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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충이 아니지만 반박하지 않는다
청춘을 바친 일인데 고작 몇 년 뛰고 20대 중반에 은퇴하게 되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제대로 된 은퇴 자금을 벌지도 못하고 사회에 던져지게 된다.
젊은 나이에 큰돈을 만질 기회가 생기기도 하지만 게임 이외에 모르는 것이 많기에 사기를 당하기도 쉽다.
‘쩝.’
상황을 알면서도 프로에 도전하는 아이들.
‘얘들 중 몇 명이나 프로데뷔 할까?’
모두가 사이좋게 손잡고 데뷔한다는 스토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카데미에서도 방출될 수 있으니까.
기회를 줬는데 성장하지 못하면?
내보낼 뿐이다. 다른 유망주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1군 경기도 아니고 아카데미 경기에서조차 별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기대를 접어버리는 것이다.
“자자, 긴장 풀어.”
강지건은 웃으며 친절히 말했지만 아카데미 선수들은 더욱 뻣뻣해졌다.
“나 안 무서운 사람이야.”
“네!”
기합이 잔뜩 들어갔다.
험악한 인상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에휴, 어쨌거나 오늘은 내가 봐줄게 한 번 해봐.”
“감사합니다!”
1군 선수이자 코치인 강지건이 봐준다고 하자 몇몇은 환하게 웃었다.
선수로서 보여준 모습은 짧지만 임팩트는 강렬했다.
1군 데뷔에서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잘 알기 때문에 그 대단함에 아카데미 선수들은 압도되었다.
누군가 게임을 봐준다고 해도 실력 있는 사람이 봐준다고 할 때 더 기쁜 것이다.
조언 하나하나에 무게가 제대로 실린다.
전설 초창기에는 코치나 감독이 선수들에게 은근히 무시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할 정도였으니까.
선수들보다 게임에 대해 더 모르는 이들이 감독이니 코치니 자리 차지하고 조언을 해대니 납득을 하지 못한 것이다.
무게감, 신뢰의 문제였다.
자기보다 낮은 티어의 감독이나 코치들의 지식을 신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결국 경력이었다.
경력이 안 되면 믿음이 가질 않는 것이다.
하지만 강지건은 경력이 필요없었다.
티어로는 챌린저 1위를 찍어봤고 1군 데뷔에서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코치로도 활동하고 있었으니까.
더구나 한 포지션이 아닌 다른 포지션에서도 경악할 수준의 플레이를 보여주니 다들 극찬하고 있었다.
신뢰가 뿜어져 나온다.
“흐음.”
강지건은 선수들이 하는 모습을 보았다.
‘멘탈이 뒤죽박죽이네.’
플레이를 보면서 생각을 읽었다.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없으면 알기 어렵지만 강지건의 눈에는 보였다.
‘쟤는 불리해졌다 싶으면 도박성 짙은 플레이를 하네.’
‘싸움을 좋아하네.’
‘동선이 복잡해. 갈팡질팡하는 걸 보면 계산한 움직임보다는 휘둘리는 경우가 더 많아.’
‘전체적으로 뭔가 강박적이네.’
게임을 보며 평가를 정리한 강지건은 한숨을 내쉬었다.
‘개성이 없어. 프로들의 플레이를 따라했어.’
프로 선수들의 플레이를 따라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다. 금방 실력을 올려줄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프로 경기에 나가면 어차피 몸에 익혀야 할 플레이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몇몇 선수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는 게 보였다.
‘피지컬이 안 따라주는 하이퍼 캐리형 원딜.’
원딜의 임무는 딜을 때려 넣는 것이다. 하지만 꼭 하이퍼 캐리형 원딜이 최고는 아니다.
‘요즘 메타에선 그럴 필요가 없지.’
원딜? 중요하다.
그런데 원딜이 제대로 활약하기도 전에 게임이 터질 수도 있는 게 현재 메타였다.
상체 게임.
탑 라이너와 정글에서의 주도권을 바탕으로 교전이 빠르게 일어나고 이로 인한 스노우볼이 빨리 굴러간다.
교전을 유도하는 메타기 때문에 당연히 전투가 몇 번 지나가면 성장 차가 확 날 수도 있었다.
싸움을 잘 하는 팀은 30분 이전에 상대를 박살내고 승리를 취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원딜이 활약하는 그림이 잘 안 나오는 경우가 꽤 있었다.
전투력이 강해서 초반에 상대를 터트려버리는 팀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다.
이 때문에 또 다른 유형의 원딜러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
생존형 원딜러.
생존형 원딜러라고 해서 딜을 넣는 능력이 필요없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바텀에 함께 서는 서포터가 빠른 시간에 움직이려면 결국 파트너인 원딜의 생존력이 필요하다.
2:1 싸움에서도 죽지 않는 안정감을 가진 선수가 게임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다.
서포터가 빨리 로밍을 가며 정글러처럼 미드 라인에 갱킹을 간다면?
서포터가 빨리 움직여 시야를 일찍 많이 확보하면 그만큼 아군 정글러가 편해진다.
상대 정글러의 움직임을 빨리 파악하면 주도권을 잡고 움직이는 게 가능해진다.
또한 바텀에 상대가 정글러가 갱킹을 해도 3:2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원딜러는 생존 자체만으로도 이득이 된다.
이렇게 된 사이에 탑에서 상대를 박살내면 대각선의 법칙은 통하지 않게 된다.
즉, 생존형 원딜은 지금까지 상식으로 여겨졌던 대각선의 법칙을 깨버릴 열쇠이기도 했다.
하이퍼 캐리형, 전통적인 원딜과 달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다른 팀원들의 상황을 풀어주며 현재 메타에서 전략적 선택지를 넓혀주는 존재였다.
‘본인이 못하는 걸 억지로 하려고 하고 있어.’
성장해야 하니까.
그렇게 코칭 받았으니까.
이러한 코칭이 틀린 것은 아니다. 전설은 장기와 같은 게임이다.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말들을 이용해 여러 명이 동시에 장기를 두며 상대 말을 만나면 전투를 통해 잡아먹어야 한다.
피지컬은 물론 두뇌 플레이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멘탈이다.
그리고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선 의외성이 필요하다.
상대의 예측을 깬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변칙적인 플레이는 결국 여러 경험에 의해 탄생할 수 있다.
본인의 개성을 바탕으로 장점을 극대화하며 게임에 적용시키며 성장하면 독특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자신에게 안 맞는 옷을 고집하다보면 점점 자신의 장점을 죽이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야구로 치자면 시속 100마일의 패스트볼을 던질 몸인데 100마일을 던질 때까지 훈련하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꼭 100마일을 던질 수 있어야 훌륭한 투수, 최고의 투수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 교수님으로 불렸던 전설의 투수는 평균 구속이 90마일이 되지 않았다.
80마일 중반에서 후반까지 다양했다.
100마일에는 확실히 미치지 못했다. 최고 구속은 93마일 정도.
하지만 교수라 불렸다.
지독하게 효율적인 투구로 이닝 이터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주며 위대한 투수가 되었다.
만약 100마일의 패스트볼에만 집착했다면?
위대한 투수는 탄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다가 잘 안 되면 이것저것 시도해봐야 한다.
주식으로 치자면 손절하고 다른 종목을 알아보는 것이다.
안 되면 되게 하라며 몰아치는 일이 많지만 안 되면 되는 일을 알아보라가 정답일 때가 있다.
“명우야.”
“네.”
“너 포지션 바꿔볼 생각 없냐?”
“네?”
“너한테 미드는 안 맞아. 지금처럼 계속하면 한계가 뚜렷한 미드라이너가 될 뿐이다.”
갑작스러운 말에 명우라 불린 아카데미 선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화가 난 표정이었지만 꾹 참았다.
“왜요?”
일단 들어야 했다. 상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닌 코치였으니까.
이미 프로로 데뷔해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너 싸우다보면 주변이 잘 안 보이지?”
“그거야 차차 게임 보는 눈을 기르면 된다고 하셨는데요.”
“그 말이 틀린 게 아냐. 근데, 언제까지 기르고 있을래?”
“네?”
“너 프로 몇 년 할 거야?”
순간 명우는 깨달았다.
할 수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데뷔하고 싶었다.
완벽하게 준비된 신인?
말은 좋다.
하지만 22살에 데뷔하게 되면?
몇 년 뛰어보지도 못하고 은퇴를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된다.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나보다 더 잘난 놈이 들어오면?’
밀려날 수도 있다.
상황은 항상 기다려주지 않는다.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가끔 불안하고 조급해지기도 한다.
“제가 라인 바꾸면 어디로 가는데요?”
“탑.”
“제가 탑에요?”
“어, 너는 차라리 전투에 집중하는 게 좋아 보인다. 피지컬은 지금 탑에 서는 녀석보다 더 좋으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탑 라이너인 진호는 이를 악물었다.
잘못하면 밀려나게 생겼으니까.
“포지션 변경은 네가 정할 문제니까 더 말하지 않겠는데 네 전투력이면 탑에서 더 빛날 수 있어. 보완할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데뷔는 몇 년 당길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데뷔를 당길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 번 시도해보고 안 되면 다시 바꾸면 된다.
“저는 어떤가요?”
“넌 기복이 너무 심해.”
“기복이요?”
“어, 완벽주의. 하다가 안 풀리면 도박성 플레이가 자주 나와.”
뭐라도 해보겠다는 식으로 변한다.
리스크가 큰 플레이를 하게 된다.
잘 풀리면 대박이지만 잘 안 풀릴 경우가 더 많다.
결국 던지는 선수 하나 때문에 팀이 빨려들어가서 패배로 이어지게 된다.
팽팽하거나 아니면 다시 뒤집을 기회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너무 빠르게 포기하며 도박을 걸어버리는 것이다.
“그거 못 고치면 힘들 거다.”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나요?”
“그거야 멘탈 문제잖아? 방법이야 게임 리딩 능력을 올리거나 아니면 뛰어난 오더가 있는 선수와 한 팀이 되던가. 케어해줄 오더를 할 수 있는 선수를 찾으면 그냥 따르기만 하면 돼. 선택은 네 몫이다.”
“네.”
프로들과 연습을 하고 경험과 지식이 쌓일수록 강지건의 코칭 능력도 더욱 더 올라갔다.
선수 하나하나 조언을 해주었다.
게임 플레이가 아닌 선수들의 재능과 개성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본인들도 잘 모르고 있던 부분을 듣더니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어진 연습에서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확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본인들의 개성을 살리며 길을 찾은 느낌이었다.
모두 현재 메타에 어울리는 모습이라 하긴 어렵다.
메타는 언제든 변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자신만의 강점을 가지고 키우는 것은 중요하다. 선수로서의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아카데미 선수들은 압박감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였다.
초조한 모습이 사라졌다.
“헐 이게 되네?”
조언을 받았던 미드라이너인 혁재는 원딜에 서보더니 편한 느낌이 들었다.
“좋냐?”
“네!”
원딜러하면 하이퍼 캐리형 원딜을 생각한다. 그게 최고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혁재는 생존형 원딜러 플레이를 하면서 점점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 들었다.
더구나 2:1 상황에서 버티거나 생존하는 것은 미드라이너에겐 필수였다.
미드에 서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정글러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리딩 능력이 뒤떨어지는 선수는 미드에 서기 힘들다.
여기에 전투 능력도 필요하고 라인전도 잘 해야 한다.
혁재는 2:1 상황에서 버티는 능력이 많이 부족했다.
때문에 죽지 않으려고 공격을 카운터 치는 스타일의 챔피언을 주력으로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본인이 이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
딜을 화끈하게 때려 넣는 것을 좋아했다.
매우 공격적인 성격이었다.
또한 미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하지만 아카데미 선수가 된 이후에 로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자신에게 부족한 능력이 있다는 게 파악되었으니까.
미드라이너로서 이대로 괜찮을까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바텀에 서자 묘하게 안정된 느낌이었다.
‘이거라면 나도.’
생존형에 하이퍼 캐리도 가능한 만능형 원딜러가 가능할 것 같은 느낌에 신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