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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롭고 짜릿해
“자, 오늘 상대가 신인 내보낸다고 너무 방심하지 말고 제대로 가자.”
“어, 걱정 마.”
경기 전, 대영의 분위기는 많이 풀어진 상태였다.
정글 포지션에 찍힌 출전 선수가 데뷔전을 치르는 신인이었다.
나이는 이미 데뷔한 몇몇 선수보다 많다고 해도 선수 경력은 없었다.
이번이 생애 최초의 프로 경기였다.
보통 루키들은 첫 경기 때 긴장하기 마련이다. 긴장을 너무 해서 제 실력 발휘를 못하기도 하고 분위기 파악을 못해 실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때문에 루키 데뷔는 보통 약팀 상대로 하는 편이다. 만만한 팀을 상대로 해야 실수를 해도 다른 선수들이 커버해줄 수 있으니까.
또한 약팀이라고 해도 승리하면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런데 제타스에서는 강지건을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제타스를 상대로 내보냈다.
“무시당한 기분이야. 그냥 죽여줘야지 뭐.”
“그래, 프로가 어떤 건지 확실히 알려주자고.”
경기장에 들어서자 팬들의 환호가 들려왔다.
온갖 구호가 들려왔지만 경기 부스 안으로 들어가니 모든 소음이 차단되었다.
선수들에게 응원은 닿지 않는다.
이것은 예전에 팬들이 응원으로 경기에 영향을 준 일이 발생한 뒤에 생긴 것이었다.
위험이 다가오는 순간 팬들의 응원이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힌트가 되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노골적으로 이를 행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이스포츠 선수들은 방음 부스 안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물론 전설이 아닌 그 이전에 유행했던 종목의 이야기였다.
때문에 아무리 소리치고 응원해도 경기를 뛰는 선수들에게 닿지는 않는다.
선수들에게 들리는 것은 팀원들의 음성과 게임 사운드가 전부.
“일단 한 번 인베가서 찔러보자. 어떻게 하나 궁금하다.”
“오케이.”
대영은 허를 찌르는 인베이션, 경기 초반에 상대 진영을 찌르고 들어가는 플레이를 하기로 결정했다.
“아마 인베 콜이 나왔을 거야.”
“그럼 어디로 올까요?”
“동선은 아마도 이쪽이 아닐까 싶은데?”
강지건은 상대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예측했다.
대영의 정글러인 베어만이 아니라 모든 포지션의 선수들을 다 카피했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선수들의 사고방식을 토대로 예측을 풀었다.
“가서 엉덩이 좀 흔들어줘. 우린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발이 느린 챔프를 보냈다.
“거리는 알지? 너무 깊게 들어가면 잡힌다. 시간은 딱 1초. 1초만 보여주고 바로 돌아서야 해.”
강지건의 지시에 따라 원딜러가 움직였다.
대영은 원딜러를 발견하자 잡으려고 쫓아왔다. 포위망까지 형성하면서 둘러싸려 했다.
하지만 원딜러가 공격당하기 직전, 강지건이 뛰어들며 반격을 가했다.
“미드 일점사!”
확실한 콜로 한 명을 녹여버리고는 재빨리 흩어졌다.
> 우와아! 저게 뭐야?
> 첫 스텝부터 꼬였는데?
> 저걸 읽은 건가?
> 우연이겠지.
> 우연이라기에는 작정하고 기다린 포지셔닝인데?
첫 킬을 따내며 기분 좋게 출발한 제타스는 미드에서 연신 대영을 두들겼다.
대영의 최고 선수가 정글러라고 알려졌지만 미드라이너 또한 만만치 않았다. 팀의 중심이라고 해도 좋은 선수였다.
미드에서 그 어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고 종종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며 경기를 이끌기 때문이었다.
킬에 미친 킬링 머신.
그게 대영의 미드라이너였다.
하지만 강지건이 함께 하는 제타스를 상대로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아! 말렸어요! 완벽하게 말렸습니다!”
“고래 선수! 동선이 진짜 무조건 미드만 잡는다입니다!”
“지금도 보세요. 위로 가는 것 같은데 미드로 왔어요.”
“살짝 고개 내밀고 미드로!”
미드라이너가 2데스를 기록하자 대영의 정글러의 동선이 미드를 봐주기 위해 강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지건의 쇼가 시작되었다.
“고래! 뒤에서 기습!”
“아아! 점멸 빠집니다!”
“그대로 미드로 갑니다!”
“서포터 올라옵니다! 헬프 해야죠!”
“말씀 드리는 순간! 바텀이 강하게 압박합니다!”
한 라인에서 다른 라인으로 헬프를 가게 되면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전설은 반쯤은 장기와 같다.
다만 혼자 두는 게 아니고 여럿이 함께 두는 장기다.
“고래! 이번에는 갑자기 동선을 꼬아서 탑으로!”
“아아! 포탑 날아갑니다!”
종횡무진 움직이면서 상대 정글러는 꼭 잡아주었다.
베어 강대운은 정신이 없었다.
‘뭐야? 어떻게?’
계속 데스를 기록하면서 성장차이가 벌어지다보니 살짝 위축되었다.
“아, 혼자서 안 되겠어. 말렸어.”
“그럼 일단 줄 건 주면서 시간 끌어보자.”
“성장에 집중해. 우리 조합 나쁘지 않아. 전투 몇 번 비비면 바로 회복 가능해.”
팀원들이 든든하게 받쳐주는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제타스는 예전에 상대했던 그 팀이 아니었다.
‘라인 너무 밀리는데?’
총체적 난국이었다.
스노우볼이 굴러간다. 물론 스노우볼이 굴러간다고 해도 이를 잘 굴릴 줄 모르는 팀, 혹은 후반 운영이 안 되는 팀은 귀신 같이 진다.
올프리티비의 챌린저스가 그랬다.
초반에는 기가 막히게 앞서나가는데 이상하게 특정 시간대가 찾아오면 굴리던 스노우볼이 멈춰버린다.
작전 수행을 다 한 뒤에 임기응변으로 운영을 이끌어가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미숙한 것이었다.
야전 지휘관의 부족이라고 보면 딱 좋았다.
후반으로 가면 혼전 양상이 된다.
정돈된 상황이 아니라 혼잡한 상황이 펼쳐지며 임기응변이 중요해진다.
혼잡한 상황에서 뛰어난 움직임을 보여주는 팀이 있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팀이 있다.
지나치게 조심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이다.
게임이 공격적인 메타가 주류 메타로 떠오르면서 보다 더 자신있게 과감한 플레이를 소화하는 팀들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나가면 아예 승부를 던지는 식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때문에 상황 판단을 잘 하는 야전 지휘관의 존재는 매우 중요했다.
“아아! 고래 선수! 또 킬을 올립니다!”
“대체 이게 몇 번째입니까?”
“5킬입니다! 10어시 5킬!”
“정말 신인 맞나요?”
“신인이라고요? 이 선수가 왜 신인입니까? 아니 어디 있다 이제 나타난 걸까요?”
> 20분인데 15킬 내줬으면 게임 터진 거지.
> 대영이 이렇게 진다고?
> 인베에서 잡힌 게 컸지.
> 중간에 정글 포기하고 미드부터 한 번 더 잘랐잖아.
> 미드 무너트리고 시작한 게임이다.
미드는 대들보나 마찬가지다.
미드가 무너지니 경기가 굉장히 어려워졌다.
더구나 강지건은 대영의 선수들을 전부 다 읽어내고 있었다.
‘내 생각하고 별로 다르지 않네.’
영상과 자료를 통해 얻은 정보만으로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강지건의 초감각에는 상대의 움직임이 훤히 읽혔다.
사실 0.1초가 아니라 0.01초의 세계라고 해도 강지건에게는 훤히 보였다.
그야말로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며 싸울 수 있었다.
빛처럼 움직이려면 그만한 인지 능력이 있어야 제대로 싸울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선택한 초감각이었다.
현재 초감각은 육문공과 초월의 날개 영향을 받아 더욱 더 발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피지컬에서 괜히 세계 최강이 아닌 것이었다.
“그런데 고래 선수! 지금까지 스킬 맞은 게 몇 번이죠?”
“위험한 건 다 피했습니다.”
“0데스가 그 증거죠!”
“이 선수 다 피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이런 포스를 보여준 선수가 과연 몇이나 됩니까?”
“정말 미친 퍼포먼스입니다!”
> 내가 세어봤다. 딱 4번 맞았다. 그냥 맞고 지나가더라.
> 어떻게 한 번을 못 잡냐.
> 동선도 미쳤지만 전투력은 더 미쳤는데?
> 저기서 몇 번을 무빙 친 거냐. 진짜 저걸 왜 못 맞추지?
상대의 타이밍을 다 아는 상태였다.
반응할 때 보이는 성향도 이미 다 파악 되었다.
여기에 최강의 피지컬이 더해지니 움직임만 보고 움직여서 공격을 피해내는 묘기를 펼치게 되었다.
여러 선수가 스킬샷을 날리는데 그걸 어지간한 건 다 피한 것이었다.
맞은 것은 맞아도 별 문제가 없는 것만 가끔 한 번 맞고 지나갔다.
“그냥 미쳤어요!”
> 그냥 미쳤지
> 이 정도였어?
> 왜 제타스 갔어? 버스터로 와야지.
> 버스터 갔으면 후보.
> 챌린저스에 자리 있었는데.
> 경쟁사라고 안 부른 거 아님?
> ㅋㅋㅋ. 킹능성 있네. 경쟁사라서 애써 무시했다면 진짜
경기는 빠른 시간 안에 끝이 났다.
이어진 세트에서도 강지건은 상대의 멘탈을 박살내는 전투력을 선보였다.
<승리!>
많은 관계자들을 경악하게 만든 데뷔전을 치른 강지건은 활짝 웃으며 일어났다.
> 늙은 신인이라고 무시하던 놈들 다 대가리 박아
> 마, 저 정도면 절을 해서라도 데려와야지
> 즉전감이네
> 제타스 감코 빼고 다 눈깔 삐었죠?
> 감코진 다 바꿔야 할 듯
> 저런 대어를 어떻게 놓치냐?
> 이제 겨우 한 경기야. 너무 띄워주는 거 아님?
게임 커뮤니티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떡밥 하나 투척되니 미친 붕어들처럼 달려들었다.
아직 너무 이르다는 말도 있었지만 승리를 거둔 상대가 대영이다보니 평가가 후할 수밖에 없었다.
> 아직 이르긴 개뿔. 제타스가 어디 대영에 비빌 레벨이었나?
> 고래 들어오고 확 바뀌었던데.
> 마지막 퍼즐 조각을 구했다.
> 퍼즐은 완성되었다.
> 이제 우승만 남았다.
> 대영을 저렇게 발라버릴 정도면 솔직히 기대해볼만 하지. 다른 팀이라면 또 몰라도.
> 그치그치 월드넘버원을 처발랐는데 이 정도는 띄워줘야지.
대세는 기울었다.
> 근데 고래 먹방 봄? 진짜 처음에는 라면 쪼가리나 패스트 푸드 먹더니 갑자기 고상해짐.
> 스테이크와 와인 먹고 막 그러더라.
> 돈이 얼마나 많은 거지?
> 선수 생활은 사업 때문에 안 할 거라고 했었는데 많이 버나부지.
> 어? 프로게이머가 부업인 선수가 있다?
> 캬아 재능
> 그저 빛
강지건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대로면 금방 30만 찍겠네.’
활약도 보통 활약이 아니었다.
두 번이나 세트 MVP를 먹었다.
그것도 만장일치.
이스포츠 기자들은 벌써 나이든 신인의 도전이라는 식으로 포장하며 스타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었다.
혜성같이 나타난 대형 신인.
나중에 망할 수도 있지만 일단 기대를 품게 확실히 띄워주는 것이었다.
리그의 인기를 견인하기 위해선 결국 스타 선수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한 번 리그 부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레전드급 선수는 나이를 먹고 메타까지 변하면서 하락세를 타버리고 말았다.
아직 선수로서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매번 비난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보통 잘하는 수준으로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레전드급 인기를 누린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수도 있었다.
“정말 축하드려요.”
경기를 직관했던 진매령과 라다는 강지건의 행복한 표정을 목격했다.
승리한 이후 보였던 세상 다 가진 듯한 표정.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좋아하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구에서의 삶을 더 즐기실 수 있도록 해야지.’
‘주인님.’
“고마워.”
“누워보세요.”
두 여자는 강지건의 승리를 몸으로 축하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