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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녀문

“나도, 나도 할 수 있는 건가?”

“그거야 모르지 난.”

“알려다오. 아니, 알려주세요. 제발.”

급격히 공손해진 델.

강지건은 묵묵히 고기를 다 먹었다.

“난 가르치는 건 잘 못해.”

델의 얼굴에 실망이 떠올랐다.

“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힘을 줄 수는 있어.”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내 서번트가 되면 돼.”

“서번트?”

“그래, 난 여러 세계를 돌아다녀. 할 일이 많지. 내 일을 돕는 게 서번트야. 그런데 넌 가문이 중요하잖아? 과연 이 세계를 포기할 수 있겠어? 가문까지?”

델은 대답하지 못했다.

강해지고자 하는 이유?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다.

가문을 지키고자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킬 사람이 자신 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비록 부친에게 차별 받고 자랐다고 하지만 네이가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에 불만을 가질 순 없었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도 없고.

더구나 죽은 형제들을 미워하지도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지켜온 가문의 이름을 버리기란 쉽지 않았다.

가문의 역사를 떠올리면, 이름을 남기기 위해 흘린 피를 생각하면 절대 가볍게 내던질 수 없었다.

“안 될 것 같군.”

“역시 그렇지?”

강지건은 델에게 집착하지 않았다.

‘넘어오면 좋지만 굳이 이 여자로 할 필요는 없지.’

가문에 집착이 많다면 네이가 발전에 써먹을 순 있어도 중요한 순간에 발을 뺄 수 있었으니까.

막말로 네이가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배신할 수도 있었다.

‘검녀라면 몰라도 그 이상은 어려워.’

아주 잠깐의 대화였지만 결정은 내려졌다.

‘나중에 인연이 닿으면 검녀로 받아주지.’

“혹시 이 근처에 좀 더 큰 도시는 없나?”

“말을 타고 남쪽으로 가면 있다.”

“그래?”

강지건은 말을 탈 생각은 없었다.

‘귀찮아.’

타고자 하면 못 탈 건 없지만 말은 느리다.

‘차라리 오토바이를 가져와서 타고 말지.’

산악용 오토바이라면 험한 길에서도 아주 잘 달린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하루 보내야겠네.’

밤.

‘으음.’

델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좀처럼 수련도 잘 되질 않았다.

집중이 안 되니 그저 건성으로 검을 휘두렀을 뿐.

피로만 늘어났다.

일찍 씻고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웠지만 거짓말 같이 잠이 사라졌다.

대신 잡념이 파고들었다.

‘다른 세계라.’

강지건이 어떤 존재인지 알 거 같았다.

엄청난 힘을 가진 이계의 초인.

‘분명 서번트가 된다면 힘을 얻겠지만.’

가문을 포기해야 한다는 암시를 주었다.

‘어쩔 수 없나?’

가문이 위기에 처했다면? 강지건의 명령보다 가문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도 그런 사람을 들이고 싶지는 않을 거야.’

강력한 힘을 주는데 명령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면 좋아할 순 없었다.

전쟁을 하다보면 가문보다 전쟁이 더 우선시된다.

‘그러다 망해가고 있지만.’

카리아 가문의 남자들은 결국 싸우다 죽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무얼 위해 죽었나 싶을 정도.

하지만 그래도 싸워야 했다.

싸우지 않아도 가문은 망했을 테니까.

기사 가문으로서 왕권에 기대어 얻은 혜택의 대가였다.

충성을 바치겠다고 맹세했으니 혜택을 준다.

권력을 주었다.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내야 하는 법.

받아먹은 게 있으니 싸우라고 명령해도 받아들여야만 했다.

애초에 공짜로 준 게 아니니까.

‘후우.’

잠이 오지 않았다.

‘차라리 이 몸이라도 주고 마나연공법이라도 알려달라고 할까?’

처녀의 몸.

가문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내던질 수 있었다.

‘좋아. 해보자.’

강해질 수 있다면 처녀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방을 나섰다.

이어서 강지건이 묵고 있을 손님방을 찾아가보았지만 강지건은 없었다.

‘어디 갔지?’

그때 감각에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다른 세계에서 오셨다?”

“그렇지.”

강지건은 굳이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온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야 할 필요를 못 느꼈다.

“거 참 대단하신 분이군.”

“대단하지. 댁보다 훨씬 강하기도 하고.”

“하하하! 정말 마음에 들어! 내 사위 될 생각 없나? 데릴사위 안 해도 돼! 못난 딸을 확 데려가 버려! 그럼 마나연공법도 줄게!”

“딸한데 마나연공법을 주면 되지 않나?”

“안 돼. 그 년은 그걸 익히면 기사하겠다고 또 나설 거야. 그러면? 싸우다 어디서 또 뒈지겠지. 걔만큼은 그런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차라리 다른 세상으로 보내려는 건가?”

“그렇지! 거기는 살기 좋다며?”

“내 부하가 되면 굶어죽을 걱정은 없지. 내가 다 책임질 거니까.”

“크으! 좋군 좋아!”

손님이 가문을 찾아왔으니 아켈은 일단 알아보기라도 하기 위해 술자리에 강지건을 불렀다.

강지건도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어울려주었다.

그렇게 조금씩 서로에 대해 알아가다보니 강지건도 카리아 가문의 사정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아켈은 집안에 모셔두었던 귀한 술을 꺼냈다.

“자, 마셔 마셔!”

“술 맛이 좋군. 무슨 술이지?”

“아들들 결혼식 때 쓰려고 담았던 술이지.”

“으음.”

“뭐 어때! 녀석들도 좋아할 걸! 동생을 살리기 위해 쓴 술이라면!”

아켈은 작정했다.

강지건이 델을 데려갔으면 했다.

“아버지.”

중간에 델이 끼어들었다.

“뭐냐?”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말이긴. 네 주군을 알아보는 중이지.”

“네?”

“기사 한다며? 여기 네가 주군으로 삼을 사람 있잖냐. 어서 충성 맹세하지 않고 뭐해?”

“하지만 저는.......”

혼란스러워하는 델을 보며 아켈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가문의 이름보다 네가 더 소중하다.”

나직한 목소리에 델은 대꾸하지 못했다.

“네가 죽으면 가문도 끝 아니더냐? 가문이라고 해봐야 이름일 뿐이다. 가문은 우리의 핏속에 흐른다. 피가 멈추면 가문도 끝인 것이다.”

아켈은 일어나서 델의 어깨를 잡았다.

“가문은 이름이 아닌 피다. 네 안에 흐르는 피를 전쟁터에서 뿌릴 셈이냐?”

“하지만 저 사람을 따라가도 위험한 것은 변하지 않아요. 마수와 싸우는 사람이라고요.”

아켈은 돌아섰다.

“이보게. 정말 내 딸을 위험한 곳에 내던질 생각인가?”

“그만한 힘은 줄 거야. 이런 힘을 가질 수도 있고.”

뇌전이 강지건의 손바닥 위에서 일어났다.

뇌전의 구는 점점 더 커지더니 결국 사람 몸집만해졌다.

뇌전에서 뿜어내는 어마어마한 열기에 두 사람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내 능력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 사실 아무 것도 아니고.”

순식간에 뇌전이 사라졌다.

“서번트는 중요한 전력이야. 아무렇게나 쓰고 버리지는 않아. 하지만 내 명령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있다면 글쎄. 다른 사람 찾아보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

“그 서번트라는 거 난 될 수 없나?”

“댁은 싫은데?”

“왜!”

“여자가 아니잖아.”

강지건은 히죽 웃었다.

“아깝군.”

아켈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지건의 속셈은 이미 드러났다. 서번트와 잠자리도 염두에 둔 발언.

하지만 아켈은 이를 탓하지는 않았다.

재능과 상관없이 누구나 강하게 만들 수 있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

“내 딸을 제발 서번트로 삼아주지 않겠나?”

“흐음.”

강지건은 델을 바라보았다.

델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버지.”

“델. 내 소원이다. 제발 서번트가 되어라. 그래서 행복해져라. 어차피 널 이대로 놔두면 어디서 싸우다 죽겠지. 그렇다면 더 강해질 수 있는 길을 선택해라.”

“하지만 가문은.......”

“저 사람이라면 타벨 왕국 따윈 상대도 안 될 거대한 제국을 세울 수 있을 거다.”

“음, 그렇긴 한데. 그건 좀 귀찮아.”

“그럼 날 황제로 만들어줄 순 있나?”

“못 할 건 없지.”

히죽 웃는 강지건이었다.

“뭐?”

“날 대신해서 이 세계를 적당히 관리해준다면 댁을 황제로 만들 수도 있다고.”

황제가 되기 위해선 어떤 형태로든 강한 힘을 가져야 한다.

강지건은 힘을 줄 수 있었다.

서번트로 삼지 않더라도 다른 세계의 문물을 구해다주는 것만으로도 아켈은 엄청난 무력을 손에 넣는 게 가능해진다.

더구나 보급도 마찬가지.

‘이러면 일이 좀 더 쉬워지긴 하겠네.’

처음에는 멀리할 생각이었지만 아켈 덕분에 마음이 바뀌었다.

‘과연 넌 어떻게 할 거지?’

강지건은 델을 바라보았다.

“정말, 정말 아버지를 황제로 만들 수 있나?”

“그래. 마수도 죄다 잡아 죽여야 하는 마당에 그 정도를 못할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나를. 아니 제발 저를 서번트로 삼아주세요. 죽을 때까지 충성하겠습니다.”

“흐음.”

“만약 아켈이 위험해 처했는데 가지 말라고 한다면?”

“황제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겠지요.”

“허허, 요놈이?”

듣고 있던 아켈은 피식 웃으며 강지건 앞에 무릎 꿇었다.

“주군,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바쳐 주군을 돕고자 합니다. 부디 받아주십시오.”

“좋아.”

뒤이어 델도 무릎을 꿇었다.

“저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좋아. 오늘 밤 널 안겠다.”

강지건이 바로 일어났다.

그러자 아켈은 강지건을 제일 좋은 방으로 안내했다.

“이곳을 쓰시지요.”

딸을 바친다고 하지만 망설임 따윈 없었다.

어차피 말 안 듣던 딸이었다.

방에 둘만 남게 되자 델은 우두커니 서서 기다렸다.

“이제는 마음이 바뀌었나?”

“네.”

“왜?”

“아버지를 황제로 만들어주신다 했으니까요. 그렇다면 가문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되겠죠. 나라가 있는 한.”

“좋아. 그게 네가 원한 거라면 들어주지. 하지만 넌 앞으로 나만을 위해 살아야 할 거야.”

“네.”

“좋아.”

강지건은 바지를 내렸다.

대물이 불쑥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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