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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출도
조건들을 빠르게 채워나가느냐 못하느냐가 게임의 승패를 좌우하게 된다.
때문에 보통 경기에 들어가면 자신들이 강해지는 타이밍까지 버티는 게 요구된다. 동시에 상대의 성장을 억제한다.
이것이 기본 전략이다.
하지만 챔피언 조합에 따라 전략에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강한 타이밍이 다를 땐 상성이 생긴다.
보통 상성상 약한 쪽은 버티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선수들이 그렇게 버티지는 않는다.
피지컬에 자신 있는 선수들, 불 같은 선수들은 상성을 씹어먹으려 든다.
소위 말하는 ‘미친 자들’이다.
강지건과 조명석이 뒤로 물러서지 않고 무빙을 치며 툭툭 건드린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강지건의 챔프가 그랩을 날렸다.
상대를 향해 날아간 갈고리가 정확히 적중되는 순간, 조명석이 스킬을 쏟아넣었다.
강지건도 공격을 넣었다.
하지만 초반이라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딜은 나오지 않았다.
“6초!”
“내 뒤로!”
강지건이 원딜을 보호하며 움직였다.
이때 역습이 들어왔다.
얻어받던 배틀러스의 바텀 듀오가 딜을 넣기 시작했다.
강지건은 이리저리 틀며 무빙을 쳤다.
슬쩍 상대의 공격을 몇 개 흘리며 받아냈다.
“뒤로! 3! 2! 1! 지금!”
얻어맞으면서 살짝 뒤로 뺀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빼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치명적으로 보이는 공격들을 몇 번 피해낸 것.
적을 끌어들이면서 서서히 뒤로 물러나다 죽을 것 같은 순간 강지건은 물약을 쓰며 힐까지 사용했다.
다시 차오르는 피.
그 순간 배틀러스 바텀 듀오의 턴이 끝나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조명석과 강지건은 바로 점멸로 상대의 앞을 가로막으며 딜을 넣었다.
정확하게 들어간 딜은 결국 원딜을 잡았다.
“교대로!”
이어서 배틀러스의 서포터인 남성균이 이를 악물고 딜을 넣어보지만 소용없었다.
교묘하게 교대로 맞으며 모든 공격을 다 받아냈다.
강지건이 뛰어난 피지컬로 또 몇 번 공격을 피해낸 게 컸다.
이후 상대의 스킬 쿨타임이 돌아오며 턴이 넘어갔다.
남성균은 결국 점멸을 사용해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우와아아아아앗! 초반부터 뜨겁습니다!”
“치열한 딜교환!”
“빨아들이다 역으로 막았어요! 퇴로 막고 칩니다! 어딜 가!”
“끝장을 보자 이거죠!”
“방금 배틀러스 바텀 듀오가 좀 감정적이었던 느낌입니다. 감히 우리가 더 강한 타이밍에 덤벼?”
“그랬는데 역으로 따였죠!”
“놀랍습니다!”
“서포터의 정석이죠!”
“네! 솔랭에서 도구 소리 듣지만 프로 경기에서는 다릅니다! 서포터가 잘 해야 원딜이 빛나죠!”
경기 초반 원딜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원거리 딜러들이 강한 것은 후반 타이밍이 보통이다.
빠르게 성장한다면 중반부터 활약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엄청난 리스크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정상급 원딜러가 아닌 이상 힘들었다.
“그리고 그랩! 정말 예술이었죠!”
“피할 수도 있었어요! 살짝! 0.1초만 더 빨리 반응했어도 피했어요!”
“미세한 차이가 클라스를 만들어내는 거죠!”
> 나왔다 클라스.
> 서포터가 중요하긴 해. 물론 솔랭에서는 도구지.
> 여러분은 도구의 중요성을 보고 계십니다.
> 명품 도구는 승리할 확률을 올려줍니다.
어마어마한 반응이 일어났다.
> 그런데 고래 원래 서포터였나?
> 저 플레이. 어디서 본 거 같음.
> 저 그랩 익숙한 향기가 풍긴다.
한 때 전설이 처음 흥하던 시절 리그를 이끌던 스타 선수의 포지션은 서포터였다.
강지건의 그랩 플레이는 과거의 스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했다.
> 아앗! 또 잡았다.
> 와, 진짜 대체 몇 번째야?
> 더 놀라운 거 알려줄까? 지금까지 그랩 실패 하나도 없었다.
> 뭐?
> 뭐라고?
“그랩이! 던지면 그냥 잡힙니다!”
“이게 뭡니까! 낚시 도사입니까?”
“던지면 낚습니다!”
“월척! 월척이에요!”
바텀에서 킬을 몇 번 내자 게임 흐름이 일방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문제는 바텀을 봐주려 왔던 배틀러스의 정글러를 포함해 3명이 동시에 잡힌 것이었다.
강지건은 배틀러스 정글러의 움직임을 예측했다.
동선도 읽었다.
자료가 있었기에 높은 확률의 적중률로 맞춘 것이다.
이를 이용해 그랩 플레이로 배틀러스 정글러를 포탑 사정거리 안으로 빨아들였다.
조명석과 함께 딜을 넣었다.
포탑의 딜까지 함께 들어가니 순식간에 킬.
이후 2:2가 되자 시간을 잠시 끌며 빵뎅이를 흔들었다.
공격을 유도하며 무빙을 치자 헛손질이 나왔다.
그렇게 스킬이 빠진 바텀 듀오를 또 잡아냈다.
도망치려 하면 그랩으로 당겨버렸다.
“이게 뭡니까!”
“게임 터졌습니다!”
‘저게 뭐야?’
남성균은 강지건의 플레이를 믿기지 않는 눈으로 보았다.
‘저건 보고 피한 게 아니야.’
보고 피하는 레벨은 절대 아니었다. 아무리 피지컬이 좋아도 모든 상황을 보고 피하려 하면 타이밍이 늦는다.
보통은 예측한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며 무빙을 친다.
여러 가지 패턴을 연습하며 예측 불가능하게 사용한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이 예측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텀이다.
프로는 반응이 굉장히 빠르다.
예측이 훨씬 더 일찍 일어난다는 것이다.
상대의 움직임을 훤히 들여다본다는 게 맞을 정도로 예측해 피해낸다.
보통 경험을 통해 습득하기도 하고 자신이 본 무빙을 따라하기도 한다.
전투 중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패턴이 생기기 마련이다.
‘예측 그리고 피지컬 둘 다야.’
움직임을 훤히 읽히고 있다고 생각하니 오싹해졌다.
아마추어라면 느끼지 못하고 넘어갔을 일이다.
하지만 프로가 되어 아는 것이 많은 만큼 보이는 것이 있었다.
‘안 돼. 부정적인 생각은 안 돼.’
멘탈이 깨지려 하고 있었다.
자신이 뭘 해도 생각을 읽히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결국 반응 속도를 더욱 느리게 만든다.
멘탈을 잡으려는 노력조차 잡념으로 작용한다.
모든 신경을 오롯이 게임에 집중해야만 하는데 다른 생각을 하고 만 것이다.
게임이 안 풀려도 기계적으로 최적의 플레이를 찾아 머리를 굴려야 한다.
집중력이 괜히 중요한 게 아니었다.
멘탈이 괜히 중요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강지건의 플레이는 그만큼 충격이 컸다.
어지간한 일이면 대충 웃어넘기고 다음 수를 생각하기 위해 넘어 갔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강지건의 슈퍼 플레이는 멘탈을 쥐고 흔들었다.
결국 첫 번째 세트는 20분도 되지 않아 끝나버렸다.
이어진 두 번째 세트.
강지건의 그랩 플레이에 공포를 느낀 배틀러스는 1티어 그랩류 서포터를 밴했다.
멘탈이 깨진 것을 확인한 배틀러스에서는 아예 밴해버렸다.
금방 대처방법을 떠올릴 수 없으니 밴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만약 같은 픽을 허용하며 똑같은 픽으로 들어간다면?
대처법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똑같이 당하거나 더 심하게 당할 수 있었다.
박살난 멘탈이 계속 자신의 플레이를 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을 테니까.
“결국 밴하는군요!”
“짧은 시간 안에 대처 방법을 찾기 어려우면 밴하는 게 정답입니다.”
“아쉽게 졌다면 다시 같은 픽을 해보라고 할 순 있지만 이번에는 아니죠.”
“그냥 신들렸죠. 지금 그랩류를 풀어주는 건 자살 행위입니다!”
“고래 선수! 정말 놀라운 플레이로 깜짝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 그냥 미쳤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 상성 씹고 밟아버리네.
> 와 개 무섭네 서포터.
> 나도 저거 해야지.
> 야! 하지마!
> 오늘 솔랭 돌리면 엿되겠네.
> 하지만 상대팀으로 걸리면 개꿀이긴 해.
누군가의 불행은 누군가의 행복이 되기도 한다.
> 진짜 저 각을 어떻게 보는 건지.
> 안 닿을 거 같은데 닿네.
> 그랩 확률 100% 실화냐?
> 이러면 그랩류는 풀어주면 안 되지. 바텀 깨지고 시작할 텐데.
> 배틀러스를 뭐라고 할 순 없다. 이건 잘 한 결정이야.
하지만 배틀러스가 밴픽 카드를 서포터에 쓴 것은 제타스의 다른 선수들을 자극했다.
‘아니, 아무리 무서워도 그렇지 이걸 풀어줘?’
“부티 선수의 시그니쳐 챔피언이 풀렸습니다!”
“표정이 참.”
> 어이 없겠지.
> 저거 1티어 아님?
> 맞음 요즘 티어 올라서 1티어 챔.
> 배틀러스 망했네.
제타스의 미드라이너인 부티 최경재는 이를 갈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날 무시해?’
강지건에게 밴픽 카드를 쓰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설에서 미드는 황족 라인이라고 불린다.
최경재에게는 은근한 황족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었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주력 챔피언을 잡았을 때의 승률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80%를 넘어가는 승률.
패배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면 그땐 팀원들이 잘못한 날이다.
컨디션이 나쁜 날에도 주력 챔피언을 잡으면 절대 실수하지 않았다.
언제나 상대를 압살했다.
“부티 선수 자존심 상한 표정입니다.”
“으음, 이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어느 라인이든 풀리는 챔피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맞습니다! 밴픽 카드는 무한이 아니니까요!”
챔피언의 숫자가 늘어나며 생기는 현상이었다.
다시금 경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난리가 났다.
‘죽어라!’
최경재는 이를 악물고 딜교환에 들어갔다.
“부티! 신들린 딜 교환!”
“미쳤습니다! 아아! 동시 킬! 하지만 이러면 부티 선수 이득이죠!”
“맞습니다! 부티선수는 라인 다 밀었죠!”
“라인이 타고 있어요!”
배틀러스 미드라이너는 라인을 다 먹지 못한 상태에서 딜 교환이 시작되었다.
너무나 매서운 딜에 포탑까지 도망쳤지만 최경재는 죽음을 불사하고 따라들어왔다.
그리고 동시킬.
서로 킬을 교환했지만 결국 최경재에게 이득이었다.
“킬 먹은 것도 문제입니다. 최대한 늦게 킬을 줘야 하는데 초반에 줬어요.”
챔피언 중에는 킬을 먹어야 강해지는 조건을 가지는 챔피언도 있었다.
최경재의 주력 챔피언이 그랬다.
“더 강해져서 돌아왔습니다!”
그 순간, 바텀에서도 난리가 났다.
“고래! 그랩 마스터인줄 알았는데 천상 탱커입니다!”
“절묘합니다! 모든 공격을 다 무력화하고 있어요!”
“지능적입니다!”
“위기를 잘 흘려보냅니다!”
정글러의 갱킹으로 3:2 상황에서 적 정글을 포탑까지 끌어들여 잡고 전투를 종료했다.
“위아래 다 난리입니다!”
“탑! 탑! 탑에서 킬!”
배틀러스 정글러가 바텀으로 간 것을 확인하자마자 탑으로 갱킹을 가버린 제타스의 한지혁.
덕분에 2:1 상황이 되었고 상대 탑을 유유히 따버렸다.
“상체 터졌어요!”
“게임 빠르게 기울기 시작합니다!”
킬을 내고 1분도 되지 않아 또 킬이 나왔다.
이어서 포탑을 밀고 킬을 내길 반복한다.
스노우볼이 엄청나게 빨리 굴러갔다.
미드에서 최경재가 이를 악물고 날뛰고 있는 탓이었다.
빠르게 성장하며 코어 아이템을 갖추자 격차는 더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