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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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시 포프스

빵을 먹으며 길을 걷던 체시는 세 사람을 보았다.

‘입은 옷이 희한하네.’

감상은 간단했다. 옷이 특이하긴 했지만 특이한 옷을 입는 사람들은 세상에 널려 있으니까.

다만 옷감을 재질을 보니 굉장히 부유해 보였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옷감으로 만들어진 옷들.

허나 네이가에는 옷감을 대량생산하는 공장이 없었다.

때문에 엄청난 기술로 몇몇 사람이 입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였다.

이는 굉장히 부유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허나 다음 순간 관심이 확 생겼다.

“어?”

생전 처음 듣는 언어로 대화하는 이들이었다.

세상은 넓어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체시 포프스가 모르는 언어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한 때는 마법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수련했었다.

머리는 천재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몇 주 동안 읽어도 이해 못할 책을 단 하루 만에 암기하고 이해하는 수준이었으니까.

물론 한 쪽으로 치우처진 천재성 때문에 오직 마법에 관련된 것에만 천재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 외에는 잼병이었다.

흥미가 없으면 평균 이하의 수준으로 형편없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암기력도 좋고 이해력도 뛰어나 지식은 완벽하게 갖추었지만 마력이 형편없었다.

마력 재능이 안 좋으니 마법사로서의 미래는 끝장난 것이나 마찬가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몸이 따라주지 못해 실행하지 못하니 저주와 같았다.

결국 괴로워하던 체시는 마법사의 길을 포기하고 마법상점의 점원이 되어 생활했다.

지식은 확실했으니까.

그리고 심심풀이로 여러 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언어를 알고 있는 이유였다.

마법상점에서 일하다보면 여러 언어로 된 마법 서적을 접하기도 했다.

장사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저기요?”

호기심을 느낀 체시는 바로 다가갔다.

“네?”

“방금까지 쓰던 말. 어디 말이죠? 알려주세요.”

체시는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공짜로?”

“얼마 드려요?”

주섬주섬 돈주머니를 꺼내 가죽끈을 풀었다. 안에는 금화와 은화가 가득했다.

“뭐 됐고요. 그냥 다른 세계 말이에요.”

“다른 세계? 다른 세계 어디요?”

“지구.”

강지건은 숨기지 않았다.

굳이 숨겨야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네이가 사람들이 놀라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지구?”

고개를 갸웃하던 체시의 눈이 점점 커졌다.

“진짜 다른 세상?”

“네.”

“우와! 그럼 이 옷들도 다른 세상?”

“네.”

“우와우와!”

체시는 어린 아이처럼 팔딱이며 달라붙었다.

“우리 얘기 좀 해요!”

“싫은데요?”

“네?”

“지금 놀러왔는데 왜 그쪽 좋은 일을 해야하죠? 그건 안 즐거운 일로 보여요.”

“아! 제가 여기 안내해드릴게요!”

“좋아요. 안내를 해주는 동안에만 어울려 드리죠.”

“으쌰!”

체시는 찰싹 달라붙었다.

“특이한 사람이네.”

“그러게요.”

라다와 야은설은 별 말 하지 않았다.

라다만 하더라도 네이가의 왕국 하나를 뒤집을 능력이 된다. 라다와 야은설까지 힘을 합치면 누가 오더라도 상대할 수 있었다.

길을 걷는 동안 체시에게 한국어를 간단히 몇 개 알려주었다. 아울러 한글도.

“이런 문자가 있다니! 정말 재미있어요!”

알려주자마자 금방 외워버린 체시였다.

“머리 좋네요?”

“네, 머리만 좀 좋아요. 관심 있는 쪽으로만.”

“그래요? 그럼 다른 건요?”

“몰라요. 알고 싶지도 않고요.”

“이제 만족했어요?”

“더 많이 알고 싶어요. 다른 세계라니. 다른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이라니!”

“의심하진 않는 건가요? 사기꾼일 수도 있잖아요.”

그러자 체시는 피식 웃었다.

“사기를 치기 위해 이런 문자를 만들어냈다면 상을 받을 만하죠. 돈을 원하세요? 줄게요. 이거.”

금화를 한 잎 내미는 체시였다.

“그렇게 좋아요?”

“네!”

“재미있는 분이네.”

강지건은 체시에게 관심이 생겼다.

“우리 어디 가서 식사라도 하면서 천천히 얘기할까요?”

“음, 빵 놔두고 식당엘 간다고요?”

체시나 강지건이나 둘 다 커다란 빵을 들고 있었다.

“뭐 어때요? 이건 나중에 집에 가서 먹으면 되는 거지.”

“아, 참.”

돌아간다는 생각에 체시는 지금까지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저 일하러 돌아가야 해요.”

“네?”

“일하다 휴식 시간에 빵 사러 나온 거에요. 얼른 돌아가봐야 해요.”

“어디서 일하는데요?”

“같이 가주시게요? 고마우셔라.”

“뭐가 고마운데요?”

“저를 위해 변호를 해주시려한 거 아니었나요?”

상점에는 당연히 주인이 있었다.

마법상점이라 손님이 많은 편은 아니니 잠깐 땡땡이친다고 큰일 나는 건 아니지만 상점 주인의 잔소리를 피하긴 힘들다.

“아닌데요. 그냥 어디서 일하나 궁금해서요.”

“제발 부탁해요. 잔소리로부터 살려주시면 이빵 드릴 게요.”

“혼나도 별로 상관없단 소리군요.”

“칫.”

결국 일행은 체시가 일하는 마법상점에 도착했다.

딸랑.

문을 열자 들리는 종소리.

“왜 이렇게 늦게 와!”

“죄송해요! 대신 손님이 되실 분들 제가 모셔왔어요!”

“이게 또 어디서 거짓말을!”

상점 주인은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였다.

“안녕하세요. 좀 둘러봐도 되나요?”

“마음대로 하세요.”

주인은 힐긋 강지건 일행을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옷차림이 범상치 않았으니까.

“저 분들 다른 세계에서 오셨데요.”

“어휴!”

상점 주인은 체시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며 입을 막았다.

믿지 않는 것이었다.

한편, 강지건은 상황을 모두 인지하면서 감각으로 상점을 훑었다.

‘여기 있는 건 별로 대단한 건 아니네.’

느껴지는 기운들은 그리 강력하지 않았다.

기능에서는 유용한 것들이 있을지몰라도 강력함에서는 뒤떨어지는 아티팩트들이었다.

“여기 마법서도 파나요?”

“기초 마법서라면 있어요.”

마법의 기초가 되는 것에는 제약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심화과정.

기초 마법서를 풀어서 대량으로 마법사 지망생을 만들고 이들 중에서 골라 제자로 받는 것이다. 또한 기초 마법서가 풀리면서 마법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내고 아울러 마법물품의 가격을 올리는 수단으로 삼는 것이었다.

마법에 갈증을 느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상점을 찾도록 유도하기 위해 파는 것이 바로 기초 마법서였다.

“얼마죠?”

“은화 한 개입니다.”

동전 100개가 은화 한 개인 타벨 왕국이었다.

강지건은 힐끗 자신이 들고 있는 빵을 보았다.

‘이 빵을 열 개 사고도 동전이 남는데.’

지구의 대한민국에 비하면 정말 미친 책값이었다.

‘아니, 그냥 물가가 이상한 거겠지. 환경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거니까.’

비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은화 하나를 꺼내 지불했다.

‘어차피 돌고 도는 돈인데.’

강지건에게는 그냥 좀 구하기 힘든 금속에 불과했다. 진짜 중요한 것은 포인트였다.

“흐음.”

빠르게 팔락거리며 책장을 넘긴 강지건은 순식간에 책을 다 읽었다.

‘별 거 없네.’

진짜 기초적인 지식만 담겨 있었다.

강지건의 흥미를 끌기에는 너무나도 빈약한 내용이었다.

책을 탁 소리나게 덮었다.

“다 읽은 건가요? 어떻게요? 그런데 다른 세상에서 왔는데 어떻게 나랑 말이 통하는 거죠?”

체시는 지치지도 않고 달려들어 질문을 던졌다.

“다른 세상에서 온 능력자니까요.”

“능! 력! 자!”

번쩍번쩍하는 눈빛에 광기가 깃들었다.

“나도. 나도 데려가줄 수 있나요?”

“음, 어쩌면?”

“왜요? 데려가주세요!”

강지건은 라다와 야은설을 보았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데려갈 순 있지만 지금은 안 돼요.”

“왜요?”

“조건이 완성되어야만 해요.”

“조건?”

“우린 이 세상의 마수를 처치하기 위해 왔어요. 그러니까 마수들을 다 처치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약속할 수 없어요.”

“아아! 그런!”

마수는 강력했다.

거대한 제국을 무너트린 존재들이니까.

그런 마수들을 모조리 처치해야 된다니 늙어 죽기 전까지 이뤄질지 알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아직도 마수와의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아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그거 참 무시하기 힘든 이야기군요. 마수를 처치하려 다른 세상에서 왔다니.”

상점 주인은 사기를 의심했다.

“이런 거 봤어요?”

강지건은 메고 있던 가방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게 뭔가요?”

“총이란 물건이죠. 시범을 보여줄게요.”

굳이 인정 받을 필요는 없었지만 체시 포프스와 연관있는 인물이라 설득하기로 결정했다.

가게 뒷문으로 나가자 작은 뜰이 보였다.

강지건은 뜰의 한 쪽에 서 있는 나무의 가지를 향해 총을 쐈다.

타앙!

50구경 권총이었다.

크롭스크에도 50구경 권총이 존재했다.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50구경 탄환은 주로 중기관총에 쓰인다.

화력이 어마어마하다.

나뭇가지가 뚝하고 끊이지는 게 아니라 박살이 나며 날아갔다.

“이런 거 본 적 있어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건 무슨 아티팩트인가요?”

“아티팩트?”

“뭔가 쏘아내는 아티팩트는 흔해요.”

상점 주인은 부정했다.

강지건은 탄창을 분리해 총탄을 보여주었다.

“이건 마법이 아닌 과학의 힘으로 쏘는 겁니다.”

“과학?”

“네, 마나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죠.”

권총의 원리에 대해 설명해주자 상점 주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대체 누가 이런 쓸모없는 짓을.”

마법 제일주의 사고방식에 빠져있는 상점 주인에게 권총은 장인의 시간 낭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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