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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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녀문

자존심 강한 타벨의 전사들은 죄다 데릴사위 제안을 거절했다.

“내가 뭐가 아쉽다고.”

자기 이름을 버려가면서까지 아켈의 집안사람이 될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딸만 달랑 하나 남은 기사 가문이었다.

아켈은 좀 더 신분이 높은 이들에게 딸을 보내려 했지만 죄다 거절했다.

더 집안 좋고 예쁜 여자들도 많은데 굳이 아켈의 딸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아켈의 아들들이 모두 전사한 상황에서는 가문의 힘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아켈이 잘 싸우긴 하지만 아켈 하나를 보고 딸을 받아들이는 것은 수지에 맞지 않는 장사였다.

“후우.”

아켈은 거절을 당하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뒤뜰에서는 딸이 검술을 수련하고 있었다.

“흐리야아아아압!”

보통 남자보다 더 큰 키의 여자가 육중한 갑옷을 입은 상태로 대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어휴.”

아켈이 한숨을 쉬자 딸이 멈췄다.

“아버지 오셨습니까?”

“나가서 남자나 꼬시지 뭔 검술이냐.”

“제가 가문을 잇겠습니다, 아버지.”

“후우 됐으니까 제발 결혼이나 해라.”

“하지만 저보다 약한 남자와 결혼해서야 어디 가문을 이어갈 수 있겠습니까?”

“이젠 됐다. 가문의 이름을 더 이어가봐야 뭐 하겠냐.”

아켈은 멍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보았다.

아들들은 모두 전쟁에서 하나둘 죽어 나갔다.

기사이기에 그 의무를 다하다 죽었다.

덕분에 왕국에서는 카리아 가문을 중히 여기며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딱 하나, 신랑감 빼고.

“너라도 얼른 결혼해서 지참금이나 챙겨라. 왕실에서 두둑이 챙겨줄 때 결혼해야 편히 살지.”

“곧 제 검술이 완성되면 그땐 가문의 이름을.......”

“됐다.”

아켈은 손을 흔들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아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딸, 델 카리아는 주먹을 꾹 쥐었다.

사실 델은 어려서부터 기사가 되고 싶었다.

‘내가 오빠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는데.’

아주 어릴 땐 델이 오빠들을 압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오빠들이 앞질러나갔다.

알고 보니 마나연공법의 차이였다.

델에게는 안 가르쳐준 것이었다.

어차피 결혼을 하게 되면 가문에서 나갈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델은 삼류 마나연공법을 구해다 익혔다.

돈만 있으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삼류 마나연공법으로 강해지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다.

하지만 델의 재능은 무시무시했다.

결국 보통 기사들만큼 강해지는 데 성공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아켈의 관심을 받거나 기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형제들이 죽고 나서야 기사가 될 길이 열렸다.

델은 모두 자신 때문에 죽은 거라는 죄책감을 가졌다.

아주 가끔, 형제들이 없다면 자신이 기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죄책감은 델을 더욱 채찍질 했으며 아켈의 인정을 받기를 희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켈은 하나 남은 딸을 기사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아들들도 다 잃은 판에 딸까지 잃을 순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아직도 가문의 마나연공법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뛰어난 재능에 마나연공법까지 손에 넣으면 말릴 수 없게 될까봐.

‘가문은 제 손으로 지키겠습니다, 아버지.’

하지만 델은 포기하지 않았다.

평범한 여자의 행복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이라 여겼다.

‘난 죄인. 행복해질 수 없어.’

죄책감이 족쇄가 되었다.

델의 하루 일과는 간단했다.

눈을 뜨면 수련.

밥 먹고 쉬었다 수련.

밥 먹고 쉬었다 수련.

밥 먹고 잠.

먹고 자는 거 빼고 온통 수련으로 꽉 가득했다.

물론 기사의 수련이라고 해서 하루 종일 검만 휘두르는 건 아니다.

말도 타야하고 마상검술과 창술도 익혀야 하고 방패술도 연습해야 하고 각종 무기 연습은 물론 활도 배우고 전술도 공부해야 한다.

배워야 할 게 많다.

여기에 마나연공법까지 더해지며 온통 수련으로 점철된 생활을 한다.

기사는 다른 자들을 압도해야 하니까.

매일 같이 강해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특히 타벨 왕국의 기사는 전사들보다 약하면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한다.

약자가 설 곳이 별로 없는 나라였다.

“이럇!”

아침은 승마로 시작한다.

말을 달리며 말과 일체화된 승마술을 습득해야 한다.

‘느껴진다.’

말의 움직임을 생생히 느껴야만 한다.

생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다루는 도구처럼 마구 다루면 엉뚱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말의 주인이 잘 길들여야 하는 것도 있다.

길들이려면 함께 달리며 서로 교감하는 것이 최고였다.

그렇게 달리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산짐승들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말을 타던 델은 안장에서 활을 꺼내 쏘았다.

달리는 말 위에서 쏜 화살이 순식간에 짐승에게 박혔다.

“후우.”

사냥한 것은 사슴이었다.

정확히 목을 뚫었다.

덩치 큰 사슴을 보며 말에서 내린 델은 사슴의 다리를 로프로 묶어 나무에 매달았다.

이후 목을 따고 피를 빼냈다.

이어서 창을 옆에 세워두고는 단검으로 가죽을 벗겼다.

그렇게 작업을 하고 있다 보니 늑대들이 슬금슬금 하나둘 나타났다.

보통 사람이라면 경악하면서 도망갔겠지만 델은 달랐다.

“와라.”

창을 뽑아 들고 기다렸다.

이어서 늑대들이 간을 보다가 달려들었다.

쉬익!

창이 휘둘러지자 늑대의 허리가 잘라졌다.

둘로 나누어진 몸은 잠깐 퍼덕거리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순간 달려들던 늑대들이 꼬리를 말고 뒤로 물러났다.

델은 무심한 눈으로 늑대를 살피다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늑대들은 힐끗 죽은 늑대를 보더니 뒤로 빠졌다.

사냥감이 아니라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방문자가 나타나 작업을 방해했다.

“안녕하십니까?”

“누구?”

“여행자입니다.”

강지건이 나타났다.

남쪽으로 쭉 내려온 강지건이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델 카리아였다.

“용무는?”

“그 음, 길 좀 묻죠. 여기 사람들이 사는 곳이 어디입니까?”

상대가 별로 반기지 않는 눈치니 강지건은 더 얘기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딱 봐도 경계하고 있네.’

외진 곳에서 만났으니 호의를 품긴 어려웠다.

언제 강도로 돌변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어디서 왔지?”

“네?”

“수상한 놈이군.”

혼자 결론을 내린 델이 창을 뽑았다.

“왜 이러십니까?”

“여긴 사람이 다니는 곳이 아니지. 사냥꾼도 아니고. 길을 잃었다? 웃기지도 않는군.”

델의 눈빛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가본데 북쪽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길을 잃은 겁니다. 진짜요.”

“몬스터 산맥에 볼 일? 더 수상한 놈이군.”

북방 산맥의 다른 이름은 몬스터 산맥이기도 했다.

사람이 안 사는 땅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음, 실력도 안 되면서 덤비는 건가? 웃기는 년이군.”

강지건은 친절을 내다버렸다.

“덤벼.”

허리춤에서 뽑은 몽둥이의 형태가 변했다.

순식간에 한 자루의 도가 완성되었다.

“역시 수상한 놈이야.”

델은 바로 돌진하며 창으로 찔렀다.

돌격 창술.

거창한 건 없다.

앞으로 빠르게 뛰면서 빠르게 찌르는 거다.

빠르게 돌진하며 간격에 들어오는 순간 창을 던지다시피 찌른다.

일격에 상대를 잡아내는 기습적인 창술이었다.

허나, 도를 든 강지건에겐 통하지 않았다.

일섬패왕도.

도가 번뜩인 순간 창이 잘라졌다.

“헛!”

“얍.”

이어서 도를 던짐과 동시에 델의 팔을 잡고 파고들며 업어치기.

쿵!

순식간이었다.

콱!

누워있는 델의 다리 사이에 던져진 도가 박혔다.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갔으면 하복부를 찔렀을 것이다.

“이제 수준 차이가 느껴지나?”

강지건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델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미안했다.”

상대의 강함을 확인한 델은 일단 사과했다.

자존심은 굽히지 않으려 했으나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사명이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내가 죽으면 가문도 끝이다.’

“좋아. 이제 대화할 마음이 생겼나보군.”

겉도는 대화에 짜증이 났던 강지건은 표정을 풀었다.

가방에서 에너지바를 하나 까먹었다.

‘음, 역시 기분 나쁠 땐 단 게 최고야.’

에너지를 공급해주니 기분이 풀렸다.

“그건 뭔가?”

“하나 먹을래?”

가방에서 하나 건네주었다.

강지건이 한 것처럼 껍질을 까서 내용물을 먹은 델은 깜짝 놀랐다.

“맛있군. 이런 귀한 걸 줘도 되는 건가?”

“그래.”

대화를 하면서 델은 강지건을 계속 살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사람.’

알면 알수록 이상했다.

에너지바를 감싼 껍질을 바라보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재질이었다.

‘이런 걸로 음식을 싼다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어.’

아주 먼 나라 이야기에서도 나오지 않던 일이었다.

‘대체 뭐지?’

그제야 강지건의 특별함이 보였다.

‘갑옷도 이상해.’

강화외골격.

갑옷이라 생각했던 것도 양식이 굉장히 이상했다.

도저히 갑옷이라 여기기 힘들었다. 마치 옷처럼 몸에 달라붙어서 움직였다.

“난 델 카리아. 타벨 왕국의 기사 가문인 카리아 가문의 기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강지건, 딴 세상에서 왔다.”

“딴 세상?”

“그래, 여기 아닌 완전히 다른 세상. 이계. 이차원. 기타 등등 뭐로 불러도 되는 그런 세계.”

장난처럼 들리는 말이었지만 델은 섣부르게 결론을 내지 않고 어울려주었다.

“으음, 다른 세계에서 여긴 왜? 침공인가?”

강지건은 피식 웃었다.

“그건 아니고. 이 세계를 침식하고 있는 것을 걷어내기 위해서.”

“침식?”

“혹시 좀비나 마인 같은 거 없어?”

강지건은 침식된 존재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건 모르고 최근 들어 마수라 불리는 것들이 등장하긴 했다.”

“마수?”

“그렇다.”

“얘기 좀 들을 수 있을까?”

“좋다. 그 전에 하던 일을 좀 하면 안 될까?”

델은 매달린 사슴을 가리켰다.

“어떻게 해줘?”

“내가 하면 된다.”

델은 강지건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해체하며 마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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