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192화 (192/195)

192회

세계의 결착

005

루키우스 티베리우스가 콘스탄티노플에서의 변란 소식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2주일이 지난 뒤였다.

브리튼 전선과 콘스탄티노플과의 거리는 너무도 멀다.

당연히 그 소식 또한 늦어질 수밖에 없었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부하들이 전선으로 도착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소식을 알게 되었다.

로마 황제 유스티누스 2세는 칙령을 내리면서 역적 토벌을 촉구하였고, 전쟁 준비로 과도한 세금을 매기던 루키우스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던 속국의 왕들은 그 명령을 받들어 모두 반란을 일으켰다. 로마의 섭정관이었던 루키우스의 입장에서는 반역과도 같았다. 물론 지금의 루키우스는 섭정관을 박탈당하고, 신분조차 격하되어 평민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반역조차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반역입니다! 서둘러 귀환하여 반역자들에게 철퇴를 내리시지요!"

"맞습니다. 우선 전선에서 모든 군단들을 철수시켜야 합니다."

"이대로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로마의 전신으로 추앙을 받는 루키우스를 신봉하고 있는 부하들은 아직도 많았다.

적어도 로마 군부에 있어서 루키우스를 지지하는 세력은 확고하다. 평민 병사들은 전쟁에 질려서 탈영하기 시작했지만, 지휘관을 맡고 있는 장수들은 그러지 않았다. 철저히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면서 명령을 기다렸다.

은발의 여기사는 휘하 장수들이 '철군'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반발심 또한 가지고 있었지만, 전황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데다가 본국에서는 쿠데타까지 일어난 마당이니 버틸 여력이 없었다. 우선적으로 브리튼 전선에 인접하고 있는 로마의 속국을 공격하여 식량을 모두 빼앗았다. 그런 식으로 부족한 식량을 충전하면서 간신히 세력을 유지했다.

"로마를 공격하라!"

"루키우스를 놓쳐선 안 된다!"

"전군 출격!"

오를레앙과 루테시아 방면에서 수비에만 전념하고 있던 브리튼 병력들이 일제히 출진.

브리튼 제국을 상징하는 군기와 함께 서로마 제국에서 과거에 사용했던 깃발까지 치켜든 병력들이 쏟아지면서 로마의 후방을 공격했다. 타이밍이 너무도 절묘하다. 로마 본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순간과 맞추어서 브리튼 제국은 전 군단을 출격시키면서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다. 타이밍이 너무도 잘 맞지 않은가.

그를 보고서 루키우스는 로마 황실과 브리튼이 손을 잡았음을 알게 되었다.

손을 잡은 이유는 오직 하나. 자신의 목을 치기 위해서다. 천하이강이라 할 수 있는 로마 제국과 브리튼 제국이 동맹을 맺고서 루키우스 티베리우스의 수급을 노렸다. 그 사실에 루키우스는 모든 세계가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것처럼 느껴졌다.

"반격하라! 반격하라!"

"브리튼 따위에게 질 수 없다!"

로마군 또한 분전하면서 싸웠으나, 이미 사기가 바닥을 치기 시작한 병력으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기세등등하게 브리튼 제국령의 갈리아 지역을 점령한 로마군은 연전연패를 당하게 되었다. 이미 탈영하기 시작한 아군 병력들이 크게 늘어났고, 로마 황실에 의해서 역적으로 규정된 계집을 사령관으로 모실 병사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장수들은 그렇다고 쳐도, 병사들의 마음은 이미 루키우스에게서 등을 돌렸다.

란슬롯이 갈리아 동부를 탈환.

그리고 케이가 갈리아 서부를, 가레스가 남부까지 탈환하게 되면서 갈리아를 점령하고 있던 로마 세력을 모두 축출했다. 브리튼과 대등하게 싸우던 용맹무쌍한 로마 병력들이 격퇴당한다. 적 사령관 루키우스가 역적으로 규정되어 로마 황실에서 버려졌다는 소식은 브리튼 전역에 알려졌고, 그 순간부터 대반격이 시작되었다.

"루키우스! 내 창을 받아라---!!"

말을 몰면서 퍼시벌이 장창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은발의 여기사를 전장에서 찾는 것은 쉬웠다. 가녀리면서도 수려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기사를 못 알아볼 리가 없다. 루키우스는 성검 플로렌트를 휘두르면서 대항했고, 퍼시벌은 그녀의 맹공을 쳐내고 받아내면서 패전의 기색이 짙었음에도 루키우스 티베리우스라는 이름의 여장부를 쉽게 패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하를 지켜라!"

"근위병들은 뭘 하는가! 전하를 뫼셔라!"

루키우스에게 남은 병력은 고작해야 8천 미만.

로마 본국에서 출병할 때만 하더라도 20만에 달하는 규모의 대군이었다. 로마 황실에 충성을 다하는 속국들의 병력까지 흡수하면서 그 유래가 없을 대군을 조직하였는데, 그들은 로마 본국에서 소식을 듣고서는 이미 배반해버렸다.

역적을 주군으로 떠받들 정도로 속국의 왕들은 순진하지 않다.

오히려 브리튼군에 종속을 청한 속국의 왕은 브리튼과 연합하여 루키우스 토벌전으로 돌아서버렸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총사령관으로 모신 부하들이, 오늘에 와서는 적으로 돌변하여 루키우스의 수급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현실이다.

이탈리아 북부의 속국들은 반 루키우스를 주장하면서 전쟁에 돌입.

식량을 얻고자 이탈리아 북부를 침략한 루키우스의 병력에 대항하여 전쟁을 펼쳤다. 수십 개의 국가들이 연합하자 그 세력이 만만치 않았고, 루키우스는 뒤로 물러서야 했다. 여러 방면에서 전쟁을 치르기에는 아군 병력들의 손실이 어마어마하였기 때문이다.

"전하! 어서 피하시옵소서!"

"여기서 무너지시면 안 됩니다!"

눈 먼 화살을 맞은 장교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동방 전선에서부터 루키우스를 주인으로 섬긴 충견들로서, 그 주인이 로마 황실에서 버림받고 전 세계에게 노려지고 있음에도 충심을 지킨 자들이다. 로마 장수들은 최악의 전황 속에서도 부하들을 이끌고서 브리튼 병력과 일전을 치루었고, 루키우스가 퇴각할 수 있도록 그 기회를 제공했다.

루키우스는 전쟁의 신이다.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의 후예라고 칭해지는 여성으로, 전쟁에서 패배한 바가 없다. 그렇기에 그녀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광신도에 가까울 정도의 신뢰를 자랑했다. 그들은 당연스럽게도 자신의 몸을 바쳐서 주군을 보호하고자 하였고, 브리튼의 추격군을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케이의 친부이자 아서의 양부인 엑터의 진격을 막아버림과 동시에 퍼시벌과 가레스의 추격군을 뿌리쳤다. 선두에서 추격군을 구성하던 기사들이 진격을 멈추기 시작하면서 브리튼 병력에게도 제동이 걸렸다. 루키우스가 순순히 패배하여 몰락할 것이라 예상하였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도 치열하게 항전을 반복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브리튼 제국에게도 넘어왔다.

이탈리아 북부로 진입하여 세력을 형성하려고 했던 루키우스는 그 침공 계획이 저지당하여 이탈리아로 들어갈 수 없었고, 그렇다고 발칸 반도의 콘스탄티노플로 퇴각할 수도 없었다. 교황 비길리우스는 루키우스를 전쟁 범죄자라고 내몰면서 규탄의 목소리를 높혔고, 로마 황실 또한 루키우스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갈 곳이 없다.

세계는 넓고 영토는 광활했지만 지금의 루키우스에게는 몸을 기댈 곳이 없었다.

북방에서 훈족과 게르만족이 내려오면서 공세를 펼쳤고, 북방의 야만인들까지 침공을 시작하자 이를 두려워한 병사들의 탈영이 늘어났다. 점점 병력들이 줄어든다. 도망치는 병사들도 많았을 뿐더러, 루키우스를 향한 충성심을 모두 바치고서 죽임을 당한 자들도 적지 않았다. 8천이었던 소규모 병력까지 줄어들면서 고작해야 1천도 되지 않게 되었다.

"알페스 지역으로 피하시면 적어도 승산이 있습니다."

"주변이 모두 산맥으로 둘러싸인 곳이니 적국의 공세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을 겁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십시오!"

부하들의 외침에도 루키우스는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쟁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전쟁과 이길 수 없는 전쟁. 그것에 대한 구분이 남들보다도 빨랐다. 브리튼과의 전쟁을 일으켰을 때부터 승산이 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쟁을 감행했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재녀는 전쟁에 집착 때문이었는지 브리튼 제국과의 전쟁을 강행해버렸고, 그 때부터 그녀의 몰락이 진행된 것일지도 모른다.

알페스 지역으로 피하자는 부하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루키우스는 말머리를 돌려서 갈리아로 향했다. 도망친 길목을 다시 되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녀는 도망치기보다는 마지막 결전을 준비했다. 병력은 1천. 그토록 좋아하던 전쟁터에서 그 마지막 생명을 다하도록 하자. 그녀는 그렇게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갈리아에서는 비세리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루키우스는 패망했다. 그렇다면 그 최후를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으로 호적수라고 생각했던 그녀를 향한 마지막 예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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