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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찬 나날의 시작
빌딩 안, 수색을 하던 라다는 피식 웃어버렸다.
‘역시.’
“살려주세요!”
“도와주십시오!”
아지트로 추정되는 층에 도착하자 한 쌍의 남녀가 나타나 애원했다.
이미 길에서 수많은 좀비를 박살내며 움직이던 강지건과 라다를 보았기에 이들은 매달리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날 잊었나?”
머리 부분만 부분해제하며 라다는 얼굴을 보였다.
그러자 남녀가 모두 굳어버렸다.
“라다?”
“어떻게?”
“에반트는 어디 있지?”
남녀는 식은땀을 흘렸다.
“왜 대답이 없지? 카메크, 데라.”
남녀는 예전에 라다와 함께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일은 미안해.”
“두목을 막지 못한 건 불가항력이었어. 미안하다.”
함께 움직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에반트는 폭력적이었으며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라다의 미모를 탐하며 범하려다가 실패했다. 라다가 기를 쓰고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뭐야 아는 사이였어?”
“악연이죠.”
“어떻게 할 건데?”
강지건은 퀘스트가 완료된 것을 확인하고는 물었다.
“제 마음대로 해도 되나요?”
“그렇게 해.”
허락을 받은 라다는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내가 이때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라다! 제발! 난 아무 것도 안 했어!”
여자, 데라가 애원했다.
“난 의료 지식이 있어! 쓸모가 있을 거야! 저 좀비들의 병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박사도 아닌 의대생인 네가 그게 가능하다고?”
“저 병 앞에선 누구나 다 똑같아!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그럼 나하고도 별 차이 없는 거니까 문제는 없겠네. 적어도 내가 너보단 더 아니까.”
침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확한 메커니즘만 밝혀내면 될 일.
“뭐?”
“에반트는?”
“에반트는 위층에. 라다. 정말 미안해.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 도와달라는 말은 안 할게. 그냥 이대로 떠나면 안 될까?”
카메크는 모두 포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손이 슬쩍 움직였다.
순간 라다의 얼굴은 다시 강화외골격에 가려졌다.
이윽고 손이 드러났다.
총과 함께.
타앙!
총성이 울렸지만 불꽃이 튀며 튕겨나갔다.
“역시 너희들은.”
라다는 더 말하지 않고 달려나갔다.
권총을 쥔 손목을 잡고 힘으 주었다.
뿌득.
“아아아아아악!”
손목이 부러졌다.
뼈가 그대로 으스러지며 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어서 라다는 카메크의 다른 손목과 발목을 모두 부러트렸다.
“으으으! 그만! 그만! 내가 잘못했어!”
애처롭게 애원하지만 라다는 속지 않았다.
“너 같은 놈들은 항상 불쌍한 척하지. 거기에 속았던 내가 한심하다.”
이어서 라다는 옆에서 보고 있던 데라도 똑같이 만들어주었다.
“아악! 난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왜!”
“네가 저 놈들과 한통속인 걸 모를 줄 알고?”
라다의 손속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고 라다가 튀어나갔다.
이어서 에반트를 잡아왔다.
도망치려는 에반트는 버둥거렸다.
“라다! 정말 미안했다! 내가 잘못했어! 이렇게 빌게! 응? 잘못했어!”
“자비를 원해?”
“그래! 제발 용서해줘!”
라다는 총을 들었다.
“정말 자비를 원해?”
“자비라니. 왜 총을.”
“이런 세계에서 사는 건 힘들잖아. 편하게 해줄게.”
“아냐 아냐 아냐. 하나도 안 힘들어.”
“안 힘들어?”
“응, 적응하면 살만해.”
에반트의 모습에 라다는 피식 웃었다.
“예전에는 참 폼을 많이 잡던 놈이. 이제는 비굴하네.”
“나 원래 잘난 놈 아니야. 미안해. 헤헤헤헤.”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반응이 좋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비굴하게 굴었다.
하지만 라다는 방심하지 않았다.
“그런 점이 마음에 안 들어.”
타앙!
에반트의 허벅지를 쐈다.
“크윽! 썅년! 네 애미에비도 쳐죽였어야 하는데! 언젠가 꼭 찾아서 쳐 죽인다!”
“언젠가?”
타앙!
한 쪽 다리를 못 쓰게 만들었으니 다른 쪽도 못 쓰게 해주며 균형을 맞춰주었다.
“아악! 잘못했어요! 라다님! 라다님! 제발제발제발!”
분노 뒤에 다시 조절을 하고는 애원한다.
이대로는 죽겠다 싶으니 더욱 비굴해졌다.
“어느쪽이 진짜일까?”
타앙!
왼쪽 어깨를 쏘자 에반트의 눈에 핏발이 섰다.
“썅년. 넌 무사할 거 같아? 너도 죽는 거야. 개씨팔년 못 따먹은 게 아쉽다. 크크크크.”
“허세는.”
타앙!
“크으.......”
피가 줄줄 흐른다.
스스로 지혈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피가 빠져나가며 몸이 식기 시작한다.
에반트는 이를 악물고 저주를 날렸다.
“니 에비도 애미도 모두 좀비가 될 거다. 그리고 니 살을 찢어 먹을 거고 니가 낳은 애새끼는 좀비라서 니 살을 뜯어먹고 자랄 거고! 개 썅년아! 먼저 가서 기다릴 테니까 빨리 와라! 넌 아무 것도 못하고 죽을 거니까! 질질 짜던 병신 같은 년아!”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에반트는 죽어갔다.
하지만 라다는 피식 웃었다.
“너희들도 가야지?”
“아, 안 돼. 제발제발제발. 에반트도 이제 죽었잖아. 제발 그냥 조용히 살 테니까. 응? 제발제발.”
타앙!
카메크의 이마에 총알이 박혔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데라.
“라다. 제발 살려줘. 부탁이야. 도와달라는 말은 안 할게. 제발. 난 아무 것도 안 했었잖아. 그냥 넘어가주면 안 될까?”
“안 돼.”
타앙!
라다는 단호하게 답하며 총알을 이마에 박아주었다.
“후우.”
모두 죽인 후에 라다는 주변 수색에 들어갔다. 다른 무리는 없었다.
‘흩어졌거나 좀비가 되었겠지.’
인근의 생존자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라다였다.
어지간한 생존자들과는 이미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으니까.
괜히 호텔에서 혼자 지낸 게 아니었다.
“다 끝났어?”
“네.”
“괜찮아?”
“기분은 좀 별로지만. 괜찮아요.”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 같은 것은 찾아오지도 않았다. 살인이란 금기를 저지른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에 라다의 정신은 이미 많이 부서진 상태였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사람을 죽일 정신적인 준비가 되어 있었던 라다였다.
또한 수많은 좀비들을 박살내며 쌓은 경험 덕분에 사람의 죽은 모습에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다.
그냥 기분이 좀 찝찝한 선에서 끝날 뿐이었다.
더구나 신적인 존재는 믿지도 않았다.
믿는 것은 강지건이었다.
“가서 한 판 뛸까?”
“네.”
두 사람은 바로 관리실로 복귀했다. 이어서 샤워실에 함께 들어갔다.
나신으로 부둥켜안으며 비누칠을 해준다.
“자.”
강지건이 비누를 떨어트린다.
라다는 웃으며 숙였다.
쑤욱!
“하윽!”
순간 강지건이 뒤에서 박아버렸다.
비누를 주었지만 자꾸 미끄러지며 떨어진다.
라다는 비누를 줍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계속해서 이어진 흔들림에 제대로 줍질 못했다.
“못 주우면 안 끝나.”
“흐윽!”
강지건이 사정할 때까지 라다는 비누를 줍지 못했다.
샤워실 이후로 침대에서 한 판 더 뛴 두 사람은 다시 크롭스크로 들어왔다.
강지건은 라다가 죽인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조용히 건물 내부를 수색했다.
“여기 데이터는 흠. 별로 쓸모가 없네.”
투자 회사 건물이었다.
크롭스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면 금융 정보야말로 굉장히 유용한 정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다 무너진 것 같은 상황이다.
돈이 있어봐야 받아줄 사람을 찾는 게 더 힘들다.
신용 화폐는 신용을 주고받을 사회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현재 크롭스크라면 금과 은도 별로 의미는 없고 차라리 통조림이 화폐로서의 가치가 더 높다고 할 수 있었다.
크롭스크의 계좌를 몽땅 털어 자신의 것으로 한다고 해봐야 그냥 숫자일 뿐이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라다의 아빠가 있는 섬은 여기서 먼가?”
“걸어가면 멀죠.”
헬기를 타면 금방이지만 차를 타면 시간이 좀 걸리고 걸어가면 더 걸린다.
무엇보다 섬이기 때문에 배를 타야 한다.
다리도 없는 곳이다.
“그럼 선착장을 찾아보자.”
두 사람은 배를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좀비로 가득한 도시 안에서 움직이다보면 포인트는 자연스럽게 쌓인다.
결국 3000 포인트를 번 강지건은 라다에게도 초감각을 사주었다.
“이건 너무 과분해요.”
“아냐, 라다도 강해져야 내 일을 돕지.”
모든 것을 자신에게 투자하면 강해지니 좋지만 결국 어지간한 일을 스스로 움직여서 해결해야만 한다.
‘나 혼자만 강해져봐야 소용없어. 적당한 도우미가 있어야 성장이 더 빨라져.’
등급만 빨리 올려봐야 소용없었다.
등급에 어울리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기에 강지건은 서두르지 않고 라다 또한 강하게 키울 생각이었다.
“고마워요, 주인님.”
‘날 버리지 않으셨어.’
챙겨주지 않았다면 따라가기 위해 홀로 엄청나게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포인트로 직접 챙겨주니 충성심이 무럭무럭 솟아난다.
이미 최대한도를 채웠던 충성심과 호감은 광신으로 변했다.
“라다가 얼른 강해져서 내 일을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어.”
“네!”
무엇이건 해주고 싶었다.
초감각을 통해 본 세상은 너무나 색달랐다.
아름다웠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상에 라다는 즐거움을 느낄 정도였다.
“그럼 이제 지구로 돌아가서 쉬자.”
크롭스크의 침식을 조사하는 한편, 지구의 생활도 즐긴다.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좀비를 잡는 게 어렵지 않다고 해도 계속해서 징그러운 모습을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이번에는 와인도 한 잔 어때요?”
“좋아.”
크롭스크에서 도중에 발견한 와인 상점에는 와인들이 무사히 저장되어 있었다.
저렴한 와인부터 고급와인까지.
강지건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챙겼다.
덕분에 관리실 한 쪽은 아예 와인 상점과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