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194화 (194/195)

194회

세계의 결착

007

로마의 섭정관,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전사!

그 소식이 전해지면서 저항을 일삼던 로마군 병사들은 항복하거나 모두 목숨을 잃었다. 결사의 각오를 다진 병사라 할지라도 다수의 적 앞에서는 무력하다. 브리튼 기사들은 품위와 명예를 한순간 잃고서 '정말 간신히 이겼다' 라고 적병을 평가했다. 스스로의 무용을 뽐내기 위해서라도 적을 무력하고 한심하게 그리는 편이 잦았는데, 차마 적을 우롱하지 못할 정도로 로마군은 잘 싸워주었다.

루키우스가 비록 전 대륙에 전쟁을 몰고 온 전범이라고는 할지라도, 그녀를 위해서 충성을 바친 로마군 병사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훌륭했다. 과연 로마 제국의 용사다운 결말이다. 도합 1천도 되지 않는 결사대들이 주군인 루키우스를 황제 비세리온에게 닿도록 분전했다. 다시 말해서 브리튼 병력은 10만이 넘는 대군이었음에도, 고작 1천의 결사대에게 본진까지 뚫렸다는 말이 된다.

비록 비세리온이 일부러 루키우스와의 결전을 노렸다고는 하더라도, 10만 명의 방어벽을 뚫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루키우스는 물론 그녀의 휘하 병사들까지 그들 모두가 결사항쟁을 한 용감한 전사로 기억했다.

"모든 것은 역적 루키우스에서 비롯된 것. 본 제국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음을 밝혀드립니다."

"저희는 역적에게 이용당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노여움을 푸시지요."

루키우스가 토벌당하고 그녀의 부대가 전멸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황제 유스티누스 2세는 두어 번이나 사신단을 파견하여 브리튼 제국과의 친선을 도모하였고, 한편으로는 페르시아를 견제하느라 바빴다.

루키우스 휘하의 장수들 중에는 그녀를 배반하고 다시 로마 황실에 붙은 자들도 있었는데, 거센 숙청의 바다 속에서 황후 소피아는 기지를 발휘하여 그들의 목숨을 구명했다. 그들은 필요하다. 마음 속으로는 죽이고 싶다는 살의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살리는 것이 이득이다. 소피아는 그 손익을 계산하면서 군인들을 살려두었다.

소피아는 머리를 굴리면서, 자신의 가문을 도륙내는데 동참한 로마 군인들을 살려주었다. 황제 유스티누스 2세에게서 전권을 부임받은 소피아는 로마 제국의 실권자였다. 그녀의 의지가 곧 로마의 뜻이었고, 가까스로 생존한 루키우스의 부하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부하들은 곧장 페르시아 전선으로 부임되었다.

적어도 소피아는 자신의 휘하 중에서 군략에 유능한 이들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는, 루키우스의 부하들을 다시 재등용한 것이다. 목숨을 살려줬을 뿐더러 다시 군직에 복권시킨 소피아의 행동에 군인들은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고, 페르시아의 진격을 막는데 동의했다.

"이제부터 로마 제국은 결코 귀국과 전쟁을 벌이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황제 유스티누스 2세는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에서 교황 비길리우스의 주도하에 서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비세리온과 접견하여 정상회담을 열었다. 동로마와 서로마의 황제가 서로 교황의 도시에서 만났다. 교황이 직접 주도하였기 때문에 신뢰성은 있었다.

교황 비길리우스는 두 황제를 바라보면서, 만약 이 협상에서 불손한 짓을 하는 무리들에게는 신의 노여움이 있을 것이라 경고했다. 물론 강제성은 없다. 그저 신의 이름을 흉내내서 교황으로서의 권위를 세우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계책은 맞아 떨어졌다. 교황이 직접 두 황제를 조율하면서 협정을 도출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인들은 교황의 권위를 존중했다.

"그건 앞으로의 일이겠지. 루키우스 같은 무리가 동로마에서 다시금 출몰하지 않는다는 법도 없지 않은가?"

"미, 믿어주십시오..... 루키우스는 전대 황제의 조카딸로, 높은 자리에 있었음에도 언제나 전쟁을 탐하던 여자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앞으로 그러한 무리가 출몰한다면 황제인 제가 앞장 서서 막겠습니다."

유스티누스 2세는 최대한 비굴한 모습으로 '평화 조약'을 요청했다.

요구가 아니다, 요청이다. 쇠락할대로 쇠락해버린 로마 제국에는 더 이상의 여력이 없다. 다시 전쟁을 치를 형편도, 그렇다고 강대한 전력을 가진 서로마 제국을 상대로 방어전을 치를 수조차 없었다. 지금 서로마가 마음만 먹는다면 피폐하게 무너진 동로마를 먹어치우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비세리온은 여러 형편을 들어서 그것을 반대했다.

페르시아를 비롯해서 북방의 훈족과 게르만을 막을 방파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역할은 동로마 제국이 앞으로도 맡아주리라.

이미 동로마는 황제 유스티누스 2세가 직접 이탈리아 로마로 오면서 체면을 집어던지고 간접적으로는 서로마 제국의 속국이 되어버렸다. 비록 황제에게 직접 속국 요구를 하지는 않았지만, 정세가 돌아가는 것을 잘 파악하는 이라면 동로마가 서로마의 속국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는 앞으로 서로마 제국의 영토가 될 것이다."

"예? 하지만 이탈리아는.... 로마 제국의 고향입니다. 고토였습니다. 그런 이탈리아를....."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3년 이내로 전쟁 배상금을 상환하지 못한다면 콘스탄티노플이 불바다가 되는 꼴을 보게 될 것이다."

"바, 받아들이겠습니다."

서로마 제국은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므로 서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이탈리아를 차지했다.

동로마의 전대 황제였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브리튼에게 서로마 제국의 계승권을 양도하면서도 이탈리아만큼은 넘길 수 없음을 천명했다. 왜냐하면 이탈리아는 로마인들이 강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된 지역이자, 로마인에게는 긍지가 깃든 고토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들어서 전대 황제는 이탈리아는 반드시 지키고자 하였는데, 그 후대의 황제인 유스티누스 2세는 무능하고 나약하여 그 고토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탈리아가 넘어갔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로마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명예와 명분까지 서로마에게 향하였음을 인증했다.

이탈리아를 빼앗긴 동로마는 더 이상 로마를 자칭할 자격이 없다.

설령 로마 황실에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로마인의 긍지를 보여주는 이탈리아를 빼앗겼으므로 명분상으로는 서로마 제국이 진정한 로마 제국이 어울리는 격식을 가지게 되었다.

동로마 황제가 무릎을 꿇었다.

서로마 황제가 승리를 도취했다.

모든 것은 전쟁에서 이긴 서로마 제국의 영광을 위해서.

이제 드디어 서로마 제국을 막을 국가는 그 어디에도 없어졌다. 이베리아 반도의 서고트 왕국은 스스로 서로마 제국의 속국이 되기를 요청하였고, 게르만의 여러 부족들 또한 부족원들을 이끌고서 서로마 제국에 전향했다.

페르시아는 황제 호스로 1세가 사망하면서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고, 훈족은 과거 브리튼과의 전쟁으로 손실이 심했기 때문에 전면전을 벌이지 못했다. 전 대륙이 진정되었다. 매번 전쟁으로 이어지던 참화가 꺼지기 시작했고, 고요함과 정막함이 깃들었다.

그리고 지금의 평화를 교황 비길리우스는 기뻐했다

순수하게 종교인으로서 전쟁이 사라졌다는 것에 대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교황이었던 그에게 노림수가 있었고, 그 노림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기독교 문화권을 크게 위협하였던 페르시아는 황제가 병사하고서 혼란에 접어들었고, 최강대국으로 성장한 서로마 제국은 교황령의 수호자가 되기를 자청했다. 황제 비세리온은 교황이 직접 임명한 신성 황제였고, 그는 신성 황제라는 경건한 이미지를 지키지 위해서라도 교권과 공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동로마 제국은 전쟁에서 패전하였으나, 두 황제가 나눈 협상에 의해서 간신히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앞으로도 동쪽과 북쪽의 야만족들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야할 것이며, 그들이 뚫린다고 할지라도 서로마 제국이 강대한 군사력을 자랑했다.

언제 페르시아에게 멸망당할지 모른다고 두려움에 떨었던 교황은 직속 주교들과 함께 기독교의 승리를 기뻐했다. 조로아스터교가 물러나고, 서로마 제국이 중심이 되어 기독교 사상이 널리 전파되었다. 교황의 선교사들이 미개한 야만족들을 교화시켰고, 그 신앙심이 확산될 때마다 교권이 크게 성장했다.

한편 이탈리아 전역을 차지한 비세리온은 직접 교섭을 주도한 교황 비길리우스에게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와 그 인근의 도시들을 교황령으로 양도하면서, 교황은 사상 최초로 막대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나 로마 황제의 견제를 받은 교권이었지만, 지금은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들을 차지하면서 교황이 직접 다스리는 교국으로까지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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