가 강팀에게도 통하는 건 아니다.
압도적인 1등이 아니라면, 압도적은 파괴력을 가지지 못했다면 하던 대로 해서는 진다.
그렇기에 선수들에게 지난 승리의 감각을 잊으라고 주문하는 것이었다.
“기억도 안 나요.”
“뭐부터 하면 되나요?”
선수들은 의욕을 보였다.
프로 선수인 이상 우승을 목표로 한다. 물론 프로인 이상 돈이 중요하지만 경력도 만만치 않게 중요하다.
경력에 따라 미래가 변하기도 하고 기회가 더 생기기도 하니까.
프로를 그만 둔 이후에도 인터넷 방송을 하거나 혹은 코치진으로 갈 때 경력이 도움이 된다.
선수 경력만이 아니라 우승 경력까지 있는 선수가 가르친다고 하면 유망주들이 더 신뢰하니까.
“일단 가볍게 손부터 풀고. 기본 연습부터. 라인전 맞상대 해줄 테니까.”
강지건은 포지션에 따라 대영 선수들의 플레이를 모방해 라인전 상대를 해주었다.
탑 라이너인 칼록이 가장 먼저 나섰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요번에는 어디로 나가요?”
“이번에는 식스맨으로 시작해. 만약 계속 이긴다면 내가 나설 일은 없어.”
“어? 진짜요?”
“그래.”
순간 대화를 엿듣던 선수들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강지건과 함께 뛰면 확실히 이긴다.
이는 지금까지 함께하며 느낀 감정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이 경기에 못 나가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좋지 않다.
그렇기에 다들 자신의 포지션에서 뛰지 않길 간절히 원했다.
“열심히 해. 나 없이 우승하면 누가 너희들을 깎아내리겠어?”
“네.”
선수들은 의욕을 불태웠다.
칼록도 마찬가지였다.
‘이긴다.’
2세트를 패배하게 되면 교체가 있을 거라는 말에 다들 의욕을 불태웠다.
‘내가 바뀌는 일은 없어야 해.’
멘탈 터지면 바꾼다고 했으니 결국 제일 못한 선수가 교체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선수들이 의욕적으로 변하고 강지건은 퇴근 이후 크롭스크와 마겔 그리고 무왕계에서 시간을 보냈다.
“여기를 정말 우리가 쓰는 건가?”
“네, 산적들은 다 처리했어요.”
“좋네.”
산적들이 차지하고 있던 거처 하나를 찾았다.
높은 절벽 위에 있는 산채.
올라가는 길은 험했고 길목만 막으면 아무리 대군이 몰려와도 막아낼 수 있었다.
“길은 아예 막아버리자.”
“네.”
굳이 길이 필요 없기에 하는 행동이었다.
강지건과 서번트들은 길이 없다고 해서 못 가지 않는다.
길이 없으면 날아가면 되니까.
무엇보다 별장처럼 쓰기 위해 마련한 장소였다.
“건물을 좀 손 볼 필요가 있겠네. 편하게 지내려면.”
“공사 할 거니까. 걱정 마요. 당분간은 캠핑카에서 지내요.”
“그러지.”
크롭스크에는 안쓰는 캠핑카가 참 많았다.
이 중에 가장 고가의 호화 캠핑카를 끌고 와 절벽 위의 산채 한 가운데에 주차했다.
캠핑카 주변으로 화덕을 몇 개 만들었다.
바비큐를 위한 불판 그리고 피자와 빵을 굽기 위한 화덕까지.
절벽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풍경은 아찔했다.
험한 산세가 한 눈에 들어와 운치가 있었다.
안개가 산 사이로 흐르는 모습은 마치 용이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럼 파티를 시작해볼까?”
강지건은 옷을 벗고 알몸으로 한쪽에 마련된 접이식 침대에 누웠다.
주변으로 검녀들이 구운 고기를 들고 다가왔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며 별을 바라본다.
그리고 고기를 먹으며 육림 속을 헤맨다.
강지건은 풍류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