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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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출도

‘기회야.’

이동현에 이어 제타스의 정글러인 한지혁도 도움을 요청했다.

포지션에서 밀렸다고 해서 포기한 게 아니었다.

강지건이 정글에서 바텀 서포터로 간다는 말에 한지혁은 눈을 빛냈다.

‘그대로 따라 하긴 힘들어도 활약은 해야 해. 안 그러면 내 자리는 없어.’

이대로 밀려나나 싶었는데 출전 기회가 빠르게 찾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안 좋은 모습을 보이면?

감독은 강지건에게 다시 정글로 뛰어달라고 할 수도 있었다.

‘최소한 내 몫은 해야 해.’

자기 몫을 못한다면 밀려나게 된다.

그건 싫었다.

“저도 좀 봐주세요.”

이동현의 연습을 봐주고 있는 강지건에게 다가갔다.

“그래, 동현이 상대 끝나면.”

강지건은 맞라인을 서면서 플레이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코치를 할 뿐이었다. 다른 방식은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하게 되면서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 감각이 조금씩 날카로워진다.

모든 것을 생각하고 움직이기는 힘들다.

감각적인 면에 기대야 한다.

생각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니까.

그렇기에 감각을 갈고 닦을 수 있는 경험이 제일 중요했다.

미세한 차이가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는 일은 너무나도 흔했다.

간발의 차이로 상대를 먼저 때리게 되면서 모든 흐름이 달라지는 것이다.

때리는 자와 쳐맞는 자로 갈라진다.

생각은 여유가 있을 때 하지 교전이 일어나면 제대로 생각할 틈이 없다.

이동현의 상대가 끝나고 한지혁의 상대가 되어준 강지건은 그냥 일방적으로 두드려주었다.

봐주고 그런 거 없었다.

‘저 타이밍을 익혀야 해.’

거리와 타이밍을 보면서 계속 반복한다.

상대할 방법을 계속 생각하면서 이런 저런 시도를 한다.

처음에는 계속 맞기만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살짝 피하기도 했다.

시간이 늘어나자 강지건의 공격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다시 정글을 도는 일이 늘어났다.

반복 연습의 효과였다.

“이번에는 다른 챔피언으로 해볼까?”

챔피언을 바꾸니 갑자기 또 맞기 시작했다.

챔피언마다 메커니즘이 다르니 타이밍도 달랐다.

하지만 그래도 한지혁은 계속 연습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강지건의 플레이를 눈에 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쟤네들 열심히네.”

“우리도 자리 빼앗길 수 있어.”

“열심히 해야지.”

강지건의 실력을 잘 아는 칼록 유민수는 열심히 연습에 임했다. 애초에 팀에 불러온 것도 유민수였다.

미드라이너인 최경재도 똥줄이 타는 표정으로 연습에 임했다.

그러자 뒤늦게 사태를 깨달은 원거리딜러인 조명석도 깨달았다.

‘어느 라인이든 대체할 수 있다.’

어떤 포지션을 빼앗을 능력이 있는 존재가 강지건임을 깨달았다.

리그 최고의 플레이어들을 그대로 복사할 수 있는 능력은 사기나 다름없었다.

전 포지션에서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강지건이 얼마나 괴물인지 느끼게 해주었다.

더구나 강지건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하고 있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빼앗길 수도 있다.’

부진에 빠지는 순간 교체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감독인 박동민이 강지건을 바라보는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마치 아들 보는 표정이었어.’

강지건의 입지가 얼마나 탄탄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더구나 강지건은 실력에 비해 계약금도 굉장히 저렴했다.

최저 수준으로 계약했기 때문이었다.

프런트에서도 대박이 터졌다며 다들 기뻐하는 중이었다.

‘이대로 세계 대회 우승이라도 한다면.’

몸값이 엄청나게 뛰게 되겠지만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스폰서만 제대로 붙는다면 돈 문제는 해결될 테니까.

‘연습하자.’

제타스 선수들은 평소보다 더 뜨겁게 연습에 임했다.

실전 같은 연습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강지건은 관리실로 향했다.

“훌쩍.”

야은설이 드라마를 보며 울고 있었다.

“그렇게 슬퍼?”

“네, 상공. 너무 슬퍼요.”

“아이고. 밥은?”

“밥이요?”

“밥 먹는 것도 까먹고 봤구나?”

“죄송해요. 멈출 수 없었어요.”

드라마라는 걸 처음 본 야은설은 멈추질 못했다.

그냥 푹 빠졌다.

뇌가 드라마에 절여졌다.

처음 접한 신문물에 정신이 없었다.

‘한국 드라마가 무섭긴 하지.’

중독성이 강해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 드라마였다.

뻔한 얘기라고 하는데 그걸 또 본다.

“밥 먹자.”

강지건이 말하자 라다가 바로 식사를 준비했다.

푸짐한 상이 차려졌다.

스테이크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곁들여진 것은 와인.

“으음!”

고기 한 점, 와인 한 모금.

반복을 하며 강지건은 행복을 느꼈다.

“이건 공룡고기인가?”

“네, 어때요?”

“닭과 소가 합쳐진 맛이야.”

“다행이네요.”

고기 소모가 심했다. 때문에 마겔에서 잡은 공룡의 고기를 사용했다.

“맛있어요!”

어마어마한 양의 고기를 뜯어먹었다. 뼈가 수북하게 쌓였다.

모두 배가 볼록 나올 정도였다.

“그럼 소화라도 시켜볼까?”

소화를 위해 세 사람은 나신이 되어 뒤엉켰다.

잠시 뒤 이미 작동하고 있는 대현자 가우스의 마나연공진에 이어 부부를 위한 칼탄의 마나연공진이 발동했다.

두 개의 마나연공진이 공명하며 효과가 더 늘어났다.

육문공을 비롯한 스킬들의 숙련도가 쑥쑥 올라가며 몸에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강지건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서번트들에 비해서 둔화되기 시작했다.

칼탄의 마나연공진으로 인한 효과가 미미해지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는 강지건의 수준이 너무 높아져서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었다.

라다와 야은설을 절정으로 혼절시켜버리고 상황을 파악한 강지건은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칼탄의 마나연공진이 쓸모를 다 한 건가?’

아주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강지건에게 큰 도움이 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제는 관계를 맺을 때 도움이 되는 게 전부겠네.’

이성을 안게 되면 이성에게 효과를 줄 수 있으니 굳이 버릴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뭔가 허전한데 뭐 없나? 좀 더 효과적이고 그런 거.’

섹스를 통한 수련에 관심이 많은 강지건이었다.

‘무공으로 얻는 게 더 좋겠지?’

경지가 높아져도 계속 써먹을 수 있는 무공을 스킬로 얻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뭐가 좋을까?’

무왕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무공들이 있었다. 하지만 강지건은 섣불리 구매를 하지는 않았다.

‘뭔가 더 좋은 게 있을지도 모르는데.’

엉뚱한 것을 구매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공 수집하다보면 뭔가 나오겠지.’

강지건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모든 마나연공진이 효과가 떨어지게 되는 순간 등급을 올려서 새로운 스킬을 찾아보는 게 나을지도.’

고민을 끝낸 강지건은 다시 두 사람을 안고 뒹굴었다.

한편, 진매령은 검녀문의 검녀들을 모두 이끌고 하산했다.

더 이상 산에 남을 이유가 없어졌다.

비급들을 비롯해 중요한 물건은 모두 강지건의 관리실에 넣어둔 상황이었다.

남은 것은 가구를 비롯한 생필품 정도.

모두 불태워버렸다.

검녀문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건물도 허물어버렸다.

행여나 다른 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검녀문을 사칭할 수도 있으니까.

검녀문은 이미 마겔에 다시 세워졌다.

수많은 세계에 세워질 예정이었다.

때문에 진매령은 더 이상 검녀문이 산속에 머무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았다.

‘상공을 위해서라면 여인들의 도시를 만들어야 해.’

강지건이 섹스를 통해 포인트를 얻는 걸 즐기는 걸 알고 있었다.

이를 위해 움직일 생각이었다.

‘침식을 종식시키고 검녀 도시를 세운다.’

이것이 무왕계에서 진매령이 하고자 하는 일이었다.

강지건에게 안기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대현자 가우스의 마나연공진 덕분에 실시간으로 강해지고 있었다.

따로 수련을 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가진 힘만으로도 강호를 쓸어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상공을 위해.’

직접 모든 침식을 종식 시킬 생각이었다.

강지건이 나설 필요도 없게 할 예정이다.

하산한 진매령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우호적인 집단을 찾아갔다.

대영표국.

“어서 오십시오. 장문인.”

대영표국의 국주는 검녀문의 산하에 있는 조직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검녀문이 대영표국의 큰손이기 때문이었다.

검녀문이 자리한 산에서 나오는 특산물은 미인공에 꽤 유용했다. 이것을 검녀문에서 의뢰로 맡긴다. 호송비용도 짭짤하니 굉장히 중요한 고객이었다.

무엇보다 국주의 아내가 검녀문의 외문제자였다.

입문 무공인 도화검무와 약간의 미인공을 배운 것이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나저나 우리가 습격당했던 걸 알았을까 몰랐을까?’

진매령은 궁금했다.

“강호에 볼일이 있어서 나왔네.”

“제가 어떻게 도우면 되겠습니까?”

“그냥 강호 소식을 알려주게. 아, 그리고 여긴 차기 장문인으로 내정된 제자네. 인사하시게나.”

“안녕하십니까? 유화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마치고 쉬는 시간, 진매령은 제자들에게 명했다.

“정보를 수집해라. 혈마교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아울러 여기에 혈마교 마인들이 들린 적이 있는지도.”

검녀들이 표국을 나섰다.

표면적으로는 세상 나들이를 나온 것 같은 유유자적한 모습이었지만 내심은 달랐다.

‘장문인께서 표국을 의심하고 있으시다.’

검녀들이 생각하기에도 그러했다.

검녀문이 습격당했는데 협력업체나 마찬가지인 대영표국이 멀쩡한 게 수상하기만 했다.

‘어쩌지?’

인사를 마친 뒤, 대영표국의 국주는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분명 의심하고 있을 게 틀림없어.’

얘기를 할 땐 표내지 않았지만 이후 검녀문의 검녀들이 표국을 나섰다.

세상 구경 나온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국주는 달리 생각했다.

‘의심하고 있어.’

찔리는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혈마교는 사실 대영표국을 방문했었다.

국주는 냉큼 굴복했다. 자신의 처를 바치기까지 했다.

혈마교에서는 무공을 내려줌과 동시에 제약을 걸었다.

이후 대영표국은 혈마교의 산하 조직이 되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검녀문의 협력 문파인 것처럼 행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녀문이 멸문하고 나면 대대적으로 혈마교의 편에서 움직일 예정이었다.

그런데 검녀문을 치러간 혈마교 사람들은 소식이 끊어졌다.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더니 검녀문이 내려왔다.

순간 깨달았다.

혈마교가 깨졌다고.

하여 최대한 태연한 모습으로 일단 속여 넘긴 것이었다.

‘도망쳐야 해. 곧 들통날 거야.’

국주는 다급히 짐을 챙겼다.

“누가 날 찾거든 잠시 볼 일보러 나갔다고 일러라.”

시비에게 얘기를 하고는 표국의 문을 나서려 했다.

그때였다.

“어디 가시는가?”

발목을 잡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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