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회
에필로그- 찰나의 평화
001
가웨인이 물었다.
"폐하, 감히 제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황과 그 성국에게 로마를 줄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태양의 기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보였다.
교황 비길리우스에게서 막대한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교황은 브리튼 왕국에 서로마 제국으로 발전하는데 있어 가장 큰 기여를 하였으며, 로마 귀족들을 압박하여 루키우스를 향한 지원을 끊어내도록 유도했다.
물론 그를 제외하고서도 수많은 방법으로 브리튼을 도와주었는데, 병력을 할애하지 않고 오로지 계략만으로 브리튼과 로마를 조율하면서 이득을 챙긴 그 수완에 대해서 가웨인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었다.
"언니의 말씀이 맞습니다. 교황에게 권력을 쥐어주면 훗날 화근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그라베인도 동의했다.
푸른 머리카락의 미녀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면서 이탈리아의 교황령이라는 새로운 세력에 대해서 강한 적의를 보였다. 물론 지금은 서로 견고한 유대 관계를 맺은 동맹국이라지만 언제까지 그 관계를 유지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언젠가는 이탈리아에서 세력을 확장시킨 교황령이 로마 제국에 붙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서로마 제국을 공격하여 그 황위를 강탈하려고 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훗날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미지는 불안감을 조성한다. 가웨인과 아그라베인은 아직 그 미래가 시작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려를 표시했다.
"그래도 말이지....."
페르시아 너머에 위치한 인도 지역의 체스게임이라 할 수 있는 차투랑가의 장기말을 손가락으로 희롱하면서 그들의 불안에 대해서 대답했다.
"지금은 갑작스러운 영토 확장으로 그것을 묶을 수 있는 요소가 필요해. 제아무리 황권을 강화시키고 억압적인 정책을 펼쳐도 모든 사람들을 다스릴 수는 없어. 인간은 다양하고, 모두 다르기 때문이지. 인종도 다르고, 민족도 달라. 그들을 모두 결속시키기 위해서는 종교만큼이나 썩 좋은 것도 없지."
종교만큼이나 좋은 건 없다고?
내가 대답했다.
기독교를 내세우면서 모든 민족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다.
교황 비길리우스가 칙령을 선포하면 기독교를 신봉하는 민족들은 저마다 앞다투어서 서로마 황실에 충성을 맹세하리라. 서로마 황실은 기독교를 수호하는 최강의 수호자였고, 그 수호자에게서 총애를 받고 싶은 민족들은 서둘러 복종의 의사를 밝히리라.
물론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섬기는 민족에 한해서도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다. 강제적으로 기독교로 개종시킬 생각은 없다. 교황은 선교사를 변경에까지 파견하여 개종에 힘쓰는 모습을 보였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다양한 종교를 단도직입적으로 하나로 통합시켜버리면 다툼이 끊이질 않는다.
차라리 종교세를 내게 만들어 기독교인과는 차별화를 두는 대신에,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다. 물론 종교세는 그리 높지 않다. 그저 군것질이나 사먹는 용돈 수준이라고 할까. 용돈 수준이라고 할지라도 변경에 있는 민족들에게서 다수 거둔다면 막대한 국가 예산으로 발전한다. 종교의 자유를 허용시키고, 국가는 예산을 얻는다. 나쁘지 않은 관계였다.
"물론 나중에는, 기독교를 모조리 정리해야겠지만."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종교는 필요하다. 하지만 강대한 전력을 가진 종교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중에 '종교 청소'를 해야하는 것은 내가 아닌 후대의 황제일 것이다. 지금은 교황과 친분을 다지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이용가치를 사용하겠다. 교황이라는 존재는 이용가치가 좋았다. 신의 대리자라는 직함은 다수의 민족들을 통합시키는데 필요한 명분으로 작용할 테니까.
서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완성된 루테시아로 입성하여 화려하게 증축된 황궁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황궁 완공식에서 수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에게 연설을 적당히 해주고는 곧바로 업무에 돌입했다.
전쟁이 끝났다고 하더라도 일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늘어나버렸다. 루키우스 티베리우스가 저지른 그 잔재를 지우는 것은 수 년에 걸쳐서 수행되어야 할 과제였다. 청야전술의 일환으로 파괴된 갈리아 지역의 남부와 동부, 서부 지역을 다시 재건해야될 것이고, 그에 따라서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소요되리라.
머리가 아프다.
젠장할, 빌어먹을 일이다.
가웨인, 아그라베인과의 이야기를 끝내고서 곧바로 가정으로 복귀했다.
업무를 내던지고 가족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업무일과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내일로 미루면 될 뿐이고, 내일도 못한다면 그 다음 날로 미루면 된다. 물론 이렇게 살면 인생이 망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왔어?"
나를 보며 웃음을 지어주는 모르간의 모습에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붉은색 머림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미녀는 결코 변하지 않을 아름다운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절세의 미녀는 모드레드를 대동하고서 티타임을 즐겼다. 물론 말괄량이 딸은 예절 따위는 내던져버린지 오래였고, 찻물을 한꺼번에 들이키다가 모르간에게 집중 포격을 받았다.
시뻘건 불길들이 지면으로 떨구어진다.
자기 딸에게 마법을 연사해버릴 줄이야. 모르간도 대단하지만, 그 공격에도 멀쩡하게 움직이는 모드레드도 신기하다. 역시 나와 모르간의 딸이라서 그런가. 아직 어린 나이였음에도 초인급에 준하는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다.
모드레드가 베시시 웃었다.
"흐응. 그 정도로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니까."
"....내가 낳은 애인 건 알지만 이상해."
모르간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
"나도 몰라."
물론 나를 닮아서 그런 것도 아니겠지.
왕실의 보물고에 허락도 없이 들락거리면서 성검 클라렌트를 다루기 시작한 모드레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괄괄한 성격의 황녀는 내년에 원탁의 기사단에 입단하는 데다가 이미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영토도 있었다. 이 꼬맹이에게 론디니움이라는 거대 도시를 맡긴 내가 원망스러워진다. 나라가 멸망하는 것은 아닐까.
"아바마마! 이제 일이 끝났으면 나하고 검술 대련이나 하자!"
"시끄러! 너처럼 날뛰는 망아지 녀석하고 대련을 해버리면 하루종일 후들거려서 못 살아!"
"싫어!"
모드레드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 녀석은 대체 누구를 닮았는지 고집이 억세다. 모르간을 바라보았다. 누구를 닮았는지 잘 알겠다. 우선 옹고집에다가 자신의 주장을 절대로 꺾지 않는다는 것은 모르간을 닮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딸이 이럴 리가 없다. 그리고 모르간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 부부는 모드레드의 성격을 두고서 "당신 닮아서 그렇잖아." 라고 답하면서 서로에게 그 책임을 전가시켰다.
어느 부부나 겪을 일이다.
그 사이에 있던 모드레드는 "누구를 골칫덩이로 아는 거야!" 라면서 강하게 반발했지만, 물론 그 주장은 먹혀들지 않았다. 아서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아트리는 얌전하고 예의바른 황자님인데, 정작 타국으로 시집을 가는 일이 다반사인 제국의 황녀라는 소녀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말괄량이였다.
지금 내가 구상해야할 가장 중요한 사안은 모드레드를 다른 곳으로 시집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우열곡절 끝에 세운 이 제국이 멸망하는 그 날까지 풀리지 않을 숙제라고 생각한다. 모드레드를 받아줄 곳이나 있을까. 머리가 아프다. 나는 이 딸내미를 평생 돌볼 자신이 없다.
"다음에는 트리스탄을 보러 갈까...."
가레스라던지, 멀린과도 담소를 나누기로 했고, 여러 소녀들과도 만남을 약속했다.
황제이기 때문에 업무상으로라도 만나야하는 경우가 잦다고 할까. 물론 내 성격이 워낙에 여색을 밝히는 터라 여자 관계에 분별이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매번 만남을 가지고 시간을 나누면서 살게 될 것이다. 모르간은 그 때마다 나에게 질투 섞인 시선을 보낼 것이고, 모드레드는 성난 어마마마를 보면서 내게 이죽거리는 웃음을 짓겠지.
피곤하다.
하지만 행복하다.
모든 위협을 제거했고, 작은 소국에 불과했던 나라를 최강의 강대국으로 발전시켰다. 우선은 군주로서의 역할을 다하였다. 지금부터는 그 강대한 제국을 훌륭하게 운영하면서 안정권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나는 확장시킨 영토를 견고하게 확립시키는 것에 나의 치세를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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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제목이 '찰나의 평화'인 이유는.....
비세리온 펜드래건의 사후.
그 후계자들이 죄다 반란을 일으켜서 제국이 분리.
프랑스. 잉글랜드. 이탈리아. 독일 등의 분열 국가가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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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란에 놔두기는 했는데, 내일도 연재할 것임...
외전 써야하니께.
그냥 기분상으로 완결란에 제출.
신작인 '그리스의 성신 군주'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