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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찬 나날의 시작
“이건 3천만원짜리 와인이에요. 크롭스크에서 이름 좀 날린 와인이죠.”
고급 와인이라 그런지 입에 착 감겼다.
안주는 삼겹살.
소금만 뿌린 짭짤한 삼겹살을 씹으면 입안에 기름기와 감칠맛이 감돌고 여기에 와인을 곁들이니 와인의 향이 더욱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와, 이거 삼겹살에 먹어도 되는 건가?”
“음, 나쁘지 않네요. 이 정도면.”
“김치랑 먹으면 어떻게 될까?”
“와인 맛 망치고 싶으면 해도 되고요.”
발효 식품은 와인과 맞지 않는다. 치즈도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와인과 궁합이 맞지 않는다.
발효 식품은 와인과 궁합이 안 좋다고 보면 편하다.
세계가 달라도 와인은 와인이었다.
“역시 술에는 고기야.”
강지건은 와인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냥 비싼 외국 술이라는 인식 정도. 몇 번 마셔본 것도 마트에서 파는 저렴한 와인을 호기심에 마셔본 정도였다.
와인 맛은 잘 몰랐다.
애초에 술맛도 그리 잘 아는 편은 아니었다.
알딸딸하면 그게 술이었다.
알콜이 중요했다.
알콜이 들어간 것을 마시고 알딸딸해지면 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소주와 보드카가 오히려 강지건의 취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식과는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다.
하지만 잘 모르는 강지건도 엄청나게 비싼 와인을 마셔보니 다른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진짜 좋다.”
초감각 덕분에 술맛의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예전이라면 몰랐을 맛.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아, 이 삼겹살. 좀 더 좋은 걸 샀어야 하나? 굽는 것도 좀.”
초감각이 생기니 불편해진 점도 있었다.
음식의 맛이 예전 같지 않아졌다.
예전에는 그냥 대충 먹어도 맛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
시간이 지나 초감각이 점점 발달할수록 맛에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소주는 술이 아니야. 이건 술맛 희석알콜이지.”
“나중에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그래, 나도 걱정이야. 요리라도 배워야 할까봐.”
“제가 할게요.”
“그럴래?”
“네,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우리 예쁜 라다. 라다 없었으면 나 어쨌을까 싶다.”
두 사람은 뒤엉켰다.
몸도 혀도 함께 엉켰다.
소중한 거시기와 구멍이 하나로 엉켰다.
열쇠구멍에 열쇠가 들어갔다.
돌아갔다.
쾌락의 문이 열렸다.
아흥행홍 신음이 터져 나왔다.
지구로 돌아와 하는 일은 먹방 촬영과 방송이었다.
‘으음, 시켜 먹는 것도 못하겠어.’
문제가 생겼다.
초감각이 발달하며 점점 배달 음식이 맛없어졌다.
사실 가격에 딱 맞는 가성비를 살린 음식이라 할 수 있었지만 감각이 예민해진 강지건의 입장에서는 만들다 만 음식, 혹은 실패작으로 분류될 뿐이었다.
‘이건 좀.’
고기 잡내가 살짝 느껴졌다. 물론 평범한 사람은 절대 못 느낄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강지건은 느끼고 말았다.
‘못 먹는 건 아니지만.’
영양 섭취를 위해 일단 다 입에 쑤셔 넣었다.
미각이 예민해졌다고, 맛없다고 밥투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군대 짬밥도 버텼는데.’
하지만 그래도 역시 맛이 안 좋으니 기분이 안 좋았다.
“라다. 역시 이건 좀.”
먹방을 찍고 난 뒤, 강지건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제게 요리 스킬을 일단 하나 주세요.”
“그래.”
요리 스킬은 얼마 하지 않았다. 10포인트를 써서 구입한 뒤 라다에게 주었다.
라다는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 고기를 구웠다.
대량으로 구운 스테이크.
스테이크 3킬로그램은 묵직한 볼륨감을 자랑했다.
“오오.”
“이제 드셔보세요.”
“응.”
와인의 라벨은 종이로 가려서 안 보이게 하고는 와인과 함께 스테이크를 먹었다.
“으음! 이 맛이야!”
고기를 써는 속도가 늘어난다.
와인을 마시며 향을 즐긴다.
고기와 와인은 잘 어울렸다.
초감각을 이용해 구운 고기이기에 완벽에 가까웠다.
영상은 당연히 잘 나왔다.
행복하게 고기와 와인을 먹는 고릴라라는 타이틀이 붙은 영상이 탄생했다.
‘잘 나가네?’
강지건의 위튜브는 금방 구독자 수 5만을 찍었다.
일단 강지건의 전설 실력이 그랜드마스터를 뛰어넘는 것으로 보이자 사람들이 흥미를 보였다. 프로급이라는 말이 종종 나오니 까기 위해서라도 방송을 찾아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여기에 먹방이 알려지자 뭐라고 욕이라도 달러 갔다가 먹는 모습을 보고 구독자를 눌러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냥 재미있을 거 같으니까.
무엇보다 얼굴부터가 독특했다.
고릴라.
살아있는 인간 고릴라.
기타 등등.
꼭 잘 생긴 사람만이 인기를 끄는 건 아니다.
개성이 있으면 인기를 끌 수 있다.
여기에 전설 프로게임팀인 제타스 소속의 선수가 SNS에 올린 글이 계속 퍼지면서 강지건의 위튜브 채널은 결국 해외 유저들에게도 알려졌다.
독특한 외모와 강렬한 먹방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짧은 시간에 급상승하며 무시무시한 기세를 발휘하자 늘보라는 살짝 배가 아팠다.
하지만 이젠 어떻게 하기 어려웠다.
자신의 방송에서 위튜브 채널 홍보한 것을 걸고넘어지기에는 늦어버린 것이었다.
이미 합방까지 해놓고 뒤늦게 비난해봐야 역풍만 불 뿐이었다.
‘질투하는 모습은 좋지 않아.’
인터넷 방송을 보는 사람들 중에 상당수는 그냥 씹고 싶어서 기회를 노리는 사람도 상당수였다.
작은 실수만 해도 피 냄새 맡은 상어처럼 달려든다.
‘일단 내 시청자도 늘었으니까 최대한 콘텐츠를 많이 뽑아야 해.’
강지건 덕분에 늘보라도 덕을 보고 있었으니 손해라고만 할 순 없었다.
질투는 나도 함께 방송을 하며 꿀을 빨면 그것으로 족했다.
‘라인을 형성하면 좋겠는데.’
강지건이 잘 나갈 거 같다.
그래서 어느 정도 친분을 만들 생각이었다.
“고래님.”
“네?”
“뭐하세요?”
“님 게임 분석하고 탄식하는 중입니다.”
“아 또 왜!”
“여기서 왜 궁을 박았나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계산이 안 돼요?”
“네? 거기서 궁 써야지 언제 써요? 아끼면 똥 되잖아요.”
“궁 안 써도 잡을 수 있었는데 몰랐어요?”
“네?”
“잘 봐요. 저기서 궁 안 써도 콤보 넣었으면 잡았어요.”
“엉? 안 되지 않아요?”
“지금 상대 체력 보이죠? 1804.”
강지건은 상대의 남은 체력과 콤보를 넣었을 경우의 종합 딜을 계산해서 보여주었다.
“딜이 10 오버되요. 충분히 잡을 수 있었어요.”
“누가 그 시간에 그걸 계산해요!”
“하다보면 할 수 있어요.”
“아아아아아악!”
강지건도 알고 있었다.
무리한 요구라는 걸.
‘하지만 방송인걸.’
방송이니까 무리한 걸 요구한다.
재미를 위해서.
> 그게 계산이 돼?
> 힘들지 않나?
> 고래는 한다는 거잖아.
> 헐. 사람 맞나?
> 사람 아닙니다. 고릴랍니다.
“네, 전 그랜드마스터 고릴라고 님들은 제 아래 티어의 인간들이죠.”
> 하등한 인간이 고릴라님을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 야! 인간이 고릴라를 어떻게 이겨!
> 메모: 인간은 고릴라보다 아래다.
> 먹킹몽킹고래님이시다. 다들 경배해라.
> 존경!
방송은 흥했다.
강지건은 기분이 좋았다.
‘역시 잘 먹히네.’
초감각 덕분에 게임 실력이 더 늘어났다. 피지컬과 초감각만 있어도 전투에서 우위를 점한다.
라인전을 하게 되면 무조건 이겼다.
라인전에서 강하게 몰아치는 게 가능해지니 우위를 점하며 주도권을 가져가게 된다.
더구나 솔로 킬도 쏠쏠하게 따낸다.
도저히 아마추어로 보이지 않는 실력.
압도적인 피지컬로 라인을 압살하고 상대를 박살내며 게임을 유리하게 몰아갔다.
‘게임 실력이 없었다면 늘보라하고 관계가 별로 안 좋았겠지.’
강지건은 늘보라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해주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크루처럼 되어서 함께 하게 되면 간섭이 안 생길 수가 없다. 또한 상대에게 맞춰주는 일도 감수해야만 한다.
모든 것이 방송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결국 크루를 이끄는 리더를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난 굴러온 돌이니 쉽지 않지.’
더구나 방송을 자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방송은 덤이나 마찬가지.
‘이제 이것도 슬슬 질리네.’
게임은 나쁘지 않다. 다만 늘보라를 가르치는 일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속 터져.’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늘보라와 별로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없었던 강지건이었다. 하지만 피지컬이 향상되고 게임 보는 눈이 생기니 갑갑해 미칠 것 같았다.
‘아니’ 소리가 몇 번이고 나오려는 것을 꾹 눌러 참았다.
프로게이머를 만들 것도 아니고 그냥 게임 방송이니 적당히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어드바이스를 할 뿐이었다.
애초에 피지컬이 안 되는데 고급 팁을 남발해봐야 쓸모가 없다.
프로가 쓰면 굉장히 무서운 챔피언도 피지컬이 안 따라주는 유저가 사용하면 똥챔과 별로 다를 게 없다.
또한 피지컬이 안 되는데, 뇌지컬도 안 따라주는데 이런 저런 전투 방법과 운영 방식을 알려줘 봐야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코칭은 사람 봐가면서 해야 하는 것이다.
수준이 낮으면 낮은 대로 해당 수준에서 최고로 효율을 낼 수 있는 방법만 알려주면 된다.
“늘보라님의 포텐셜에 맞는 교육은 이제 끝났습니다.”
“네? 벌써요? 나 그거 가르쳐줘야죠. 칼챔 그거 있잖아요. 훽훽 피해서 스사삭! 해치우는거!”
“님이 그걸 할 수 있었다면 제 교육은 필요 없었을 겁니다.”
“아니 또 왜!”
“님은 안 돼요.”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겁니꽈? 겁나세요?”
“네, 겁이 납니다.”
“잉?”
“제 인생을 낭비할까봐 겁이 납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뿅삐리뿡빵뿅!”
“아아아아안돼에에에에에에엥!”
늘보라는 잡으려 했지만 강지건은 단호했다.
이날의 방송은 고릴라에게 차인 인간이란 타이틀을 단 영상으로 인터넷에 박제되었다.
“후우.”
늘보라와의 방송을 마친 강지건은 바로 큐를 돌렸다.
‘티어나 올리자.’
챌린저가 되어볼 생각이었다.
‘퀘스트 설정. 챌린저 1등.’
- 퀘스트가 설정되었습니다.
무려 1,000 포인트나 주는 퀘스트였다.
챌린저 달성을 한참 뛰어넘는 보상에 강지건을 입맛을 다셨다.
‘그래, 1등 한 번 해보자.’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하자 연승 행진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