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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충이 아니지만 반박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급히 날아온 데보라 콜은 본인들이 직접 스튜디오를 빌려야 했다.
라다 엔터테인먼트는 장비가 부실해서 녹음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데보라의 소속사인 포스타는 그래도 좋다고 받아들였다.
“안녕하세요. 데보라에요.”
“라다 갈킨이에요.”
“강지건입니다.”
“반가워요.”
강지건과 라다가 직접 찾았다.
“길게 시간 끌 거 없이 일단 한 번 들어보죠.”
인사가 끝나자마자 라다는 바로 요구했다.
‘얼른 가서 주인님께 안기고 싶어.’
녹음 따윈 후딱 끝내고 돌아가고 싶었다.
‘그냥 알아서 녹음하면 될 걸 가지고.’
계약은 이미 끝났지만 상대측에서는 녹음을 한 번 봐달라고 했다.
곡의 느낌을 더 살리는 작업을 해보고 싶은 것이었다.
라다가 곡의 주인이며 한 번 불러보기도 했으니 조언을 얻고 싶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함께 작업을 했다는 것을 알리며 사이가 좋은 것처럼 포장하고 스토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가수라고 노래만 부르고 끝나는 게 아니다.
노래가 전해진 과정과 작업에 얽힌 에피소드들도 노래와 함께 소비된다.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라다는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빠르게 작업을 요구하자 데보라는 당황했다.
‘두유 노 김치 안 물어보나?’
김치 얘기 좀 하려고 조사도 했는데 실패했다.
‘친해져야 할 텐데.’
라다는 경쟁자가 아니었다.
가수 활동 생각이 없다고 못을 박았고 행보도 그러했다.
노래를 발표한다고 해도 가수로서 선보였다기보다는 홍보를 위해 한다고 보는 게 맞을 정도의 행동이었다.
외부 활동은 별로 없었고 인터뷰조차 잘 하지 않았다.
강지건과 함께 위튜브 채널에서 활동하거나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었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긴 하지.’
마치 돈에 관심 없는 것 같은 사람들.
돈을 아주 안 챙기는 건 아니지만 돈에 목숨 걸지도 않는다.
돈보다 자신의 시간과 인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차피 돈을 버는 것은 자신의 인생 그리고 만족을 위한 것인데 돈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포기한다면 주객이 전도되는 격이니까.
돈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물론 때로는 돈 자체가 목적인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다.
돈을 벌 때 행복한 사람들도 있으니까.
사람마다 다 다르다.
녹음실에 들어간 데보라는 빠르게 악보를 보고는 자신이 연습했던 방식을 떠올렸다.
이어서 MR이 흘러나오자 자신의 방식으로 불렀다.
음색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부르려 해도 같은 느낌은 나지 않을 수 있었다.
잘못하면 애매한 노래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자신의 음색으로 덧칠해 불렀다.
“잠깐만요.”
10초가 지나다 라다가 멈췄다.
“너무 파워풀해요.”
“하지만 제 목소리가 원래 이런데요.”
“아뇨, 당신 목소리는 더 다양해요. 힘을 더 빼요. 속삭이듯이 지친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말한다는 느낌으로 해봐요.”
“그러면 안 어울릴 거 같은데요?”
“절 믿으세요. 해보세요. 제가 도와줄 테니까.”
보통이라면 발끈하면서 자기 방식대로 부르겠다고 고집을 부렸을 것이다.
하지만 라다 앞에선 그럴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
데보라는 원하는 대로 불러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한 다른 매니저와 카메라맨에게 모든 장면을 잘 녹화하도록 신신당부했다.
메이킹 필름에 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혹은 가끔 그냥 뮤직 비디오로 내보내기도 한다.
뭐든 소스가 많은 것은 좋다.
한두 푼 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투자를 했으면 최대한 많은 패를 거머쥐고 움직이는 게 좋다.
나중에 가서 다시 찍으려면 돈이 더 든다.
작업할 때 세트로 해버리는 편이 훨씬 좋았다.
‘이건 음.’
여러 번 다시 하라며 라다는 조절을 해주었다.
“조금 더 아래. 살짝 낮춘다는 느낌으로.”
라다 또한 초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데보라의 목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모두 감각에 걸려들었다.
알 수 있었다.
아주 작은 숨소리까지.
폐를 들락거리는 숨결과 심장의 고동까지.
라다는 데보라보다 더 데보라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 팍!”
지시하는대로 소리를 낸다.
그러다 한 순간에 질러버리듯 목소리를 폭발시킨다.
순간 데보라는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
‘이게 나?’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노래에 집중했다.
“좋아요. 끝. 더 손 볼 거 없어요.”
녹음이 끝나자 관계자들은 멍한 표정으로 라다를 보았다.
‘천재.’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데보라의 목소리였다.
예전과 비하면 훨씬 더 발전하고 풍부해진 표현력.
곡은 완벽하게 데보라의 노래로 탈바꿈했다.
라다가 부른 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지만 더 처절하고 아픈 느낌을 선명하게 전달해주었다.
‘잡아야 해.’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라다는 천재였다.
곡만 잘 만드는 게 아니라 가수의 한계를 끌어올리는 천재였다.
이런 사람은 흔치 않다.
이런 사람과 작업을 하고 자신의 길을 찾게 되면 100만불 벌고 끝날 가수가 1000만불 혹은 1억불의 가수가 된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노래 잘 부른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감동을 주지 못한 가수는 그저 그렇게 대충 소비되다가 끝난다.
운이 좋으면 반짝하기도 한다.
실력 있고 재능 있는 사람조차도 한 번 반짝하고 끝나는 게 연예계다.
이런 세계에서 능력을 이끌어 내주는 사람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식사 하셨습니까?”
“하러 갈 거에요.”
“그럼 저희가 대접하고 싶은데.”
“지건. 어떻게 해?”
“그 같이 홍보하기로 했잖아? 먹방 찍으면서 먹으면 되지 않겠어?”
“그것도 빨리 해치우죠.”
라다는 칼 같았다.
할 일이 있으면 후딱 해버리자는 식이었다.
친목을 쌓을 틈을 주지 않고 있었다.
이는 라다도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소 오만하게 쌀쌀맞게 굴어도 문제가 없었다.
라다가 갑이었다.
“그럼 식사는 무엇으로 할까요?”
“고기. 우리는 고기를 원합니다. 한우면 좋고.”
한우는 비싸다.
“아, 그리고 한 명 더 추가할 겁니다. 괜찮죠?”
“네.”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이었다.
코리안 바비큐는 꽤 유명해졌다.
식당에서 직접 고기를 구워먹다니.
미국인들의 바비큐는 집 뒷마당이나 공원 같은 곳에서 보통 해먹던 것이었다.
식당에서도 미리 조리되어 식탁에 오르는 수준.
식당에서 직접 구워먹는 것이 유행을 타며 사람들을 호기심을 느꼈다. 더구나 고기만 먹는 것도 아니고 야채와 함께 쌈을 만들어 먹었다.
이색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고깃집을 갔을 때 기대도 했다.
여기에 강지건이 선보일 먹방도 기대되었다.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저는 먹을 겁니다. 둘이 알아서 대화하세요. 아, 그리고 고기 굽는 건 절대 건드리지 말아요.”
“네?”
“제대로 못 구우면 맛 없으니까.”
주문을 한 뒤 고기를 구워주겠다는 서빙도 인상을 쓰며 돌려보냈다.
강지건이 이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직접 구워야 최상의 맛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기는 일단 30인분을 시켰다.
3인분에서 10을 곱했다.
‘왜 이렇게 많이 시키지?’
한우는 비쌌다. 강지건과 라다가 시킨 양은 어마어마했다.
“고기를 단번에 가져오지 말고 10분에 3인분씩. 흐름이 끊이지 않게 해주세요.”
주문에 세세했다.
모든 것이 영상에 담겼다.
모두 흥미롭게 지켜보는 가운데 강지건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첫 고기는 제일 먼저 자기 입으로.
“얌.”
‘잘 구워졌어. 역시 나.’
초감각을 고기 굽는데 이용했다.
못 구울 이유가 없었다.
다음은 라다. 그리고 데보라와 매니저에게도 고기가 돌아갔다.
“이렇게 불판을 떠난 고기는 10초 안에 먹어야 해요. 안 그러면 맛이 떨어져요.”
라다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후딱 먹었다.
라다 또한 초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맛에 까다로웠다.
맛없는 걸 먹는다고 죽지는 않는다.
못 먹지도 않는다.
그런데 맛있게 해먹을 수 있으면서 일부러 맛없게 먹는 취미 따윈 없었다.
“아앗!”
데보라는 경악했다.
상당한 맛이었다.
고기가 거기서 거기라고 하지만 일단 질 좋은 고기는 맛도 좋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바로 조리 방법.
제대로 굽지 못하면 맛있는 고기도 보통 수준으로 전락해버린다.
맛을 최대한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요리사였어요?”
“프로게이머입니다.”
“이런 실력이면 정말!”
‘세상에 이런 맛이라니. 이건 미슐랭 3스타급이잖아?’
매니지먼트를 하면서 화려한 생활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미슐랭 3스타급 레스로랑도 몇 번 가보았다.
최고로 맛있다는 스테이크도 먹어보았다.
하지만 강지건이 구워준 고기는 3스타급 레스토랑의 스테이크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엄청난 능력이야.’
고기 굽는 능력은 뛰어났다. 물론 고기를 잘 굽는다고 해도 그뿐이었다.
잘 해야 요리사.
‘프로게이머 맞아?’
하지만 강지건은 프로게이머였다.
‘과거가 궁금해지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고 싶어졌다.
강지건은 사람들의 관심은 아랑곳 하지 않고 묵묵히 고기를 굽고 나눠주었다.
이어서 본인의 입에 계속 고기를 넣었다.
그냥 굽고만 있는 거 같은데 어느 순간 고기가 사라져있다.
10분 간격으로 고기가 도착하면 다시 굽는다.
고기가 구워지는 걸 기다리는 짧은 시간이 쇼를 위한 대화를 할 시간이었다.
“정말 맛있어요. 두 분이 매번 이런 걸 먹는 건가요?”
“맛있는 걸 맛없게 먹을 이유는 없죠. 그리고 한우는 우리도 매일 못 먹어요. 아직 그만큼 못 벌어서.”
“와우!”
데보라는 그냥 감탄했다.
생전 처음 먹방을 라이브로 보았다.
어마어마한 양의 고기가 수시로 사라졌다.
푸드파이터들의 영상을 몇 번 본 적은 있었다.
뭔가 입에 꾸역꾸역 집어넣는 모습은 많이 흉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강지건과 라다는 달랐다.
“그냥 삼킨 건 아니죠?”
“충분히 씹었어요. 소화만 되면 되죠.”
“어우.”
이야기는 담담하게 이어졌다.
도중에 김치가 구워졌다.
“김치! 맛있어요! 나 김치 알아요! 먹어봤어요.”
“음, 그러지 않아도 되요.”
“왜요? 왜 안 물어본 거죠?”
“난 미국인이니까요.”
“아. 그럼 지건은?”
“지건은 자신을 아냐고 물어보겠죠.”
“두유 노 미?”
“어? 예스.”
“굿.”
강지건은 다시 고기를 구워먹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